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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물기행]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 진시황제

404 복거일 | 2015-06-05 | 조회수: 3,008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기원전 227. 동북부의 제후국 연()의 국경 역수(易水). 배웅 나온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마친 선비가 문득 시 한수로 자신의 비장한 마음을 드러냈다.

바람이 쓸쓸하니 역수가 차도다.

장사는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못하리라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2천년 넘게 동양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인 이 시구를 남기고, 그 선비 형가(荊軻)는 자신을 기다리는 확실한 죽음을 찾아서 먼 서쪽 나라 진()의 수도 함양(咸陽)으로 떠났다. 당시 진은 천하를 통일하는 참이었다. 전국칠웅(戰國七雄)가운데 진에 가까운 한()과 조()는 이미 진에게 병탄되었고 위()는 진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진의 거센 공세를 꺾고 진왕 정에게서 받은 수모를 갚고자, 연의 태자 단()은 자신의 식객 형가에게 진왕의 암살을 부탁했다. 형가는 단의 청을 선뜻 받아들였다. 진으로 귀순하는 것처럼 위장하려고, 형가는 연으로 도망 온 진의 장수의 머리와 연의 요충지역의 지도를 지니고 가기로 했다.

그런 계획은 성공해서, 형가는 뒤에 시황제(始皇帝)라 일컬어진 진왕 정(, 기원전 259~210)을 알현할 수 있었다. 진왕에게 다가가자, 그는 두루마리 지도 속에 감춘 칼로 진왕을 공격했다. 그때 조정엔 물론 많은 위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진왕은 조정에 들어오는 신하들이 무기를 지니지 못하게 했고 위병들까지도 전하에 머물게 했다. 그래서 위병들은 형가가 왕을 공격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진왕은 어려서부터 장사로 이름났던 사람이라, 형가의 공격을 잘 피했고, 형가는 붙잡혀 처형되었다. 진왕은 물론 연에 대해 복수를 시도했고, 연왕은 그의 노여움을 풀고자 스스로 아들 단을 처형했다.

위의 일화는 시황제의 됨됨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안전에 대해 편집증적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그는 궁궐 안에서도 자신의 소재를 근시(近侍)들만 알도록 했고 자신에 관한 정보들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한번은 그가 승상(丞相) 이사(李斯, ?~기원전 210)를 따르는 수레들이 많은 것을 비평했다. 이 말을 전해 듣자, 이사는 바로 수레들을 줄였다. 자신의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간 것을 깨닫자, 시황제는 그 얘기를 누설한 사람을 찾았고, 끝내 찾지 못하자, 그때 자신의 둘레에 있었던 근시들과 위병들을 모두 죽였다.

그런 태도는 난세를 산 임금들에겐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서양 격언대로, “암살은 임금의 직업적 위험이다.(Assassination is the occupational hazard of a sovereign)” 그래도 시황제의 목숨에 대한 애착은 유별났다. 그는 자기 앞에선 죽음이란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고 사람들을 멀리 보내 불사약을 찾았다. 놀랍지 않게도, 그의 성격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과대망상이었다. 천하를 통일하자, 그는 자신에 대해 덕은 삼황을 겸하고, 공은 오제를 넘는다 (德兼三皇 功過五帝)”고 평했다. 그래서 삼황과 오제를 아우르는 '황제(皇帝)‘의 칭호를 썼다. 그는 귀신도 그를 무서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람들만이 아니라 산천초목까지 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모든 제도, 절차, 시설을 그렇게 뛰어난 인물에 걸맞게 만들었다. 규모가 엄청나서 그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한 아방궁은 대표적이다. 그런 과대망상은 물론 오래 분열되었던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통일국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의 한 측면이었을 터이다. 그래도 그의 성격에 지나치게 자신을 높이는 면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의 출생을 둘러싼 의심스러운 정황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자초(子楚)는 젊어서 조()의 볼모가 됐다. 조의 수도 한단(韓鄲)에 들렀던 큰 상인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35)는 자초를 만나자 그가 희귀한 상품으로 투자할 만하다.(奇貨可居)”고 판단했다. 그래서 처지가 어려운 자초와 사귀면서 그에게 도움을 주었고, 적손(嫡孫)이 아닌 그를 태손(太孫)으로 만드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여불위는 또한 자신의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바쳤는데, 그에게 간 지 한 해가 채 못 되어, 조희는 정을 낳았다. 그래서 정의 실부는 여불위라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의 출생에 관한 그런 소문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에 마음을 더욱 많이 쓰도록 했을 것이다.

자초가 즉위하여 장양왕(莊襄王)이 되자, 조희는 왕비가 되었고 여불위는 정승이 되었다. 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죽자, 겨우 열세 살 난 정이 즉위했다. 그래서 정권은 모후가 잡았고 그녀와 다시 정분을 맺은 여불위가 실권을 쥐었다. 정은 즉위한 지 아홉 해가 지나서야 제대로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한번 실권을 쥐자, 그는 바로 여불위를 면직하고 두 해 뒤엔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친정하게 되자, 정은 이사를 중용했다. 여불위가 실권을 쥐었을 때, 진 출신이 아닌 객경(客卿)”들이 중용되었었다. 그런 사정이 진 사람들의 불만을 낳아서, 정은 즉위하자 바로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 객경 이사는 객경들의 공로가 크며 그들을 쫓아내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고 상주했다.

그래서 정은 축객령을 거두고 이사를 신임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높은 식견과 정치적 유연성을 엿볼 수 있다. 이사의 방책을 좇아서, 정은 다른 나라들의 관리들을 매수하거나 암살해서 약하게 만든 뒤 군대를 보내 공략했다. 그래서 기원전 221년까지 천하를 단숨에 통일했다. 그는 처음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승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잘 짜여진 중앙정부조직을 만들었다. 지방관제는 종래의 봉건제 대신 전국을 36군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현을 두는 군현제를 도입했다. 그런 행정조직을 바탕으로 그는 통일된 정책들과 제도들을 폈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해서 천하가 실질적으로 통일되도록 했고, 수도 함양을 기점으로 하는 도로들을 건설해서 전국을 하나로 묶었다. 그는 국민들의 사상까지 통제하려고 했으니, 의약, 복서 및 종수에 관한 책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책들을 태우도록 한 분서와 460명의 유생들을 산 채로 파묻은 갱유는 그런 시도에서 나온 사건들이었다. 그는 외치에도 힘을 쏟았다. 명장 몽념을 보내 오랫동안 중국을 괴롭혀온 흉노를 정벌했고, , , 진에서 세운 장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완성함으로써 북쪽 변경의 수비를 튼튼히 했다. 이어 남쪽의 백월을 정복했다. 그래서 중국의 강역은 후대의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단한 정력 덕분이었다. 나이가 적지 않은 그가 긴 순수의 여정에서 갑자기 죽은 사정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의 안전에 마음을 크게 쓴 사람답게, 그는 생전에 태자를 세우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후사를 정하는데 조신들이 농간을 부릴 소지를 만들었고 그의 제국을 무너뜨린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비록 그의 무력 통일과 급진적 개혁은 저항을 낳았고, 2세 황제의 실정이 겹쳐, 제국은 그가 죽은 뒤 3년 만에 망했지만, 그가 세운 제국의 바탕은 그대로 남아서 한제국의 융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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