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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광부]한국의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을 찾아서!

51 최공재 | 2016-10-18 | 조회수: 704 | 분류: 태백광부


CFE_뿌리찾기_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대한민국_토론4_최공재.pdf



들어가며....


지지리도 가난한 한 집안이 있었다. 비단 그 집안만이 아니라7,80년대 대부분의 집들은 그렇게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살림밑천이라는 큰 딸은 국민학교만 나와 집안을 위해 여공으로 살아가야 했고, 똑똑한 아들은 집안을 살리는 모든 책임을 지고 공부에만 전념,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조금 똑똑한 삼촌들은 배가 들어와야지만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마도로스가 되어 고향을 떠나 바다로 나가야 했고, 배운 것 가진 것 하나 없는 삼촌들은 겨울만 되면 연탄지게를 짊어지고 언덕이 유난히도 많았던 못사는 동네의 집들에 연탄을 배달하면서 생존했다.


응답하라1988의 드라마 속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필자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 필자가 광부에 대한 토론을 제안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게 바로 누나였다. 밖에 나가 일하던 어머니 대신 나를 돌보며 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누나가 겁줄 때 쓰던 말이 수십 년 만에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누나 말 안 들으면 강원도 탄광으로 보내 버린다!”


왜 그게 무서웠는지는 모르지만 여공이었던 누나부터 비롯해 마도로스였던 삼촌, 연탄 배달하던 삼촌까지도 어린 나를 겁줄 때 종종 쓰곤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의 진정한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였고, 사건사고로 인해 광부들의 사망 소식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으면서 인생막장이란 말의 공포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당시1등 신랑감이었다는 발제자님의 글과는 달리 필자에게 있어 광부의 이미지는 그러했다.


그렇게 경제발전의 또 다른 뿌리였던 여공과 마도로스, 그들마저도 외면하고 때로는 무시했던 말 그대로 인생 막장의 드라마가 펼쳐진 곳이 바로 탄광이었고, 광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막장의 그 폐쇄적 공포 속에서도 기어이 갱도에 들어갔고, 그 힘의 원천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가족’때문이었다. 나라와 국가의 경제발전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아닌 그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마도로스와 여공이란 직업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경제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고 80년대 이후 그들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가난함과 무지 속에서도 개인의 힘으로 이뤄낸 위대한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를 보여주고 말이다.


반드시 지키고 기억해야 할 직업, 광부.


철이 들면서 그들이 처절하게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이상한 건 노동운동의 중심에 여공은 있어도 그 어디서고 광부는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1980년에 일어난 '사북사건’ 마저 항쟁과 사태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을 정도이고, 조그만 것 하나라도 대한민국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큐로 만들어 선전 선동하던 한국의 독립영화계에서도 광부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이미영 감독의 '먼지, 사북을 묻다’ 정도가2006년도에 개봉을 했고, 대부분의 광부에 대한 이야기들은2000년대에 들어서야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물론 찾지 못한 자료들이 있겠지만 그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외쳐왔던 다른 것들에 비하면 턱없이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희한한 현상은 다른 직업들(여공이나 양공주 같은)이 국가의 탄압에 의한 희생으로 다뤄지는 자료들이 많은 것에 반해 광부들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 평가 자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노동운동권 세력과 영화계가 현실 왜곡을 시키지 않은(or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태일과 여공을 이용해 반자본주의를 주장했고, 양공주를 앞세워 민족주의와 반미를 조장했지만 가장 인생의 극한에 닿았던 광부들은 외면했다. 아마도 언론이나 대중선동 차원에서 강원도 산속의 광부들은 그들 선전선동의 도구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거나 효과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다.행.스.럽.게.도’광부라는 노동자들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분들처럼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던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으로 아직 남아있게 되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런 점에서 광부에 대한 긍정적 내용들은 너무도 소중하고,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시장경제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알리는 대상으로서 광부를 이 시대로 다시 모셔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떻게?


독일의 '졸퍼라인(Zollverein)’엔 있고, 한국의 태백에는 없는 것?


광부가 떠난 탄광, 정부와 지자체는 예전의 호황을 되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박물관이나 삼탄 아트마인 등 여타 관광상품 등 많은 것들이 폐허가 된 탄광의 주위에 즐비하게 들어서 생명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태백을 돌아보며 필자가 생각한 곳은 바로 독일의 '졸퍼라인(Zollverein)’이었다.


독일의 '에센’이런 곳도 태백과 마찬가지로 탄광산업의 몰락과 함께 폐허가 된 도시였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그곳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었다. 1986년 문을 닫은 유럽 최대의 탄광이었던 독일 탄광도시 에센의 '졸퍼라인’은2001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그 저변에는 이곳을 살리고자 하는 정부와 지자체, 자본과의 끊임없는 논의와 협의의 과정을 거치는 노력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졸퍼라인 개발이란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황무지였던 이곳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고, 그 변화의 시작을 알린 이들은 바로 '예술가’들이었다.


