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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광부]인류 문명과 한국 근대화의 역군으로서 광부

48 신중섭 | 2016-10-18 | 조회수: 611 | 분류: 태백광부


CFE_뿌리찾기_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대한민국_토론1_신중섭.pdf

   

석탄에 대한 기억


석탄에 대한 가장 낭만적인 기억은 최장봉의 '사발가’다. 그는 사발가에서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가 펄썩 나구요, 이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 나네”라고 노래했다. '석탄이 탄다’와 '가슴이 탄다’를 시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석탄은 인류가 오래 전에 발견한 에너지원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자연에서 찾았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식량에너지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주거와 의복이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식주’가 인류 역사 대부분 항상 부족했다. 인간의 역사 500만 년은 '의식주’를 구하기 위한 사투의 과정이다. 인류 역사 500만 년 가운데 '의식주’가 해결된 것은 최근 200-300년 전부터의 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50-60년 전부터의 일이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의식주’를 해결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것도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에 제한되었고,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60평생을 살아온 발표자에게도 '의식주’로 인한 고통의 기억은 여전하다.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잘 먹고 잘 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사발에 담긴 물이 꽁꽁 얼어붙는 방, 잉크병이 터지는 추운 겨울밤의 냉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4-5Km를 걸어 다녀야만 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춥고 배고팠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추운 겨울 겨우 무명옷으로 몸을 싸고 학교에 가면 교실은 연기로 자욱했다. 어떤 때는 산에서 채취한 나무로 난로를 피우거나, 갈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 교실은 연기로 가득했다. 나에게 석탄은 연기 자욱한 교실과 함께 기억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서는 갈탄이 아니라 연탄과 친구가 되었다. 아직 남아 있는 19공탄은 난방과 취사를 위한 필수품이었고, 연탄가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연탄가스로 죽은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이 연일 신문에 보도되던 시절 '연탄’은 따뜻한 보금자리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죽음의 공포로 기억된다. 그러나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여 이제 더 이상 '의식주 결핍’과 '연탄가스의 공포’는 사라졌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석탄이 우리의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이다. 석탄이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어 모든 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총아였던 증기기관이나 제철업은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한다. 석탄을 산업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이다. 영국 나아가 서구는 석탄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동양을 앞서가게 되었다. 인간은 동력을 얻기 위해 물ㆍ바람ㆍ파도와 같은 자연력을 이용하였지만,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을 본격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석탄이 분명한 에너지원으로 전환된 것은 원광을 녹이는데 숯 대신 석탄을 사용하면서부터다. 이렇게 되면서 석탄 산업과 제철업이 동시에 도약하게 되었다.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에 따르면 원광을 녹이기 위해 석탄을 찾아내고, 채굴하고, 운반하기 위해 자본과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이것을 주도한 것은 기업가였다. 중국에 다음과 같은 1080년대의 시 한 수가 전해지는데 모리스는 이 시를 문명사적으로 해석했다.1)



눈과 비에 길손들의 발이 묶이고

칼바람이 성 안 사람들의 뼈를 깎는 지난겨울

젖은 땔감 한 묶음을 들고 '동틀 녘에 이부자리를 진’ 여인을 보지 못했는가? 2)


어스름에 여인은 성문을 두드리지만 아무도 그녀의 일거리를 원하지 않았네.


저 산 속에 보물이 감춰져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만 대의 수레에 실어갈 수 있는 석탄이 검은 보석처럼 쌓여 있네.

넘쳐나는 은혜를 모두가 모르고 있었네.


후끈한 바람이 –쳉쳉- 3) 퍼져나간다.

일단 개시되면 (생산은) 끝이 없다.

만 명의 일꾼이 애를 쓰고 천 명의 사람이 감독한다.

원광을 펄펄 끓는 액체에 집어넣으면 더욱 환해지고

녹은 옥과 금, 왕성한 힘이 나오네.


남산에서는 밤나무 숲이 이제 편히 숨을 쉬고

북산에서 단단한 원광을 두들길 필요가 없네.

백 번 제련한 검을 만들어 주리니

도적떼를 모조리 제압할 수 있으리라.


