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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열다가 내 뚜껑이 열렸다

22 최성환 | 2016-12-14 | 조회수: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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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박약한 전기 절약


4년 전 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학교 공용 기숙사 생활을 했고, 당시 필자가 살던 기숙사에서 이웃한 민간 자본으로 건설된 기숙사가 따로 있었다. 공용 기숙사에는 당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6월 중순 이후로 기숙사에 생활하지 않지만 거주했던 곳은 그런 초여름에도 옷을 흠뻑 젖게 만드는 남쪽 도시였다. 


반면에 2009년에 지어진 민자 기숙사는 방도 넓었지만 시설도 최고였다. 그 해 여름에 같이 기숙사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던 학보사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기숙사(공용) 등록금으로 민자 기숙사에 적자 메꾼단다.” 이어 “어떤 사람은 금요일 낮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가족 만나러 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온다.” 초여름에 자기 방만은 기어코 남극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기숙사 등록금을 내면 따로 전기세는 내지 않으니 냉난방비 걱정 없이 마음껏 사용한 것이다. 흔히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곳 일부 대학생들의 실태였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에너지 빈국임에도 자신에게 추가되는 비용부담이 없으니 낭비를 가속화한 것이다. 난 이런 부류야말로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원전 반대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된다.


영화를 보고


대학 시절이 생각났던 것은 영화 <판도라>를 보고난 이후였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스포일러가 유출될 수 있겠다. 영화 첫 도입부에는 '해당 지명, 인물은 사실과 관련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영화를 영화대로 즐기라는 것이다. 일단 영화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을 '대한수력원자력’으로, 원전 이름은 '한별’로 설정해 전남 영광군의 한빛 원전과 발음을 유사하게 했다.1)


영화를 보게 되면 이 영화도 한국 재난 영화의 공식이 성립함을 보게 된다. 우선 영화 <해운대>, <타워>처럼 사고 직전 위험을 감지하지만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재난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괴물>, <부산행>처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아빠들의 사투가 그려진다. 아무래도 재난영화가 긴박한 상황을 다룬 것이라 액션 장면이 많이 요구되고, 여자보다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것 같다. 영화 막판에는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하는 클리셰와 신파적 요소가 유독 한국 재난영화에서는 두드러진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방사능의 추가적인 유출을 막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자원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말리고, 죽기 직전 가족과의 영상 편지를 통해 관람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속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사가 여러 번 겹쳐 나오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과 가족은 마지막을 앞두고 할 것 다 하고 떠난다. 한국 재난 영화의 영웅들은 유독 하자가 많다. <해운대>에서 동네 양아치였던 사람이 13명의 시민을 구해 용감한 시민상을 받고, <연가시>에서 한탕만 노리는 경찰이 주식 뒷조사를 하다가 국가재난사태를 만든 범인을 잡기도 한다. 본 영화에서도 도시로 올라가서 사업 실패하고 원전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남자 기술자가 대한민국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2) 


그 외에 개인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하는 것, 원전이 생기고 마을이 몰락했다는 푸념 등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대립한 것은 '김영삼-이회창, 노무현-고건’으로 흔하지 않았다. 일단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는 것이며 현재 정권에 대하여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대통령과 총리를 한 패로 묶어서 보지 않는가? 차라리 행정부와 입법부가 대립하는 것으로 구현했으면 지도부의 현실성에 공감했을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이 원전 직원들과 마을에서 음식을 먹으며 과거를 그리워하며 푸념하는 장면이 있다. 원전이 생겨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는다는 대사가 있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한별원전과 이름이 비슷한 영광의 한빛원전에 대해 현지에 살았던 회사 동료의 얘기를 들었다. 과거 영광군이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지 못하여 경주로 확정된 이후 이곳은 정체되어 원전 종사자들이 인근에 대도시인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마을에는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덕분에 마을의 문화시설들은 망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근처에 법성포 굴비로 이득을 보는 대다수 주민들의 유치 반대가 몰락의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원전 폐지 주장


한국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 1위 국가다. 2016년 현재 4개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총 2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전체 원전 단지 반경 30km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접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나라가 탈핵을 결정했지만, 한국은 현재 6기를 추가 건설 중이고 4기의 건설 계획을 진행 중이다.3)


이런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영화 마지막 자막을 본 후였다. 영화에서 긴장감과 몰입감 등의 스릴을 느꼈다가 마지막에 이런 자막을 띄운 것이다. 차라리 체르노빌 폭발 사고의 실상을 띄워서 원전 사고가 위험한 재앙이라는 것을 말했으면 더욱 공감되지 않았을까? 원전 사고가 이렇게 무서우니 원전을 없애자고 한다. 또 그렇게 한 문장으로 끝내자고 하니 근거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럴 듯하게 많은 나라가 탈핵을 결정했다는 근거를 넣는다.


