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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물기행]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403 복거일 | 2015-06-05 | 조회수: 2,254

대부분 사람들에게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은 카이사르일 것이다. 로마의 장엄the garndeur that was Rome이라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구가 잘 묘사했듯이 로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 자연히 로마는 여러 부문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카이사르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카이사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함으로써 로마는 세기 중엽부터는 지중해 연안지역의 유일한 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복의 전리품들로 번성했다. 그러나 곧 사회 곳곳에서 쇠퇴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보인 로마 시민들의 꿋꿋한 정신은 차츰 약해졌고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점점 깊어졌다.

공화정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정부기관은 귀족들로 이루어진 원로원 이었다. 그래서 로마 공화정은 실질적으로는 귀족정치였다. 그런 귀족정치체제는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나 기원전 세기 이후 로마제국이 갑자기 커지자 문제점을 드러냈다. 당시 상황에서 귀족정치 체제에 대한 유일한 실질적 대안은 군부독재였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그 대안을 도입한 사람이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 전 100년에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부터 정치가를 지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그의 야심을 떠받쳐줄 만큼 부유하거나 영향력이 크지 못했고 그는 정치적 입신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그의 삶에서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입신이 아주 늦었다는 사실이다. 로마 정치가들이 타는 정치적 사다리에서 첫 가로장은 재무관이었는데, 카이사르는 서른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재무관이 되었다. 군사활동은 더 늦어서 그는 마흔세살에 갈리아전쟁을 시작했다. 마흔세살이면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죽은지 여러 해고 나폴레옹이 몰락한 나이다. 카이사르의 그렇게 늦은 입신은 스물일곱살에 개선식을 치른 그의 정적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이력과 대비된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재능을 발휘해서 빠르게 정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9년에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원로원에 불만을 품은 실력자들인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와 연합해서 차 삼두정치를 시행함으로써 원로원을 거의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갈리아전쟁을 시작했다. 군 사지휘관으로서의 천재를 발휘해서 그는 힘들고 긴 그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갈리아의 정복은 그에게 군사적 힘과 정치적 위세를 함께 주었고, 그는 그것들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그의 세력이 커지자 처음부터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원로원은 더욱 그를 경계했다. 그의 타협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이 적대적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아 그는 신변이 위험해졌다. 마침내 그는 49 년에 군대를 이끌고 자신이 통치하는 갈리아와 이탈리아반도를 나누는 조그만 강인 루비콘을 건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그의 군대를 막을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준비가 덜된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쉽게 부수고 이탈리아반도를 장악했다. 이어 48년엔 그리스의 파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의 군대로부터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독재자가 되어 권력을 완전히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의 정권은 왕정의 빛깔을 점점 짙게 띠어갔다. 자연히 공화정을 지지하는 세력의 불만과 두려움도 따라서 커졌다. 그래서 그를 없애려는 음모가 나왔고 마침내 기원전 44년 그는 원로원에서 암살됐다. 그의 죽음은 부분적으로는 그의 성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패배한 정적들에 대해서 놀랄만큼 너그러웠고 항복한 정적들을 많이 기용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그렇게 은덕을 베푼 정적들로부터 존경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그의 고뇌에 찬 외침은 자신이 용서하고 일을 맡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한 아픔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반면에 그는 자신의 행위들에 당의를 입히는 것을 경멸하고 거부했다. 그래서 자신의 정권이 왕정으로 바뀌는 것을 공화정 지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데 마음을 쏟지 않았다. 그의 암살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원래 그의 지지자들이었다는 사실이 그래서 그리 이상하지 않다. 적에 대한 너그러움과 당의를 입히는 일에 대한 경멸은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들의 조합으로 무척 위험하다.

카이사르의 삶에서 우리 눈에 이내 들어오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의 정력적 활동이다. 아주 늦은 나이에 입신했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암살되었지만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이루었다. 갈리아 정복은 적대적 이민족의 위협을 거의 없앴다는 점에서 큰 군사적 업적이었다. 그의 정치적 개혁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체제를 효율적 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비록 그가 도입한 정치체제가 군사독재 체제였다는 점에서 퇴행적 성격을 띤 점도 있지만, 그의 개혁은 아놀드 토인비의 평가대로 로마에 동쪽에선 백년 넘게 그리고 서쪽에선 백년 넘게 지속된 유예기간을 주었다. 그의 업적 가운데 후세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아마도 역법의 개혁일 것이다.

그가 만든 달력은 무척 합리적이어서 중세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좀 손질을 한 뒤 지금 우리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을 하는 사이에 그는 왕성한 저작활동을 했다 . 갈리아전기내전기는 그의 문재를 보여주는 훌륭한 저작들이다. 기원전 47년 소아시아 파르나케스왕의 반란을 진압하고 보낸 왔도다, 보았도다, 이겼도다」(veni, videi,vici)라는 멋진 승전보에서도 그의 문재는 잘 드러난다. 그는 성적 활동도 무척 정력적이었다. 특히 당시 사회의 느슨한 성 풍속에서도 그의 성적 활동은 상궤를 벗어났다.

그는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왕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고 소문이 났었고, 그의 동성애는 그를 평생 따라다닌 추문이었다. 그는 많은 유부녀들과 관계를 맺었고 그런 일로 여러 번 어려운 처지로 몰렸다. 이집트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는 특히 위험했었으니 그녀 때문에 오래 이집트에 머물러서 폼페이우스 세력이 한숨 돌리는 시간을 주었고, 그녀를 로마로 부른 일은 여론을 악화시켜서 그의 암살 음모를 촉진시켰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카이사르가 위대하고 흥미로운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가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인품과 업적을 따지자면 카이사르는 스키피오를 따를 수 없었다. 갈리아 정복은 로마의 안위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군대와 맞섰던 싸움들은 로마가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했던 힘든 고비들이었다. 카이사르가 싸운 갈리아 군대들은 그리 강력한 군대들이 아니었지만, 스키피오는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이 거느린 정예군과 싸웠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사람들을 야만인들로 부르면서 잔혹하게 짓밟았지만스키피오는 패배한 이민족 군대들을 너그럽게 대했다. 그러나 2천 년 동안 로마를 대표해온 것은 스키피오가 아니라 카이사르였다. 연기를 잘한다고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 깊은 비밀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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