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연금 등에 대해 기관투자자가 지켜야 하는 ‘5% 룰’의 예외 규정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연기금을 통해 기업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다. 거듭된 경제정책의 실패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권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압박을 높이려는 것은 문제다.
5% 룰은 투자가가 상장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거나,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관련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 규칙이다. 시장이 혼탁하게 되는 상황을 막고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규율로 작용해 왔다.
정부가 시장의 기본규율로 삼아 온 5% 룰을 완화해 국민연금에 예외적으로 특권을 인정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동안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보다 편리하게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연기금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 정부가 관여하는 연기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특히 그 의도가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국민이 저축한 자금이다. 개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정부 편의대로 국민연금을 기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연금사회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더구나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간기업을 공기업처럼 만드는 잘못된 일이다. 정부의 민간에 대한 통제 강화는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추락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
정부는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을 강화한 바 있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주주와 기업이 상호 이익을 위해 만든 자율규범인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오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해외에서 자율규범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한국에 와서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규제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흔든 바 있다. 조양호 대표이사를 결국 끌어내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량기업으로 기업을 이끌던 경영인을 잃은 대한항공의 앞날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정치적 의도에 맞춰 기업지배구조를 자꾸 바꾸려고 한다.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부가 정하고 강제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정책실험이며 ‘사회적 통제’일 뿐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을 정책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은 연금제도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 목표를 기업에 강요하다 보니 기업이 따르지 않고, 이를 억지로 강제하려니 규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을 옥죄는 방식은 경제의 활력을 줄인다. 정부는 늘 “경제를 살리고 기업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 여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규제로 기업을 흔들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기보다, 경영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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