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배경
정부는 9월 17일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과 거래하기 힘든 금융소외계층에게 생계형 창업 등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대출해 주는 ‘미소(美少)금융’(micro credit) 대책을 발표했다. 서민금융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함으로써 저소득층과 저신용층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미소금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민간기부금과 재정을 재원으로 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사업이 운영돼왔지만 규모가 미흡하고 전달체계가 효율적이지 못해 접근성이 제약돼 온 것이 사실이다. 민간주도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정부주도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표-1>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시작된 2000년부터 올 7월까지의 지원실적을 정리한 것이다. 10년간 지원실적은 770억 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1> 민간단체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지원실적 (단위 억 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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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금융위원회 |
정부는 미소금융의 성격을 “복지가 아닌 자활지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인 ‘저(抵)신용자’가 대출 대상이라는 것이다. 기초수급대상자와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혀, 시혜적 복지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미소금융재단’의 운영과 관련해 금융회사 퇴직자 등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청년 자원봉사자의 경우 금융기관 취업 때 일정한 가산점을 주는 ‘유인체계’를 마련해, 운영인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사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에 의한 직접 서민금융을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미소금융 대책에 남다른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미소금융을 ‘친(親)서민 정책’의 결정판으로 보아 달라는 주문일 수도 있다.
▶ 정책내용
정부가 마련한 ‘미소금융’ 대책에 따르면,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설립해 미소금융사업을 총괄하고 ‘미소금융지점’을 전국에 2010년 5월까지 30개, 2012년까지 최대 300개를 신설해 명실상부한 ‘미소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자금지원, 관리감독, 정보관리, 자원봉사자 교육”의 업무를 분장하며, ‘미소금융지역지점’은 “신용정보 조회, 중복수혜 확인, 심사 및 대출, 회수”등의 업무를 분장한다.
중앙재단의 소요재원으로,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전경련과 금융권의 기부금 및 휴면예금 등으로 향후 10년간 2조원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표-2>는 미소금융재단의 재원조달 계획을 정리한 것이다.
<표-2> 미소금융재단 재원조달 계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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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금융위원회 |
<표-3>은 ‘미소금융’의 대출 대상을 정리한 것으로, 대출 대상은 영세사업자 운영자금, 전통시장 창업자금 등 6가지이며, 대출 액수는 5백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이고, 금리는 시장금리 보다 낮은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상환조건은 지원내용에 따라 1~5년 분할 상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표-3> 미소금융 지원 대상 및 조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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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금융위원회 |
▶ 정책평가
미소금융제도는 그 명분에도 불구하고 출발 전부터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정부가 손을 놓은 상태에서 필요재원(2조원) 마련의 부담을 민간에게만 지우는 것이 온당하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재계 몫으로 1조원이 할당된 것에 대해, 이름만 기부금일 뿐 실제로는 정부의 지침을 받고 반강제적으로 낸 준조세에 가깝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전 회장처럼 개인이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 기부”라며 “정부가 나서서 개인이 아닌 법인에 기부금을 내라고 요청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정부의 ‘미소금융재단’ 설립으로 이제까지 자발적으로 민간단체로 유입되던 기부금이 줄어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개입은 민간차원의 자생적인 활동을 구축(crowding out)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의 ‘일원화(一元化)’가 현실화가 되면, 그동안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해오던 민간단체의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死藏)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장지식’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미소금융재단은 ‘독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존의 민간단체들과 유기적인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미소금융의 본질은 ‘무담보·무보증’ 신용대출이기 때문에 상환률이 관건이다. 지속 가능하려면 대출받은 사람이 돈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 자산운영의 건전성은 미소금융에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대출자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상담과 컨설팅을 제공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능을 ‘미소금융재단’과 ‘지역지점’들이 수행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더욱이 자원봉사자 중심의 재단운영이기 때문에, 충분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기대할 수 없다. ‘자금조달’ 이전에 충분한 자격을 가진 ‘자원봉사자의 충원(조달)’이 애로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결국 대출 심사와 대출 후 사후관리를 맡을 자원봉사자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양성할 것인 가”가 관건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실행계획이 없다.
미소금융과 관련한 또 다른 우려는 ‘과잉기대’이다. 최근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 자주 거론된다. 서민금융의 사각지대를 일거에 해소해 주는 ‘요술지팡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 있다. ‘그라민 은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제도의 미발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사업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계층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 ‘그라민 은행’은 마른 땅에 단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제도가 미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제도권 금융을 통해 이미 사업기회를 상당정도 실현했다. 따라서 미소금융을 통해 사업기회를 살리려면, 금융소외계층의 눈높이에 맞는 컨설팅이 필수불가결하다. 자원봉사 위주의 운영으로 이 같은 컨설팅 기능을 수행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미소금융은 ‘구조조정’에 역행할 수도 있다. 미소금융으로 이미 경쟁이 치열한 재래부문에서의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도 있다. 시장원리대로라면 사라져야할 전통시장 영세상인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산소호흡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만이 능사가 아니다. 미소금융이 성공하려면 경영 컨설팅과 직종변경 및 전직(轉職)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자원봉사자의 전문성과 책임성의 문제로 환원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 어찌 보면 금융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의 재활을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미소금융재단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정부가 손을 놓은 채 민간부문에 의지해 재원을 조달하고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미소금융을 운영한다는 발상”은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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