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ESG에 부응하려면

곽은경 / 2021-09-10 / 조회: 11,447       미래한국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경제적 가치 외에도 환경적 가치, 사회적 가치, 사회적 기여 등 ESG가 경영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경영활동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존경받는 기업(World’s Most Admired Companies),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Best Companies to Work For), 환경친화적 기업(Green Companies) 등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기업 현장에서도 ESG경영을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추세다. 이윤창출을 넘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고, 사회적 책임, 환경보호에 힘쓰는 등 비재무적 성과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투자자들도 비재무적 성과가 탁월한 기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고, 직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업이 경제적 성과도 높다.


또 ESG를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면 투자도 활성화 된다. 기업의 선언적, 자율적 움직임에 불과했던 ESG경영이 이제 기업의 생존조건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SG, 기업의 생존조건이 되다


ESG는 소비자, 시민단체의 '착한 소비운동’에서 시작되었다. RE100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인 더클라이미트그룹(The Climate Group)이 뉴욕기후주간에 발족했다.


처음에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 세계 270개 이상의 기업이 가입해 세계무역기구(WTO) 이상의 무역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ESG는 민간에서 주도하고,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ESG를 지속가능한 투자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해법으로 주목하고 있다. 환경문제(E)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적 책임(S)에 충실하며 지배구조(G)가 건전한 기업에 투자, 즉 ESG투자를 해야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인 래리 핑은 “앞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투자 결정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해 투자의 핵심원칙으로 ESG를 강조한 바 있다. 실제 2020년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운용기금 중 50%인 45조가 ESG 자산이었으며, 향후 이 수치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가들 또한 계속된 저성장 흐름,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국가 경쟁력 차원으로 ESG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환경 규제를 철폐했던 트럼프와 달리 적극적인 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파리협약에 복귀했으며, 클린에너지 경제건설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Net Zero) 달성을 약속한 바 있다. 또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국제 거래시스템 도입을 위해 탄소국경조정정책을 도입도 거론된다. EU의 친환경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EU는 최초의 탄소중립대륙을 목표로 '그린딜’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0%에서 50%까지 상향 조정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해양, 육상, 건축 분야로 확대하고, 2023년부터는 수입품에 탄소국경조정세를 도입할 방침이다. 우선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전기분야를 시작으로, 향후 전 수입품으로 탄소국경세를 확대한다.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무역 패러다임은 주도하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미 친환경 분야의 기술적, 제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과 EU 입장에서는 '환경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내수 산업 육성’이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각국은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우며 많은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계기로 삼고 있다. 실제 각국은 ESG를 전면에 내세우며 많은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4년간 전기차, 2차 전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2조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EU 역시 ESG를 명분으로 1조 유로 규모의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입장은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수출형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과 EU의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환경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애플과 같이 이미 신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한 기업도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간접배출량까지 관리하며 탄소네거티브까지 공언하는 기업도 있기 때문에 친환경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미국의 탄소조정세, EU의 탄소국경조정세처럼 환경 기준을 넘지 못하는 기업에 관세나 부담금을 물리거나,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권장하는 등의 무역 기조 변화는 원가 상승을 초래하고, 한국 기업의 강점인 원가경쟁력에 타격을 줄 것이다.

당장 미국과 EU의 높아진 환경규제로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업체들에도 동일한 환경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2018년부터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 수출기업에도 납품하는 부품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애플의 '재생에너지 100%’ 요구로 애플에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용 점착 테이프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직접적 대상이 되었다. 또 BMW는 LG화학과 삼성SDI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전기차 배터리 납품조건으로 요구했고, 조건을 맞추지 못한 LG화학은 결국 BMW에 납품하지 못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국내 기업의 강점인 가격 경쟁력을 떨어트릴 우려가 있으며, 석유화학, 철강 등 고탄소 집약적인 국내 주력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국가경제 차원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20년 10월 탄소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구체적 로드맵과 목표, 재원 마련은 제시하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이 ESG로의 전환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 문제는 향후 우리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우려가 크다.


당장 수출기업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6.5%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이를 거래하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탈원전 등의 정치적 이슈에 함몰돼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에너지 시장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제도마련이 시급하다. 


다행히 경영 현장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친환경 기조에 따른 변화에 적응 중이다. 


ESG 경영, 규제의 잣대 적용 말아야


SK가 한국 최초로 RE100 선언을 했으며 친환경을 비롯한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그룹도 탈석탄 방침을 확고히 하고 석탄 화력발전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LG전자는 내부탄소세를 도입해 환경부담을 재무적 가치에 반영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의 경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6% 감축시키고, 이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환경 이슈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투자와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자발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규제의 틀에 가두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된다. 금융위원회는 ESG를 반영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공시 의무화를 추진 중이며, 산업자원부에서 K-ESG 지표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기업을 평가하려고 한다.


수치화 할 수 없는 ESG 경영의 성과를 계량화하려는 시도가 기업에는 또 다른 규제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추후 국회 차원에서 관련 규제 조항이 입법화 된다면, 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환경공시 의무화, 녹색투자 의무화, 탄소배출권 거래 기준 강화와 같은 환경규제부터 도입을 한다면 국내 기업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규제 일변도가 아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ESG 경영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탄소를 절감할 것을 강제한다거나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압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각 기업마다 재무상황이 다르고 기술력의 차이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 규제를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코로나와 경기침체로 기업의 영업이익, 매출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업, 주주, 근로자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경영 상황이 좋지 못한 경우 기업 본연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입 기반을 마련해 재무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강제하지 않더라도 각 기업들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현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ESG가 자발적 움직임이 아닌 기업들에 자칫 불필요한 규제로 적용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 독일, 탄소 배출량 EU 평균 초과 논란 


탈원전 정책을 채택한 독일이 주변 국가들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에 논란에 놓였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0~2019년 독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원전을 보유한 다른 유럽연합(EU) 국가 평균보다 43% 더 많았다. 심지어 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프랑스보다도 두 배 가까이 많아 탈원전 정책의 효용에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2019년 독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8.52t으로 프랑스(4.81t)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프랑스는 원전으로 전력의 70% 이상을 공급한다. 독일이 탈원전 정책으로 주변 국가들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난 이유는 석탄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석탄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23.8%를 차지했다. 석탄은 독일에서 풍력발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전력 공급원이다. 원자력발전은 10년 전 총발전량의 22%에 달했지만 지난해 11.4%로 쪼그라들었다.


미국경제위원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의 탈원전으로 인한 전력 감소분은 석탄발전과 수입 전기로 대체됐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120억달러(약 14조원)에 달한다. 독일은 코로나19로 침체됐던 경제가 회복되면서 석탄 사용을 더 늘리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 아고라에네르기벤데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작년보다 4700만t 늘어날 전망이다. 1990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이 탈원전을 고집하는 한 2045년까지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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