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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광부] 태백 광부,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47 곽은경 | 2016-10-17 | 조회수: 580 | 분류: 태백광부


CFE_뿌리찾기_광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대한민국_발제_곽은경.pdf


1. 자신의 삶을 개척했던 광부들


지나가던 개도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1980년대까지 광산지역은 큰 호황을 누렸다. 7,80년대 광부는 고소득 직업 중의 하나였고 고학력 소지자들도 광부가 되기 위해 탄광지역으로 몰려왔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광부라는 직업은 당시 청년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광부가 되는 것이 한국전력공사나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대졸 초임이 5만원 수준이었는데 광부들의 월급이 20만원 수준1)이었으니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급여 외에 사택과 연탄, 쌀이 제공됐으며 자녀들의 학자금도 지원되는 등 복지수준도 상당했다.2) 광부들의 사택에는 7,80년대 부의 상징이었던 다이얼 전화기와 칼라TV가 하나씩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광부증명서만 있으면 공무원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았으며, 1등 신랑감 후보가 될 수 있었다.3)


이 때문에 '검은 노다지’ 땅으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광부와 그의 가족들로 인해 태백의 인구는 한때 12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지금은 4만 7천명 수준이다.


광부들의 넉넉한 주머니 덕에 탄광지역 주변으로 극장, 술집, 다방 등이 빽빽이 들어섰다. 지금의 명동거리와 같은 번화가였던 태백 철암역 주변은 '까치발 건물’로 유명하다. 좁은 땅에 많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가 쪽에 발코니 형태로 건물을 증축하고 하천 바닥에 철재나 목재 지지대를 세운 기이한 형태의 건물이 생겨나게 됐다. 광부들의 월급날이 되면 철암역 주변 까치발 건물들 주변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림 1> 태백의 까치발 건물

자료: 연합뉴스


광부들의 검은 눈물


모든 분야가 어렵고 힘들었다. 생산 현장은 늘 위험했으며, 석탄 채굴 현장도 그랬다. 막장은 석탄을 캐는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말로, 흔히 막장인생이라고 하면 갈 데까지 다 간 절망스러운 상황을 의미한다. 광부들은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막장에서 “머리에 쓴 안전모에 붙어 있는 작은 램프에 의지한 채 30~40kg에 이르는 착암기를 메고,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기듯이 막장 끝을 뚫고 넓히며 석탄을 캐야 했다.”4) 석탄가루를 막기 위해 방진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콧구멍과 입속에는 석탄가루가 가득하게 된다.


그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직장으로 향하고 작업현장까지 또 1시간 20분을 갱도로 들어가야 지하 1700m가량, 속히 말하는 '막장’에 도착한다. 사계절 내내 지열이 39~40도를 기록해 하루에도 옷을 3벌씩 갈아입으며 작업을 했다. 해수면보다 깊은 탄광 내에서 '언제 갱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하루 종일 느끼며 점심마다 탄가루가 섞인 한줄 김밥과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다.”5)


소설가 조지오웰은 을 통해 막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보통 지옥을 상상할 때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존재한다. 더위, 소음, 혼란, 어둠, 오염된 공기, 무엇보다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좁고 갑갑한 공간이다.”


광부들의 월급이 다른 직업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은 이렇게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근무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대부분이며, 갱도의 길이가 수 킬로미터라 가스가 폭발하거나 지반이 무너지고 암벽이 떨어져 그 밑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사고가 발생해도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구조다.

“채굴한 석탄을 운반하는 고무 재질의 컨베이어 벨트가 불에 타는 사고. 갱 안은 온통 짙은 연기로 자욱했다. 구조대가 산소통을 매고 갱도로 들어갔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당시 탄광 안에 갇힌 사람은 126명.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형 선풍기를 설치해 연기를 빼낸 다음 날 새벽, 다시 구조대가 투입됐다. 뜨거운 열기에 암석을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가며 전진했다. 지하 600m까지 내려가는데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지하수가 흐르는 갱도 근처에 가니 인기척이 났다. 유독가스가 물에 막혀 못 들어오니 그쪽에 광부들이 몰려있었다. 사고 발생 나흘 만이었다. 44명이 숨지고 82명이 구조됐다.”6)


강원도 태백시 순직산업전사 위령탑에는 정부 수립부터 2014년까지 4,085명의 사망자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재해는 작업여건이 열악했던 1970년대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행한 해는 1973년으로 244명을 기록하고 있다. 갱도 입구에 붙어있던 [아빠, 오늘도 안전!]이라는 문구가 광부 가족들의 절박함을 잘 보여준다.


