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배임죄 선진화

윤주진 / 2023-11-09 / 조회: 3,726

vol 01 배임죄 선진화_22대 자유 입법 과제.pdf



 기업가 정신 위축시키는 배임죄, 경영판단 원칙 도입으로 선진화해야

▪  예상치 못한 손해와 실패도 '배임’으로 떠안아야 하는 현실…기업인 옥죄는 사법 리스크

▪  실제 재판에서 인정되기 어려운 경영 판단 원칙, 상법상 명문화 필요

▪  기업의 과감한 투자, 장기적 전략 수립 위해 22대 국회가 배임죄 선진화해야


■ 들어가며

흔히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이끈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들 말한다. 기업 경영이란 합법과 위법의 위험한 경계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정경유착의 연결 고리, 극심한 노사갈등과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 부담, 가업 승계와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자금 마련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선택 등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기업인이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로 '배임’ 혐의다.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내린 선 택과 결정이, 훗날 ' 배임 죄 ’라는 부메랑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기업인을 위축시킨다. 기업은 투자 과정에서 얼마든지 단기적 손실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고, 실제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와 손해도 누군가의 배임죄를 묻는 구실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배임죄가 샐러리맨 사이에서는 임원 승진을 꺼리는 이유로 작용할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다수를 차지한 21대 국회에서는 배임죄 개선에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22대 국회는 과연 배임죄 선진화라는 숙제를 풀 수 있을까? 배임죄, 왜 문제이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현행제도의 문제점

배임의 본질은 '배신’이다. 신의성실의 의무에 대한 위배 내지 신임관계의 침해에 있다고 하는 이른바 “배신설”이 통설이자 판례의 태도다. 일각에서는 배임이란 엄밀히 말해 사적 영역에 해당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배임죄의 근원은 사적 질서를 다루는 「민법」이 아닌, 공적 질서 유지와 공권력에 의한 처벌 등을 다루는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현행 배임죄의 문제점은, 구성 요건이 매우 불분명해 사실상 어떤 경영 활동이든 수사기관에서 의지만 가지면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 기업인들의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에 있다. 심지어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더라도 '통상의 업무집행 범위를 일탈한 경우’라면 배임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사법부는 '미필적 고의’, 즉 손해 발생이나 금전적 이익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지  정도만으로도 고의성을 인정한다.


문제는 미필적 고의는, 주변 정황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결론이 엇갈릴 수 있다. 기업인 입장에서 100% 사업 성공을 확신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지의 강약의 문제에 해당된다. 단 0.1%라도, 이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은 과연 손해 발생 가능성을 인지한 것으로 봐야 할까? 그런 해석으로 이어진다면 기업인의 어떠한 선택이든 손해만 발생하면 배임으로 연결 짓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배임은 기업인의 과감한 투자,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영 전략 수립, 차세대 산업 진출 등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 기존 입법 논의 및 대안

모호하고 불분명한 기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엇갈릴 위험성이 높은 배임죄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대안은 '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이다.


최준선 교수에 따르면 경영판단 원칙이란, 경영자가 주관적으로 기업의 최대이익을 위하여 성실하게 경영상 판단을 하였고 그 판단과정이 공정하다고 볼만한 절차적 요건을 갖추었다면, 그 결과 잘못된 판단으로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경영자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여 그로 인한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법리이다. 학계와 경제계,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경영판단 원칙을 법령에 삽입하여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경영판단 원칙을 인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 경영판단 원칙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제일은행 이사 부실대축책임 관련 재판에서 대법원은 최초로 경영판단 원칙 취지를 반영했다. 문제는 비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년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경영판단 원칙이 언급된 대법원 판례 총 89건 중 인정된 사례 는 38.2%로 반대 경우 에 비해 40% 정도 였 으 며 ,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경영판단 원칙을 불인정한 판례가 3배 많았다.


배임죄를 개선하고자 하는 입법 움직임은 최근 20대 국회, 21대 국회에서도 일부 있었다.



20대 국회 정갑윤 의원은 배임죄의 연원인 형법을 개정하고자 한 반면, 21대 국회 권성동·김용판 의원은 상법상 이사 의무 부분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별배임죄 처벌을 면제하고자 하였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보다 분명히 도입하는 법률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라고 볼 수 있다.


■ 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배임죄라는 죄목이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 뿐이다. 그마저도 독일에서는 2005년 경영판단 원칙을 도입해 그 후 배임죄 적용 사례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일본은 '자기 혹은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 조항이 있어, 배임죄를 목적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즉, 독일과 일본 모두 한국에 비해 배임죄 적용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배임죄가 없는 미국은,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하고 있기는 하나, 1982년 루이지애나 대법원 판결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했다.

즉,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배임죄 폐지에 해당될 것이다.


민사상으로 손해를 입은 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 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큰 한국 사회에서 배임죄 폐지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 에 서, 21대 국회에서 권선동·김용판 의원에 의해 시도된 상법상 경영판단 원칙 도입이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이는 독일의 주식법에서 채택한 방법이다.


기업 경영 위 축 의 피 해 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일자리가 줄고, 경제 번 영 의 기회를 상실하며,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 침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사례가 많아야 산업이 커지고 국민 소득이 증가한다. 배임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설령 무죄가 나더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과 감수해야 하는 공포 심리가 국민 경제 선순환을 가로막고 있다.


22대 국회가 배임죄를 선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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