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정책 폐지해야

김정래 / 2011-08-24 / 조회: 2,649
1. 문제제기


먼저 평준화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에 둔감한 세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가(禪家)에서 회자되는 예를 들겠다. 소가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데, 갑자기 소가 멈춰 섰다. 사람들은 수레에 실린 짐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수레를 끌고 가는 소가 아니라 짐을 실은 수레를 재촉한다. 사태의 근본 원인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준화 정책이 교육 만악(萬惡)의 근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적 해결책으로 폐지를 생각하지 않고, 늘 평준화 보완책만을 찾아 나선다. ‘평준화’를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폐해에도 불구하고 ‘폐지’보다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세태는 교육계 전반과 비단 좌파 성향의 학자에 그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과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평준화 정책을 ‘잘’ 보완해야 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좌파 정치인들은 ‘보완’하여 평준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친(親) 전교조 성향의 경기 교육감은 몇 안 되는 학교단위 전형지역의 평준화를 확대 추진하고 있다.


모든 일체의 보완책을 들이대도 평준화 정책이 있는 한 교육의 폐해는 막을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보완책의 백미는 서울의 ‘고교선택제’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추진한 이 제도는 평준화를 보완한 것이 아니라 개악(改惡)한 것이다. 전원 추첨 배정에서 일부 학생만이 원하는 학교에 추첨 배정을 받는 세태가 연출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선택’이 아니라 로또 복권식 ‘운’에 맡기는 형편이다.


이번 대선에는 교육 만악의 근원인 평준화 정책 폐지를 공약하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


2. 평준화 정책의 폐해


먼저 평준화 정책의 폐해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말살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의 학생선발권이 원천 봉쇄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사립학교의 독립성 훼손과 기생심리를 조장하여 이른바 ‘좀비사학’이 탄생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이는 학생선발권이 근인(根因)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또한 평준화 지역의 사교육비 증가, 조기유학의 조장 등과 같은 문제가 야기되지만, 이 역시 학교선택권이 말살된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평등실현은 평준화 정책을 지지하는 좌파 논거의 핵심이다. 평준화 정책으로 지역간, 학교간, 학생간의 평등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불평등을 조장하고 지역간, 소득계층간의 불평등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 격차를 더욱 벌려놓았다. 특히 평등교육의 실현이라는 명분은 학군별 불평등 조장에 의하여 허구로 입증되었다. 예컨대, 서울 8학군(서초, 강남) 지역 고교졸업생의 서울대학교 합격자 수가 1학군(동대문, 중랑) 지역 합격자 수에 비하여 12배 이상이라는 사실은 평준화 정책이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평등실현 이외에도 평준화 정책이 표방해왔던 정책 목표와 여러 명분들이 하나같이 실현되지 못하였거나 정반대 결과를 야기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교육 과열을 방지하고 중학교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목표는 모두 실패했다. 앞서 ‘좀비 사학’을 언급하였는데, 평준화 정책으로 인하여 지불되는 사립학교재정결함보조금으로 연간 2조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된다. 이 보조금은 사립학교 입장에서는 ‘지대추구’의 성격을 갖는다. 선발권을 포기한 대가를 국가로부터 요구함으로써 기생심리와 의존도 심화를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 되어 사학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방기하고 있다.


공-사립학교를 막론하고 단위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 단위학교의 책무성 상실 및 경쟁력 약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단위학교의 교육목적에서부터 교육프로그램과 교육방법 등의 다양성을 훼손함은 물론 교육 획일화를 가속시킨다.


평준화 정책의 폐해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결합 및 분해의 오류를 비롯한 산술평균 등 단순계 사고에 따른 평등증후군 만연 등 여러 가지 오류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평준화정책이 사교육으로 ‘쏠림현상’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근거도 없는 명분이다. 셋째,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교육 이질화’를 들 수 있다. 단위학교 선발에서는 볼 수 없는 한 학급 내 학생들의 학력 간의 이질화는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넷째, 평준화 정책 폐지의 타당성을 왜곡하기 위한 합리화 방안으로 ‘논점을 변경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치 평준화 정책을 폐지하면 일대 혼란이 야기된다는 선동이 먹혀들어 가고 있다. 여기서 평준화 보완론이 힘을 얻게 된다. 이는 마치 노예제가 폐지되면 혼란이 일기 때문에 노예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주장과 동일하다.


