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블랙홀이 있다.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구호이지만 국민에게 돌아가는 폐해가 컸다. 정치인들이야 그때그때 인기를 얻으면 그만이지만, 낭비된 자원과 왜곡된 도시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민의 세금부담과 불편을 가중시킨다.
지방이 발전하고 지역민이 그 풍요를 누리는 것은 정치인이 지향해야 할 바이다.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좋은 정치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을 위해 다른 지역을 희생시키는 지방균형발전을 채택하게 되면 국가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이익을 위해 타 지역을 차별하고 전체적으로 부를 깎아내리는 것은 정치실패이다. 정치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누군가에게 재분배하는 제로섬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지만, 지방균형발전은 제로섬 방식보다 더 나쁜 마이너스섬의 결과를 부른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세종시 건설, 혁신도시 건설, 도청 이전, 공기업 이전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였으나 그 결과는 도시 경쟁력의 저하,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그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자 정치권이 용어를 바꾸고 있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낡은 구호 대신 지방분권을 내세우고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지방분권으로 포장해 선전하는 지방자치가 붐을 이루고 있다.
지방분권으로 용어만 다를 뿐, 그 폐해는 지방균형발전에 비해 작지 않다. 오히려 세금낭비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대장동 사태에서 보듯이, 지방단체의 권력형 비리는 이제 지방정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말에 비해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허구적 정치구호와는 달리 지방시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목표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이 스스로 삶을 개선해 나가는 지방자치는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권 나눠먹기식 정치를 지방분권인양 위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지방분권이라는 말을 앞세워 지역 내에서 정치적 특권 나누기를 하면서 일어난다. 지방이 발전하려면 정치적 특권을 만들고 이를 정치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금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지역 주민은 스스로 삶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는 226곳이다. 인구 30만명 이하의 곳도 상당수 있을 정도로 기초자치단체의 숫자가 많다. 이를 통폐합하여 실질적인 자치단위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광역지방자치단체도 실질적인 생활을 공유하는 경제권을 중심으로 역할과 기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거버넌스 구조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는 거품이 끼고 있다. 그 성과와 생산성에 비해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예산이 중복되어 지출되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할당받다보니 의미없는 곳에 예산이 낭비되기도 한다. 지방 권력은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아끼기보다 더 많은 예산을 받기 위한 명분 만들기에 정치력을 동원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지방도 함께 발전한다. 우리 사회는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모든 지방은 성장의 과실을 공유한다. 실제로 지역별로 1인당 소득격차는 크지 않은 편이다. 2020년 기준으로, 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은 경상북도로 1인당 개인소득이 1,956만원이며, 가장 높은 서울의 2,406만원과의 격차가 크지 않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해왔다. 정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앙집중화된 정치방식에서 지방이 스스로 자율과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도 지는 분권화된 구조로 발전하는 시기에 있다. 정부 구조의 거버넌스를 선진화할 때이다.
지방분권은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권을 나누고 정치적 해법을 우선시하기보다 지역민이 스스로 경제력을 발휘하여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환경개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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