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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파괴자들의 3가지 유형 - 지킬, 돈키호테, 프랑켄슈타인

글쓴이
이진영 2015-05-10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니?” 어릴 때부터 들어온 어머니의 잔소리다. 나는 그 말이 집 안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보니 똑같았다. 버리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또 지키려는 사람이 있으면 부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이 쓰레기나 물건일 때는 문제가 사소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유나 평화 같은 가치일 때는 문제가 심각했다.

 

나는 이 글에서 자유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도 많지만 꼭 그 만큼 자유를 부수려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곳곳에서 자유를 해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지킬 박사(Dr. Jekyll) 형이다. 영국 작가 Robert Stevenson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등장하는 그 지킬 박사다. 이 유형의 특징은 착한 척이다. 선하고 친절한 지킬 박사는 밤만 되면 악하고 불친절한 하이드 씨로 변한다. 자유의 적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의, 민주, 인권을 들먹이며 일상에서는 착한 양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길목에서는 순식간에 나쁜 늑대로 표변한다. 있는 척이든, 아는 척이든, 깨어있는 척이든 오래 가는 은 없다. 그래서 굳이 감별법도 필요 없다. , 권력, 명예가 걸린 사안에서 이들이 보이는 행태를 잘 관찰하면 충분하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부정의, 비민주, 반인권도 서슴지 않는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만 골라 강령을 채웠던 어느 정치 집단이 2012년 총선 과정에서 보여줬던 불공정·불평등·부정의 당내 경선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두 번째는 돈키호테(Don Quixote) 형이다. 스페인 작가 Cervantes의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Man of La Mancha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오 알돈자(Al donza)! 나의 고귀한 이상과 열정으로 반드시 이 세상을 바꾸리다.” 이 유형의 특징은 선의로 무장된 무모함이다. 그들에게는 위선이나 위악이 없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인류 역사에서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된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20세기 초반, 아름답기만 한 이 문장이 지구의 절반을 덮었다. 그곳에선 독재가 들어섰고 혼란과 굶주림, 폭력이 파생됐다. 21세기에는 좀 더 정교한 형태로 바뀌었다.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점심을 먹었으면 좋겠다.”, “모든 청년이 대학 등록금을 절반만 냈으면 좋겠다.”, “모든 노인이 연금을 통해 중산층에 준하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같은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은 보편적 복지, 사회적 경제, 공적 부조 같은 단어들로 포장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망하는 게 그럴듯할 뿐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스나 아르헨티나가 왜 국가 부도에 이르렀는지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형이다. 널리 알려진 오해와 달리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소설을 쓴 여류 작가 Mary Shelly1844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중 잣대가 괴물을 만들었다. 조금 이상하게 생겼을 뿐이었던 한 생명체는 나는 되고 너는 안 돼라는 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괴물이 되었다.” 이 유형의 특징은 이중성이다. 그들에게는 일관성 대신 변덕성만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경제 영토를 넓히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으로 추켜세운다. 하지만 이듬해 이어진 후속 협정에 대해서는 통상 주권을 팔아먹은 매국행위로 깎아내린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을 기준으로 한 원근법에 따라 선악으로 구분된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치면 착한 FTA와 나쁜 FTA’로 부르는 식이다. 논리는 상황에 따라 춤을 춘다. 여기에는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죽음은 촛불 추모의 대상이 되지만, 어떤 죽음은 폭풍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연평도와 천안함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자유의 적들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강제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자유주의자들 앞에 놓인 것은 더 치열하게 논쟁해서 우리가 가진 논리의 우위를 스스로 입증하는 길 뿐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노력 덕분에 많은 이들이 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위선적인 지킬 박사와 무모한 돈키호테, 이중적인 프랑켄슈타인의 존재는 그렇게 계속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