이러한 폐해들뿐만 아니라 평준화 정책이 결과적으로 불러오는 것은 교육의 국가독점이다. 등록금 책정,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내신제, 교원의 동일한 급여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평준화가 교육 만악의 근원이라는 논거 중 하나가 바로 동일한 교원 급여로 인하여 실질적인 교원평가가 불가능하며, 이는 다시 교육경쟁력 제고의 핵심인 교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제 수단을 원천 봉쇄한다.


평준화 정책은 용어 자체가 국가개입과 국가독점을 전제한다. ‘평준화’가 ‘평형’과 ‘기준’의 합성어이며, 다시 평형과 기준은 국가개입을 전제로 한 사회공학적인 개념이다.


학교선택권의 부여와 학생선발권의 회복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원천 봉쇄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물론 세계적인 추세가 선택권 증진과 책무성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정책의 방향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회복하고, 단위학교의 학생선발권을 확보하도록 맞춰져야 한다. 이것이 교육경쟁력 제고의 핵심이다. 우리가 ‘평준화’라고 하여 모방하였던 일본의 학교군(群)제 등은 이미 폐지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도 사립학교는 이 정책의 대상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준화정책에 매달리고 있으면서, 사립학교에 적용하지 않는 방안조차 검토하지 않는 실정이다.


‘보완’이 아닌 ‘폐지’이어야 하는 이유


평준화 정책의 폐해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서두에 이 정책은 폐지 대상이 아니라 보완대상으로 여기는 세태를 지적한 바 있다. ‘보완’이 아닌 ‘폐지’이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부도덕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준화 정책은 1973년 도입과정 및 그 결과에 있어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평준화 정책의 도입이 당시 유신독재로 인하여 당시 민심을 무마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왔다는 증언도 있다. 유신독재의 산물이라는 증후는 이 정책이 민주적인 합의와 수렴이 전혀 없는 졸속 도입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평준화 정책은 정변기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나온 부도덕한 정책이다.


둘째, 평준화 폐지 대신에 보완책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병리현상이다. 먼저 평준화 폐지에 대한 두려움을 들 수 있다. 이는 흄(David Hume)의 ‘기적’에 관한 논의에 나오는 일종의 심리적 공황상태로서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에 비견된다. 보완책을 주장하는 것이 병리현상이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임상적 증거 때문이다. 필자는 평준화 정책의 폐지가 두려워 ‘보완책’을 주장하는 이들의 심리를 ‘알코올 중독’에 유비하여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와 가정의학과 교수의 자문을 받아 분석한 바 있다. 알코올 중독의 근본적인 치유책은 다른 대증요법이 아니라 술을 끊는 금주에 있다. 마찬가지로 평준화 정책의 심각한 폐해는 여타의 ‘보완’이라는 미봉책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전면 폐지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셋째, 평준화의 근간으로 두고 여러 가지 보완책을 강구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서울의 ‘고교선택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원래 평준화 정책의 전원 추첨배정방식을 개악한 짝퉁 선택제이다. 이 방안의 의도는 ‘평준화 틀 안에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자는 ‘보완책’이었지만, 오히려 여러 부작용만 노출되었다. 이런 와중에 좌파 교육감은 이를 빌미로 평준화를 ‘원상복귀’를 들고 나온 것이다. 평준화 정책의 폐해에 대한 대책으로 폐지 이외의 답을 구할 수 없다.


3. 평준화 폐지의 두 가지 방안


평준화 정책의 폐지는 크게 두 가지 안으로 살펴볼 수 있다.


1안) 전면 폐지: 공-사립 구분 없이 폐지하는 방안
2안) 부분 폐지: 사립학교부터 폐지하는 방안


2안의 경우에도, 단위학교별 선발 전형(이를 많은 사람들이 ‘비평준화’라고 함)을 원하는 공립학교에도 점차적으로 선발권을 부여해야 한다.


1안과 2안의 어떤 경우에도 여러 가지 실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차기 대선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고, 당선 후에 이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4. 평준화 폐지를 위한 제반 조치


1.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7조 1항과 2항을 개정한다. 이는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어 각 시·도교육감은 단위학교별 학교 전형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간섭의 배제와 단위학교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 필요하다.


