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제스가 세계 1차대전 이후 리버럴 내셔널리즘을 옹호했는가

Jörg Guido Hülsmann / 2019-01-21 / 조회: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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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Jörg Guido Hülsmann,
Why Ludwig von Mises Advocated for Liberal Nationalism Following WWI
13 November, 2018


사회주의, 노동조합주의, 사회주의적 전쟁 경제를 위한 제국주의적 정책을 비판한 Ludwig von Mises는 그 비판에서 많은 전통적인 주장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그는 제국주의가 국가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맞서면서 전례 없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의 선구적인 분석은 Carl Menger의 방법론적 개인주의가 거대한 집단 현상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Nation, State, and Economy”의 제1장의 주요 논제는 정부는 통치하는 국가의 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의 기원, 출현, 성장, 번영, 그리고 쇠퇴는 자연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법의 시행은 정부 권력에 의해 수정될 수 있지만 폐지되지는 않으며, 어떤 개정도 국가에 손해를 초래할 것이다. Mises는 먼저 자유 사회 (free society)의 국가들을 분석한 후 그들의 진화에 미치는 정부 권력의 영향을 조사함으로써 그의 사례를 증명하였다. 그의 실용적인 결론은 국가의 탈 국가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의 개입을 언어 공동체들(language communities)의 삶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Scererer, Grimm, Otto Bauer에 이어, Mises는 국가를 언어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그는 민주주의 체제와 연관된 이상 이 정의는 단순한 관습 그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에서 의사소통, 그리고 언어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다. 그러므로 언어 공동체는 중요한 정치적 중요성을 가진다. 언어 공동체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자연법들은 무엇이었는가? Mises는 그들의 진화를 결정하는 다양한 객관적인 요인들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고려 사항은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각 사람은 자신의 전 국가를 떠나 다른 나라에 합류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Mises는 자유 사회에서 국가라는 것은 순전히 자발적인 연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국민들도 혹은 어떤 일부의 구성원들도 본인의 의지에 반해 원하지 않는 정치적 연합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국가(state)를 세우려는 자유 지향적인 사람들 전체는 조국(patrie)이라는 정치적인 국가(nation)로 나타난다. 고국(Vaterland)은 그들이 사는 나라를 지칭하게 되고 애국자는 자유 지향과 동의어가 된다.


자유주의는 정복도, 합병도 모른다. 마치 국가 자체에 무관심한 것처럼, 국가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자유주의는 그 누구도 본인의 의지에 반하면서까지 국가의 틀 안에 억압하지 않는다. 이민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붙잡히지 않는다. 그 나라 국민의 일부가 조합에서 탈퇴하기를 원할 때, 자유주의는 그 탈퇴를 방해하지 않는다. 독립을 원하는 식민지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 유기적인 독립체로서의 국가(nation)는 이를 이루는 주(state)들의 변화들에 의해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 세상 또한 그 변화들로부터 무엇을 얻지도 잃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언어 공동체에서 개인의 구성원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가족,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환경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Mises는 동화의 자발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실용적인 이유로 소수의 언어는 무역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교류를 통해 제휴하는 다수의 언어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소규모 국가들은 다른 사정이 변함없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Mises는 이 동화 과정이 사회적 접촉이 계층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특정 사회 계층의 구성원 자격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소수집단은 공간적 및 사회적 유동성이 관습과 법으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한 별도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그런 법들을 폐지했을 때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는 국가 간의 확립된 균형을 붕괴시킨 물리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인 극적인 이주였다. Mises는 19세기 후반에 이미 엄청난 규모에 이른 증가된 공간적 유동성의 영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이주들은 끊임없이 문화가 혼합된 지역들을 만들어냈고, 동화를 통해 기성 집단의 존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과의 정치적 경쟁과 갈등을 야기했다.


Mises는 이러한 움직임이 이주자들 본인의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중단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주들의 필수적인 결과였던 민족적인(national)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Mises는 국적에 관한 정치적 갈등은 주로 국가기관의 통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해결책은 사회 내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국가와 정부를 둘러싼 민족 간의 분쟁이 완전히 없어질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이 제한되고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다면 그 정도가 덜할 것이다. 평화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국가주의에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것처럼 국가와 중앙집권력을 강화하는 것은 영원한 평화로 가는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대해 간섭하는 범위가 넓을수록 그리고 정치가 그에게 더 중요해질수록, 다민족 지역에서 더 많은 부분에서 마찰이 생긴다.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대로 국가의 권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은 같은 지역에 나란히 붙어있는 서로 민족이 다른 국가들 간의 적대감을 상당히 완화시킬 것이다. 진정한 국가적 자율성(national autonomy)은 국가와 사회에 반대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다. 삶과 경제의 “통계화(statification)”는 필연적으로 민족 국가(nation) 간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Mises는 민족 국가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일반적인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오스트리아는 보통의 국가들 중 민족적 분쟁을 가장 오랫동안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지적, 정치적, 제도적 역사는 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 풍부했다. 예를 들어 1848년까지 존재했던 오스트리아 Siebenbürgen 공국의 헌법은 색슨족 (독일인), 헝가리인, 세클레르족을 위해 각기 다른 의회와 행정부를 보장해주었다. 일반적인 관심사에 관련된 일들은 라틴어로 논의되던 공동 의회에서 다루어졌다. 이 매력적인 방식의 추악한 면은 Siebenbürgen에서 수적으로 다수인 루마니아인들은 대표자를 내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1848년의 혁명 당시 이 문제와 이와 유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유망한 접근법이 개발되었다. 1849년 3월 4일, (그때 크렘지어시로 이전했었던) 제국의회의 의원들은 제안된 크렘지어 헌법에 대해 투표를 했다. 이 헌법의 주된 주장은 제국을 구성하는 오래된 영토 단위(”kingdoms and lands” 당시 오스트리아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내부에 여러 민족과 왕국이 있었음)를 폐지하고 경계선을 해당 지역 거주자들의 민족에 따라 나눈 행정적인 자치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바로 같은 날 Schwarzenberg 왕자가 제안한 대안으로 대응했다. 그때부터 다른 언어들에 대한 동등한 법적 대우의 원칙은 수세에 몰렸고 결국 무산되었다.


