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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일자리, 다시 늘려야 한다”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5-10-20 , 미래한국

지속가능한 성장과 노동시장 혁신을 위한 정책 제언


대기업 고용이 멈춘 지 20년이 넘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대기업의 고용은 사실상 정체 상태에 빠졌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해외 생산기지 이전, 자동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대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은 급격히 위축됐다. 그 후 20년 넘게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국내 노동시장은 “고용의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체는 여전히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지만, 이들 일자리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제한된 복리후생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청년과 여성, 고학력 인재가 선호하는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20%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64%가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지만, 실제 대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비중은 18% 수준에 그친다. 이 괴리는 단순한 선호 문제를 넘어, 노동시장 전반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병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오랫동안 노동시장 불균형을 상징하는 수치였다. 2022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체의 평균 임금은 5~9인 규모 사업체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연구개발(R&D) 투자, 기술혁신, 인재 유지 능력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숙련 인력과 자본은 대기업에 몰리지만, 정작 대기업은 신규 고용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은 대기업에 몰리지만, 문은 닫혀 있다.” 그 결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속도는 늦어지고, 국가 전체의 생산성은 제약된다.

보이지 않는 족쇄, '한계기업’

대기업 일자리 정체의 배경에는 '한계기업(zombie firms)’ 문제가 깊게 자리한다. 한계기업이란 이자도 영업이익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기업을 뜻한다. 한국의 상장사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16년 9.3%에서 2022년 17.5%로 급등했다. 특히 코스닥 기업 중 20% 이상이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

원인은 정부의 정책금융, 신용보증, 세제 혜택이 한계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며 “시장 정화” 기능을 약화시켰던 점에 기인한다. 채권단 중심의 사후적 구조조정 체계는 속도가 늦고, 민간 주도 M&A·PEF 구조조정은 미비하다. 한계기업 자산 비중이 10%p 늘면 정상기업의 고용 증가율은 0.53%p 줄고, 투자율은 0.18%p 하락한다는 연구가 있다. 즉, 한계기업은 대기업이 신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을 잠식한다.
한계기업의 장기 존속은 '창조적 파괴’ 메커니즘을 무력화시킨다. 퇴출돼야 할 기업이 시장을 차지하면서, 자본과 인력이 저생산성 부문에 묶인다. 그만큼 대기업은 신산업 확장과 대규모 투자에서 기회를 잃는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유독 중소기업 고용 비중이 높다.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용의 81%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했고, 대기업 고용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기업 고용 기반이 위축되면서, 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 임금·생산성 격차도 심각하다. 300인 이상 사업체 임금은 5~9인 사업체의 두 배 수준이다. R&D 투자와 인력 유지 능력에서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현저히 뒤처진다. 산업 구조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고착되면, 대기업의 고부가가치 산업 진출 속도가 제한되고 국가 전체의 노동생산성 상승 여력이 줄어든다. 결국 중소기업 과잉 구조는 단순히 대기업 고용 축소 문제를 넘어, 국가 생산성 정체와 산업 국제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정부 지원정책의 '부작용’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한다. 정책자금 융자, 신용보증, 세제감면, 기술개발 지원, 지역산업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종종 “생산성 낮은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는 안전망”으로 변질됐다. 사례로 정책자금 융자는 매출·이익이 장기간 감소한 기업에도 반복 지원되어 퇴출이 지연된다.

기술개발 지원사업의 경우 상용화 가능성이 낮은 프로젝트에도 지원되는데 이는 R&D 효율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이와함께 신용보증제도는 부채비율이 높고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도 보증이 반복되어 결국 한계기업을 연명시킨다. 재무성과 무관하게 일괄 혜택을 주는 세제 지원은 생산성 향상보다 단순 존속 유지라는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정책은 당장은 고용 안정에 기여하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 자원 배분을 막아 대기업 성장 기반을 훼손한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 공급을 오히려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한계기업과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부작용은 결국 대기업의 혁신 여력 약화로 이어진다.
먼저 자본 배분 왜곡이 발생한다. 금융기관은 위험이 큰 대기업 신사업 대신 정부 보증이 있는 부실기업 대출을 선택한다. 그 결과 투자 기회 상실이 발생해서 신성장 산업(차세대 반도체, 로봇, AI, 바이오 등)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하지만,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묶이면서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지연된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OECD 연구에 따르면 '좀비기업’ 비중이 높아질수록 가장 생산성이 높은 정상기업의 성장이 억제된다.
대기업 고용 확대는 단순한 노동시장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의 혁신 동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한다. 대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면, 신규 고용 창출도 멈추고 국가 경쟁력도 흔들린다.

