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특징은 경쟁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이다

Antony Sammeroff / 2019-06-07 / 조회: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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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Capitalism)은 이따금 그 반대자들로 하여금 “경쟁 체제(a system of competition)”라고 묘사되거나, “경쟁에 기반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자본주의를 경쟁의 도가니로 묘사하는 경우는 대부분 전력을 다하는 경쟁이 심리적으로 우리를 붕괴시킨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이른바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을 하는 과정에서 개별 주체들이 누리는 편익은 감소한다는 생각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대부분의 주창자들은 그러한 주장과 전제를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이는 실제의 그리고 개별 주체에 의해 인식되는 경쟁의 미덕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 채로 경쟁을 열렬히 옹호하는 것이다. 필자의 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이는 잘못이 아닐 수가 없다. 자본주의가 경쟁 체제라는 전제를 엄밀하게 평가하는 과정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좌파 진영이 구성하는 프레임 논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며, 좌파에 의해 만들어진 토론의 판이 공정한 토론의 장이 되기는 어렵다. 좌파 진영은 사회주의(socialism)이나 공산주의(communism)을 자본주의의 대척점으로 두고, 그 가치를 협력(cooperation)으로 상정한다. 그들은 공산, 사회주의의 협력과 자본주의의 경쟁을 대립하여 더욱 극적인 그리고 이치에 맞지 않은 주장을 역설한다.


경쟁은 정부의 인위적 자원 배분에 대한 저항: 확실히 민주주의는 “경쟁 체제”이다.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를 통제할 기제를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한다.


물론 필자는 경쟁을 옹호하는 이들이 무언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점들을 지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경쟁 체제이고, 그것을 옹호하는 분들은 자못 훌륭한 교훈을 일러주고 있다. 예를 들면, 경쟁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이용 가능한 각 재화와 서비스에 대하여 모든 수급을 결정하는 단일한 중앙 관리자가 있어야만 ‘누가, 무엇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자원 이용의 최적 과정을 실현할 수 있냐는 지적 말이다.


그와 더불어, 만일 시장에서의 경쟁이 잘못된 것이라면, 정치 구도에서의 경쟁은 하자가 없느냐는 지적도 촌철살인의 지적이다. 만일 경쟁이 체제를 타락시키는 요인이라고 한다면, 이는 경제체제 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에도 적용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경쟁의 체제이다. 정치인들이 당선을 위한 경쟁 외에 무엇을 하던가? 정치 체제에서의 경쟁은 무수하다. 로비스트와 싱크탱크들 간의 경쟁이 그와 유관하며, 국고(public purse)에 한 다리를 걸치어 무언가 편익을 얻어 보려는 유권자의 경쟁도 관계있다. 자신의 편익을 증진시켜줄 정치인을 위해 조력하는 개인과 기업의 경쟁도 정치경쟁의 일환이고, 각 정당의 치열한 경쟁 역시 민주주의 하 경쟁의 진면목이다.


만약 자유롭고 자발적인 우리 사회의 면모를 경쟁 체제라고 한다면, 정부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고 자발적인가? 분명히 민주주의는 "경쟁 체제"이다.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의 통제력을 보다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집권 말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집행할 권리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고 집행 비용 지불을 강요할 권리를 얻고자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들은 단순히 경쟁의 승자가 가장 많은 요구를 만족할 수 있는 시장 점유율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잠시나마 경쟁을 옹호하는 다소 진부한 경제적 근거를 나열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경쟁으로 효율성이 제고되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저렴해지며, 경쟁이 혁신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둥, 우리가 이미 일찍이 알고 있는 이야기 말이다.


자본주의는 자발적 교환의 장: 그러므로 누군가는 자본주의야 말로 가장 협력적인 체제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곤 한다.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두고 선악정사의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관건은 자본주의를 ‘경쟁의 체제’라고 정의하는 것에 있다. 자본주의를 경쟁체제로 정의하는 것에는 수사학적으로 협력적인 기제가 별도로 있음이 기저하고 있다. 협력과 경쟁의 비교가 시작된다. 혹자는 그저 사적으로 정직하게 자본주의가 경쟁체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다른 사회 기제와 비교했을 때 보다 경쟁적인 체제라고 할 수 없다. 적어도 자유 시장경제 하에서의 자본주의는 재화와 서비스의 자발적 교환의 체제이다. 그 교환과정에서는 물리적인 억압이나 절도, 외압 또는 사기와 기만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유 재산권을 인정 및 축적하는 근본적인 재산권이 보장된다.


요약하자면 자본주의는 사유재산권이 공인되는 상황 하에서의 자발적 교환의 장이다. 그렇기에 혹자는 자본주의야 말로 가장 협력적인 사회 기제라고 일컫는 것이다.


