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법이라 쓰고 경제파괴법으로 읽다

김영용 / 2020-09-23 / 조회: 13,867       매일산업

재벌 해체 목적 사유재산 빼앗기

건전 재무구조 금융사 흔들어 부실화


지난 8월 25일 상법 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 그리고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남용 근절, 그리고 금융그룹의 재무건전성을 통한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 확보가 정부가 표방하는 목적이다. 이들 법은 9월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의 공포로 곧바로 시행된다. 우선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데 있어 주주가 3% 한도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현행 규정을 최대주주의 경우에는 특수 관계인의 지분까지 모두 합해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강화하고,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다. 또 상장회사의 소수 주주는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이사해임청구권, 임시총회소집청구권, 회계장부열람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데, 6개월을 3일로 바꾸는 것 등이다.


둘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며,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향 조정한다(상장회사 20%→30%, 비상장회사 30%→50%). 또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3%에서 6%로,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10%에서 20%로 인상한다.


셋째,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지주회사가 아닌데 두 개 이상의 금융업을 하는 기업집단 중 소속 금융계열사의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인 집단을 감독 대상 금융그룹으로 지정해 그룹의 주요 위험 요인을 공시하는 등, 금융 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현대차·한화·미래에셋·교보생명·DB그룹 등이 해당된다.


이 외에도 현재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발행 채권과 주식은 총 자산의 3%를 넘을 수 없는데, 이 3%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의 불합리성과 폐해는 지금까지 수없이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 강화 일변도로 치닫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반영하며, 이는 시장과 기업 및 자본가-기업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연유한다. 이제 법의 제·개정안들이 한국 사회에 가지는 의미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자.


첫째, 법률의 제·개정안은 자유 민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법이다. 사기업의 주인을 없애고 공기업화를 획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도덕, 정의(공정)는 자원의 희소성과 인간의 이기심에 그 기원이 있다.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들 간의 다툼을 낳는데, 이런 다툼은 결국 남은 물론 자신의 이익과 생존 기회도 낮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인간은 도덕과 법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질서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약탈 가능한 유·무형의 재산이 있다. 따라서 도덕 규칙과 법질서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며, 그런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유재산 침해를 계기로 개인들의 정의감이 상실되면 도덕과 법이 타락하고, 사회는 몰락한다.


둘째, 이 법들은 공정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재벌 해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있다. 기업지배구조란 자본가-기업가가 자신의 자본을 운영·관리하는 경영자의 경영에 간섭하는 수준 또는 이를 규율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말한다. 한 사람이 기업 전체를 소유하고 경영하지 않는 한,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생긴다. 주인-대리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기업 경영에 전념하도록 유인(誘因)을 제공하고 감시·감독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본가-기업가가 주인이자 최대주주다. 그리고 그는 기업의 설립자나 기업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최대주주와 경영자가 일치할 때 최소화된다. 그런데 이 법들은 기업집단의 사실상의 주인인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소송당할 가능성을 높이며, 위법(?) 시 과징금을 높이는 등, 최대주주의 권리와 기능을 박탈하는 것들이다. 기업지배구조를 흔들고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여 투기 자본이 대기업 집단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돈 잘 벌고 있는 기업의 주인을 없애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기술 혁신과 효율 경영으로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해야 하는 기업 집단이 비생산적인 일에 시달림으로써 경쟁력을 상실하고,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래야 하는 논거도 없는,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의무 지분율을 조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는 낭비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규제로 삼성 그룹은 25조 원, 포스코 2조 원, KT&G 1조 3700억 원, KT 720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이며, 이 돈을 모두 투자할 경우 23만여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또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반드시 상속세의 폐지 또는 조정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잘못된 법은 법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인간 행위를 몰아가기 때문이다.


넷째, 이런 법들은 법치의 법이라고 할 수 없다. 법이란 특별한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이들 법은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을 법이라고 입법부가 통과시킨다면, 이는 입법부 의원들이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치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법들은 공정경제를 가장하여 대기업 집단을 옥죄는 기업규제법일 뿐이며, 한국 사회를 부도덕하고 가난한 사회로 안내하는 법이다. 주인이 확실한 사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공중분해하고,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진 금융회사를 흔들어 부실화하고, 불편부당한 시장이 가장 잘 예방하고 처벌하는 남용 행위를 편파성에 치우치기 쉬운 인간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입법돼서는 안 될 악법들이다. 철회돼야 마땅하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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