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개봉 후 6개월간 OTT 금지? 시청자 권익은 관심 없나

곽은경 / 2024-04-09 / 조회: 387       조선일보

최신 영화를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다. 소비자들은 극장에 가는 대신 집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코로나의 여파는 사라졌지만, 과거처럼 영화관을 찾는 횟수는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들이 영화표 한 장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한 달 내내 원하는 시간에 무제한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OTT의 편리함을 맛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 문화의 변화는 통계 수치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2022년 영화소비자행태조사를 보면 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는 응답자가 32.1%에 불과했다. 나머지 67.9%의 소비자들은 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즐기는 편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온라인 소비에 익숙하지 않았던 5060세대마저도 OTT 시장으로 편입될 정도니 콘텐츠 시장의 무게중심이 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관들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코로나 거리 두기 영향으로 직격타를 맞은 데다, 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가격을 대폭 올렸더니 수요가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주말 기준 약 1만5000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영화관을 갈 유인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위기의 영화관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개봉 영화를 6개월간 OTT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홀드백 제도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 한국영화부터 시작해 점차 적용 대상을 확대해나가겠다고 한다. 최신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게 만들면 오프라인 영화시장의 매출이 올라갈 것이라는 단순한 셈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을 규제한다니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2023년 필자가 참석했던 한 토론회에서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이 “시장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제도 도입”을 언급하며 “소비자 후생에 포커싱을 맞추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해서 경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홀드백 규제도 그 연장선에서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고, 콘텐츠 시장을 규율하려는 시도 같아 상당히 우려스럽다.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규제로는 영화관을 살리기 어렵다. 영화 말고도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이 경쟁을 하는 시대다. 홀드백 규제를 도입한다면, 국내 영화만 해외 영화에 비해 6개월이나 늦게 OTT 시장에 진출하는 역차별을 당하게 된다. 불법 유통사이트를 성행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커질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영화관도 TV라는 새로운 경쟁 상대가 등장해 위협받은 바 있다. 극장주들은 규제에 의지하는 대신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대형 스크린, 이에 걸맞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공하면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춰 나갔다. 할리우드의 성공 사례처럼, 우리 영화관도 온라인에서 절대 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문체부가 진정으로 영화관을 살리고 싶다면 스크린쿼터제부터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규제로 영화의 의무 상영일을 제한하다보니 인기 있는 아이맥스 영화 티켓이 중고시장에서 2~3배 가격으로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원하는 영화를 더 많이 공급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잘못된 제도가 소비자도 불편하게 만들고, 영화관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규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대형마트 규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영화관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한층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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