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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광부] 막장인생이라고 폄하하기엔 너무도 감사한 막장인생

52 최종부 | 2016-10-18 | 조회수: 466 | 분류: 태백광부


CFE_뿌리찾기_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대한민국_토론5_최종부.pdf



막장인생, 막장드라마, 인생막장 등등. 요즘들어 '막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인다. '막장’은 좋지 않은 곳 끝까지 다다랐을 때 많이 쓰이는 단어다. 사실 '막장’이라 함은 광산의 가장 끝부분을 말한다. 막장에서의 일은 갱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멍을 파 들어가야 하므로 가장 위험한 작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 굴이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광부들은 막장까지 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개인의 삶이 있었고 지켜야 하는 가정이 있었다. 그들의 노고는 대한민국 경제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이 되었고 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언론 등등에는 진폐증에 고통 받는 광부, 정부의 정책 때문에 피폐해진 탄광촌 사람들의 삶, 탄광도시의 망해버린 모습들이 묘사될 뿐이다. 


<탄광산업 현황>


현재 국내에는 민영 탄광인 경동탄광과 태백탄광 두 개와 공영탄광인 장성탄광, 도계탄광, 화순탄광 세 개 총 5개 탄광이 운영 중이다. 과거 50여개의 탄광이 운영되던 것을 감안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숱한 광부들의 일터였던 태백탄광촌은 현재 폐광설로 들썩이는 상황이다. 자꾸만 줄어드는 석탄 채굴량 때문이다. 60~7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석탄산업은 석유화학산업의 등장과 국민생활 향상에 따른 수요 감소로 사양 산업이 되었다. 1980년대 6000명이 넘는 광부가 연간 220만t의 석탄을 캘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태백 탄광촌이지만 현재는 급속도로 쇠락하고 있다. 석탄을 대체하는 에너지원들이 생겨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현재 태백시 장성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는 모두 1180명. 지난해 기준 47만t의 석탄을 캐는 데 그쳤다. 30여년 만에 7분의 1 수준으로 채굴량이 줄어든 셈이다. 1) 


<이승만 대통령이 시작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꽃피운 탄광산업>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로는 박정희 대통령 때에 탄광산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 조금은 다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5년 10월 귀국 직후부터 국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국가통치를 위한 학습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우리 상황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분야가 광업임을 깨닫고 “국가발전은 광업에서부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건국내각에서는 각 부처별로 산업부흥 5개년계획, 5개년 물동계획, 농림증산 3개년 계획, 석탄생산 5개년계획, 전력증강계획 등을 수립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모든 기반이 철저히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정전협정을 맺은 후 이승만 대통령은 전란으로 황폐화 된 탄광을 복구하기 위해 육군 파견단을 태백산 일대의 탄광지역에 파견했다. 육군 파견단은 광원용 사택을 보수하고, 탄광 부근에 학교를 신축했으며, 문맹자 퇴치를 위한 광원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공병대를 동원하여 영암선 철도 공사를 추진했으며 석탄 수송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그 후 군 트럭으로 탄광장비를 운반하고, 석탄을 수송하여 석탄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광업인들의 건의를 수용하여 건국된 지 불과 8개월 후인 1949년 4월, 미국 원조당국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영암선(영주-철암 구간)과 함백선(제천-영월발전소 구간) 철도 건설에 돌입했다. 6‧25로 인해 3년여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휴전 후 공사를 재개하여 영암선은 1955년 12월, 함백선은 1956년 1월 개통되었다. 이것이 박정희 시절 태백산 종합개발사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박정희 시절의 태백산 종합개발사업은 이승만 시절 영암선과 함백선 철도를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제2공화국에서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실시한다. 그 목표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인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 이것의 기본방향 중 첫 번째가 전력, 석탄 등의 에너지공급원의 확보였을 정도로 탄광산업은 중요한 사업이었다. 본격적으로 태백, 정선 등에서 광산산업의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2) 


<근로자의 노고와 공로는 착취가 아니다>


대한석탄공사가 설립된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탄광에서 발생한 사고 피해자는 6만2735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562명이다. 해마다 수십 명의 광부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때 작업장에서 올해 사망자 수 목표까지 내걸 정도였다고 한다. 3) 국가 대사업이었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사망한 인부가 77명인 것을 감안하면 탄광에서의 사망자수는 엄청났던 것이다. 그렇게 까지 그들은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개인과 가정을 지켰고 대한민국을 성장시켰다. 


못 살던 시기에 근로자과 경영자의 희생 없던 산업은 없었다. 희생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희생이 당연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탄광, 건설, 제철, 조선, 토목 등등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근간 산업들은 그 당시에는 시작조차 어려웠던 산업들이다. 대한민국산업의 시작이 그만큼 바닥이었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근로자들의 희생을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생각을 해야지 산업화에 착취당한 대상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떠한 사안을 볼 때 안 좋은 점, 부정적인 면, 어두웠던 모습만 보는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막는다. 지금의 인터넷과 언론의 모습이 그렇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각 가정에는 추위를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산림녹화에도 일조했던 탄광산업의 부정적인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광부에 대한 관점을 동정의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면 저들의 찬란했던 막장인생을 진짜 막장인생으로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 본다.



-자료출처-

: 주간조선<[현장] 폐광 논란 속 지하 1025m 태백 막장을 가다>

: 미디어펜<삼성·현대·SK·두산·한화·CJ...시장경제 틀 만든 이승만>

: 동아일보<태백광산지역 중점개발 429억원 들여>-네이버

: 네이버지식백과

: 태백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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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간조선<[현장] 폐광 논란 속 지하 1025m 태백 막장을 가다>

2) 미디어펜<삼성·현대·SK·두산·한화·CJ...시장경제 틀 만든 이승만>

3) 주간조선<[현장] 폐광 논란 속 지하 1025m 태백 막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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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종 부 | 자유경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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