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정시? 불안한 수시?

김영준 / 2019-11-11 / 조회: 291

지난 몇 년간 크게 수시와 정시로 구분되는 대학입시 제도는 수시의 비율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 중에서도 학생부 종합전형이 가장 비중 있게 성장해왔고, 학생부 교과전형과 논술전형은 점차 축소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녀를 둔 교수들을 중심으로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여 성공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현실이 우리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이용했던 ‘상상도 못할 방법’은 10년 전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던 그 전형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제 정착기에 접어 들어가던, 입학사정관제의 수정판 후신이기도 한 학생부 종합전형은 그런 이유로 여론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방법을, 학계의 내부자들을 중심으로 한 입시 카르텔에게 허용해온 제도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론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확대와 함께 역으로 축소되어왔던 수능우수자 전형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수능우수자 전형은, 학생부 종합전형과는 달리 노력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했다. 대체로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보장해주는 제도였으며, 합불 결과에 대한 이유도 투명했다. 단 한 차례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시간 시험을 통해 응시자 전체를 줄 세워 선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흔히 ‘정시’라 불리는, 수능우수자 전형이 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절차적 정당성만을 생각한 좁은 의미의 공정성을 이야기할 땐 수능우수자 전형이 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그럼에도 이것이 공정하다고 우겨볼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바람직하다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수능이 절차적으로는 너무나도 공정하다는 점에 있다. 수능은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며, 기출문제와 교과서를 포함하여 사실상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활용해 적절한 방법으로 고등학교 3년간 공부를 하면 웬만한 학생들은 어느 정도 높은 원점수를 가져갈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학생 선발을 위한 변별력은 잃지 않도록 변화해왔다. 그래서 충분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고득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충분하고도 적절한 준비가 있었다면 고득점을 노려볼 수 있는 그런 시험이 되었다. 그런데 수능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로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수능‘우수자’ 전형은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줄을 세워 뽑는 전형이다. 아무리 고득점을 하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인원은 정해져있는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수능이 직면하게 된 변별력 문제 역시 근본적으론 이러한 현상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 상위권 대학의 고정된 정원 안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당연히 남들보다 더 먼저, 혹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를 했던 학생들이다. 결코 특정 분야에 재능이나 잠재력이 있다거나, 적어도 흥미가 있다거나 하는 학생들이 고정된 정원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고정된 정원 안에는 나머지 학생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수능을 준비할 수 있었던, 하지만 진학하려는 학과에 대해서는 흥미나 재능이 없는 그런 학생들이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다. 그들보다 수능을 준비할 여건이 좋지는 않았던, 하지만 흥미나 재능은 그들 이상이었던 학생들은 수능우수자 전형을 통해서는 탈락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늘날 수능은 12년간의 노력을 공정하게 보상받는 최후의 관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지 오래다. 강남 8학군에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수능에 유리하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몇 년 전부터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밝혀지기도 했다. 서울의 유명 재수학원에서는 그런 학군에서 재수를 준비하려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재수비용까지 고려하자면, 강남 8학군에서 아이를 교육시킬 능력이 되는 집에서 명문대 합격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절차적으론 공정할지 모르나, 그러한 절차적 공정성의 탈을 뒤집어쓴 채 우리 사회의 계층화를 심화, 강화해온 제도가 바로 수능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이 정시 비율을 확대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부 종합전형 100%로 대학입시 제도가 운영되는 것이 해법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현행 학생부 종합전형의 과도기적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학생부 종합전형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의 장은 사회 내의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열려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학 입학의 기회가 고등학교를 이제 곧 졸업할, 혹은 갓 졸업한 청년들에게만 열려 있는 것은 부당하다.


답은 대학이 전적으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생 선발 전형에 있다. 국가는 대학과 지원자,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학 입학의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고등학교에 그 어떤 제도적 간섭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최상위권 대학의 동문들이 자교 출신의 사람들과 형성하고 있는 암묵적 카르텔이, 규정된 틀에 따라 공적으로 관리되는 입시제도에 의해 공고해진 대학 서열과 상호작용하며 유지된다. 카르텔에 편입됨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위해 서열의 상위에 해당하는 학교를 향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벌주의적 카르텔은 더더욱 공고해지고, 따라서 대학의 서열도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정부가 입시제도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둘수록 학벌주의는 더욱 완고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에 잘 가는 몇 가지 방법이 대략 정해져있고, 누군가는 다른 누구들보다 그러한 방법을 실천할만한 능력을 더더욱 많이 갖고 있다면, 그런데 그러한 능력이 다름이 아니라 바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면, 대학에 잘 가는 학생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괜찮은 부모를 둔 학생들이 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방법’이라며 제시해왔던 수많은 방법들은 이러한 면에서 ‘결국 학벌주의를 흔들 수는 없는’ 더 나아가서는 ‘학벌주의를 오히려 공고화할 뿐인’ 잘못된 처방이었다.


학벌주의를 완전히 해체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수능과 같은 공정한 과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벌주의를 유의미한 수준 약화시키는 방법은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 학벌주의는 A학교에 들어간 학생과 B학교에 들어간 학생 사이의 실력 차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불분명할 때, 그리고 A학교에 들어가는 전략과 B학교에 들어가는 전략이 다를 때 비로소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바로 학벌주의적 카르텔을 해체하는 첫 걸음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대한 신화가 깨져야 한다.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공정성만 남은 구호는 무의미하다. 조선 초기에는 평민들에게도 어느 정도 관직 진출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과거시험이라는 제도는, 사농공상의 이념과 양반을 정점으로 한 신분제가 공고화되면서 양반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양반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 되었던 과거시험이 공정성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세습은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정당화’되었다.


정시 확대, 더 나아가서 수능우수자 전형 100% 입시제도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면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수능우수자 전형은, 그리고 국가주도였던 그동안의 대학입시 제도는,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제도를 학벌주의적 카르텔 세습의 통로로 만들어버렸다. 학벌주의는 정부가 교육계와 학계를 향한 간섭을 그만둘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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