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제 선진화 방안

김상겸 / 2021-08-06 / 조회: 1,986

상속세제 개편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상속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부가가치세는 하루에 몇 번씩도 내는 세금이고, 소득세도 한달에 한번쯤은 내는 세금이지만, 상속세는 평생 한번 낼까 말까하는 내는 세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속세는 일정액수 이상인 경우 부과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만이 내는 세금’이라는 인식이 크다. 사람들이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상속세수의 비중은 전체 국세수입의 1%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주요 세목이라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제개편 논의과정에서 상속세 이슈가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는 제도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조세제도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상속세제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나, 우리세제의 전반적 완성도에 미치지 못하는 후진적 세목이라는 인식이 짙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속세제는 시대변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의 대물림 억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불필요한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상속세는 조세가 지향해야할 또 다른 덕목인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세금으로 인식된다. 상속세가 이와 같이 형평성 위주의 세금이 되어버린 배경에는, 일반 대중의 정서와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의 개입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상속세 강화가 곧 조세정의’라는 식의 비이성적 인식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제도개선을 위한 근본적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상속세는 비윤리적, 비효율적

상속세는 경제주체의 사망을 과세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상속세란 국민의 죽음을 이유로 망자소유 자산의 일부를 정부의 수입으로 강제 귀속시키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사망은 사전에 예측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속세는 갑작스러운 과세이다. 따라서 상속세는 대개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들에게 냉정하고도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한다. 제도의 성격에 따른 불가피한 문제라고는 하겠지만, 국민의 인권과 그 가치를 강조하는 현대국가에서 꼭 운영되어야하는 합리적 제도라 볼 근거가 별로 없다. 


조세의 효율성 관점에서 상속세는 매우 취약하다. 상속자산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대개, 소득의 일부가 저축되고, 이의 축적으로 형성된 자산이 그 소유자의 사망을 계기로 상속되는, 즉 '소득→저축→자산형성→상속’의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개념에서 보자면 상속자산은 자산의 형성과정 어딘가에서 이미 한번쯤 세금을 납부한 것이기 때문에, 이중과세나 중복과세에 해당한다. 과세의 중첩은 그 자체로 비효율의 심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과도하게 높은 세율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한계세율은 50%이며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할증율까지 고려하면 무려 60%수준에 이른다. 세율만으로도 세계 최고수준이다.1)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세율도 높고, 누진율도 심하고, 중복과세에 해당하기 때문에 효율성에서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OECD국가들이 자국의 상속세율을 점진적으로 인하조정하고, 세부담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1) 일본의 상속세 최고한계세율이 55%로 가장 높지만, 할증이 적용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최고한계세율이 60%에 이름.


가업상속을 어렵게 하는 상속세

현실에서 상속세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가업(家業) 또는 기업(企業) 상속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창업주와 가족들이 열심히 일군 기업이 상속되는 경우, 상속자산의 절반가량이 징수되기 때문이다. 실체는 변한 것이 없는데, 단지 창업주가 사망했음을 이유로 하여, 기업의 절반가까이가 뭉텅 날아가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의 존속을 확신하기 어렵다. 설사 기업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이미 힘이 빠져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경제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오래전에 제기되어 이에 따른 정책적 보완조치 역시 추진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상속에 대한 세제상의 보완조치가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속기업에 대한 세제상의 우대를 받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승계 받은 기업을 7년 이상 '같은 업종’으로 '계속 경영’하면서, '승계된 고용 역시 7년간 100%(평균)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단서들이 설정된 이유는 짐작가능 하지만, 진실로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인지 혼란스럽다. 4차 산업 혁명의 진행으로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업상속 우대조치의 기본 목적이, 상속세로 인한 기업활동의 위축을 최소화하여, 고용과 경제활성화를 도모함에 있음을 상기한다면, 소위 몇몇 '미꾸라지’를 대비하기 위한 비현실적 조건들은 완화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방식의 상속공제를 허용하고 있는 일본은 고용유지 조건을 없앤 바 있다. 수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강소 중소기업이 일본에 많은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상속세제 선진화 방안: 존치 논의부터 시작

상속세제 선진화의 논의는 상속세를 향후에도 존치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미 그 형성단계에서 최소 한번 이상의 세금을 낸 자산에, 그 소유자의 사망을 이유로 절반 가까운 규모의 또 다른 세금을 뭉텅 떼어내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국가의 세금으로 타당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비록 국가가 개인의 자산형성에 조력하였다고는 하더라도, 그 댓가를 세금의 명목으로 여러 번, 그것도 적지 않은 크기로 요구하는 것이 맞는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2) 실제로 OECD 회원국 가운데에는 상속세가 없는 나라들도 13개국이나 된다. 과연 이들 국가들이 '부의 집중을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를 두지 않았을까? 

2)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호주, 캐나다, 이스라엘, 뉴질랜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스웨덴, 체코, 오스트리아, 멕시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13개국임. 이 가운데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를 제외한 11개국은 과거 상속세를 시행했다가 폐지하였음.


세부담의 완화: 세율인하와 과세구간의 조정

만약 상속세제의 존치가 불가피하더라도, 세부담의 합리화는 반드시 추진되어야하는 과제이다. 비윤리적 조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속세를 존치시키는 이유 중 하나는 대물림을 통한 부의 집중을 막아 세제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50%,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60%에 이르는 최고한계세율의 적용은, 세제의 형평성 제고를 넘어서는 과도한 수준임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마치 납세자에게 벌을 주는듯한 이러한 과세는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억제해야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용인되어야 한다. 상속이 국민경제에 해악으로 작용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반드시 죽기 때문에, 상속은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다.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 역시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정부의 수입으로 강제 이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한 것이다. 상속세의 세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세율인하와 더불어 과세구간의 조정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5단계 초과 누진세율 체계는 이미 20년 전에 설정된 것으로, 그동안의 경제환경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의 자산가치가 현재의 자산 가치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이에 맞추어 과세구간도 조정해주어야 하는데 상당시간 방치해둔 느낌이다. 세율인하와 과세구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유산과세형에서 취득과세형으로   

상속세제 개편의 또 다른 중요과제는 취득과세형으로 부과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의 유산과세 방식은 세금부과의 기준이 피상속인(사망자)인 반면, 취득과세 방식은 상속인(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사실 장자상속과 같은 전통적 상속관행 하에서는 부과방식에 따른 실질적 차이는 없다. 하지만 상속세의 기본 취지 가운데 하나가 부의 집중방지에 있다면, 기존의 유산과세형은 이러한 정책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의 상속유형은 유가족 사이의 균등분배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다수의 상속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누진구조 가운데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취득과세형의 세부담이 훨씬 더 작다. 결국 취득과세형으로의 전환은 부의 분산이라는 정책목표는 물론, 세부담의 완화와 낮은 세율 적용에 따른 효율성 제고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인 것이다. 


기업상속에 대한 우대제도 개선   

끝으로 기업상속에 대한 우대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우대제도는 제도 악용을 우려한 나머지, 그 해당조건을 지나치게 엄격히 설정하였다. 최근 의무이행 기간과 업종에 대한 부분적 완화가 있었으나, 이 정도의 조정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제의 변화는 나라살림에 직결되므로 보수적인 제도운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소극적 정책변화는 실효성도 낮을 뿐 아니라,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김상겸, “미국의 상속증여세제 개편논의와 그 시사점”, 『산업연구』, 2011

안종범 외, “상속증여세제 선진화를 위한 제언: 주요이슈를 중심으로”, 한국재정학회 및 전국경제인연합회, 2010

임동원,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상속세제 개편방향”, 한국경제연구원, 2019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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