첫째 연은 연료가 너무 절실해서 땔감을 얻기 위해 몸을 판 여인을 묘사하고, 둘째 연은 탄광이 이런 상황을 구제하는 모습을, 셋째 연은 거대한 용광로를 묘사하고, 넷째 연은 사람들은 이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되어 안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커다란 무쇠 검도 주조할 수 있고 숲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는 1000년대 중국에서 석탄 산업과 제철업이 갑자기 동시에 도약하게 된 상황과 그 여파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산업혁명으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석탄을 열에너지 형태로 방출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으로서 석탄4)


산업혁명은 열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의 수백만 년 동안 물건을 움직이는 거의 모든 힘은 근력에서 나왔다. 근육의 힘은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대운하를 파고, 성당의 벽화를 그리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해내기도 했지만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근육의 힘은 인간에 속한 것이며, 인간은 음식과 살 곳, 연료와 옷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은 식물이나 동물에서 나온 것이며, 식물과 동물은 땅에 귀속되어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갈수록 땅이 귀해지고, 근력의 값도 올라갔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 세기 동안에는 수력과 풍력이 배를 밀어 움직이고 맷돌을 돌림으로써 근육의 힘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수력과 풍력은 한계가 있었다. 수력과 풍력은 장소에 귀속되어 있다. 수력이 작동하는 개울은 겨울에 얼어붙거나 여름의 가뭄에 말라 버릴 수 있다. 바람이 없으면 풍차는 돌지 않는다. 산업이 발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동 가능한 동력, 날씨에 좌우되지 않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동력, 숲과 토지를 사용하지 않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동력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석탄에서 나온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돌파구는 18세기 탄광에서 나왔다. 탄광의 침수는 지속적인 문제였고, 근육의 힘과 양동이로 갱도의 물을 뺄 수 있었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다. 머리가 좋은 한 영국의 탄광업자는 말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이후 새롭게 구상된 해결법은 간단했다. 식량을 축내는 동물대신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을 '먹는’ 동력 기관으로 물을 빼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쉬었지만 실제로 시행되기는 어려웠다.


18세기 동양과 서양의 중심부에서는 석탄이 필요했으나, 석탄 채굴을 위한 갱도는 종종 침수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들은 영국의 동력 기관 제작자들이었다. 최초로 작동한 서양의 펌프, '광부의 친구’는 1698년 잉글랜드에서 특허를 받았다. 석탄을 때서 물을 끓인 다음 증기를 진공펌프에 압축한 뒤 기사가 밸브를 열면 진공펌프가 갱도의 물을 빨아올렸다. 그다음 밸브를 잠그면 인부들은 빨아 올린 물을 끓여서 역시 증기로 전환하기 위해 석탄을 땠다. 그러나 진공펌프는 대단히 비효율적이었다. 진공펌프의 비효율성 때문에 증기력은 탄광의 물을 빼는 단 하나의 작업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뒤에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증기기관을 연구하였고, 제임스 와트가 발전시킨 증기기관이 대량 생산되었다. 이 증기기관을 면직물 제조업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기기관의 발전은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석탄은 증기기관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에서 '거대한 분기’를 이룩하였다.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디턴이 말한 '위대한 탈출’의 출발점이 되었고, 석탄은 근대 문명의 위대한 동반자가 되었다.


석탄의 역사 5)


석탄은 탄소로 구성된 단단한 가연성 유기체로서 연료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화석에너지이다. 석탄은 인간에게 최고의 에너지원으로 산업과 문명 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며,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석탄에 대한 최초 기록은 BC 315년 그리스 문헌에 있다. 이 문헌에는 “북부 이탈리아의 소그리아 지방과 북부 그리스의 에리스에서 석탄(목탄과 흡사한 물질)을 대장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AD 3세기경 중국의 수경(水經)이라는 책에 석탄이라는 글자가 있다. 13세기 영국에서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채탄 면허를 부여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바로 이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 발명이 원동력이 되었고 20세기 중반까지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으로 군림했다. 석탄의 중요성은 흑보(黑寶, lack Diamond)라는 별칭 속에 담겨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함께 석유가 급부상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석탄은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었다. 그런데 화석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를 안고 있어 깨끗하고 사용이 편리한 새로운 에너지의 필요성이 등장함에 따라 석탄은 퇴조할 가능성이 높으며, 편의성ㆍ열효율 등에서 석유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와 1590년 평양관찰사 윤두수가 편찬한 “평양지”에 석탄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1730년 윤유의 “속평양지”에는 “평양부 동쪽 삼십 리의 미륵현에 검은흙이 있는데, 도사(都事) 허관(許灌)이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석탄이다. 우리나라는 석탄을 사용할 줄 모르니 한탄스럽다. 만약 성을 지키는 때를 당한다면, 성 중에 땔감이 심히 어렵다. 내가 옛날에 들은 것을 고증해 보니, 석탄을 벽돌처럼 작게 만들면 아침밥을 취사하기에 충분한데, 그 방법은 검은흙을 캐어 황토와 합하고, 물을 섞어서 진흙을 만들어 햇빛에 말려서 사용한다. 북경에는 석탄으로 천단(天壇)을 만들어서 성을 지킬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석탄 개발은 1896년 니시첸스키가 함경도 경성과 경원지방의 석탄채굴권을 획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개발에 착수한 곳은 1903년 궁내부 내장경 이용익과 프랑스 용동상회가 합동개발계약을 체결한 평양사동탄광이었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1915년 12월에 조선광업령, 1916년는 조선광업령시행규칙과 조선광업등록규칙을 제정했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쟁으로 석탄 수요가 증가하자 탄광개발을 더욱 확대하였다. 아오지탄광의 개발을 확대하고 남한지역 탄광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문경탄광을 비롯한 화순, 은성, 영월, 삼척 등의 탄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탄광에 남아 있던 조선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치운영회가 조직되었다. 1945년 7월 남한에는 미군정이 실시되고, 일본인 재산은 모두 조선군정청 소유로 전환되었다. 탄광 역시 군정청으로 모두 귀속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자, 정부는 1950년 11월 1일에 '대한석탄공사’를 발족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에서는 석탄운반을 위해 1955년 영암선ㆍ함백선ㆍ문경선, 1956년 영월선을 개통했다. 


