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의 일종으로서의 자본

F.A. Harper / 2018-01-26 / 조회: 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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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아래 (기사)를 요약 번역한 내용임*

F.A. Harper, Capital As a Form of Charity



자선의 일종으로서의 생산수단


생산수단에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자선활동에 해당할까? 그것이 자선활동의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할까?

첫 번째 기준은 사적으로 소유된 것이면서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것의 전달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산수단에 저축하고 투자하면, 소유권은 물론 유지되지만, 그것으로 비롯되는 추가적인 생산의 대부분이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자선활동의 첫 번째 요건이 만족된다. 자선활동의 두 번째 기준은 그런 경제적 이익의 전달이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적으로 소유된 것이고 자유시장에서 쓰이며 기능하는 한, 그런 과정은 누구와 관련해서도 자발적이다. 하지만 그런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의 소유나 통제는 이런 요건을 해친다.


자선활동의 세 번째 기준은 익명성이다. 생산수단에 저축하고 투자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자선활동적이다. 하지만 그 수혜자들은 이것의 원천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되려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한 번 하루동안 내가 소비하고 누렸던 경제적 요소들을 늘어놓고 이것들이 가능하도록 저축과 투자를 행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감히 말하자면, 단 하나의 요소에 대한 단 한 명의 기여자도 명확하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수백만의 익명성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것들에 기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래서 생산수단에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은 자선활동의 세 가지 기준 모두를 만족하여, 자선활동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자선활동”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이 세 가지 기준을 이처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도구의 생산력


미국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생활의 많은 부분은 생산수단의 사용에서 비롯했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세계의 가난한 절반에 사는 사람들보다 10배나 많이 소비할 수 있는데, 가난한 절반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생산수단에 저축하고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10배나 되는 경제적 복리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더 열심히 일한 쪽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세계 인구의 가난한 쪽 절반이지, 미국인들이 아니다. 신체적 노동과 함께 정신적 노동을 고려하더라도,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이었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선천적인 지능 역시도 그런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인구 천 명당 천재의 수가 우리라고 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같이 그 어떤 생산수단에도 투자를 게을리 했다면, 우리의 산출은 지금 수준의 1/20으로 감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국 현재 산출의 95%가 지금과 같은 생산수단이 존재하여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어떤 현명한 사람들이 거기에 저축하고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생산수단들에 의한 산출을 누가 가져가는가?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이 생산의 거대한 증가분을 가져가는가? 그것의 대부분이 그런 도구들에 저축을 하고 소유권을 유지한 사람들에게 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간다는 것을 많은 증거들이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오직 15% 정도의 국민소득이 이전소득으로서 자본의 소유자에게 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머지 85%의 국민소득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즉시 떠오른다. 왜 생산적이게 된 것은 자본인데 자본에는 적은 비율의 생산만 돌아가는가? 생산수단에 투자를 하여서 얻게 된 산출 증가분 전부에 대한 권리를 소유자가 가진다면, 95%는 소유자들을 위해, 5%는 사용자들을 위해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이 통계가 정확하다면, 소유자는 그의 투자가 가능케 했던 증가분의 1/6도 채 안되는 몫을 받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5/6은, 원래라면 5일 것이 85가 되는 17배의 임금 향상을 동반하면서 생산수단의 사용자들 에게 돌아간다. 그 어떤 생산수단에도 전혀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곳에 우리가 태어났다면, 고작 평소의 1/17 정도만 그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받게 될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풍족함은 내가 가장 위대한 경제적 자선활동이라 부르는 것이다.


잉여가치론 돌아보기


이런 사실들은 잉여가치론을 자세히 살펴보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말하길, 사실상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에게 가는 그 15%는 - 마르크스에 따르면 - 생산수단의 사용자들이 100% 전부를 가져갈 자격이 있기 때문에 잉여가치에 해당한다.


잉여가치는 인간의 신체활동을 보조하는 생산수단의 생산력에서 오는 것이다. 이 잉여의 양은,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생산을 5에서 100으로 끌어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잉여가치의 양은 전적으로 생산수단에 투자했던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말로 마르크스를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95만큼의 증가분을 누가 가져갔었나? 사용자에게 전혀 나쁜 조건이 아닌 것이다.


잉여가치는 자유시장에서의 자발적 거래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것의 양은 그 어떤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이 전적으로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거래 참여자 양 쪽 모두 이런 양에 대한 알려진 정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를 조금이나마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고 때문에 양 쪽은 잉여가치에 대한 남아있는 책임이 없다. 이는 익명성의 조건이 보장되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자유경제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용으로 생성되는 잉여가치의 분배를 결정하는 과정이 자유시장에서 일어난다. 공정한 분배라면, 구체적인 정답이 무엇이 되었든, 사유재산권과 자유거래의 규칙을 수용해야만 한다. 자유시장에서 주어지는 그런 정답은 이미 - 저축하고 투자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소유자들”이라 불리는 - 사유자본가들이 실제로는 가장 위대한 자선활동가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사적인 자본으로부터 발생한 자선의 정도를 “종교활동과 복지활동”과 비교해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20억 달러 정도가 미국에서 매년 종교활동과 복지활동으로 주어지는데, 이는 생산수단의 사용자들이 월급봉투를 통해 받는 자선의 양의 1%보다 적다.


이 글은 On Freedom and Free Enterprise: Essays in Honor of Ludwig von Mises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번역: 김영준

출처: https://mises.org/wire/capital-form-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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