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과제 중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임금과 저임금의 격차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사회적 불균형과 기회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첫 직장에서부터 불균형을 체감하고,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린다.
우리 사회는 공정한 노동 환경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공정함'이란 동일한 처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차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 다양한 일의 형태를 존중하는 제도적 유연성도 공정의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단지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의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모델은 균형 잡힌 접근법을 제시한다. 해고가 비교적 자유로운 대신, 강력한 실업보험과 재취업 지원이 제공되어 노동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낮고 노동시장 내 이동이 활발하다. 근로자들은 해고에 대한 불안이 적고, 기업은 인력 운용이 용이해진다.
미국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임의고용(at-will employment)’ 원칙을 통해 기업이 특별한 사유 없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직원 역시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얼핏 보면 근로자에게 불리해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고용 유연성은 실리콘밸리가 세계적 혁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애플, 구글, 메타 등 주요 기업들은 정기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우수 인재는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이직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잦은 이직이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인식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쌓기 위해 적극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잡 호핑(job hopping)'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문화는 근로자들이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해고되더라도 비교적 쉽게 재취업할 수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을 기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근로자 보호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장 구조 전반의 개혁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파견·기간제 규제의 합리적 개선, 탄력근로제 확대, 직무 중심의 보상체계 확산 등은 노동의 유연성과 기업의 활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과도한 노동 규제는 시장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결국 일자리 창출에도 제약이 된다.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단순히 규제 완화나 보호 강화 중 하나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과 안정성, 공정성과 경쟁력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청년과 중소기업 지원,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사회적 대타협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 정책의 방향은 '보호'와 '유연성' 사이의 균형점으로 향해야 한다. 정규직 일자리 확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려면, 일하는 방식과 고용 형태에 대한 보다 유연한 사고가 요구된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청년 세대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공정한 노동시장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위해, 보다 포괄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정책 논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그 첫걸음을 책임감 있게 내디딜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혜림 자유기업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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