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도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

Gonzalo Schwarz / 2019-06-11 / 조회: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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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괄목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에, 많은 정치적 담론이 오가고 있다. 그러한 논담에 있어서, 기술 발전이 대규모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을 유발할 것이고, 영구적 하위계층(permanent underclass)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주장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진위여부를 막론하고, 그러한 “사실”을 토대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책 대안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 제언은 ‘기본소득제도(UBI; Universal Basic Income)’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인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자못 과장된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도의 필요성 역시 대체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부풀려져있다. 필자가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파멸을 이야기하는 예언자들의 경고는 대체로 과장된 것이고, 필요 이상의 과격한 대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기본소득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최초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이들은 왜 이를 주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그들이 실제보다 더 과장하여 현실을 진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보아야 한다. 그러한 성찰 이후에는 공공정책으로서 기본소득제도가 어떠한 결점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것이다.


1)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파괴할까?


자동화의 미래에 관한 많은 연구들에 있어 공통된 주제는, 비록 일부 일자리가 자동화에 의해 소실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자리 자체라기보다는 특정 일자리에 의해 수행되던 업무의 대체를 뜻한다. 자동화가 일자리 자체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상보적인 관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몇 년 전, 미국에 있는 일자리 중에서 47%가 향후 20년 내로 자동화되어 사라질 수 있는 “고위험군”에 속해있다는 보고서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그러한 연구들을 발판으로, 기술적 실업 현상에 대한 논란이 촉발되었으며 대규모 실업 해소를 위한 공공 정책 대안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고위험군”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중에서 10% 정도로 추정되었다. 게다가 세계경제포럼(the World Economic Forum)에 따르면 로봇에 의해 2022년까지 약 750만 개의 일자리가 전 세계적으로 사라질 것이지만, 로봇 도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1,330만 개로 추정되어, 최종적으로는 로봇 도입의 일자리 순증가(Net positive)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연구 데이터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이 구직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미할 정도로 크지 않다(negligible). 그러한 결론은 세계은행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도출된 바 있다.


이렇게 주장과 정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은 자동화가 미래에 미칠 영향보다는 현재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라도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현재의 영향은 무엇인가. 현재 미국을 살펴보면, 실업자가 650만인 가운데에 직원을 수요로 하는 일자리가 690만 개에 이르고 있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구축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도 있지만, 실제 노동시장에 있어 수요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가 대체되는 정도는 그다지 크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동화의 미래에 관한 많은 연구들에 있어 공통된 주제는, 비록 일부 일자리가 자동화에 의해 소실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자리 자체라기보다는 특정 일자리에 의해 수행되던 업무의 대체를 뜻한다. 자동화가 일자리 자체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상보적인 관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찬성하는 또 다른 주장으로는, 기본소득을 통해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비상사태를 대처할 능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해당 의견을 주창하는 이들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40%에 이르는 이들이 비상사태에 치를 400달러 정도의 비상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비상금을 쥐어주고자 기본소득을 준다고 하여 저축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의 저축률이 매우 낮은 상태인데, 기본소득의 명목으로 부가적인 수입이 생겼을 때, 그것이 소비하는데 쓰이지 않고 저축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미국인들이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으로부터 견뎌낼 능력이 없는 것은, 높은 생계비용에 있다. 생계비용이 체증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떤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급등해왔고, 반대로 구매하기 쉬워졌는지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경제학자 Mark Perry는 그가 마련한 “graph of the century”를 통해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2)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된다면


기본소득제도의 찬성론자들은 제도 도입을 통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복지프로그램을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단력과 과단성이 요구된다. 문제는 지금 우리 정치계에 있어 기존의 복지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이를 기본소득제도로 통합할 리더십과 정치적 의지가 박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기본소득제도를 제안하는 동기만은 아니다. 동기를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제도가 시행되었을 때에 그 효과가 긍정적이라면 좋겠으나, 기본소득제도는 근본적인 특성과 효과에 있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첫 번째로, 기본소득제도는 이미 몇 차례 시험된 바가 있으며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유는 국가별로 다양하였으나, 공통되게 실패의 노선을 걷고야 말았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는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되었다. 각국의 특성은 충분히 이질적이고 다양하였다. 심지어는 핀란드와 캐나다와 같이, 미국보다 불평등의 정도가 적으며 경제적 이동성이 높은 나라들에서도 시행된 적이 있다.


