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오늘날의 사회는 이제 여러 변화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변화가 있겠지만, 나는 이번 사태가 마치 유럽과 아메리카의 개인주의가 실패하고 아시아의 집단주의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인 것처럼 남게 되리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처가,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선진국들과 비교하였을 때 성공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사망자 수나 감염자 수에 있어서도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이나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분명히 세계 각국의 여러 싱크탱크에서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복기해볼 것이고, 아마 주류적인 평가는, 적어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가 권력에 협조적인 공동체가 위기를 더 잘 해쳐나가더라 하는 식이 될 것이다. 자유주의 유럽이 공동체주의 아시아에 패배했다는 식의 노골적인 프레임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보면 공공의료서비스의 강화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더욱 확장을 해본다면 공동체의 생존에 있어서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마치 각종 사회보장제도와 공공서비스의 확대 필요성을 입증해주는 실증적인 근거인 양 여기저기서 인용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로서 작금의 사태를 보면, 이것이 자유주의 내지 개인주의는 해롭고 집단주의 내지 공동체주의는 이롭다는 식의 결론으로 직결될 수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럽과 아메리카가 실패했고 아시아는 성공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단지 아시아에서의 질병 확산 통제가 유럽이나 아메리카에 비해 더 잘 이루어졌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것보다 질병이 덜 확산되는 결과가 가장 좋은 결과라는 전제가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사태 초기에 세계 각국에서 입국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었다. 학계는 물론 이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러한 학계의 입장을 어느 정도 참고하여 입국금지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입국금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여러 근거들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었다. 질병 확산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자고 나라 밖과의 모든 통로를 닫아 사람이 오갈 수 없게 되면 국내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인데, 이 입장을 그대로 견지한 채 아시아는 성공했고 유럽은 실패했느냐 하는 문제를 돌아보면, 답이 그렇게 명확할 수는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질병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은 아시아가 경제적 손실은 유럽이나 아메리카에 비해 훨씬 컸다면, 과연 이를 두고 아시아의 집단주의가 성공한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국가 권력이 질병 확산 방지와 같은 목표를 최우선으로 설정하여 국민들에게 특정한 질서에 복종토록 강제하는 것은, 물론 과학적인 판단 하에 그러한 강제가 있었다면 그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라면 그 이전에 우리들 각자가 원해 마지않았던 것이, 우리 개개인들에게 있어서 행복으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이,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한 강제에 복종함으로써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인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당연히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의 지도나 강제에 순응하는 것보다는, 병에 걸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잠재적 보균자가 시내를 활보하고 사람이 많은 시설에 출입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위협이 될 수 있고, 또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꼭 국가가 나서서 무언가를 강제해야만 예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병을 옮길만한 사람, 행동 등을 자기 소유의 재산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식당에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원치 않아 약간의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런 일을 막고 싶은 식당 주인은, 문 앞에서 간단한 발열 체크를 통과한 사람들만 식당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때 식당 주인은 질병 확산과 관련된 커다란 위험을 함께 안고 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이 실제 피해로 실현되었을 때,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에 의해 식당의 매출이 크게 감소하거나 하는 식으로 식당 주인은 책임을 지게 된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일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여 어떤 일을 감수하더라도 그 병에 걸리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면,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는 병의 확산을 저지할만한 자발적 질서가 자리하게 된다. 만약 앞선 예시에서 대다수의 식당이 기존과 같이 사람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락하여 실제로 병이 빠르게 퍼졌다면, 물론 통상적인 관념에 따르면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겠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그 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난 최선의 질서다. 그러한 결과는 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병에 걸리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통상적인 관념은 그럼에도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의 확산이 저지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주류적인 관점은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전시적이고 강압적이라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활약할 필요가 있다는 식일 것이다. 자유주의자로서는 이런 주류적 흐름에 휩쓸려 적어도 이번만큼은 자유주의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자유주의자로서 견지해야 할 태도는, 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일련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기괴하게 혼합된 새로운 입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충분히 검토해본 뒤 확실히 타당한 부분만 취해 기존 우리의 입장과 정합성을 갖도록 잘 통합해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전쟁이나 대유행병, 천재지변과 같은 거대한 일들도, 우리들 개개인 모두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국가 권력 행사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직면하게 될 변화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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