1992년 독일의 조각가 '울리히 뤼크림(ulrich ruckriem)은 아무도 찾지 않던 이 폐광에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했다. 이것을 본 에센시와 주정부가 나서 그들을 적극 지원하면서 졸퍼라인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유산 등재 이후 졸퍼라인은 '엔트리2006’이라는 대규모 디자인 전시회를100일간이나 펼치며 세계적 디자인들을 발굴하고 나아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 디자인전문학교 등을 유치하며 폐광을 넘어 예술문화산업을 생산하는 공장지역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졸퍼라인’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지자체와 정부, 기업간의 협력과 노력, 예술가들의 참여도 물론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그 무엇이었고, 그것은 바로 '산업’이었다. 탄광이라는 곳 자체가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된 원동력이며, 산업의 원천이 바로 탄광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그들은 자본과 정부, 예술가들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졸퍼라인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태백의 탄광지역을 살리기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강원도 탄광지역의 관광지 관련 자료들을 찾아봤지만 여타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이 느껴지지 못하는 흔한 형태의 관광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강원도의 탄광지역이 폐광이 아닌 강원도 탄광만의 그 무엇(졸퍼라인의 디자인산업 같은!)을 가지고 졸퍼라인처럼 되살아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졸퍼라인 외부와 내부 전경


필자는 그것이 '광부’ 그 자체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감성적인 요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특성이 있고, 광부는 충분히 그걸 제공한다. 자식들을 위해 죽을 줄 알면서도 들어가는 아버지, 그런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아내, 아무 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마냥 즐거운 아이들의 모습. 지금 태백에 필요한 건 그런 모든 풍경과 추억을 아우르는 광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지 않을까?


그게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며, 개인의 가치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보고,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전세계 공통의 감정을 아우르며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본다. 그럼 '광부’에 대한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찾고 만들 것인가?


광부의 재발견, 한국의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을 찾아라!


이 문제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할 아주 딱 맞게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예로 들어보자. 태백의 당시 풍경과도 매우 흡사하다. 광부로 살던 아버지 세대에서 삶이 윤택해진 자녀세대로의 변화는 한국이나 유럽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영국영화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이다. 2000년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광부를 아버지와 형으로 둔 발레리노를 꿈꾸는 11살 빌리의 성장기 영화다.


폐광을 앞두고 파업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형에게 발레에 빠진 빌리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한심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빌리의 춤을 본 광부 아버지는 빌리가 자신들이 사는 이 탄광을 떠나 멋지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발레’뿐임을 알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빌리에게 춤을 배우게 한다. 시간이 지나 빌리는 최고의 발레리노가 되어 공연장에 서고 광부였던 아버지는 객석에 앉아 아들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줄거리다.


서두에 말했던 우리들 아버지 세대 삶의 괘적과 다를 바 없다. 그러기에 감동이 더욱 크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한 후, 뮤지컬로도 만들어지고 소설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의 폐공장들과 탄광들이 주요배경으로 등장했다. 인생 막장인 곳에서의 드라마는 그 어느 것이건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확실히 제공해주며 현실에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단 이런 상황들이, 탄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한국이라고 없는 것은 분명 아니다.


얼마 전 최고의 드라마 시청률을 자랑했던 '태양의 후예’도 그렇고, 액션영화 중 베스트로 꼽히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의 빗속 결투씬도 모두 강원도의 탄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 M/V 등이 폐광을 배경으로 제작되었고, 꾸준히 제작될 예정이다.


문제는 아직 한국은 폐광이나 광부가 주제가 아닌 그저 배경일 뿐이라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가 히트하고 난 후 해외 관광객들이 오기도 전에 세트들이 철거되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활동들이 소모적이다 보니 작품이 끝나면 떠나고, 그곳에 남는 것은 덩그러니 탁상행정의 기념품으로 전락한 기념사진용 촬영지 팻말만이 전부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어디에서고 광부에 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에..... 지금 태백의 탄광에 필요한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탄광과 광부, 그들이 만든 태백의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드라마 촬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창작자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존재이고, 태백이 그 스토리텔링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늘 그래왔듯 강원도의 폐광에서 분명 한국의'빌리 엘리엇’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광부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간 이유, 빌리 엘리엇에서 자식의 꿈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을 이제 후손들이 찾아내 기려야 한다면 그곳은 분명 태백이 적당하다.


예술가들은 아무 것도 없는 황폐한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존재들이다. 결국 태백이 한국의 졸퍼라인이 되기 위해선 독일의 탄광도시 에센처럼 그렇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문화예술인들을 얼마나 잘 활용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들은 맨 손으로 대학로를 만들었고, 홍대를 만들었고,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만들었고, 태백과 똑같았던 독일의 졸퍼라인을 문화도시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그들의 그런 내재된 힘이 강원도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환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광부들이 강원도에 부와 활력을 가져다 줬던 것처럼!!!


최 공 재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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