1961년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석탄 증산을 위해 1961년 12월 '석탄개발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ㆍ공포했다. 석탄 증산 노력은 결실을 거두어 1966년에 1,161만 톤을 생산함으로써 석탄의 자급자족을 거의 실현했다. 특히 산림녹화 5개년 계획으로 가정의 연료가 석탄으로 대체됨으로써 가정용 수요가 급증했다. 석탄은 우리나라의 산림녹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1966년 10월 연탄 파동을 기점으로 꾸준히 성장했던 석탄 산업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 가을부터 연탄 수요가 증가하면서 연탄가격이 폭등했다. 1966년 여름에는 연탄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연탄 수요가 급증하였다. 게다가 1966년에는 한파가 일찍 닥쳐 연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시에서 연탄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는 이에 에너지 정책을 석탄 위주에서 유류 위주로 전환하고, 석탄산업 합리화 논의를 시작했다.

연탄 파동으로 쇠퇴의 길에 들어선 석탄 산업은 1973년과 1978년에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다시 호황을 맞았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OPEC 가입국들은 친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압력의 수단으로 석유를 이용했다. OPEC 가입국들이 석유의 생산량을 줄이자 석유 가격이 인상되었다. 정부가 석탄 증산을 독려하자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석탄 산업은 다시 호황을 맞았다. 


1980년대 중ㆍ후반에는 국제 유가가 안정되고, 국민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 생활 수준의 향상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선호로 이어졌고, 가정용 연료로 가스가 보급되었다. 가스의 보급으로 연탄 사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정부는 1987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을 설립하고, 1989년부터 1996년 사이에 334개의 탄광을 폐광시켰다. 찬란했던 석탄 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석탄부존량은 적다. 그러나 석탄은 1960년대에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석탄 산업은 노동집약적인 대표적 3D산업이다.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석탄 산업은 사양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의 석탄부존량이 세계의 0.015%에 불과하지만, 석탄소비량은 전 세계의 2.1%로 세계 7위, 석탄수입량은 세계 3위로 석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가 되었다.


광부의 삶 6)


'광산근로자’인 광부는 '두 하늘을 덮어쓰고 사는 사람들'로 불린다. 두 하늘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보통 하늘과 하루 3교대 8시간 동안 일하는 갱도 천장을 말한다. 갱도 안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광부들은 출근할 때 보았던 바깥의 하늘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굳게 믿고 지하 갱도로 들어간다. 탄광의 일은 노동 강도가 높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다. 23년 동안 탄광에서 근무한 한 노동자는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게 제일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데 달라 하고 큰소리 치고 들어갔는데, 막상 막장에 가서 삽과 괭이를 들고 일을 하니까 땀이 비 오듯 하였습니다. 큰 소리 치고 들어갔는데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도저히 근무를 할 수 없어 조퇴하고 첫날을 나왔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탄광의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 환경은 광부들의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남들 다 자고 있는 야간에도 땅 속에 들어가서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정신적 고통이었다. 이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를 이겨내야 한다는 현실적인 절박성 때문이다. 13년 동안 탄광에서 근무한 한 광부는 “나 같은 경우에도 그때 총각이지만은 예를 들어서 나한테 딸린 학교 다니는 동생이 없다든지, 부모님이 참말로 집안이 괜찮다든지 이러면 제가 벌써 치았지요. 그러나 인제 환경도 어렵고 동생 학비도 보태야 되고, 내 아니면 안 되겠다는 그런 신념이 있기 때문에 견디고 나간거지. 안 그러면 벌써 치았어.”라고 했다.


