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당당한 소인(小人)되는 세상

임건순 / 2020-02-11 / 조회: 115

이득 앞에서는 누구나 용감해지고 꺼리는 바가 없어진다


"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큰 벌레를 닮았다. 사람이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큰 벌레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렇지만 아낙네가 누에를 손으로 줍고 어부는 장어를 손으로 움켜쥔다. 이득이 있는 곳에서는 싫어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모두 맹분(孟賁)(위()나라의 장사)이나 전저(專諸)(오나라의 장사)처럼 용감해진다."  한비자 내저설 상


뱀을 닮았지만 맨손으로 만지고 누에는 큰 벌레를 닮았지만 징그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루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한비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을 정상이라고 보았고 인간의 욕망을 당연시했다. 그런데 보통 동양철학하면 욕망을 줄이라는 가르침을 펴는 것으로 안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줄이든가, 없애라고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법가는 이야기가 다르다. 법가는 인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 그 자체를 없앨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성정이고 죽을 때까지 인간은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고 억누를수록 국력도 경제력도 약해지고 발전이 안 된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욕망을 인정했다. 인간들 각자의 욕망이 잘 발현되어야 부국도 강병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또 다른 법가 상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법가는 인간의 욕망을 적극 긍정한 사상가들인데 그들이 이익과 욕망을 절로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어떤 경제학의 아버지가 떠오를 정도이다. 


"주인이 가산을 축내가면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많은 품삯을 주는 것은 밖에서 데려온 머슴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머슴이 밭을 깊이 갈고 김을 알뜰하게 매기 때문이다. 머슴이 힘을 다해 열심히 김을 매고 공을 들여 고르게 밭갈이를 하는 것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좋은 음식을 대접받고 넉넉한 품삯을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공을 들임이 부자 사이와 같으니 두루 이와 같이 하는 것은 각자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좌상(左上) 편


출처를 따로 말하지 않으면 애덤스미스가 한 말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이다. 애덤스미스가 뭐라고 했는가? 내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 고기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과 푸줏간 주인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이기심, 즉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내가 밥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 각자가 이기심,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고 경제 전선에 나선다. 그러면서 사회적 분업과 교환이 일어난다. 타인을 해치고 타인의 것을 빼앗고 불공정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각자의 이익을 탐하는 마음과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조금도 나쁜 것이 아니다. 외려 각자가 이익을 찾아가며 부지런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고 팔고 교환을 하기 때문에 나라는 부유해지고 강해지고 하층민들도 필수품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애덤스미스가 그렇게 보았는데 한비자도 마찬가지다. 각자 이익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사회적 분업체계를 이루고 그러면서 사회가 발전한다. 모든 직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직업상 귀천은 없다. 속이거나 타인을 해치거나 불공정 거래를 하지 않는 이상 사회분업의 모든 분야와 업은 존중받아야한다. 그런데 유가의 맹자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할까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다치지 못하게 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한다. 무당과 관 짜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을 택하는 데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 공손추 상


유가 사상가답게 직업에 대한 차별과 귀천 의식이 보이는데 사회에 화살 만드는 사람도, 관 만드는 사람도, 무당도 필요하지 않을까. 무기 만드는 사람이 사라져야하나? 장례를 담당하고 아픈 이를 치료하고 상담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야하나? 아니, 애초에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위력이 강하길 바라는 것이 그가 못되어먹어서일까? 아니다,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갑옷 만드는 사람은 갑옷 입은 사람이 절대 다치질 않기를 바란다. 그가 화살 만드는 사람과 본성이 다르거나 따로 덕이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갑옷이 튼튼해 사람이 다치질 않아야 수입을 계속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국방을 위해서 활을 만드는 사람과 아픈 사람이나 망자를 위한 무당이 있어야 한다. 분업된 환경에서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욕망을 추구하는 이욕지심을 가진 인간들이 각자 분업을 이룬 채 자신들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것이다. 분업의 체계 안에서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은 늘 보호받아야한다. 타인의 이익을 침해한다든가 공익을 저해하지 않는 이상 각자의 이욕지심을 억누를 이유가 없고, 외려 철저히 존중 받아야한다.


한비자는 군자를 말하지 않는다


한비자는 절대 군자가 되라고 하지 않는다. 외려 그는 군자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소인이고 죽을 때까지 소인이라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모두가 이욕지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대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인이면 어떤가? 자기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고 이타심보다는 자기 이익을 머리에 아로 새기고 살면 안 될 것 있나? 남의 것을 빼앗고 거래에서 상대방을 속이고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어기지 않는 이상에야 소인이 소인으로서 살고, 소인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는 게 나쁜 것이 될 수는 없다. 외려 유능한 소인, 성실한 소인, 약속을 지키는 소인, 이타심은 없어도 기능적인 영역에서 생산성과 완성도를 높이려고 늘 애를 쓰는 소인이 많아야 사회가 발전하는 게 아닐까?


자, 근대란 본래 소인들의 세상이다. 나는 군자, 너는 소인? 이런 이분법은 근대의 부정이고 전근대의식일 뿐이다. 모두가 소인, 모두가 모리배가 근대다. 다만 소인과 모리배는 나의 이익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하고 자신의 영역이 중한만큼 타인의 영역 역시 중히 알 줄 알아야하며 그러면서 인간 간에 거리가 지켜져야 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개인이 되는데 모두가 떳떳하게 당당하게 소인으로 살고 소인들 사이에 거리가 유지되면서 진정한 개인으로 살고 그게 진짜 근대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이 그러한 근대를 진정으로 달성했는지 모르겠다. 소인이라는 말 듣고 발끈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순한 기능인이라고 해도, 직업인이라고 해도 기분 좋아할 사람이 많지 않을 듯싶은데 인간의 욕망을 아직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안 되는 사회에서 나도 모리배요, 나도 소인이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비자의 말대로 애덤스미스의 말대로 인간은 욕망이고 이익이다. 내가 선 안에서, 규범의 틀 안에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일이다. 우리 새해에는 자신 있게 선언해보면 어떨까? 나는 소인이고 모리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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