위의 정의에서 밝혀지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운용을 위해서는 사유재산의 인정이 당연해야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재산을 축적하는 것의 도덕적 당위성을 놓고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부자가 의료복지 및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지출하는 것에 있어서, 부(-)의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혹은 정(+)의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재분배 문제를 일컫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본가와 근로자 간의 관계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두 집단 간의 힘의 불균형(the power disparity)에 의한 자유의 억압 구조라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이러한 토론들은 필자의 입장에서 보다 더 탐구하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주제들 중 그 어떠한 것도 자본주의가 다른 사회 기제보다 보다 더 경쟁에 기반을 하는 체제냐는 ‘정의(definition)’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


희소성이 존재하는 한, 경쟁은 어느 체제에서든지 발생: 우리가 자발적 교환을 허용하는 체제에서 생활할 때에, 일부 경쟁은 필히 발생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어느 사회 체제에서든지 간에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경쟁이 사유 재산권의 존재나 재화의 자유로운 교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도 경쟁은 희소성(scarcity)에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원이 희소한 상태라면, 그 사회의 운영 기제가 무엇이든지간에 관계없이 어떠한 형태로의 경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자원이 어떻게 배분 및 할당되는지에 있어서도 희소성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자발적인 교환을 허용하는 체제로 사회가 구성될 때에는, 이따금 다소 치열한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교환 체제와는 전혀 다른 어느 체제에서든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중앙 집권적으로 모든 자원의 생산 및 분배가 계획되고, 화폐의 자유로운 교환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은 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가 완전히 공산주의적 경제로 운용된다고 하더라도, 희소성을 극복할 수는 없으며 결과적인 경쟁도 회피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공산사회에서 영화제작자라고 해보자. 당신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영화를 관람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사람들의 가용 여가 시간이 제한된 가운데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필히 당신은 적어도 일정한 형태의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서 경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경쟁은 희소성에 의해서 발생한다. 공산주의 사회라 하여 경쟁이 부재한 편안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고객 확보의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 제작자로서 피할 수 없는 경쟁이 있다. 당신은 유일한 고객, 즉 국가의 검열 통과를 위해서라도 경쟁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는 부패와 정실주의(cronyism)가 되고야 말 것이다. 국가의 검열 하에서 과연 누가 영화를 만들 자격이 있으며, 누가 만들 수 없는 것인가? 그 결정과정에서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과연 누가 길거리를 배회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며 쓰레기를 주우러 다닐 것이며, 누가 당당하게 자신이 그토록 소망하던 영화 제작자의 꿈을 이룰 것인가. 그 과정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결국 그 직역 선택의 과정의 경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단지 그 경쟁의 형태와 품격이 다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직역 선택의 경쟁은 영화의 이해관계자인 투자자 및 영화 제작자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교류 과정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다. 그 대신에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직역의 자유는 부재하며, 그것은 다른 제 3의 권력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보다 자유는 부재하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사안이 결정되는 것이 차이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막론하고 경쟁은 존재한다. 다만 자본주의의 경쟁이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한 과정이고, 공산주의의 경쟁은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unmeritocratic) 경쟁이요, 국가 권력으로부터 간택받기 위한 부패의 경쟁이다. 전자의 자본주의 경쟁은 적어도 바람직한 상품의 공급을 실현시킬 수 있지만, 후자의 공산주의 경쟁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다. 보다 명백하고 잔혹한 공산주의의 경쟁을 이해하고 싶다면, Ayn Rand의 처녀작인 We The Living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경쟁은 단지 희소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히 생기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의 단면이다. 그리고 경제 체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원이 희소한 상황에서는 필히 경쟁이 존재한다. 사회주의를 채택한다고 해서 경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떤 다른 반대급부를 적용한다고 해서 경쟁 없는 사회가 오지는 않는다.


기회비용의 존재: 경쟁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한 선택의 과정에 놓였을 때, 가치에 기반을 하여 의사결정을 한다. 선택의 결과가 가져다줄 수 있는 효용과 그를 택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대안의 효용을 비교한다.


이러한 사실들에 따른 직관을 통해서, 경제를 넘어 희소성이 존재하는 어떠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두 명의 친구가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고 하자. 당신은 두 초대 중에서 어떤 초대를 가야하는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한 명과는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 명의 동료와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추어 볼 때, 친구간의 교우관계 역시 경쟁 체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 시간마다 모든 친구를 볼 수가 없을뿐더러, 동시간대에도 모든 친구를 볼 수가 없다. 백 번 양보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어떤 친구에게 이목과 관심을 더 줄 것인지의 선택지가 남아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깊은 교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 모든 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필연적으로 우리는 교우관계라는 진득한 관계에 있어서도 선택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의식하든 혹은 의식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에 기반을 하는 판단을 통해서, 누구와 교우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아마도 누구와 어울릴 때에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판단하고, 서로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내왔으며, 각 교우와 공통된 관심사는 얼마나 다양한지, 상호간에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가 판단할 때에 헌신적이며 믿을 수 있는지 등의 척도가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얼마나 교육을 받았는지, 얼마나 부유한지 혹은 얼마나 지적 수준이 높은지의 척도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이 살아가면서 나 자신이 어떠한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어떠한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를 나의 친구로 택하는 이유는 부지기수로 다양하다. 결론은 그 무수한 근거를 바탕으로 내가 누군가를 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동료로부터 효익을 얻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동료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치와 계획 그리고 그 동료들을 보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 것인지를 생각하여,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몇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경쟁 체제이다. 우정의 경쟁체제 말이다.


