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0명은 무슨 연유로 거리로 내몰렸는가?

권혁철 / 2019-09-02 / 조회: 25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 길의 끝에 '천국’이 기다리는 줄로 착각하고 계속해서 그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사람들의 그런 착각을 자신들의 손쉬운 지지기반의 원천으로 삼는다. 


그런데, 멀리 있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정책의 결과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천국’으로 가는 길로 착각하게 만드는 길이 사실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다. 개정되어 얼마 전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이 바로 그것이다.


“강의 대신 편의점 알바 뛰는 강사들”. 9월 2일자 모 일간신문 1면의 제목이다. 강사들이 강의 대신 편의점 알바를 뛰는 가장 큰 이유는 '강사법’ 때문이다. 강사법을 개정한 이유는 물론 아름답다. 즉 대학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 등 그럴 듯하다. 이를 위해 대학은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해야 하고, 3년 동안 재임용 절차를 보장해야 하며, 퇴직금 지급과 4대 보험 가입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당연히 대학 측이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가 늘고 강사의 임용과 해임 및 운용의 자유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부담을 늘리고 자유를 제한하는 강사법의 여파는 시장에 대한 규제가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대학들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사 숫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한다. 2018년 1학기 5만8,546명이던 강사가 2019년 1학기에는 4만6,925명으로 약 1만1,600여 명, 즉 5분의1이나 줄어들었다. 두 번째, 각 대학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은 4대 보험금과 퇴직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는 등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겸임교수 제도 등을 통해 충원한다. 2018년에 비해 2019년 겸임교원의 수는 약 4,400여 명 증가했다. 강사 자리를 구하지 못한 1만1,600여 명 중 일부는 이런 식으로나마 다시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약 7,800여 명의 강사들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것’이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강사법의 이런 폐해가 '보이지 않는 결과’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가 현재 우연히 볼 수 있게 된 강사법의 폐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강사법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대학들에서 수업의 질과 경쟁력을 낮추고, 그것은 고스란히 대학생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과 대학생의 이런 경쟁력 하락은 우리 경제 전체의 경쟁력 하락 등 또 다른 폐해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학자인 바스티아(Bastiat)는 이미 170여 년 전부터 정책에는 '보이는 결과’와 '보이지 않는 결과’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고 강력 경고했었다. 


이러한 식의 시장의 반응과 그 결과는 모든 반시장적 정책들이 공통적으로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대응은 누차 보아왔듯이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한다. 즉 정부나 정치권은 자신들의 반시장적 정책으로 인한 폐해를 재정 투입이나 또 다른 규제로 막아보려고 한다. 이번 강사법으로 인해 나타난 폐해에 대해서도 정부는 1,4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막아보겠다고 나섰다. 병의 원인은 그냥 둔 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처만 치료해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의 대응방식이 거의 언제나 이런 식이기 때문에, 조만간 대학들이 고육지책으로 이용하고 있는 겸임교원 제도에 대한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개정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이런 폐해를 낳는 반시장적 정책들이 강사법 뿐일까? 이제는 그 부작용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최저임금제도나 근로시간 단축 등도 강사법이 보이는 부작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또 앞으로 보여 줄 것이다. 반시장 정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백일하에 드러낸 강사법을 즉각 철회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반시장 정책과 규제들을 철폐하는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책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용기(勇氣)는 아무나 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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