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이에게 동감을 표한다

이한나 / 2024-11-20 / 조회: 115

가르치는 아이들이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모두 십 대들이다. 이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소통이란 뭘까 하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말을 했는데, 분명히 한국말을 했는데 못 알아듣는다. 아니, 말은 알아듣는데 뜻을 모른다. 수박 겉핥기식이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아이들은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아이들은 보지 못한다. 답답할 때면 ’그래서 선생이 있는 거지‘하고 나를 다독인다. 


 우리는 왜 배울까? 지식을 얻기 위해 그리고 보기 위해서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박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속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서다. 단순히 암기로는 안 된다. 경험과 성숙의 문제다. 피아제가 주장한 인지발달 이론이라는 게 있다. 인지의 발달에는 단계가 있다는 거다. 이 이론에 따르면 1~2세의 아이들은 감각을 배우고 2~7세의 아이들은 사물을 직관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좀 더 크면 사물들을 순서화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청소년기에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한다. 사랑, 자유, 정의, 행복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그렇다면 어른은? 어른은 그 개념의 모순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복잡하다. 자유에는 법이 필요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불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행복해지려면 불행을 경험해야 하고 사랑하면 원수가 된다. 어른은 이 복잡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 단계는 나이 먹는다고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화가 있다.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책, ’법‘에 나오는 일화다. 한 빵집이 있다. 한 불량배가 이 빵집에 돌을 던졌다. 빵집의 유리창이 깨졌다. 뭔 일인가 싶어서 주인은 밖으로 나와 보지만 불량배는 도망한 후다. 사람들은 깨진 유리창과 엉망이 된 빵들을 바라본다. 군중들은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중 몇몇은 이 일이 꼭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리가 깨져서 유리를 사야 하니 유리가게에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자 이거다. 정말 그런가?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유리창 교체비용이 오십만원이라고 하자. 유리창이 깨짐으로써 유리가게가 오십만원을 얻고 그 돈을 옷가게에 쓴다. 옷가게 주인이 신발 집에서 돈을 쓰면 그 가게 역시 오십만원을 얻게 된다. 계속해서 돈이 돈다. 깨진 유리창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불량배는 혁신가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량배가 유리를 깨서 어떻게든 빵집 주인과 유리가게 주인 사이의 거래때문에 경제가 작동되었다는 것? 조심하자. 이건 아이들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른된 자는 처음의 일을 기억해야 한다. 애초에 오십만원으로 빵집 주인은 그 날 오후에 정장을 살 생각이었다. 그 순간에 유리가게 주인이 얻은 오십만원을 양복점 주인이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고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군중은 단지 빵집 주인과 유리가게 주인만을 생각했다. 가려져 있던 잠재적 제삼자, 양복점 주인은 보지 못한 것이다.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고려한다면 그건 어른이 아니다. 어른은 혁신과 노동이 있을 때에야만이 경제성장이 따른다는 걸 봐야 한다. 대부분은 유리가게 주인이 유리 팔아 돈 받은 현상만 본다. 아이들이라서 그렇다. 그럼 선배 된 어른들이 가르쳐 주면 된다. 그래서 리더가 있고 설득이 있고 정치가 있다. 답답해도 과정이라는 게 있는 거다. 사회가, 우리의 공동체가 이 단계 없이는 성숙해질 수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밀레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르헨티나는 대처가 집권하던 시절 자국의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령이던 포틀랜드를 점령하던 형편없는 나라였다. 그랬던 아르헨티나가 대처와 비슷해 보이는 인물을 출현시켰다. 그는 국민을 설득한다. 수박을 가르고 속을 보여준다. 부하려면 가난을 인정해야 함을 아직은 어린 아르헨티나에게 가르친다. 유리가게 주인의 소득은 없어도 양복점 주인이 이익을 볼 것을 알려준다. 세계 어딜 봐도 정치가 없는 것 같아 울적했는데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는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 어린이들아(한숨),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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