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은 시장과 대화하면서 추진해야

손재영 / 2021-08-24 / 조회: 1,906

2020-21년 주택가격 급등


작년과 올해 가히 “대란”이라 할 정도로 서울, 수도권, 전국 가리지 않고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률이 높다. 이전의 주택가격 급등은 주로 경제위기 후에 하락분을 만회하는 기저효과 때문이었다. 가격급락이 선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의 주택난은 특이하다.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 저금리 같은 거시적 요인들과 함께 새 아파트에 쏠리는 소비자 선호의 변화, 공급부족과 같은 미시적 요인들이 모두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가격급등에는 주택정책 실패에 따른 시장의 교란도 주요 요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주택시장은 지역별, 유형별, 규모별, 가격대별 하위시장들로 나뉘지만, 이 하위시장들이 전후좌우로 연결되는 복잡한 그물망이다. 이 복잡한 그물망이 약 2천만 호의 주택과 거의 같은 수의 가구가 서로 짝을 찾아가는 주택 생태계이다. 시장에 가해지는 외부 충격들은 주택 생태계를 흔들어 기존의 균형을 깨뜨린다. 생태계를 크게 흔들어 놓으면, 그 파장과 반작용이 중첩되므로 언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새로운 균형이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자연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주택 생태계는 조심조심 다루어야 한다. 주택시장에서 “핀셋 규제” 같은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이번 정부는 주택정책을 두더지 잡기로 착각했다. 두더지 잡듯이 문제 하나하나를 깨부수면 결국에는 모든 두더지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양가를 상한제로 규제하니 로또판이 벌어졌고,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다 신축 아파트 가격을 크게 올렸다. 주택대출을 막아서 현금부자만 이익을 보게 하였고, 양도세를 올려서 주택 매물의 씨를 말렸다. 갭 투자를 막는다고 임대차 시장을 흔드니 수많은 임대주택이 시장에서 퇴장하였고, 임대차 3법 때문에 임차인도 임대인도 불안해졌다. 이런 충격들 하나하나가 매매가와 전세가를 올리고 “전세의 월세화”를 촉진했다. 


정책의 한계


수요든 공급이든, 가격이든 거래량이든 정부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한정적이다. 주택이 고가이고, 주택건설에 긴 시간이 들며, 주택과 수요자들이 이루는 생태계가 천차만별 복잡하기 때문이다. 수십조 원을 들인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국민 대다수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선호에 따라 시장에서 자신의 주거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택지 및 주택공급, 금융, 세제 등 다방면에서 분양가나 임대료를 낮추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시장을 통해 스스로 주거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대신할 수 없다. 한정된 정책자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계층별 맞춤형 주택정책을 채택한다. 저소득층은 임대주택이라도 안정적으로 거주하도록 하고, 중산층은 일찍 내집마련을 할 수 있게 한다. 고소득층은 크게 지원할 것도 없지만, 또 간섭할 필요도 없다. 


역대 정부들은 시장과 정책의 조화와 균형을 대체로 잘 추구했다. 국민들 주거여건이 단기에 양적, 질적으로 크게 개선된 것은 내집마련을 위한 국민 각자의 노력이 시장을 통해 분출되고, 정부가 적절히 교통정리를 한 덕분이다. 이번 정부처럼 시장을 윽박지르고, 위협하고, 벌을 주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세금을 세금답게


이번 정부의 대책들로 인해 부동산 세금이 벌금에 가까워졌고, 그나마 누더기 상태이다. 다주택 기간 중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지 않는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양도소득세 경우의 수가 189개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명목적 가격상승분을 차감해줌으로써 “구매력의 증가”에 과세하는 소득과세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자의적으로 줄이거나 늘려도 무방한 항목이 아니다. 법이 개정된다면 실질적인 소득이 없어도 세금을 내게 된다. 이런 세금을 형평성, 효율성, 기타 다른 어떤 기준에서 보아도 좋은 세금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외에도 모든 부동산 세목이 총체적으로 누더기 상태이므로 단순히 몇 개 조항을 고치는 정도로는 세금을 정상화할 수 없다. 가칭 “부동산조세 정상화 위원회”를 만들어 종합적인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부처와 연구기관 및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과거 토지공개념 작업을 했던 것에 버금가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때, 우리나라 부동산 조세 부담이 이미 미국과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임을 인식해야 한다. 보유세가 낮고 그 때문에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주장이 있지만, 미국의 많은 대도시들이 실효세율 1% 이상의 보유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2000년대 초중반에 주택가격이 급등했던 반면, 보유세 부담이 매우 낮은 독일은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거품을 비껴갔다. 우리나라도 이번 정부에서 부동산 세금에 가격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경험하였다. 세제 개편은 부동산 가격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 보다 조세의 일반 원칙에 충실한 “좋은 세금”을 만드는 목표로 추진되어야 한다. 


