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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물기행] 역사적 평가와 시적 정의 이승만·김구

411 복거일 | 2015-06-16 | 조회수: 3,093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 작업들이 활발하다. 그런 작업들에서 특히 우리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와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에 대한 평가다. 그들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건국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백범을 꼽았고 우남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적잖이 이상한 일이다. 19482국제연합UN’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인 남한에서만 정부를 세우자는 결의를 하자, 백범은 이 결정에 반발해서 북한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그 협상이 실패한 뒤에도,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정부가 세워진 뒤 채 한 해를 못 살고 19496월에 암살되었다. 따라서 그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서 한 역할은, 공과를 떠나서, 미미했다. 반면에, 우남은 건국 과정에서 줄곧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466월에 이미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발표해서, 그는 대한민국을 세우는 작업의 물꼬를 텄다. 이어 제헌국회의 의장으로 헌법을 마련하는 일을 추진했고, 초대 대통령으로 새로 태어난 나라를 이끌었다. 따라서 건국과정에서의 우남의 역할은, 공과를 떠나, 거의 절대적 중요성을 지닌다.

나라를 새로 세우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폐허에서 새로운 나라들이 생겨난 과정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일본의 혹독한 식민 통치로 우리 민족의 역량이 바짝 말랐던 터라.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독립을 얻은 것이 아니라 연합군의 승리로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고,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누어 점령한 터라,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에게 열러진 선택의 폭은 모든 부면들에서 아주 좁았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을 평가할 때, 특히 우남의 업적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런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외교활동을 한 덕분도 있겠지만, 우남은 1940년대 우리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서 돋보이는 정치적 감각과 식견을 지녔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이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으로 양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깨달았다. 그를 포함한 임정 요인들이 귀국했을 때,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이미 국제 질서의 기본 구도로 자리 잡았고, 추상적 북위 38도선은 어떤 구체적 지형보다 넘기 어려운 경계가 되어 있었다. 그런 판단에서 그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주장이 나왔다. 통일 국가를 외면한 우남의 행적은 지금까지 그에 대한 폄하의 근거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과 러시아에서 공개된 자료들은 당시 조선인들의 어떤 열망과 노력도 이미 굳어진 냉전 체제를 뛰어넘어 통일 국가를 이룰 수 없었음을 보여주고, 자연히, 우남의 판단과 결정이 현실적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으로 식민지의 경험이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져서 피폐해진 나라를 잘 이끌었다. 사람들은 흔히 잊는다. 새로 태어난 나라를 이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리고 늘 강조한다. 그가 집권 초기부터 보여 온 권력욕과 거기서 나온 큰 허물들을. 그래도 차분하게 따져보면, 그의 업적은 그의 많고 큰 허물들을 덮고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백범의 업적은 무척 크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것처럼, 그것은 건국 과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쌓은 것이다. 1920년대 말엽 조선에서 일본의 통치 조직이 강화되자, 우리 임시정부의 국내 기반은 거의 다 무너졌다. 이어 일본군이 중국 대륙으로 침입하자, 조선의 독립 가능성은 갑자기 멀어진 것처럼 보였고, 임시정부는 크게 위축됐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이 그런 위기를 벗어나는 계기가 된 것은 1930년대 초엽에 백범이 주도한 일본에 대한 테러(Terrorism)'였다. 이봉창(李奉昌, 1900~1932)과 윤봉길(尹奉吉, 1908~1932)의 거사는 임시정부에 활로를 열어주었고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백범은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임시정부를 대표했다. 안타깝게도, 백범은 해방 뒤엔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찾지 못했다. 그의 그런 불운은 남한을 점령한 미국의 군정 당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보인 극도의 반감 때문이었다. 미군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선총독부의 정통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 미군의 그런 태도는 물론 남한점령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조선총독부의 통치 조직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계산에서 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5~1947)건국준비위원회가 미군과 상의하지 않고 조선총독부와의 밀약에 따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한 것에 대한 반감과 경계에서 적잖은 부분이 나왔을 것이다. 진주만에서 이오지마까지 수많은 목숨들을 희생하면서 진격해온 미군들에게 무조건 항복한 일본의 한 부분에서 느닷없이 여기는 우리 땅이고, 이 땅을 대표하는 정부는 바로 우리요하고 나선 세력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리고 만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정통성을 지닌 어엿한 정부라면, 미군은 조선에 진주한 명분과 역할을 많이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몽양의 그런 행동은 조선총독부로부터 먼저 정권 인수 교섭을 받은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1894~1945)를 비롯한 우익 인사들이 미군의 진주를 기다리겠다며 거절한 것과 대조적이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으므로, 고하는 당시 조선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국제 정세를 잘 알았고 남한의 운명은 미군의 태도에 달렸음을 잘 깨달았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실체가 없었지만, 그것의 선포는 미군으로 하여금 정통성 문제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고, 정통성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세력인 임시정부 세력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품도록 만들었다. 백범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미군의 고집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 자격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개인 자격으로 들어와야 했던 일은 미군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예민했는가 잘 보여준다. 몽양과 건준의 그런 기회주의적 허장성세는 해방 뒤의 정국에 여러 가지 나쁜 영향들을 미쳤지만, 그 최대 피해자는 역시 백범과 그가 이끈 임시정부 세력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권한을 쥔 세력의 배척을 받았다는 점에서, 백범은 참으로 불운했다. 이어 미국이 남한의 정치 지도자로 우남을 밀고 소련이 북한의 정치자로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을 밀자, 중국의 국민당 정권의 후원만을 받은 백범은 한반도에서 설 땅을 잃었고 말년의 그의 정치적 업적이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러나 통일된 조국을 열망한 그의 자세와 암살로 끝난 그의 험난한 삶은 그를 세월에 바래지 않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한 우남은 그의 업적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에, 소설가 최인훈(崔仁勳, 1936~)회색인에서 사랑스러운 테러리스트라고 부른 백범은 자신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건국에서도 큰 평가를 받았다. 이런 사정엔 백범이 백범일지(白凡逸志)라는 자서전으로 자신의 행적과 주장들을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 우남은 그의 역사적 지위에 걸 맞는 전기를 갖지 못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임시정부 시절 좌익 독립운동 세력과 혈투를 벌였고 뒤늦게 그들과 불안한 연합을 했던 백범이 해방 뒤 갑자기 좌우합작을 추진했다는 사실에 내재한 모순을 가리는 데, 백범의 애국심이 흥건히 밴 백범일지는 큰 몫을 했다. 후세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영웅들은 그들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의해서만 뽑히는 것이 아니다. 우남에겐 그것은 불운이지만, 백범에겐 그것은 시적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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