광부들의 가족은 가장이 출근한 후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탄광촌 주민들은 사이렌 소리만 나도 하던 일을 내려두고 모두 밖으로 달려 나올 정도였다. 막장에서 무사히 나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탄광촌에서는 “가장의 신발 코는 들어오는 방향으로 놓는다, 꿈자리가 좋지 않으면 무조건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 시간에는 어린아이나 부녀자들이 길을 막지 않는다.” 등의 속설이 당연시 될 정도였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막장에 들어가는 광부들은 1960년대, 70년대 가난한 대한민국의 흔한 풍경이었다.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해 인력만 넘쳐나던 시절, 광부, 간호사들이 독일로 갔고, 마도로스들이 외항선을 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독일에서 광부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국내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지금이야 높은 인건비 때문에 석탄을 수입해서 사용하지만, 인력은 넘치고 일자리는 없던 당시의 가장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적었으리라. 가족을 돌보기 위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자식들을 학비를 벌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검은눈물’을 흘리며 삶을 캐는 광부가 되었다. 이들의 피와 땀이 모여 대한민국 가난한 서민들의 따뜻한 아랫목이 되었고, 석유를 수입할 달러가 없던 시절 경제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2. 석탄, 경제발전의 원료가 되다.


역사적으로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의 채굴은 경제발전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어 왔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차가 촉매제가 된 영국의 산업혁명 역시 주요 연료는 석탄이었다. 이 증기기관차의 발명은 석탄의 수요를 증가시켰고 석탄생산과 수송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그 결과 영국은 산업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1848년 미국 서부에서 금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렸다. 인구가 1만 5천명에 불과했던 캘리포니아는 1952년 25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로 성장했다. 골드러시를 계기로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고 서부를 개척하는 미국인의 도전정신이 강화되었고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7)


최근에는 셰일가스로 인해 펜실베니아주 마일러스 셰일 지역은 1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고 이주민들이 속속 들어오며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돈이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8) 셰일가스의 등장은 석유를 중심으로 하던 경제구조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다.


대한민국도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의 개발이 경제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캐어 올린 자원은 생활의 개선과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또 외화 획득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로 경제 재건을 위한 투자가 가능해졌다.


1) 석탄생산 현황


석탄생산은 대한민국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빠르게 변모시키면서 경제발전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석탄은 1950년대 초에는 군수, 관수, 발전, 교통, 산업 등 공공기관에 우선적으로 공급되었으며, 민영 탄광이 늘어나면서 공급량이 급증한 1950년대 말부터 산업용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석탄의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문경선, 함백선, 영암선 등 1950년대 개통된 석탄산업철도의 역할이 컸다. 이 산업철도는 1960년대 이후 디젤 기관차가 도입돼 철도용 석탄의 수요가 급감하기 전까지 석탄의 생산, 수송을 촉진했다. <표 1>의 석탄 생산량을 보면 1955년 131만 톤에서 1973년 1,357만 톤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1988년 2429만 톤을 정점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소비량 대비 생산량을 비교해보면 1960년~1992년 사이 전 기간에 걸쳐 석탄의 생산량이 소비량의 85~110% 수준을 유지하며 그 비중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용도별로 살펴보면 민수용이 대부분이며, 발전용과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석탄의 비중은 낮았다. 


                             <그림 2> 석탄 생산                   (단위: 천 톤)



<표 2>의 석탄공급현황 자료를 보면, 1953년 석탄 분야 생산량의 자급률은 52.6%에 불과했으나 1963년 98.5%로 급증한다. 이러한 석탄공급의 증가는 석유파동이 있었던 1973년과 1978년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예측가능하다.


<표 3>의 국내 석탄산업의 규모를 보면 1972년 국내 탄광의 숫자는 136개, 총 38,149명의 근로자가 근무를 했다. 석탄수요가 가장 높았던 1986년 탄광의 숫자는 361개까지 증가했으며 68,861명이 고용되었다. 석탄 수요가 줄어들면서 폐광이 늘어 1990년에 탄광의 숫자가 143개로 감소한다.



한편 산업이 발달하면서 에너지에 대한 수요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소득증가로 아파트 보급이 늘어나면서 가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게 됐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면서 일산화탄소 오염, 대기오염, 중금속 오염 등 환경문제를 초래하는 석탄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게 된다. 유가안정, 수요 급감, 국제경쟁력이 약화 등을 이유로 탄광들은 점차 생기를 잃었고 정리의 대상이 되었다.


