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고민하고 정치에서 탈피하는 교육 정책으로

이성호 / 2021-09-08 / 조회: 10,970

I. 서두


현재 우리는 문자 그대로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단 2-3 년 앞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에서는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예측들이 모든 영역에서 표출되고 있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들이 사회의 다방면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미래의 변화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영역 중의 하나는 교육이다. 그런데 현 정권에 의해 추진되는 주요 교육정책들을 보면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반영되어 있지 않는 듯하다. 특히 현 정권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자사고 폐지는 이미 2000 년대 초반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가시적이고 양적인 평등을 기저로 하는 것으로 급변하는 미래에 대비한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사료된다. 


본문에서 필자는 향후 우리에게 절실한 교육정책을 4가지, 즉 학교 교육의 다양성, 대학의 구조개혁, 교육의 탈정치화, 도덕성의 회복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간략히 논의하도록 한다. 


II. 학교 교육의 다양화 


우리의 교육 특히 학교 교육이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양화이다. 학교 교육의 다양성이 제고된다면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의 문제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상황에서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동일한 학교 내에서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이며 둘째는 학교 자체를 다양화하는 방안이다. 


우선, 학교 내의 교육프로그램을 학생들의 필요나 능력에 따라 다원화하는 방법으로 소위 수준별 수업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유감스럽게도 '개별 학생들의 능력, 수준, 혹은 적성에 따른 차별화되고 다양화된 프로그램이 학생들 간의 개인차를 더욱 심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우리 교육 여건의 미비점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위한 두 번째 방안은 학교 체제의 다원화이며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공립과 사립이 공존하는 형태의 학교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은 많은 부분 사립학교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 사립학교들은 이름만 사립일 뿐 교육과정의 선정, 운영, 학생선발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중앙 혹은 지방정부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다.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립학교들이 전체 공교육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에서조차 사립학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교육도 정부의 주도와 감독 위주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공교육에 있어서 '사적 영역(Private Sector)'을 활성화함으로써 관 중심의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공립학교 체제는 근대에 들어 서양에서 제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이 공립학교 체제가 교육의 확대와 보급에 크게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공립학교가 완벽한 교육기관은 아니다. 특히, 공립학교의 교육은 다채로운 이념 하에 설립되고 운영되는 사립학교에 비해 유연성과 다양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결국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양자 간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며 이들의 공존을 토대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보다 낳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유명무실한 사학은 결국 공립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교육의 획일주의 내지 전체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함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안은 저소득계층에 대한 배려다. 다원화된 학교 체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Socially Disadvantaged Group)의 자녀들이 손해를 보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III. 대학의 구조조정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정책으로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학의 구조개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은 한 마디로 공급과잉이다. 최소한의 요건만을 충족하면 대학의 설립이 허용되는 준칙주의로 인해 우후죽순 식으로 증가한 대학들 중 상당수가 신입생을 유치하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주된 원인은 대학 학령인구의 현저한 감소다. 수 년 내에 대학 지원자들의 총계가 대학의 정원을 밑도는 현상이 곧 현실이 될 것이며, 상당수 대학들은 폐교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같은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대학의 구조조정에 대한 방안들이 이미 노무현 정부부터 구상되고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현재 괄목할 만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책임이 어디에 있든,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대학의 구조조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대학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부실대학의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여기서, 부실대학에 대한 정리는 교육수요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대학들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교육부가 부실대학의 퇴출을 주도할 경우, 자칫 구조조정이 정치적 논쟁으로 호도될 수 있다. 


미국처럼 부실대학들이 냉엄하게 도태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참전용사들에 대한 정부의 등록금 보조(G.I. Bill)와 베이비붐 덕분에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미국 대학들 중 상당수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수의 감소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이는 정부의 주도가 아닌 대학 스스로의 체질개선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재차 강조하건데 교육부는 대학구조조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대학에 대한 투명한 정보의 제공과 퇴출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재배치 등의 업무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 우리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은 대학교육의 다양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문제 대학 몇 개를 퇴출시키는 것은 구조조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대학들은 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다수의 대학들이 소수의 명문대학을 모방하려는 안이한 자세로는 진정한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수 백 개나 되는 우리 대학들의 역할이 동일할 수는 없는 바, 대학별로 다원화되고 차별화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대학들은 교육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세계 정상급의 연구대학이 우리나라에 수 십 개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다수의 대학들은 연구실적의 양적 증가보다는 교육을 내실화하는데 치중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대학의 자율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자율성이란 외적인 통제와 간섭의 배제를 말한다. 외적인 통제와 간섭은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교육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저해한다. 결국 대학의 자율 없이는 대학교육의 다양성은 성립될 수 없다. 


다음으로, 자율성은 곧 책무성과 직결된다. 자율은 방종이 아니다. 방종은 무책임하지만 자율에는 엄한 책임이 수반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모든 권한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학의 몫이다. 


결국 자율성을 전제로 한 대학의 구조개혁만이 진정한 구조개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III. 교육의 탈() 정치화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관심과 열정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우리의 교육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물론 교육에서 정치적인 논점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며, ’평등주의' ’교육복지' 같은 정치적 구호들이 우리의 교육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육의 본연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육성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교육의 현장이 정치적 이념에 따라 분열된다면 개인이나 국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행 우리나라의 교육감 선출방식, 그리고 교육감의 권한과 책무 등은 심각하게 재고됨이 옳다. 교육에 관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위임하고 교육감 선거를 통해 일반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제고한다는 원래의 취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되어 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욱이 교육감이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실질적으로 전무하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는 다수결(Rule of Majority)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교육감 제도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제도인 셈이다. 이에 대한 시급한 개정이 필요한 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관심과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IV. 도덕성의 회복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을 논함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도덕성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교육이다. 


미래 사회에서 경쟁이 과열되고 부의 편중이 심화될수록 인간의 윤리적 측면은 더욱 강조될 수 있다. 도덕과 윤리가 상실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 역시 소멸될 것이다. 향후 인류사회가 어떤 형태로 변모된다 할지라도, 도덕과 윤리는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남아야 한다. 이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의 첫 번째 명제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연유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특히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도덕을 등식화 했고, 도덕적 지식의 실천을 강조했을 것이다.


실용적인 지식의 전수, 학력의 신장, 교육 경쟁력의 제고 등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목표나 가치들이 건전한 윤리의식에 기초하지 못할 때 이는 한낱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V. 결언


급변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는 미래는 제2의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역경을 딛고 교육을 통해 국가의 입지를 공고히 한 경험이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와 현 정권에서는 미래에 대비하는 괄목할 만한 교육정책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로운 교육정책들을 차기 정부에 기대하며 본문을 맺는다.


이성호 /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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