세제 개편안은 전반적인 양도소득세율 인하, 취득세율의 단순화, 보유주택 수에 무관하게 주택가액에 따라 결정되는 종합부동산세, 과도한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는 고령자 감면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금융을 금융답게


부동산은 고가이고 부동산의 개발, 취득, 보유 등 모든 단계에서 금융을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소비자들이 젊을 때 장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활용해 주택을 구입하고 그 이후 천천히 갚아나가는 공통적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2000년 전후부터 활성화되었다. 다른 나라보다 늦게 시동이 걸린 만큼 그 증가속도가 매우 빨랐고, 주택담보대출 발 금융시스템 불안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았다. 20년 가까이 “늑대야!”를 외쳤지만, 늑대는 오지 않았다. 


금리인상이나 주택가격 하락 등의 충격을 대비한 선제적이고 보수적인 접근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컨대 모든 금융기관을 포괄하는 LTV나 DSR 규제 등은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해 갑자기 주요 은행들이 한꺼번에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 당장 자금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예측 가능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규제가 되어야 한다. 


금융시스템 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들이 금융 본래의 역할을 저해하는 상황은 교정되어야 한다. 주택가격 상승을 막으려고 금융을 틀어막는 바람에 중산층의 내집마련 노력이 위협받고 있다.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시장은 현금 동원력이 큰 자산가들의 독무대가 되었고, 금융기관들은 규제가 없는 중소빌딩이나 토지 등에 과도한 대출을 꺼리지 않는다. 전세대출은 상대적으로 방만하게 운영하여 오히려 전세가 상승의 원인을 제공한다. 


주택담보대출은 내집마련 꿈을 실현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다른 자산매각 자금이 없는 최초 주택구입에서 금융의 역할이 크다. 최초 주택구입에 대해 파격적인 지원, 예컨대 80~90%의 LTV, 50% 정도의 DSR을 적용하고, 주택금융공사 등의 공적 금융기관에서 저금리 대출을 하며, 지급이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혜택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산층 일반 소비자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이 하룻밤 새에 대출을 동결하는 식의 규제는 피해야 한다. 금융안정을 목표로 한다면 70~80%의 LTV, 40% 내외의 DSR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제는 필요한 만큼만


우리나라에서 자기 집에 사는 가구의 비중은 약 56%인데, 이는 44%에 해당되는 약 890만 가구가 남의 주택을 임차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2017년 12.13대책에서 임대인들에게 민간 주택임대업자 등록을 권장하다가 2018년 9.13대책부터는 세제 혜택을 축소하여 임대주택시장을 크게 교란시켰다. 여기에 덧붙여 임대차 3법이 시장을 함부로 뒤흔든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다. 2중, 3중의 전세가격이 형성되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임대물량이 줄어서 전세, 월세가 급등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 분양에 2년 실거주 요건을 부과하려다가 철회한 것이 그나마의 데미지 콘트롤을 했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커다란 금전적, 심리적 고통을 겪은 후였다. 세입자를 보호하면서도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자에 대한 일정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여야 한다.


이번 정부는 재건축, 재개발사업 등 도시정비사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안전진단 기준을 높이는 등 인허가를 까다롭게 하고, 임대주택 건설의무, 재건축초과이득 환수, 분양가 상한제, 공공주도 등 여러 걸림돌을 만들었다. 지은지 30년 이상된 아파트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으며, 낡은 주택들을 소비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주거문화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크다. 재건축, 재개발 사업은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 민간 스스로 도시환경과 주거여건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도시재생 사업이고, 도심의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이들 사업을 활성화하도록 전면적으로 규제를 완화하여야 한다. 다만, 동시다발적 사업추진이 가져올 수 있는 전세난, 세입자 대책, 인프라 과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이성이 회복되어야


주택가격을 잡으려는 궁여지책 중의 하나가 서울 강남 일부지역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제 시행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주택에 살지 말지를 담당 공무원이 판단한다. 광범위한 토지투기에 대응하여 시장을 동결시키려고 도입한 80년대 규제를 21세기의 세련된 주택소비자들에게 적용하는 시대착오적인 규제이다. 또, 정부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립하여 불법, 탈법적인 거래를 잡아내겠다고 하지만, 매번 투기자를 단속한다고 떠들썩하고도 극히 소수의 법위반 사례밖에는 찾아내지 못했던 전례를 보면 이 기구에 어떤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세청, 수사기관 등이 일상업무로 위법행위를 단속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 공직자의 다주택보유를 비난하고 못하게 하겠다는 계획도 나왔지만, 이는 헌법적 기본권 침해로 보인다. 경제문제를 도덕문제로 치환하여 희생양을 찾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접근이다. 


이번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란 인식이 굳어졌지만, 가격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이런 경기변동에 정부가 큰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렵다. 다만, 장기계획 하에 택지와 주택의 공급을 원활히 한다면, 적어도 수급불균형에 의한 가격변동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도 재개발, 재건축 등을 포함하여 주택공급 측면에서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허용했다면 많은 문제가 미리미리 해결되었을 것이다. 


주택시장은 국민들 각자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오래 준비하고 계획하여 어렵게 실행에 옮기는 무대이다. 이런 소중한 무대를 적대시하는 정책들은 결국 국민들의 행복플랜을 좌절시킨다.


손재영 /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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