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미국은, 대부분이 경제에 대한 과도한 정부 개입과 복지 프로그램 확산의 결과인, 더욱더 증가하는 문제들에 시달렸고, 어떤 복지 프로그램들과 제도들의 부담도 없는 자유 시장 경제의 교과서 예로서 미국에 관한 대중적 유럽 이미지를 어겼다. 인플레이션과 인구 증가에 대해 조정하면, 복지 프로그램들에 대한 1인당 연방 지출은 1970년에 1,293 미국 달러에서 1980년에 2,555 미국 달러로 거의 두 배로 되었다.
레이건의 백악관 도달 이전에 많은 미국 시민의 경제 상황은 악화했었다. 실질 면에서, 백인 미국 가구 소득들은 1973년과 1981년 사이 2.2퍼센트만큼 떨어졌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가구 소득들이 4.4퍼센트만큼 축소되는 것을 경험했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가장 가난한 25퍼센트였는데, 그들의 소득들은 5퍼센트만큼 떨어졌다. 소득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에서는, 고소득자들이 70퍼센트까지의 세율들로 쥐어짜졌다.
실업은 레이건이 취임했을 때까지는 7.6퍼센트로 올랐었고, 인플레이션은 세 연이은 해 동안 10퍼센트 이상이었었으며, 1980년에 13.5퍼센트−194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로 올랐다.
바꿔 말하면, 레이건은 경제 전망이 암울할 때 취임했다.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자기 경력을 라디오 아나운서로 시작했고 그 후 50개 이상 할리우드 영화에서 연기 역할을 가진 영화로 이동했다. 1967년과 1975년 사이,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 두 임기를 복무했는데, 거기서 그는 성공적으로 예산의 균형을 맞췄고 현저한 경제 회복을 달성했다.
레이건은 1980년 11월 4일에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에 대한 자기의 압도적 승리에서 44개 주, 선거인단 투표의 대다수(489 대 49) 그리고 일반 투표의 50.7퍼센트를 얻었다. 그의 취임 연설은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 현재 위기에서, 정부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고, 정부는 문제입니다.” 몇 년 후, 그는 유명하게 말할 것이다: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들은 '나는 정부에서 왔고 나는 돕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레이건의 정치적 의제는 간단한 것이었다: 경제 영역에서 국가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자유 시장의 역할을 증가시키는 것. 더 강건한 자본주의 형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관료제를 축소했고, 불필요한 제한들을 폐지했으며, 세금을 70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대폭 삭감했다! 레이건 시절에, 미국은 가장 누진적인 조세 제도에서 가장 덜 누진적인 조세 제도로 바뀌었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미국 경제는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보다 거의 ⅓만큼 더 컸다. 1981년과 1989년 사이, 1,700만 개 새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레이건이 백악관에 도달했을 때 두 자릿수에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것은 그저 4.1퍼센트만이었는데, 대개,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의 분별 있는 화폐 정책 때문이었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경기 후퇴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지라도, 레이건은 명시적으로 볼커의 전략을 지지했다. 많은 그의 비판자의 음산한 예측들과는 반대로, 그의 과감한 조세 삭감들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증가들에 이어지지 않았다.
레이건의 비판자들은 그의 경제 정책에 잘못된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히 한 통계를 지적하기 좋아한다: 국가 부채가 그의 대통령 재임기에 1조 40억 미국 달러에서 2조 260억 미국 달러로 두 배로 되었다. 증가하는 부채 누적은 레이건의 대규모 군사 지출로 일어났는데, 이것은 방위 예산이 1981년에 1,580억 미국 달러에서 1989년에 3,040억 미국 달러로 거의 두 배로 되는 것을 경험했다. 방위 지출에서 누적 증가는 심지어 예산 적자에서 누적 증가를 앞지르기조차 했다. 만약 이 대규모 군사 지출 증가가 없었더라면, 레이건은 일자리들을 창출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면서 세금과 부채를 삭감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가 직면한 두 번째 주요 쟁점−대통령이 군비 경쟁을 대규모로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종식하기로 제안한 냉전−은 이것을 달성하기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서양이 냉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이 붕괴하는 데 대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소득 이동성의 아메리칸 드림은 1980년대에 건재하였다: 1981년에 가장 가난한 소득 5분위수에 있었던 가구들 중 86퍼센트가 1990년까지는 경제 사다리를 올라가서 더 높은 5분위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구들은 1981년과 1988년 사이 세금 등을 공제한 실제 급료에서 자기들의 백인 동료들보다 더욱더 큰 증가를 경험했다. 이것은 오직 “부유한 백인들(rich whites)”만이 레이건의 조세 삭감들로부터 이익을 얻었다는, 반자본주의자들의 전설이 그릇됨을 증명한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The Power of Capitalism)≫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25779/), ≪반자본주의자들의 열 가지 거짓말(In Defense of Capitalism)≫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471405/), 그리고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How Nations Escape Poverty)≫(https://nations-escape-poverty.com/)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NO.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 | 로널드 레이건−세금을 70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삭감한 사람 라이너 지텔만 / 2025-01-03 |
|||
87 | 가난으로부터의 진전 데이비드 고든 / 2024-12-30 |
|||
86 | 독일: 하지 말아야 할 것에서의 교훈 라이너 지텔만 / 2024-12-27 |
|||
85 | 하비에르 밀레이−1년 후 라이너 지텔만 / 2024-12-20 |
|||
84 | 우주는 새 자유 시장 변경이다 라이너 지텔만 / 2024-12-13 |
|||
83 | 우주 경제−저평가된 산업 라이너 지텔만 / 2024-12-06 |
|||
82 | 독일에 많은 희망이 없다 라이너 지텔만 / 2024-11-29 |
|||
81 | 소행성 채굴: 공상 과학 소설인가 원료들의 미래 원천인가? 라이너 지텔만 / 2024-11-22 |
|||
80 | 억만장자가 없는 나라? 그것은 쿠바와 같지만 태양이 없을 것이다 라이너 지텔만 / 2024-11-15 |
|||
79 | 베네수엘라−21세기의 사회주의 라이너 지텔만 / 2024-11-08 |
|||
78 | 독일−사회주의/자본주의 실험 라이너 지텔만 / 2024-11-01 |
|||
77 | 화성에 있는 바위들은 권리들을 가지고 있는가? 라이너 지텔만 / 2024-10-25 |
|||
76 | 하비에르 밀레이−책벌레이자 셀프-마케팅의 천재 라이너 지텔만 / 2024-10-18 |
|||
75 | 스페이스X는 오늘 역사에 남을 일을 했다 라이너 지텔만 / 2024-10-17 |
|||
74 | GDR로 돌아가는가? 동독인들은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두려워한다 라이너 지텔만 / 202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