혁명의 실패는 크렘지어 헌법의 실질적인 적용을 막았지만 그 사상은 특히 사회민주당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존속되었다. 1899년 브륀에서 열린 그들의 전당대회에서,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민족 경계선에 상응하는 국가 기구들을 만들어 민족 간 분쟁에 대처하기로 했다. 그들은 이 접근 방식이 각 나라에 “국가적 자율성”을 보장해줄 것이며 민족 국가 간 투쟁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스트리아를 위한 모델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당을 변화시켰고 그에 상응하는 민족 기구들을 만들었다. 이듬해, 당의 지적인 리더들인 Karl Renner 와 젊은 Otto Bauer는 옛 영토 단위를 새로운 민족 국가로 대체하자는 아이디어를 되살리고 다듬어서 대중화시켰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열정은 매우 강렬해서 사회주의 연대의 정신조차도 이를 길들일 수 없었다. 1907년에 보통 선거권이 도입된 후, 사회민주당은 여러 민족 기구들로 분해되었고 오스트리아의 정치계에서 모든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뒤늦은 깨달음과 Mises의 이론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러한 실패의 근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전임자는 이 민족간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를 사용하려 했었다. 그들 중 아무도 국가의 필수 불가결 요소인 강압적인 유대가 바로 민족 간 분쟁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또는 인정)하지 못했다. 또 다른 정부 제도는 결코 정부의 본질 자체에 의해 생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를 사회로부터 얼마나 격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멀리까지 시켜야 하나? Mises는 유일한 제약은 기술적이고 관리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국가 영토의 크기, 이는 상관없다. 한 국가의 인구가 적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이제, 많은 국가 활동의 비용이 큰 국가에서보다 작은 국가에서 더 많이 소모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모나코와 같은 소형 국가들은 예를 들어, 그들이 이웃 국가들과 연계할 경우에만 사법권의 수준에 따라 그들의 법정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런 국가들은 더 큰 국가처럼 예를 들어 항소 법원을 설립하는 등 시민들을 위한 종합적인 법원 제도를 세우는 것이 재정적으로 명백하게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Mises는 사회의 완전한 자유화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 정치적인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평범한 기술적인 고려에 의해서만 제한될 것이다. 즉 Mises는 자유 “국가 간” 사회에서 언어 기반 문화들 사이의 평화로운 경쟁이 될 수 있는 민족 국가 간의 방해받지 않는 경쟁을 환영했는데, 이때 각 개인은 동화 여부를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언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Mises는 문화 경쟁의 현실에 대해 위엄 있는 태도는 오직 국가적인 자신감뿐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자기 자신과 미래를 믿는 국가, 구성원 모두가 출생의 우연만이 아닌 모두에게 가치 있는 문화의 공동 소유에 의해 서로 결속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는 국가는 한 개인이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것을 보아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억류하는 것을 그리고 자유의지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국가 공동체에 편입시키는 것을 삼갈 것이다. 자국 문화의 매력적인 힘이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자체로 자랑스러운 국가가 될 가치가 있는 것이며 참된 민족적, 문화적 정책이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권력과 정치적 통치의 수단은 절대 필요하지 않다.


Mises는 정치적 통치는 한 국가의 상태를 개선하는데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개선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사람들은 생산을 위해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장소를 찾아 끊임없이 이주한다. 모든 개인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에서 비교적 부유한 지역으로 이주할 동기를 갖고 있다. 이 이주는 임금 수준과 금리가 모든 지역에서 같아질 때까지 지속 될 것이다. 자유화된 세계에서는 그러므로, 소득의 차이를 없애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결국 세계에는 부유하거나 가난한 나라가 없어질 것이다. 오직 인구 밀도가 더 높은 나라들과 더 낮은 나라들만 있을 것이다.


Mises는 정부의 개입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의 동기를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정부가 보호관세 제도를 통해 자국민들을 그 땅에 계속 머물게 하려고 한다면 이는 그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보호관세는 외국과의 경쟁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민을 막을 수 있지만, 관세는 사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의 1인당 소득을 감소시키며, 더 나아가 이민을 더더욱 장려한다. 다시 말해, 냉정하고 적합한 분석은 정부의 개입을 반대한다. Mises는 정치적 민족주의에 있어서 유일한 합리적인 접근 방식은 국가의 규모를 줄이고, 국경을 열고, 국제적인 이주들을 통한 문화적 경쟁을 맞이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수칙들을 따르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번역: 이선민
출처: https://mises.org/wire/why-ludwig-von-mises-advocated-liberal-nationalism-following-w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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