한계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을 경우, 정상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그만큼 위축된다. 연구에 따르면 한계기업 자산 비중이 10%포인트 증가할 때, 정상기업의 고용 증가율은 0.53%포인트 감소한다. 반대로 한계기업 자산 비중이 줄어들면 정상기업에서 약 11만 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될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즉, 부실기업의 연명은 단순히 해당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성장과 신규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구조적 족쇄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장기간 존속한다는 데 있다. 정부의 각종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연명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결론적으로 종합하면 대기업 고용의 정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심화시킨다. 수도권은 대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이 집중돼 양질의 일자리가 풍부하지만, 비수도권은 영세 중소기업 중심 구조가 고착돼 임금·고용 안정성 모두에서 열세를 보인다. 그 결과 청년층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지방은 산업 기반과 인구 구조가 동시에 약화된다. 결국 지방 소멸 위험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대기업의 신사업 진출과 대규모 투자가 지연되면서, 한국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기회를 상실할 위험에 직면한다. 장기적으로 국가 생산성과 경쟁력이 저하되는 구조가 고착되는 것이다.

대기업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제언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한계기업의 신속한 정리다.
대기업의 고용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한계기업의 과도한 잔존이다. 이들 기업은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정책금융과 신용보증에 기대 연명한다. 하지만 그 결과 정상기업의 투자와 신규 고용 여력이 줄어든다.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조기경보체계를 도입해서 세무·재무·금융 정보를 통합 분석해 부실 위험을 사전 포착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 기반 구조조정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채권단 협의 지연, 정부 금융 의존에서 벗어나 민간 M&A와 사모펀드(PEF)를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책금융의 재설계도 필요하다. 연명 지원이 아니라,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 재건과 경쟁력 있는 기업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재편이다.
현재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융자, 세제 감면, 신용보증 등 다양한 형태로 중복돼 있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저생산성 기업의 존속을 장려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자원 배분 왜곡이 심화되고, 대기업으로 인재와 자본이 유입될 통로는 막힌다. 앞으로의 해법은 이렇다.
중앙과 지방, 각 부처가 중복 운영하는 사업을 통합 관리해서 지원체계를 통합해야 한다. 아울러 생산성과 혁신성을 기준으로 기업을 가려 지원해야 하며, 성과가 저조한 기업은 단계적으로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 유휴 예산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R&D 협력으로 전환, 산업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노동 유연성과 인재 이동 활성화다.
대기업이 더 많은 인재를 흡수하려면 경직된 노동시장 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재처럼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뚜렷하고 전환 장벽이 높으면, 대기업은 신규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적 제언은 다음과 같다. 시간제·계약직·프로젝트형 고용을 제도적으로 확대해 기업의 채용 문턱을 낮춰야 한다. 아울러 퇴출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무 전환 교육과 매칭 서비스를 강화해,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숙련 인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재 풀 유연화를 통해 산업 간 이동을 막는 규제 완화로, 인력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넷째, 지역 불균형 해소와 대기업 분산 전략이다.
수도권은 대기업이 몰려 있지만 지방은 중소기업 중심 구조에 갇혀 있다. 이는 지방 소멸과 산업 기반 약화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방 거점 대기업 육성이 필요하다. 세제 인센티브와 입지 지원을 통해 지방에 대기업 생산기지와 연구소를 유치해야 한다. 아울러 산학연 협력 허브 구축을 위해 지역 대학·연구소와 대기업이 연계하는 고용 창출형 혁신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 지방 정착 유인책으로서 지방 대기업 취업자에게 주거·교통 지원을 확대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다섯째, 글로벌 경쟁력과 신산업 투자 촉진이다.
대기업 일자리는 곧 미래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차세대 반도체, 로봇, AI, 바이오 등 신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금융기관이 부실기업 대출에 자원을 묶어두면서 대기업의 신사업 투자는 지연된다. 따라서 정책금융은 신산업 진출을 위한 대기업 대규모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배분돼야 한다. “한계기업 지원에서 혁신기업 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 일자리 확대는 단순히 취업 선호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의 생산성·산업 경쟁력·지역 균형·사회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중소기업 보호와 연명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한계기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중소기업 지원은 효율화하며, 노동시장은 유연하게 열어야 한다. 대기업이 더 많은 인재를 받아들이고, 더 많은 신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그것이 곧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길이다.

※ 본 칼럼은 자유기업원 보고서「대기업 일자리 확대의 제약 요인과 정책적 개선방안」(2025.8.26.)을 토대로 작성한 정책 제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