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신이 노력하기 나름이다.   - 마가렛 대처  

자유주의정보
많이 본 칼럼

[세계사 인물기행] 참된 지혜 솔로몬·손변

412 복거일 | 2015-06-17 | 조회수: 2,764

근년에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 분야에서 법원이 맡은 몫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파산이나 화의와 같은 일들이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그런 일들은 서로 맞선 이해관계들을 화해시키는 과정을 포함하므로, 재판관들의 지혜가 특히 절실하게 요구된다. 깊은 지혜를 상징하는 사람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왕 한 솔로몬(Solomon)이었다.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다투는 두 창녀들을 그가 재판한 일은 그런 지혜의 모습을 또렷이 보여준다. 모성애에 대한 통찰 덕분에, 그는 그 어려운 문제를 멋지게 풀었고 훌륭한 재판관의 명성을 얻었다.

서로 맞서는 이해관계들을 화해시키는 데 보다 적절한 지혜의 모습을 우리는 훨씬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중기에 재판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손변(孫抃, ?~1251)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일찍이 경상도의 민정을 살피다가, 손변은 누이와 동생이 다투는 송사를 다루게 되었다. 남동생이 누이에게 사정했다. “딸과 아들이 모두 같은 부모의 소생인데, 어떻게 누님 혼자 부모의 재산을 차지하고 저는 나누어 받을 재산이 없겠습니까?” 누이가 대꾸했다. “임종하실 때, 아버지께선 가산을 모두 내게 주셨다. 네가 받은 것은 검정 옷 한 벌에다가 갓 하나, 미투리 한 켤레, 그리고 종이 한 묶음뿐이다. 문권에 그렇게 나와 있다.”

둘이 그렇게 다투니, 수령들도 판결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송사가 여러 해를 끌었다고 했다. 손변이 물었다. “너희 아버지가 죽을 때, 너희 어머니는 어디 있었느냐?” 어머니는 먼저 죽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때 너희는 나이가 몇이었느냐그때 누이는 출가했고 남동생은 어렸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자 손변이 말했다. “부모의 마음은 아들에게나 딸에게나 마찬가지인데, 장성하여 출가한 딸에겐 후하게 하고 어미 없는 어린 아들에겐 박하게 할 리가 있겠느냐? 내 생각하건대, 아들이 의지할 곳은 누이뿐인데, 만일 재산을 누이와 똑같이 나눠준다면, 누이의 사랑이 혹시 극진하지 못하거나 기르는 것이 온전하지 못할까 너희 아버지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크면, 이 종이로 소장(訴狀)을 만들고 검정 옷에 갓 쓰고 미투리 신어 정장을 하고 관가에 가서 소송을 하면, 판결해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네 가지 물건들만을 물려준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누이와 남동생은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감동해서 서로 껴안고 울었다. 위에서 든 솔로몬의 판결은 실은 후세 사람들이 민담을 각색해서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비슷한 얘기들이 페르시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들에서 전해왔고, 부처가 재판관 노릇을 한 인도의 민담은 특히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근거가 없을 수 없으므로, 솔로몬이 현명한 얘기들을 많이 한 것은 분명하다. 반면에,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많은 현명한 얘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에게 가탁(假託)된 것들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의 명성에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그가 그리 현명한 임금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실들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치세가 끝나자, 그의 왕국이 혼란스러워져서 둘로 나뉘었다는 사실이 있다. 유대인들은 원래 메소포타미아 둘레의 사막 지대에서 살았던 반유목민들로 여겨진다. 기원전 18세기에 그들 가운데 일부가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Abraham, 기원전 18세기에 활약)의 영도 아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이집트까지 내려갔다가, 압제를 받자 기원전 13세기에 모세(Moses, 기원전 13세기에 활약)의 영도 아래 탈출했다. 그들은 차츰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원전 11세기에 바다 사람들이라고 불린 전투적 민족의 위협을 받았다. ‘바다 사람들은 에게 해 근처에 살던 민족으로 지중해의 동쪽 연안들을 약탈하면서 이집트까지 내려왔다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밀려나자,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에 정착했다. 성경에 블레셋(Philistines)으로 나오는 민족이 바로 그들로, 그 이름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블레셋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함을 깨닫고, 유대인들은 왕정을 도입했다. 그때까지 그들은 중앙 정부 조직을 갖추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원전 1025년경에 사울(Saul)이 왕이 됐는데, 그는 블레셋 군대와의 싸움에서 지자 자결했다.

그러나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David, 기원전 1013?~973?)은 기원전 990년경에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어 이웃도시국가들을 정복해서 강대한 왕국을 건설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물려받았다. 솔로몬은 다윗의 맏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밧셰바(Bath-sheba)는 히타이트 사람의 아내였는데, 다윗이 그녀와 사통한 뒤 남편을 몰래 죽이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래서 모두 다윗의 맏아들인 아도니야(Adonijah)가 왕위를 물려받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다윗이 연로한 틈을 타고, 밧셰바가 예언자 나단(Nathan)과 함께 음모를 꾸며 솔로몬에게 왕위를 얻어주었다.

