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평가] 철지난 국가균형발전정책

이달곤 / 2007-10-02 / 조회: 11,773
인식의 틀

노무현 정권은 그 동안 유지된 국정의 방향을 선회한 수많은 백지계획을 세워 추진하려고 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보의 궤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급진적인 지방 분산정책에서 두드러진다. 수도권이 지방의 모든 것을 흡입하기 때문에 수도권의 중추기능을 지방으로 시급하게 옮기겠다는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수도이전을 공약한 이후 분산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지역혁신체제의 구축, 기업도시의 건설, 지역균형특별회계와 종합부동산세 도입, 수도권 규제강화, 신도시 개발 등을 뒤따라 공포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대부분 80년대 프랑스나 일본의 정책을 복사한 것이다.

지표를 보면 수도권, 특히 서울로의 집중과 집권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인식은 근거가 있다. 문제는 그러한 집중과 불균형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내의 한계에 와 있으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동시에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사회정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더 확장하는데 명백한 장애물이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불균형을 국민복리를 증대시키면서 해소할 수 있는 방책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 나아가 세계화가 진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1세대 이전의 퇴행적인 지방이전이라는 정책수단으로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1960년대부터 사회 각 부문이나 공간 차원에서 불균형 발전전략을 활용해 왔다. 그 동안 균형을 위한 보완적 정책이 수시로 도입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불균형발전 전략을 택했다. 남북이 단절되어 남한 지역은 섬보다도 더 폐쇄된 상황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근대화 요구는 불가피하게 집중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지난 50년의 일극질주는 후발국이 부러워할 정도의 국부축적과 도시 근대화를 이루어 냈다. 더 이상의 불균형이 사회발전에 장애가 된다면 전환의 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의 일관된 집중과 집권은 나름대로 균형회복의 노력과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수도권의 광범위한 규제가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고, 1990년대 초반의 민주화와 자치화라는 분권적 지향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그 동안 뒤쳐진 지방에 대해서는 창의적인 발전의 계기(momentum)를 마련할 필요가 높고, 지방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국가능력에 부합하는 국민적 기본 (national minimum)이 준수되는 사회를 만들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방의 발전을 위한 정책은 다양한 복합적 노력이 긴 안목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급하다고 옮기고 보자는 식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몇몇 선진국에서 30년 전에 실시한 정책을 그대로 수입해서는 더욱 어렵다. 자본과 정보의 자유로운 이전이 보편화된 세계화 기류 속에 있다. 국가는 대도시들의 발전을 통해 경쟁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거리의 개념이 변하고 대도시 관리수준이 3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초고속 교통기관의 출현은 도시와 농촌을 통합하고 있으며, 최근 전개되고 있는 웰빙문화는 낙후지역으로의 회귀(U-turn) 성향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제 일주일 중 7일을 모두 도시에서 보낼 사람은 별로 없다. 대도시 집중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개방체제 속에서도 수도권의 생산성이 분명 떨어지고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으면 전환의 논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증거는 불충분하다. 대도시로 인구와 자본이 대규모로 집중해 기능을 고도화시키는 매트로 극화(metro-polarization)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제조업의 생산성이 약간 떨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IMF 사태이후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실질구매력이 증대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수도권 집중 때문이라는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진행상황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정책을 모아보면,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 공공기관 이전, 지역특화발전, 지역혁신역량강화 (지역혁신체제 구축과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낙후지역 