우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전 반대에 대한 여론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다보니 국내에서도 반일감정과 뒤섞여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다. 그렇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원전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원전과 관련한 얘기이다.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으니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일본의 원전 가동 반대를 주장할 수 있지만, 당장 대체 에너지 없이 무대포로 원전을 폐기하자는 주장이다.


원전 폐지론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국가가 독일이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8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단시켰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2년 초 60여 년만의 한파로 인해 결국 전기부족 현상을 견디다 못해 다시 원전 가동을 시작했다.4) 하지만 기존에 17기의 원전에서 17기의 원전을 통해 25%의 전력을 공급하던 독일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 추진되면서 비용문제가 대두되었다. 2022년에 예정대로 전면 폐지되면 재생에너지는 최대 20%까지 올라간다. 나머지 80%는 기존의 석탄, 석유 등의 화력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화력에너지의 증가는 곧 온실가스 문제로 대두된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40%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5) 더군다나 정부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커질 상황에서 4인 가구 기준 전기요금 비용이 연간 34만 6,500원이 증가하였다. 2013년도에는 덴마크에 이어 유럽 2위의 전기료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비용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산업용 전기도 인상부담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해외 이전을 검토할 정도로 산업경쟁력도 위축되었다.6) 


미국, 중국, 인도 등 에너지 다소비 국가나 중진국들은 무서울 정도로 원전 비중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승인했고, 중국은 26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 중이며, 인도는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현재 3%에서 25%로 확대할 계획이다.7) 이들 나라들은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해 위험하지만 불가피하게 원전을 새로 짓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땅이 좁지 않아서 밀집되지 않은 것일 뿐 인구가 많아서 환경보호를 위해 원전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독일 옆에 이웃한 선진국 프랑스는 원자력은 무려 75.7%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 사람들은 영화 <판도라>를 보지 않아서 원전의 비율이 높은 것일까?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은 프랑스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에 석유, 가스, 석탄 등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원자력을 적극 활용했다. 원자력은 위험하지만 안전하게만 관리하면 많은 혜택을 준다. 이산화탄소를 화석연료 대비 1%밖에 방출하지 않으며 바람이 불지 않으면 거의 무 쓸모인 풍력과 달리 적은 양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기에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8)

 

이 영화는 다큐가 아니다


영화는 마지막 자막을 통해 원전 폐지를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렇지만 앞서 선진국이나 규모가 큰 나라에서 봤듯이 탈핵을 결정했었지만 결국 1~2년 뒤에 원전을 늘리는 것으로 선회하였다. 원전 사고가 나게 되면 엄청난 재앙이지만 그렇다고 화력에너지 사용을 증가시켜 오염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것은 더욱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올해 여름에 전기 누진제가 화제가 되었다. 섭씨 36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는 참을 수 없어 전기 사용은 끝없이 늘어나고, 이에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하면 이는 정부 지지율과 연관되기에 선뜻 나서질 못한다.


반년도 채 안되어 전기의 소중함을 다 잊고, 이제 와서 원전은 재앙이라며 폐지하라는 것은 생후 5~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와 무엇이 다른가? <판도라>를 보고 다큐처럼 믿지 말고, <판도라의 약속>이라는 원전에 반대하던 환경운동가들이 원전 찬성론자로 바뀐다는 내용9)의 순수 다큐 영화를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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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 '판도라’ 개봉 앞두고 속 타는 원전 당국, <서울신문>, 2016년 12월 3일

2)재난영화 속 익숙한 설정들, 과연 <판도라>는?,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6일 

3)비즈 톡톡]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 돌풍에 한수원 긴장, <조선비즈>, 2016년 12월 9일

4)매서운 유럽 한파 잠자던 원전 깨웠다, <한겨레>, 2012년 2월 9일

5)양맹호, <2015 국제 원자력 동향과 시사점>, 한국원자력연구원, 2015년 11월 9일, p17

6)탈핵한 독일, 안녕하십니까?, <한수원블로그>, 2014년 3월 19일

7)탈원전 외치던 선진국들 슬금슬금 원전비중 늘려, <동아일보>, 2013년 3월 8일

8)세계 원전의 선두주자, 프랑스를 가다, <한국대학신문>, 2013년 9월 5일

9)다큐와 또다른 영화··· 두 '판도라’에 웃다 울상된 한수원, <경향신문>, 2016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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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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