왕이 되자, 그는 교묘한 술수를 써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형 아도니야를 죽였다. 솔로몬 치세인 기원전 10세기는 이스라엘이 가장 흥륭한 때였다.(그가 즉위한 해에 관해선 기원전 974년 경이란 설과 962년경이란 설이 맞서고 있다.) 마침 이웃 나라들이 일시적으로 쇠약해진 때여서, 당시엔 외침의 걱정이 거의 없었다. 파라오의 딸을 아내로 맞아서, 강국인 이집트와 관계가 좋았고 다윗이 맺은 티레와의 협력 관계도 이어졌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부유했다. 특히 상업 활동이 활발했으니, 솔로몬의 함대들은 인도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욕망을, 특히 큰 건물에 대한 열정을, 채우는데 마음을 쏟아 나라의 자원을 마구 썼다. 처첩들을 많이 거느렸고, 왕궁을 크게 지었다. 신전들과 요새들도 많이 지었다.

후세에 솔로몬이 유대인들로부터 그렇게도 높이 추앙받게 된 까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신전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신전은 그의 왕궁의 한 부분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신전을 짓는 데는 7년이 걸렸지만, 왕궁을 완성하는 데는 13년이 걸렸다. 실은 그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가 아니었다. 많은 이교도 처첩들을 거느린 터라, 그들을 위해서 이교들의 성소들을 짓도록 허용했고 스스로 이교의 신전까지 지었다.(물론 이것은 여러 민족들을 아우른 대국의 지도자로서 당연한 일이었고, 지나치게 배타적이었던 유대 사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그는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적었다. 그래서 세금을 많이 거두었고, 강제 노역을 시켰고, 자신의 낭비로 나라가 빚에 몰리자, 영토까지 외국에 팔았다. 게다가 남부 유다 출신인 그는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을 차별했다. 그래서 열왕기를 읽을 때 받은 느낌과는 달리, 그의 치세 초기에 이미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 백성들의 불만이 컸고, 특히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만이 컸으므로, 그가 죽자, 그의 왕국은 이내 남부의 유다와 북부의 이스라엘로 나뉘었다. 그 뒤로 유대인들은 통일된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일들에 대해선 판단을 잘했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본분에 맞게 다스리지 못했다. 그런 사람을 과연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참된 지혜의 핵심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다스리는 것이 아닐까?

권력을 쥔 사람들의 궁극적 욕망은 역사에 자신들의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하나마, 시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자취를 남기는 일에서 가장 쉽고 어쩌면 가장 확실한 길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뭐니 뭐니 해도,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미드들은 수천 년을 견뎠고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기념비적 사업들을 추진하다가 나라 살림을 망친 지도자들을 많이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 덩그러니 선 대규모 시설들은 현대에도 이런 위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절대적 권력을 쥔 국왕이었고 40년 동안이나 통치했으므로, 솔로몬은 자신이 시작한 건설사업들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렇게 큰 힘을 오래 지닐 수 없다. 그런 처지에서 자기 임기 안에 꼭 무엇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은 모두의 불행일 수밖에 없다. 흐뭇하게도, 손변의 삶은 참된 지혜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가의 서족(庶族) 출신을 아내로 맞은 탓에, 그는 문벌이 좋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요직들에 쓰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그의 아내가 그에게 간청했다. 자기를 버리고 좋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얻으라고,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벼슬을 위해서 30년을 같이 산 아내를 버릴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을 고집했어도, 그는 벼슬이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정2품 벼슬인 수사공좌복사(守司空左僕射)까지 올랐다.


페이스북 댓글 달기

의견 쓰기
댓글 등록

• 전체 : 418 건 ( 1/28 쪽)
NO. 제 목 글쓴이 작성일자 조회
418 [기고문]알파고와의 대국, 사람 본성 성찰할 기회였다.. 복거일 2016-03-21 1,761
417 [기고문] 아무도 하지 않은 鳥翼機 산업에 SAMSUNG이 .. [1] 복거일 2015-09-18 2,689
416 [기고문] 삼성의 신수종사업엔 `와우!` 할 만한 스토리가.. 복거일 2015-09-16 2,450
415 [기고문] 관료주의에 물든 삼성…지금 당장 새 변경을 .. 복거일 2015-09-15 2,437
413 [세계사 인물기행] 너그러운 분노 조지 오웰.. 복거일 2015-06-17 3,504
[세계사 인물기행] 참된 지혜 솔로몬·손변.. 복거일 2015-06-17 2,764
411 [세계사 인물기행] 역사적 평가와 시적 정의 이승만·김.. 복거일 2015-06-16 3,198
410 [세계사 인물기행] 가공적이지만 이상적인 삶 디오게네스.. 복거일 2015-06-16 2,338
409 [세계사 인물기행] 바른말 하는 신하의 상징 위징.. 복거일 2015-06-09 2,634
408 [세계사 인물기행] 21세기 정치가의 모형 토니 블레어.. 복거일 2015-06-09 2,534
407 [세계사 인물기행] 가장 성공적인 사람 아프리카 이브.. 복거일 2015-06-08 2,745
406 [세계사 인물기행]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조선인 .. 복거일 2015-06-08 3,193
405 [세계사 인물기행] 성공적 발명의 조건들 제임스 와트.. 복거일 2015-06-08 2,420
404 [세계사 인물기행]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 진시황제.. 복거일 2015-06-05 2,865
403 [세계사 인물기행]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 가이우스 율리.. 복거일 2015-06-05 2,253

1 2 3 4 5 6 7 8 9 10 다음

검색 검색초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