유사하게, 시장에서, 우리의 시간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소비할 제품과 서비스를 결정하기 위한 가치 판단의 과정에 있어, 선택이 가져다주는 효용과 선택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대안의 효용을 비교한다. 그렇기에 가령 커피숍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풍미가 가장 좋은 가게를 향할 것이고, 가장 분위기가 그럴싸한 곳을 택할 것이며 또는 가장 근 거리에 있는 곳이거나 가장 저렴한 곳, 가장 고객 응접 서비스가 훌륭한 곳을 택할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다녀왔기에 가장 친밀한 곳을 갈 수도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조건들에 있어서 최선은 아닐지라도, 윤리적으로 가장 최적인 곳을 가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다. 가령 공정 무역에 기반 하여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고, 의도적으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고용 및 훈련시키는 사회적 기업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의 서비스 제공자들은 우리가 지불하는 요금을 통해 혜택을 입을 것이며, 그 요금을 확보하고자 우리에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서비스 품질의 상방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며 제품의 가격에 있어서는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제품 품질 개혁 및 가격 인하는 대표적인 시장 경제 하에서 경쟁의 모습이다. 인간은 절대자와 같이 결코 틀리지 않는(infallible) 주체는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혹자는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구매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the long term)에 있어서는 경쟁은 소비자의 만족이라는 편익을 고르게 전한다.


자유 선택의 효익: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보다 잘 관측할 수 있는 특징은 경쟁이 아닌 협력이다.


우리가 선택에서 파생된 경쟁에 주의를 집중한다면, 이따금 놓치는 기적의 경이를 알 수 있다. 바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같은 저녁 두 번의 상업 행사가 개최된다고 가정해보자. 각 잠재 고객은 가장 호소와 매력이 있는 이벤트를 선택하는데, 이는 가치 기반의 판단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이벤트가 "경쟁 관계에 있다."라는 것만으로는 중요한 요체를 간과할 수 있는데, 바로 협력적 상호작용이다. 우리가 어떠한 이벤트를 선택하게 되면, 그 이벤트를 구현하기 위한 무수한 이벤트 주관자들이 협력하여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


실제로 제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데에 있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쟁 못지않게 협력이 중요하고, 경쟁보다는 협력적 상호작용이 더욱 요구된다. 시장에서 무엇이든 달성하려면 구매자, 판매자, 관리자, 직원, 공급 업체, 고객, 광고주, 발기인, 마케팅 담당자, 단체 구매자 등과 협력해야한다.


경제 교육 재단 창립자인 Leonard E. Read는 1958년에 처음 출판된 그의 가장 유명한 에세이 인 "I, Pencil"에서 이것을 설명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 지구상에 있는 한 사람이 어떻게 연필을 이용할 수 있는지를 밝힌다. 그는 시더 우드가 오레곤과 캘리포니아에서 가공된 통나무에서 공급되었다고 설명했다. 흑연은 실론에서 채취되어 미시시피 출신의 점토와 혼합된 후 멕시코의 칸델 릴라 왁스가 포함된 고온의 혼합물로 처리되어 강도와 부드러움이 향상된다. 옻칠의 여섯 코트는 피마자 재배자 및 피마자 기름과는 별도로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프로세스에 관련된 장비를 제조하고 운반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키면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창작에 손을 뻗치고 있음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완제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간단해 보이는 제품일지라도 무수한 이들의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구매할 만한 가치 있는 제품이 나온다.


시장경쟁 하에서는 희소한 가운데에 선택해야 한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특징은 경쟁이 아닌 선택이다.


사람들이 희소한 자원 그리고 유한한 시간이라는 제약 하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기에, 희소성이 존재하는 한 경쟁은 어떠한 경제 기제에서든지 빠질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가장 주요한 측면은 경쟁이 아니라 선택이다. 혹자는 계획주의적 경제체제가 경쟁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계획주의 경제는 소비자를 위하는 경쟁의 미덕과 소비자들이 무수히 다양한 제품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상실시킨다. 계획주의 체제에서도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소비자로부터의 선택이 아닌 지렛대를 가지고 있는 권력자로부터 선택받기 위한 부패의 경쟁, 정실주의의 경쟁이다. 오히려 전력을 다하는 경쟁(tooth and nail)은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에서 더 심하다. 


본 내용은 https://fee.org/articles/freedom-of-choice-not-competition-is-what-sets-capitalism-apart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경제지식네트워크(FEN) 해외 정보 번역 코너 https://fenkorea.kr/bbs/bbsDetail.php?cid=global_info&pn=3&idx=8419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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