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행복’이 아닌 ‘생존’을 이야기할 때

송상우 / 2019-12-30 / 조회: 248       매일산업

[시장경제칼럼] '행복과 복지'추구정책, '생존과 성장 정책'과 정면 배치


대한민국 성립 이후 줄곧 우리 정치권의 화두는 ‘생존’과 ‘성장’이었다. 지독한 빈곤과 불안한 안보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지가 정치인들의 소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선택한 해결책은 자본주의와 한미동맹이었고,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생존과 성장 대신 ‘행복’과 ‘복지’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이 흐름은 IMF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 되면서 더 강화되었다. 이제는 정파를 떠나 ‘복지’를 팔지 않는 정치인을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문제는 ‘행복과 복지’를 추구하는 정책이 ‘생존과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흔히 복지정책하면 자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일정한 보조금이나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기초적인 ‘생존’을 위한 복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은 이런 수준을 예전에 넘어섰다. 멀쩡하게 일자리를 지키던 사람마저 근로의욕을 상실하고 복지정책에 기대어 사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결정적으로 ‘행복’을 목표로 하면서 복지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내가 행복해지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해”라고 외치며 좌절된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구들을 마음껏 발산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요구들을 노골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었다. 이 점을 감추기 위해 ‘보육비 지원을 요구하는 출산의 자유’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권리’처럼, ‘‘~할 자유’, ‘~할 권리’라는 이름으로 마치 정부에서 이런 것들을 보장해야할 당위성이 있는 것인 양 포장했다. 이런 요구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이에크의 지적처럼 “새로운 자유에 대한 요구는 부의 동등한 분배에 대한 오래된 요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복지정책들은 치명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이런 정책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소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복지수혜자를 행위무능력자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이 생산한 것을 소비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복지정책들을 집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세금의 수준은 생산동기를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있다. 당연히 자본주의는 행복을 위해 진화한 체제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현대인을 거대한 분업 시스템 속에 극히 일부분을 담당하도록 했다. 과거처럼 한 사람이 특정 재화의 생산과정 전체를 관장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업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협동에 참여함으로써 타인에게 유용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과,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기생하여 살아가는 것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중요한 점은 확대된 분업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명백히 ‘행복’보다는 ‘생존’을 위한 체제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생명들에게 태어날 기회와 인간답게 살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


물질적 조건의 향상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비참하지는 않게 해준다. 반대로 과도한 복지는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마저 망가뜨려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와 베네수엘라를 비교하면 단지 생존을 추구했던 국가가 행복을 추구했던 국가를 압도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국가를 넘어 기업과 개인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명분 삼아서 복지를 추구하는 정책들은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미제스가 지적했듯이, “우리 전체 문명은 사람들이 재분배론자들의 공격을 격퇴하는데 항상 성공해왔다는 사실에 의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운명도 재분배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이미 복지에 젖어버린 사람들을 얼마나 ‘일자리’로 돌아오도록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생존’이라는 화두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생존이라는 현실에 바탕을 둔 성장 정책에 다시 중점을 두어야 할 때다.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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