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노조가 최대 만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의 나이가 정년에 몰려 있다 보니 정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나온 듯하다. 하지만 보완책 없는 정년연장 강제조치는 기존 근로자에게만 단기적 이익으로 작용할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청년실업 심화, 산업의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사회 전체에 폐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기 이전에 임금피크제와 직무급제를 의무화하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노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기업과 정년 이후의 근로자 간에 자발적인 재취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고려한다면 정년 연장을 강제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재취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해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할 당시 임금피크제, 직무급제 등의 보완책을 의무화하지 않아 큰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기본급이 늘다 보니 성과급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 직원들의 근로의욕과 성과는 감소했으며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물가 부담도 커졌다.
임금피크제와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선행되지 않은 정년연장은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인건비의 과도한 부담으로 인해 청년의 신규 일자리 진입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붕괴 직전인 상황에 무리하게 정년을 연장한다면 신규채용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노조의 이번 정년연장 요구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 사다리를 걷어차는 철밥통 지키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한 한 청년이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정년연장 문제가 기성세대와 Z세대 간의 세대갈등까지 악화시키는 모양새다.
정년연장의 위험성을 사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임금피크제와 직무급제가 있다. 전자는 근로자의 수입 안정을 위해 고용을 연장하는 대신, 기업의 부담도 줄이기 위해 일정 나이부터 임금을 조금씩 낮추는 것이다. 후자는 연공서열이 아니라 각 직무의 난이도, 책임 등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기본급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들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면 안정적으로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은 유능한 직원을 오래 쓰면서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상호 이익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과거 정년연장은 강제화하면서 이런 대책들은 의무가 아니다 보니 노조의 이익만 높였다. 결국 2021년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54%에 불과하다. 또한 직무급제의 경우, 전체 340개 공공기관 중 21곳, 5.8%에 불과한 도입률을 보이고 있다.
임금피크제와 직무급제가 선행되지 않은 정년연장이 또 다시 강제된다면 청년들은 신규채용의 기회를 잃고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의 질 낮은 일자리를 택할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더욱 감소하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각종 집단 간의 갈등도 악화될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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