2) 석탄과 경제발전


광업은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이자 농업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지하자원을 적극 개발했고 1950년대 텅스텐, 흑연. 고령토, 무연탄 등의 지하자원은 해외로 수출돼 외화획득에 큰 기여를 했다.


총수출에서 광업(광물성 연료, 윤활유 및 관련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7년 1.2%에서 1985년 3.1%까지 증가한다. 1990년까지 1.1% 수준을 유지하다 석유 제품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2000년 5.4%, 2012년 10.5%까지 기록하게 된다. 광업(광물성 연료, 윤활유 및 관련물질) 중 석탄, 연탄 등의 품목만 볼 경우 1977년 총 수출 총액 중 0.002%, 1983년 0.003%, 1987년 0.004%, 1994년 0.014%를 기록한다.



광업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고, 역대 대통령들은 광부들의 노고를 높이 샀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5년 경무대로 광부들을 초청했는데, 이때 광부들을 반기는 현수막에 '모범 산업전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광부들은 '산업전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탄광에서 사고로 숨진 광부를 '순직산업전사'로 대우해 위령탑을 세우기까지 했다.


광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역사가 보인다.  <표 5>에 따르면 1955년 전체 GDP 대비 1.9%였던 광업의 비중은 1965년 3.6%까지 증가한다. 즉, 1950년대까지 농업사회였던 대한민국은 지하자원 개발을 시작으로 산업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사회 SOC 건설, 중화학공업 발달 등에 따라 광물자원의 수요가 급증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국내 광산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석유, 가스 등 수입 연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석탄을 비롯한 광물자원에 대한 수요가 하락한다. 또한 소득증가와 제조업, 건설업 등 다른 분야의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발달로 광업은 쇠퇴기를 맞게 된다.


                       <그림 3> 광업의 GDP 비중                  (단위: %)




<표 6>과 같이 다른 산업과 비교를 통해 광업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1955년까지 농업 국가였던 대한민국은 농립어업이 GDP의 30.1%를 차지했으나 차츰 감소해 1980년 8.3%, 2000년에는 3.0%까지 급감한다. 광업의 경우 1965년 3.6%를 기록한 후 차츰 감소한다. 한편 제조업은 1955년 3.4%를 기록한 후 매년 증가해 2000년 22.7%까지 증가하게 된다. 이는 1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차츰 2차 산업, 3차 산업으로 고도화 되면서 선진국형 경제구조를 갖추게 된 것을 의미한다.



3) 주요 에너지원, 석탄


한때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놓는 것이 서민들의 겨울필수품이던 시절이 있었다. 값싼 연탄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았다. 서민들은 연탄불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빨래를 삶았다. 또 눈이 많이 오면 골목길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도 했다. 연탄 한 장이면 겨울밤 온 가족이 따듯한 온기 속에 잠들 수 있었다.


1966년 12월 석공기술연구소가 발표한 '5인 가족 기준 연료비' 자료에 따르면 연탄이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임을 알 수 있다. 1일분 연료비를 연탄 1을 기준으로 전기 15, 경유 2.8, 석유 2.1 수준이었다.9) 물론 다음날 아침이면 일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됐다는 뉴스보도가 심심찮게 등장하긴 했지만 연탄은 석유, 가스, 전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 서민들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다.


석탄 이전에는 장작이 주요 연료로 사용되었다. “1950년만 해도 장작이 국가 에너지의 90%를 차지했다. 겨울이 오면 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해오다보니 늘 민둥산이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장마철마다 산사태가 빈번해 집과 농작물이 떠내려 갈 위험이 높았다. 석탄의 등장은 산림녹화에 큰 기여를 했다. 석탄생산이 안정화되면서 난방연료로 장작대신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에는 장작 사용이 60%대까지 떨어졌다.


특히 연탄은 재래식 온돌 아궁이에 화덕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서민들이 널리 사용할 수 있었다.10) 1970년대에는 온수보일러가 개발되었는데 옥외 공간에 설치가 가능해 연립주택과 고급주택에서도 연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급감하게 된다. 그 결과 <표 7>과 같이 전체 가구 중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의 비중은 1989년 기준 71.2%를 기록하기도 했다.



<표 8>의 에너지소비구조를 보면 1957년 석탄이 전체 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1%에 불과했으나 1966년 46.2%까지 크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9>의 가정용, 상업용 에너지 소비 구조를 보면 석탄이 1975년 전체 에너지의 61.9%, 1985년 62.7%까지 기록하고 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와 달리 국내 생산이 가능했던 석탄은 외화가 부족하던 시절 가정과 기업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다.


