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리스크 관리하고 불확실성 타개하는 것이 기업가정신
우리 주위엔 기업경영을 골프에 빗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골프와 기업가의 세계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많다. 우선 골프의 경우, 모범적인 '스윙의 정석’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가 있다. 골퍼라면 아마도 자신의 스윙을 찍은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두번은 다 해봤을 것이다. 본인은 PGA 프로처럼 스윙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동영상을 보고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충격을 받은 골퍼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자기 각성은 이상적인 골프스윙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골프스윙에도 약간씩 다른 이론이 있고 PGA선수 중에도 특이한 백스윙을 가진 선수들이 있지만, 통상 골퍼라면 적어도 임팩트 전 정타를 맞추기 위한 다운 스윙 동작에 일반적 합의가 있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경영의 스타일에는 모범답안이나 정석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정타를 맞추는 방법이 다양한 것이다. 정형화된 골프보다 환경이 더욱 급변하고 그에 따라 성공에 이르는 방식이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점 어디에서 올까? 골프에는 위험(risk)요인이 더 많고, 기업활동에는 불확실성(uncertainty) 요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이란 두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비슷하게 쓰이지만 차이가 있다.
이 둘의 차이를 처음 구분한 사람은 시카고 경제학파의 거두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 교수이다. 그는 그의 저서 “위험과 불확실성 및 이윤”(1921)에서, 기업이 어떤 상황에 대해 관련 변수들을 파악할 수 있고, 그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험’(risk)이고, 그 상황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관련 변수파악도 안 되어 확률계산이 불가능해 앞이 깜깜한 상황을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정의했다.
나이트 교수는 위험(risk)의 경우 사람들이 보험이란 제도를 만들어 위험을 고정비용화 했다고 보았지만, 불확실성(uncertainty)은 그렇게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박이나 로또 같은 것은 확률을 계산할 수 있기에 '위험’에 속하고, 잘 모르는 기업을 인수하는 결정, 또는 1주일 만난 상대방과 결혼을 하겠다는 결정 등은 확률로 계산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속한다. 쉽게 생각하면 확률로 표현할 수 있는 불확실성은 위험(risk)이고, 그 나머지의 부분은 나이트의 불확실성(Knightian uncertainty)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골프는 불확실성보다는 위험(risk)의 요소가 더 많고, 기업의 세계에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요소가 더 많다. 골프의 경우, 골퍼들이 걱정하는 주요 변수는 OB, 해저드, 벙커 등으로 꼽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과거 데이터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대략적 확률까지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주말 골퍼는 첫 홀 티박스에서 드라이버를 휘두를 때 약 20%정도는 잘못 맞아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진다는 걸 경험상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와서 경기가 멈추는 돌발적 상황은 불확실성의 영역이 아닐까? 하지만 이젠 날씨 문제도 일기예보를 통해 확률적으로 알 수 있다. 아마추어가 홀인원 할 확률도 1/12,000이라고 한다. 홀인원은 분명 좋은 일이라 리스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람 성격에 따라 홀인원도 위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홀인원 위험에 대비한 보험이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주말 골퍼들이 동네 연습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샷을 구사해 리스크(예: 해저드, 오비, 벙커)를 피하기 위함에 있다. 즉 프로처럼 완벽한 폼을 익혀 골프의 리스크를 줄이고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골프스윙이 프로처럼 모범적 스윙으로 수렴되는 이유는 그것이 위험(risk)를 줄여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의 사업에는 위험(risk)요소도 있지만, 불확실성(uncertainty)이 더 많다. 나이트교수는 기업가들을 '불확실성을 짊어지는 자’(uncertainty bearer)라고 표현했다. 특히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신사업에 뛰어 드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성공확률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영역이다. 나이트교수는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환경에서 기업가들은 계산된 확률이 아닌 '주관적 판단’(judgement)를 통해 성공에 도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했을 때의 이윤(profit)은 기업가가 불확실성을 감수한 대가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점은 기업경영에 표준적 모범답안이나 '완벽한 폼’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업이 처한 환경은 기업마다 다르다. 같은 산업, 같은 제품군을 생산하는 경쟁업체라 하더라도 각자 주관적으로 처해있는 상황은 다 다르다. 따라서 그에 대응하는 경영방식 또한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회학자들은 조직의 환경이 불확실할 때 다른 조직을 모방하는 동형화(isomorphism) 전략이 나타난다고 주장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모방전략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해법은 아니고, 타기업과 비슷한 수준인 '경쟁등위’를 달성하게 해줄 뿐이다. 반면,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기업가 정신에는 남들에게 없는 창의성이나 혁신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상식이다.
물론 기업내에서도 골프와 같이 리스크 관리는 한다. 세부적 리스크 관리는 주로 전문경영자들이 챙기지만, 창업가 및 기업가 중에서도 리스크 관리형이 있을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업성공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다. 정주영식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매사의 위험(risk)를 꼼꼼히 계산하고 챙기는 미시적 경영(micro-management)으로 성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이란 남들과 같은 방식이 아닌,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방식으로 불확실성을 타개하려는 경영의지인 것이다.
기업인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매일 불확실성과 씨름하던 기업인들은 골프를 치며 상대적으로 관리 가능한 리스크를 극복해 나가면서 한결 편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모범적 골프스윙에 도전하며 뭔가 자신만의 차별적, 혁신적 스윙스타일을 추구한다면, 그의 이런 '기업가정신’은 장기적으로 골프 스코어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른다. 기업가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기업가정신과 혁신전략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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