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2008 금융위기의 교훈

김이석 / 2022-09-29 / 조회: 6,496       미래한국

추경호팀에 바란다 Ⅱ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되돌아본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꺼질 무렵 당시 미 연준 그린스펀 의장이 저이자율의 통화팽창정책을 펼쳐 주택시장에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통화팽창에 의한 인위적인 저이자율은 실제로는 투자에 이용될 수 있는 저축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런 저축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업가들이 오인하여 잘못된 투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하게 만든다.


이런 잘못된 투자는 단기간 붐을 일으키지만 저축을 통해 가용한 자원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완성하기 위해 자원들을 확보하려는 경쟁 속에 이들 가격들이 급등하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되자 연준은 '너무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당시 인위적인 초저금리 속에서 은행들은 신용불량자에게 주택대출을 하더라도 이 대출채권을 정부투자금융기관인 패니메이 등이 인수해줬기 때문에 신용불량자에게도 실제로 주택대출이 이뤄졌다.


이런 대출이 유동화되어 증권이 되고 이 증권을 기초로 각종 파생상품이 개발되었으며 여기에 각국의 투자은행들이 대거 투자를 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런 주택시장에 낀 거품이 붕괴되자 단순히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 금융시장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국제금융위기인데 과거에는 아시아금융위기처럼 저개발국이나 신흥국가에서 위기가 발생됐던 데 비해 세계금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비롯됐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국제결제통화를 필요하면 발행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일단 위기가 발생하자 신흥국(emerging countries)들은 단순히 빚을 주어진 기한에 제대로 갚지 못하는 신용위험에 더해,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제결제통화인 달러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산 위험에 빠지는 통화불일치(외환) 위험에 노출되었다.


미국은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던 시기에 수익을 날 것으로 기대됐던 채권들과 이를 기초로 한 각종 파생상품은 주택가격의 거품이 붕괴되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게 분명해졌다.


이런 파생상품을 대량으로 보유하던 대형 금융회사들이 부도 가능성에 직면하자 미국 정부는 결국 이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원래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의 책임 아래 투자를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칙에 맞는 것이고 이런 구제금융을 제공하면 소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하지만 너무나 많은 투자자들의 실패를 불러올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을 미국 정부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구제금융과 적자 재정지출로 경제위기 해결 어려워


미국 정부는 부실금융회사들에 대한 구제금융의 제공하고 이들의 자본금을 확충해주는 등 부실화된 미국 금융회사들이 망하지 않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엄청난 재정지출을 해나감으로써 경기부양을 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새 연준의장이 된 벤 버냉키는 제로금리 정책으로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추는 정책을 할 수 없게 되자 소위 비전통적인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폈다. 


즉, 과거에는 연준이 공개시장조작을 할 때 국채를 매입하고 회사채는 제외했다. 자칫 자금 사정이 어려운 특정 회사가 연준의 자금지원을 받아 연명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혜 소지가 있기 때문인데, 버냉키는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정책들은 인위적으로 낮춘 자금시장 이자율로 인해 유발된 동시다발적인 잘못된 투자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이를 감추고 지연시킴으로써 문제를 키운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미국 정부가 부실투자를 했던 금융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을 끝까지 거부하는 결단을 내려 이들이 부도가 나게 내버려뒀다면 어떤 장기적 결과가 도래됐을까? 이는 이 상황을 분석하는 경제학자가 그가 옳다고 믿는 경제이론과 과거의 경험들에 근거해 상상을 함으로써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이는 버냉키의 비전통적인 양적완화(QE)에 대한 평가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이처럼 대규모 재정지출을 동원한 경기부양, 그리고 제로금리에 더해 연준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여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들은 당장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진 잘못된 투자들이 실패로 판명될 때 발생할 실업 등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 대공황의 경험 때문이다.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대부분 1~2년 후 경제가 회복됐는데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 때는 후버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으로 국제금융위기 때와 유사한 구제금융정책과 함께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공공사업들을 실행했음에도 오히려 12년으로 장기화되고 경기침체가 심화되었다. 


이런 사정은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뉴딜정책을 집행한 헨리 모겐소 주니어(Henry Morgenthau Jr. 1891-1967) 재무장관의 다음과 같은 절규에 가까운 고백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돈을 쓰려고 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먹히지를 않는다. 


나의 관심사는 단 한가지다.…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먹을거리가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여태 우리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이 행정부에서 8년간 일을 했는데도 실업자들은 우리가 일을 시작할 당시만큼 많다. 게다가 갚아야 할 빚도 엄청나고!”(머피, <대공황과 뉴딜정책 바로알기> 142, 김이석, '홍 부총리님, 모겐소 장관의 고백을 아시나요’ 아시아투데이 2020.5.22.)


아무튼 통화증발을 통한 인위적인 이자율 하락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현재소비와 미래소비 사이의 배분 결정과 생산자들의 생산계획이 서로 어긋나게 됨으로써, 실제 저축은 없었음에도 그런 저축이 있는 것처럼 가정되고 실행된 생산자들의 잘못된 동시다발적 투자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들의 투자가 정리되지 못한 채 구제금융과 적자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이 대공황을 만들어낸 셈이다. 


국제금융위기 이후 풀려나간 엄청난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즈음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지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다시 돈을 풀었고, 이것이 부동산과 증시의 거품을 만들어낸 후 이제는 소비자물가까지 급등시키고 있다. 이에 연준이 다시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 등의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 긴축을 통해 풀린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호 경제팀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방만한 재정지출 정책을 끝내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고 하고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추경호 경제팀이 대공황과 국제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영끌과 빚투에 대한 채무를 조정하는 정책이 제시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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