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수많은 상품과 시장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상품과 이를 판매하는 시장의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 속에는 수많은 기업가의 험난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슈퍼마켓이 등장하기 이전 가게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마치 예전의 폐가식 도서관과 비슷했다. 폐가식 도서관에서는 도서명을 적은 도서 대출 신청서를 직원에게 제출하면 직원이 서고에서 가져다가 주었다. 마찬가지로 예전의 가게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상품을 말하면 점원은 손님을 기다리게 하고 창고에서 이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많아지면 점원이 여러 명 있어야 했고 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점에 착안해서 슈퍼마켓은 상품 창고 대신 진열대에 상품을 쌓아놓고 손님이 직접 상품을 골라서 출구 앞에 있는 계산대에서 지불하게 하였다. 손님이 직접 고르니 직원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가는 손님에 대해서만 계산을 하면 되었다.
혁신은 이처럼 그 이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패도 많았다. 자동차 내연기관이 등장하기 이전 많은 시제품을 갖고 수많은 발명가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의 모습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그나마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상품과 시장의 모습은 이런 시험을 뚫고 성공적으로 경쟁에서 이긴 승자들이다.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을지라도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거나 안전이나 환경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경쟁의 관문을 뚫지 못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경우 기존의 상품과 시장의 개념에 사로잡혀서는 소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가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출시하였을 때 마케팅 전문가들이 시장조사를 해보자고 자문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소비자를 상대로 조사를 해보았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은 그 이전의 이동전화기와 인터넷이 가능한 PC와 MP3 같은 것을 모두 결합하고 이를 화면 터치 방식으로 바꾼 것인데 이를 어떻게 소비자가 상상하고 조사에 답하겠냐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예상대로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꾼 전혀 새로운 제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기존의 경쟁력과 우위를 지키지 못할뻔했던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코카콜라의 'New Coke’ 브랜드에 얽힌 일화다. 사건의 시작은 코카콜라의 경쟁자였던 펩시콜라가 벌린 '펩시 첼린지’에서 비롯된다. 즉, 동일 조건으로 펩시와 코카를 한 컵씩 따라 놓고 소비자가 눈을 가린 채 한 모금씩 마신 후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놀랍게도 펩시가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를 펩시는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코카콜라는 내부적으로 몹시 동요되었다. 펩시와 코카의 가장 큰 차이는 당도였다. 펩시가 코카보다 조금 더 달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콜라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코카콜라 경영진은 이제 콜라 시장이 바뀌고 있다고 판단했다. 당도를 훨씬 높인 새로운 브랜드 'New Coke’를 출시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New Coke는 잘 팔리지 않았다. 그전에는 그래도 코카가 펩시보다 잘 팔려서 시장점유율이 높았는데 그 우위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한 입만 맛보기 때문에 더 달콤한 펩시의 손을 들었지만 한 병 또는 한 캔을 다 마실 때 지나치게 당도가 높으면 질린다는 점을 제대로 못 깨달았다.
코카콜라는 처음부터 자신들이 왜 펩시콜라보다 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지조차 몰랐다. New Coke는 폐기되었고 다시 예전의 코카콜라로 돌아갔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Coca Cola Classic’이다. 펩시의 블라인드 테스트 마케팅에 당해서 콜라시장의 바뀌었다고 착각한 것이 바로 'New Coke’ 해프닝의 전말이었던 것이다.
'New Coke’의 사례는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케이스이지만 대부분의 실패 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실패했기 때문에 금방 시장에서 사라지고 소비자로부터 잊히기 때문이다. 시장은 결국 승자의 기록이다. 생존해서 시장에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어느 정도 소비자를 확보했다는 의미이며 나름대로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쟁에서 도태되고 수지를 맞추지 못한 상당수의 제품은 시장에서 물러나고 곧바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시장은 이처럼 경쟁과 혁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지식 위에 쌓아 온 인류문명의 증거물이다. 시장은 어떤 독재자나 천재가 설계한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으로 조금씩 진화해 온 것이다. 하이에크는 인간 문명이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형성적 합리주의(constructivistic rationalism)’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시장의 발달처럼 조금씩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서면서 지평을 넓힌 '진화적 합리주의(evolutionary rationalism)’를 진정한 의미의 합리주의라고 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 아닐까?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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