광부들이 작업하는 곳이 막장이다. 막장의 기온은 대개 30℃를 웃돈다. 또한 지하 갱도는 물이 나오기 때문에 습도가 아주 높다. 광산의 작업 환경은 어느 산업장보다 위험하고 여러 가지 유해 조건을 갖고 있다. 광산에서 재해로 인한 광부의 상해나 사망이 무엇보다 큰 문제이고, 진폐증ㆍ소음성 난청 등의 직업병 발생 비율도 높다. 광산은 온도, 습도, 압력, 조명, 소음, 진동, 협소한 공간 등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광부들의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을 해친다. 7) 


이러한 광산에서 일을 하면 온몸은 금방 땀으로 뒤범벅된다. 2~3회 이상 옷에 스며든 땀을 짜서 입어야 한다. 또한 석탄가루를 막아주는 방진마스크는 숨이 차서 착용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금방 콧구멍은 막히고 입속은 까맣게 된다. 광부들은 이렇게 무더운 막장 중에서 가장 덥고 습한 막장을 월남막장이라고 불렀다. 월남처럼 더워서 붙인 이름이다. 


광부와 쥐는 아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갱내에서 쥐를 발견하면 광부들은 안심하고 작업한다. 갱내에는 메탄가스,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 가스가 많다. 갱내에 쥐가 살고 있다는 것은 갱내에 유해한 가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부들은 갱내에서 쥐를 함부로 잡지 않고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쥐는 아주 영리한 동물이라 갱내에서 발생되는 출수사고나 붕괴사고 등을 미리 예감한다. 광부들은 쥐의 움직임을 보고 사고의 위험을 미리 인지하여 피할 수 있다.


탄광에는 금기 사항도 많다. 항상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금기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출근할 때 여자가 가로질러 가면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하기 전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다.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출근하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할 때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부부싸움 후에는 가급적 갱에 들어가지 않는다.

도시락에 밥을 4주걱 푸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한 후 신발을 방 안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거나 뛰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쥐를 잡지 않는다.

갱내에서 용변을 볼 때 출입금지 구역으로 가지 않는다.

출근 길에 짐승을 치면 그날은 출근하지 않는다.


지하 갱도에는 지하수가 있어 항상 물이 흐른다. 갱도를 굴착할 때는 이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하에 있는 물이 배수로로 빠지지 않고 석탄층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석탄층에 물이 계속 스며들면 어느 순간 석탄층은 터지게 된다. 터진 석탄층은 물과 석탄이 뒤범벅이 되어 마치 죽처럼 되어 갱도로 밀려나온다. 석탄이 죽처럼 되어 있어 '죽탄’이라고 한다. 죽탄에 휩쓸리면 갱내에 철로 된 물건들도 엿가락처럼 휜다. 죽탄으로 사람이 매몰되면 끔찍한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 죽탄 사고가 나면 인명구조가 어렵고, 때로는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광부의 일터인 막장만 환경이 나쁜 것은 아니다. 광부와 그들의 가족이 살아가는 광산촌의 환경도 열악하다. 한 작가는 '해발 650m의 검은 도시 태백’을 “탄가루가 작은 도시를 온통 뒤덮어 크고 작은 건물이 모두 거무스름해져 있고 공기마저 탁해 맑은 날씨인데도 화창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중턱은 탄광소, 바로 그 밑이 광부와 그 가족들이 사는 사택촌이다. 탄가루와 오물로 새까매진 커다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역쪽은 상가와 학교, 관공서가 밀집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사택과 탄광소가 자리잡고 있다. 해발 650m의 태백시, 시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광부와 그 가족의 삶과 고뇌를… ”라고 기술했다. 8)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탄광촌의 한 학생은 '막장’이라는 시에서 자신의 환경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9)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맺음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다. 이 시는 우리가 성취한 모든 것에도 해당한다.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위대한 탈출’의 과정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적 영웅과 위인들,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지만 실제 역사를 이룬 사람은 기록되지 않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이다. 인류 역사가 오늘과 같은 문명사회로 발전할 수 있도록 견인한 원동력으로서 석탄에 주목한 사람은 많았으나,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캔 광부들의 피와 땀에 관심을 준 경우는 드물었다. 오늘의 우리의 놀라운 경제 발전과 산림녹화에 소리 없이 기여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우리는 번영의 결실을 누리기에 앞서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칭송해야 한다.


신 중 섭 교수 | 강원대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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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 2013, pp. 532-534.

 2) 매춘을 돌려 말한 것이다.

 3) 시인이 생각한 풀무 소리

 4) 모리스 앞의 책, pp. 682-684.

 5) http://coal.gbmg.go.kr/open.content/ko/coal/history/history.korea/

 6) http://coal.gbmg.go.kr/open.content/ko/coal/mining.town/

 7) 이광목, “광부와 직업병”, Korean J. Occup. Health, Vol. 17, No. 1, March, 1978, pp. 22-28.

 8) 윤지현, “광부의 아내, 광산촌의 아이들”, 『새가정』, 1986년 12월호, p. 60.

 9) 앞의 글, pp.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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