1990년부터 석유의 소비비중이 40.4%로 증가하면서 석유가 석탄을 대체하게 된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는 도시가스와 전력이 석유를 대체하며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전력 39.0%, 도시가스 35.2%를 기록하고 있다.



3. 광부들의 음식문화


당시 강원도의 다른 지역만 해도 감자, 옥수수가 주식량이었지만 태백만큼은 쌀밥을 먹을 수 있단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일이 고된 광부들의 허기를 달래줄 음식 문화도 발달했다. 목에 낀 먼지를 씻고 힘을 보충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주로 먹었으며, 감자탕, 물닭갈비 등이 인기를 끌었다.


1) 돌구이


탄가루 배출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삼겹살은 힘든 막장일을 마친 광부들에게 최고 인기 음식이었다. 체력소모가 많은 탓에 삼겹살과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단백질원 섭취가 중요했을 것이다. 이들이 먹었던 돼지비계 삼겹살은 지금의 삼겹살의 원조라고 볼 수 있겠다.


태백의 광부들은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일명 '돌구이’를 특히 좋아했다. 광부들은 언제 식사한번 하자는 인사를 '언제 돌구이 한번 하자’로 했을 정도였다. 또 '햇돼지’라는 말은 신참 광부를 의미했다. 햇돼지 잡는날은 신입 광부가 선배들에게 한턱 내는 날을 의미했다.11)


보통 중소도시 인구 약 40~5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양을 태백의 10~20만 명의 인구가 다 소비시켰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돌구이 외에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돼지비계 돌구이, 돼지고기 두루치기, 지금의 감자탕과 비슷한 돼지등뼈찜 등도 유명하다.


한편 슬레이트가 보급이 되었던 시절, 골이 지고 표면이 올록볼록해서 돼지 기름이 잘빠졌고, 고기도 잘 익어 한 때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었다던 에피소드도 있다.


돼지비계가 폐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학설이 있다. 돼지기름은 해독기관인 림프관의 순환을 활성화시켜 기관지 점액 분비를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12)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도 탄광촌 옆에는 항상 돼지고기 집이 있다.


한편 이탈리아의 광부들은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원래 “까르보나라는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볶은 기름에 면과 달걀 노른자를 넣고 볶은 것으로 이탈리아 아페니니 산맥에서 숯을 캐던 광부들이 산속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든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접시에 떨어진 석탄가루를 보고 굵게 으깬 후추가루를 뿌려 먹는 걸 착안하였다고 한다. 'Carbone', 석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13)


2) 감자탕


감자탕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제시대부터 탄광촌을 중심으로 진폐증을 예방하는 데 좋다고 알려져 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인체에 쌓인 중금속을 해독하는데도 좋아 광부들이 즐겨먹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1899년 경인선 철도공사 때 많은 인부들이 철도공사에 동원되어 인천으로 몰리면서 생겨난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창 힘을 써야하는 인부들이 뼈와 감자, 시래기를 넣어 끓인 탕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한동길이라는 사람이 한방지식을 이용해 감자탕을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한동길은 1900년 한강철교 공사 막바지에 이른 노량진 근처에서 '함바집’ 형태로 감자탕 집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14)


또 하루 종일 검은 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이런 남편을 위해 광부의 아내들이 단백질인 살코기와 폐질환 및 기관지에 좋은 돼지비계가 적절히 붙어있는 돼지등뼈를 푸짐하게 끓여 내놓았다는 설도 있다. 광부의 아내들이 자주 만들었다는 돼지등뼈찜이 지금의 감자탕과 흡사하다.


다른 유래는 감자탕은 체력을 많이 쓰는 남자들이 먹어야 하니 열량이 높고 포만감이 들면서 싸고 맛이 강해 술안주로 제격이라는 설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 들수 있으며 재료손질이 비교적 쉽다는 점도 작용했다.


3) 물닭갈비


원래 닭갈비는 닭고기를 양념에 볶아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탄가루 마시고 온 광부들이 목이 뻑뻑해 닭갈비가 잘 넘어가지 않자 육수를 부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와 함께 먹기 위해 국물을 더했다는 설도 있다.


먹는 과정은 국물을 졸여 마지막에 밥볶아먹는 것은 춘천 닭갈비와 다르지 않지만, 태백식 물닭갈비에는 겨울 냉이가 반드시 들어간다.


4) 그 밖의 광부들의 요리


광부들은 단백질 보충을 위해 돼지 껍데기 양념구이, 양미리 구이, 소내장탕, 돼지내장볶음 등을 먹었다. 옛날 장터국밥도 광부들의 체력 보충에 큰 몫을 했는데, 장터마다 200인분 이상이 항상 끓여져 있었다고 한다.