2. 평준화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불합리한 정책인 내신제와 3불(不)정책을 폐지한다.


3. ‘잘못 끼워진 단추’는 정상 회복시킨다는 차원에서 사립학교는 1안과 2안에 관계없이 우선적으로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 등록금 책정권, 교육내용 편성에서부터 교원의 임용과 급여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율을 회복시킨다. 아울러 기존의 이른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대한 일체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규제를 해소하도록 한다. 이로써 선진국처럼 사립고등학교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한다.


4. 평준화 정책의 반대급부인 ‘재정결함보조금’으로 불리는 정부보조금 문제를 해결한다. 첫째, 재정상태가 매우 좋으면서 자립 의지가 강한 사립학교의 경우는 제 영역에서 명실 공히 자율을 회복시켜 주어 디폴트 스테이트(default state)로 놓아두어야 한다. 둘째, 재정상태도 좋지 않으면서 자립의지, 교육특성화 의지마저 없거나 약한 사립학교의 경우는 공립학교로 전환하도록 한다. 이를 위하여 사립학교법의 폐지 또는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 셋째, 재정상태가 현재로서는 양호한 편이 아니나 자립 의지와 교육특성화 의지가 강한 사립학교의 경우는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고 해당 학교의 존립과 정체성 문제를 결정하도록 제 조치를 마련한다.


5. 이에 따른 재정적 조치를 이행한다. 첫째, ‘재정결함보조금’ 지급을 원천적으로 중단하여 국가재정 절감에 기여한다. 다만, 사립학교의 공립학교 전환과 사립학교의 등록금 자율 결정에 따른 저소득층 자녀의 사립학교 진학기회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하여 궁극적으로 사립학교가 자체적인 장학금을 확충하고, 한편으로는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바우처(voucher) 제도를 도입한다. 둘째, 재정상태가 현재로서는 양호한 편이 아니나 자립 의지와 교육특성화 의지가 강한 사립학교를 위하여 한시적으로 재정결함 보조금의 50%인 매년 1조 원 가량의 예산을 활용하여 지급한다. 여기서 한시적 기간은 3년으로 하고, 최대 5년을 넘을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가용 재원은 한시적 기간에 관계없이 총 3조 원을 넘을 수 없도록 한다. 셋째, 한시적 유예기간 동안 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하고자 하는 해당 사립학교 법인에 대하여 연간 책정 예산의 50%인 1조 원 가량을 책정하여, 공립학교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토록 한다.


6. 평준화 정책 폐지에 따른 공립학교 경쟁력 강화 방안을 강구한다. 1안과 2안 어느 경우에도 사립학교는 평준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사립학교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할 분담과 단위학교 책무성의 실질적 제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욕구 충족, 단위학교별 학교평가 및 교원평가를 활용한 차별지원 방안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7. 평준화 정책 폐지에 따른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 크게 여섯 가지 법령 정비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첫째, 고교 평준화는 헌법 전문(前文), 제10조, 제31조제1항, 제31조제4항 및 학교선택권의 침해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 둘째, 고교평준화는 그 적용 규모와 영향력의 정도에 비추어 그 법률적 기반이 매우 미약한 정책이다. 셋째, 법적 근거가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평준화 정책은 포괄적 위임금지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넷째, 고교 평준화 정책은 선택권 박탈 등에서 강제성을 띠고 있다. 다섯째, 고교 평준화 정책은 종교의 자유, 사학의 자율 등을 포함하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여섯째, 고교 평준화 정책은 그나마 근간이 되는 ‘교육기본법’과 ‘지방자치법’ 및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등과 불일치하며, 이들 법에 의하여 평준화 정책의 부정 근거를 드러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상과 같은 원칙을 견지하면서 후속적인 법제 조치를 마련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평준화 정책을 완전히 폐지했을 경우와 단기적으로 사립학교만을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킬 경우로 나누어 검토한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사항은 ‘고혹평준화 해부’ 제6장 제4절을 참조. 특히 법령 정비 방안은 442-451쪽에 수록)


김정래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참고문헌>


김정래, 사립고등학교의 평준화 정책 적합성 연구(Ⅰ), 한국교육개발원, 2003.
김정래, 고혹평준화 해부, 한국경제연구원, 2009.
김정래 외, 자립형 사립교등학교 제도도입 방안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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