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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만을 소비하는가

글쓴이
박진우 2010-04-25

현대인들의 소비 형태를 빗대어 ‘기호를 소비한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엔 ‘된장녀’, ‘허영’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즉, 제품의 질, 기능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분이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브랜드 혹은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소비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행태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이 과연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먼저, 과연 소비자들이 기호만을 이유로 소비하는가. 최근 발매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폰의 예를 들어보자. 아이폰은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애플사의 제품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그 디자인과 기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관심만큼 아이폰의 판매율이 높지 못하다. 스마트폰이라는 익숙치 않은 기능에 대한 범접 못할 두려움과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폰을 현대 트렌드의 상징물, 상류사회의 전리품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기호로 소비되는 대표적인 제품이 됐다. 하지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이폰의 구매이유는 기존제품과의 차별화된 사용성,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브랜드 선호 순이었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사랑 받는 애플사의 브랜드를 갖는다는 기호로 소비하는 행태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전화기에 그쳤던 휴대폰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 아이폰에 대한 매력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정보화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 일방적으로 기업에 의해 휘둘리던 휴대폰시장이 소비자가 직접 만든 다양한 앱들 , 데이터 요금에 대한 의견 제시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었고, 아이폰앱스토어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다양한 앱을 통해 끊임없이 기능이 진화하는 스마트폰인 아이폰은 이처럼 명성에 걸맞는 시장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아이폰의 기능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을 무시한 채 자기만족을 위한 기호로만 여겨 새로운 변화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국내 기업들의 휴대폰사업시장에서의 입지를 위협하고 머지않아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왜곡된 구매 동기에 초점을 맞춘 일방적인 비난보다는 소비자의 정확한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발전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시장경제에 있어서 기업과 소비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기호를 소비하는 행태를 단지 허영으로 폄하하는 것이 정당한가. 시장경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고 싶은 욕망 등등. 이러한 욕망은 예술문화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의 발달로 얻는 더 많은 정보를 통해 정교해진다. 이러한 다양화된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시장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호를 소비하고 싶은 욕구 역시 하나의 욕구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소비시장을 키우는 것은 기업으로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직장여성들의 가방과 옷에 대한 실용성 욕구와 그 이면에 숨어있는 명품을 가진다는 자부심에 대한 욕구를 간파한다. 그래서 과감히 장식을 배제하고,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낙하산소재를 도입해 실용성을 높이고 50만원대의 비교적 고가로 가격을 정해 망할 위기에 처했던 가죽회사인 프라다를 일약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우기에 이르렀다. 실용적이면서도 남들과 다른 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낸 프라다의 전략. 이보다 더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내어 기호로서 소비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인정하여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어디 있을까.

 

물론 이러한 소비행태는 상대적 박탈감, 위화감 등의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역시 간과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는 극복 할 수 있다. 가령, 기존의 고가제품을 중, 저가로 보편화하는 것이다. 저가 항공사의 경우 값비싼 항공료로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겨냥, 다양한 옵션을 선택하게 하여 비교적 저렴하게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어 여행의 보편화와 함께 소비자의 위화감을 줄이고, 기업 성장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냈다. 또 다른 방법으론 소비자의 욕구를 세밀화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호가 아닌 합리적 소비에 더 큰 욕망을 가지는 새로운 성향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다. 자라(ZARA)는 비싼 명품을 소비하는 고객보다는 늘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패스트 패션’을 선보여 10년 사이 패션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떠올랐다. 명품스타일부터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까지 다양한 종류의 옷들을 트렌드에 맞게 디자인해 일주일에 두 번씩 매장의 옷을 바꾸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내고 있다.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여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기업의 경쟁을 통한 책정되어진 적정한 가격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시장경제에 있어서 소비자의 욕망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이뤄지는 소비를 단순히 자기만족적 허영에 그치는 기호로서의 소비로만 치부 할 것이 아니라 과연 기호로서만 소비가 이뤄지는지 혹은 왜 그런 욕망이 생겼는지, 그 외의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연구하여 시장전략을 세우는 기업의 노력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 가야한다. 이러한 노력은 시장경제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를 한층 더 향상시켜 시장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