4. 나가며


조지 오웰은 에서 “광부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그들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땅 위의 세상에 매우 필요한 존재다. 우리가 대서양을 건너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소설을 쓰고, 빵을 굽는 것까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석탄을 사용한다. 우리가 이 모든 것에 석탄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석탄이 필요하다.”15)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광부들의 노력은 경제발전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생활 곳곳에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광부들은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애국심보다는 '안정된 소득’, '안정된 일자리’를 절실히 원했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헌신했던 광부들의 땀과 열정이 모여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끌었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가 각자 사익을 추구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국가의 부를 이끈다는 메시지와 맥을 같이한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개인’들이 곧 경제발전의 뿌리이자 씨앗이 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대한석탄공사, 대한석탄공사50년사, 2001년.

박동운,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FKI미디어, 2012년.

한국광업협회, 한국광업백년사, 2012.

George Orwell, The road to Wigan Pier, Mariner Books, 1972.


참고사이트

에너지경제연구원 www.keei.re.kr

국가통계포털 kosis.kr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bok.or.kr/


신문기사

강원도민일보, 산림녹화 신화 배경에 석탄 있었다, 2010년 9월 1일 기사

뉴스1, "석공 폐업은 죽으란 소리"…삼척 도계읍 '검은 눈물', 2016년 6월 3일 기사

매일신문, 문경 토끼비리길에서 석탄박물관까지, 2013년 2월 27일 기사

머니위크, 그래, 그 땐 광부가 있었지, 2013년 3월 1일 기사

문화일보, 감자탕 황사철엔 더 좋다, 2004년 3월 18일 기사

매일경제, 잘 나가는 가게, 이름부터 '톡톡', 2006년 12월 4일 기사

연합뉴스, 석탄공사 폐업…연탄 사용 서민 15만가구 어쩌나, 2016년 6월 3일 기사

이코노믹리뷰, 위기와 극복, 링컨(2),  2016년 1월 6일 기사

파이낸셜뉴스, 낡고 스러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태백 철암 탄광역사촌’, 2014.03.02 기사

한국일보, 탄광은 닫혀도 광부들의 남은 삶은 소홀할 수 없다, 2016년 6월 27일 기사

코리아데일리뉴스, 셰일 개스의 꿈, 201년 6월 4일 기사

TV 데일리, '엄지의 제왕’ 돼지기름 효능 소개, 돼지비계 묵 레시피는?, 2015. 9월 8일 기사


방송

EBS, 요리비전-거친 삶의 위로 태백 광부밥상, 2014년 3월 5일 방송.

KBS, 한국인의 밥상 103회-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광부의 밥상, 2013년 1월 10일 방송

TV조선, <황금펀치> '감자탕’, 황사 막는 데 빠질 수 없다?, 2015년 2월 25일 방송 



1) 머니위크, 그래, 그 땐 광부가 있었지, 2013년 3월 1일 기사

2) 대한석탄공사, 대한석탄공사50년사, 2001년

3) 파이낸셜뉴스, 낡고 스러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태백 철암 탄광역사촌’, 2014.03.02 기사

4) 한국일보, 탄광은 닫혀도 광부들의 남은 삶은 소홀할 수 없다, 2016년 6월 27일 기사

5) 뉴스1, "석공 폐업은 죽으란 소리"…삼척 도계읍 '검은 눈물', 2016년 6월 3일 기사

6) 매일신문, 문경 토끼비리길에서 석탄박물관까지, 2013년 2월 27일 기사

7) 이코노믹리뷰, 위기와 극복, 링컨(2),  2016년 1월 6일 기사

8) 코리아데일리뉴스, 셰일 개스의 꿈, 201년 6월 4일 기사

9) 연합뉴스, 석탄공사 폐업…연탄 사용 서민 15만가구 어쩌나, 2016년 6월 3일 기사

10) 강원도민일보, 산림녹화 신화 배경에 석탄 있었다, 2010년 9월 1일 기사

11) 머니위크, 그래, 그 땐 광부가 있었지 제269호

12) TV 데일리, '엄지의 제왕’ 돼지기름 효능 소개, 돼지비계 묵 레시피는?, 2015. 9월 8일 기사

13) 머니투데이, 비어캐빈, 여심 공략 메뉴 선보여, 2012년 11월 5일 기사

14) 매일경제, 잘 나가는 가게, 이름부터 '톡톡', 2006년 12월 4일 기사

15) George Orwell, The road to Wigan Pier, Mariner Book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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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은 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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