핀란드의 경우에는 지급 요건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실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그리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제도가 중단되었다. 나름대로 지급 요건을 명시한 기본소득제도의 유형이 있었으나, 이 역시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온타리오 주에서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된 바 있다. 온타리오의 경우 기본소득제도의 ‘기본’에는 충실하지 못하게, 지급 요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측면에서 감당이 되지 않아 결국 철회하였다. 약 2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이 논란이 된 바 있으나, 국민 여론조사 결과 77%에 달하는 스위스 국민들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여 시행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제도의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기본소득제도를 바탕으로 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기본소득제도가 이름 그대로 보편적, 기본적이라면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동일한 액수를 정액으로 수령하게 되면, 소득 사다리에 있어 사람들 사이의 절대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이다. 만약 제도를 약간 선회하여 진실로 복지가 필요로 하는 이들을 중점으로 하여 수정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는 제법 좋은 복지 정책의 출발일 수는 있으나, 기본소득제도의 출발점은 아니다. 기본소득제도는 소득과 생계 수준에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시민들에게 정액을 지급해야 한다. 결국 그 제도는 현행 우리가 누리고 있는 차등적 복지의 일환일 뿐, 기본소득제도는 아니다.


혹자들은 기본소득제도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복지의 중요한 요체들을 모두 대체하는 일원적인 복지라 밝힌다. 그러나 그 주장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현실성이 부재하다. 문제는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위해 시행중인 복지 제도를 과단성 있게 폐지할 정치적 의지력이 정치계 전반에 있느냐는 문제이다. 그에 대해 필자는 “아니오”라고 생각하지만, 그 대답과는 무관하게, 와이컴비네이터 사가 시행하는 기본소득(Y Combinator Basic Income)의 경우 적극적으로 소속사로부터 웨이버(waiver, 권리포기서류)를 받고 있다. 이는 시험사업(pilot project)의 참가자들이 편익을 잃지 않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특히 미래에 있어 기본소득제도가 대체하기 보다는 보완을 하는 관계로 이어질 전통적인 복지 구조가 예외가 아닌 정통 규범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그리고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제도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현행 복지 체제를 변화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의 대체 과정에서는 부단한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으며, 제도 대체에 따른 승자와 패자가 생기며, 심지어는 가난과 빈곤이 일부 계층에서 심화될 수도 있다.


3) 근로의 가치


끝으로, 기본소득제도에 관하여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기본소득의 수령인이 구직활동을 할 유인을 가지지 못하고 경제활동인구에 배제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가 병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근로를 함은 단순히 급여를 받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근로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계를 형성할 장을 맞이하며 상호작용의 구조 속에서 살게 된다. Robert Putnam이나 미 의회 양원 경제 위원회(the Joint Economic Committee) 산하 사회적 자본 프로젝트에 의해서도 밝혀진 것과 같이, 최근 몇 십 년 동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체감하고 있는 여건에서, 사업장은 사회적 자본을 체득하기 위한 주요지로서의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소득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 노동 활동은 근면과 성실의 의미를 제고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최근 Oren Cass가 기술한 바와 같이, 노동 활동은 자아의 의미를 찾고,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체득하기 위한 주춧돌과 같다. Cass의 “근로 가설(Working Hypothesis)”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근로자들이 단단히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노동 시장이야말로 장기적 번영을 위한 핵심 요소이다. 무릇 공공 정책이라 함은 그러한 노동 시장을 형성하는 것에 주된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근로는 공동체 유지의 핵심 구성요소일뿐더러 애당초 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근로 관계는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나타내는데, 말하자면 근로 관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보다 넒은 공동체에 귀속될 수 있는 기틀을 형성한다. 우리는 근로 관계를 바탕으로 각자의 개별적 공동체에서 포괄적 공동체로 통합된다. 이와는 정 반대로, 근로가 부재한 공동체는 필히 사회적 자본 결핍에 따른 분열과 와해가 만연하게 되고, 이는 분업과 협력의 부재로 이어져, 끝으로는 지속적인 빈곤상태로 귀결된다. 범죄자와 마약 중독자는 늘어날 것이고, 점차 노동시장에서 고용할 만한 인재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 결과 주거 및 상업적 용도의 투자가 감소하게 되며, 구조적인 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힘 있게 진보하는 나라, 근면성실의 미덕으로 번영하는 나라, 개인은 성공하며 기업의 동태적 역동성과 혁신이 지속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논의에 있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제도의 개념을 꺼내든 것은 자못 이상한 일이다. 이른바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핵심은 성공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사회, 행복의 추구가 시현되는 사회, 근로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안전망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온정의 손길인 복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복지는 그 수혜자가 다시금 재도약하기 위한 트램펄린의 역할을 해야지, 안락하게 누워버릴 매트리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현행 복지체제가 사각지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안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 내용은 https://fee.org/articles/the-real-cost-of-universal-basic-income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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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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