개발촉진(신활력 사업),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살고 싶은 마을) 등의 공간정책과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와 종합재산세 등의 재정 및 조세정책, 그리고 수도권 규제정책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공간정책으로 먼저 나온 것이 수도이전이고, 위헌결정 이후 구역 등은 그대로 두고 행정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2,205만평)를 건설하기 위해서 건설청을 설립해, 2007년 6월 현재 95% 이상의 토지를 협의매각이나 강제 수용했다. 2008년부터 건설해 2014년에 완공하며 2030년에 50만의 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인데, 초기에는 서울과 과천에 소재한 12개부를 포함한 18개 기관이 이전할 계획이다. 시의 법적 지위를 단층제의 광역자치체로 규정하자는 정부측의 아이디어와 기존의 충남 밑의 기초자치체로 해야 한다는 지역주민의 의견이 대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후 수도권의 346개 공공기관 중 175개 공공기관을 10개 시도로 이전해 지방혁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으로 토지 매수에 착수했다. 10개의 혁신도시를 만드는 것인데, 강원혁신도시(건강, 참살이 도시 비타민시티), 충북혁신도시(교육.문화, IT, BT 벤처도시), 경북혁신도시(교육, 학술산업), 전북혁신도시(친환경 농업허브), 대구혁신도시(지식창조를 위한 브레인도시), 울산혁신도시(친환경), 광주ㆍ전남혁신도시(신재생에너지, 농업중심도시), 경남혁신도시(녹색친수도시), 그리고 부산혁신도시(21세기 동북아 해양수도), 제주도혁신도시(국제자유시) 등이 그것이고, 이를 중심으로 소위 지역혁신체제(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혁신도시지원특별법을 만들어서 201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여기에 기업이 전문적으로 지역의 일부를 개발해 기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기업도시를 6개 건설할 계획도 있다. 원주기업도시(첨단의료, 건강단지), 충주기업도시(첨단산업연구단지), 태안기업도시(국제비지니스), 무주기업도시(스포츠, 레저, 관광), 무안기업도시(산업, 물류, 휴양의 미래도시), 영암ㆍ해남기업도시(테마파크, F1 경기장 등 종합레포츠 단지) 등이 계획되어 있는데, 원주가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도시들이 다 조성되면, 수도권 단핵 구조가 다핵구조로 바뀐다는 주장이다. 공공기관이전이 마무리되면, 수도권의 공공기관의 비중은 85%에서 35%로 감소하고 공공기관의 종업원 약 3만2천명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된다고 한다. 낙후지역에 대한 투자확대를 통해 기회균등을 보장하지만, 경쟁을 통해 나타나는 지역간 결과의 차등은 인정하는 정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간정책을 재정분권정책(fiscal decentralization policy)과 연계해 분권화도 기하고 있다. 지방교부세의 비율과 총액을 늘렸으며, 형평화기능이 미약해진 양여금 제도를 없앴다. 지방개발관련 다수의 회계를 통합하고 주세를 재원으로 추가함으로 국가균형특별회계를 신설해 지방의 균형발전과 혁신사업에 충당하고 있다. 2005년부터 전국 13개 광역시도에서 각 4개의 사업이 선정되어 52개의 지역전략사업이 지원을 받게 되었다. 주로 인프라 구축, 기술개발, 인력양성, 기업지원 서비스 등의 분야에 치중했다. 고가 아파트에 재산세를 중과하고 세대별 부동산 전체에 종합부동산세를 가세해 그 재원을 지방으로 분배하는 제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부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2005년까지 수도권 기업 가운데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이 310개로 늘어나고 있고, 비수도권의 지역총생산(GDRP)과 제조업의 성장세가 뚜렷해졌다고 한다. 1999-2002년까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연간 GDRP는 각각 9.9%, 7.1% 성장했는데, 노무현정부 들어서 2004년까지 각각 6.1%, 8.8%로 역전됐으며, 제조업 성장도 수도권 7.3%, 비수도권 13%라고 한다. 특히 2003년 이후 생물, 전자, 기계, 부품소재 등 산업전반에 걸쳐 지방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비수도권에서 차지하는 수출물량의 비중도 2001년 56.1%에서 2005년 67.2%까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직 기업의 이전정책이나 경제활동의 지방경제 활성화정책이 추진되기도 전인데 이러한 효과가 나왔다고 한다. 현상은 사실이겠지만 그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30개 이상 낙후된 농어촌 마을을 지정해 정보화, 체험, 테마 등의 의미를 부여함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중앙의 보조, 광역과 기초지자체의 보조 등으로 사업의 책임이 분산되고 자생적인 마을이 그리 많지 않아, 한 때 총리실에서 정책개선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에서는 이에 더해 한층 보조를 강화한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를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 때 열을 올렸던 사업인데, 전형적인 지방자치업무를 중앙에서 급속하게 추진하는 연유를 알기 어렵다.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하이닉스 공장의 확장불허 방침에서 보듯이 강화되고 있으며, 지역혁신체제 구축사업에서 수도권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으로의 공장이전에 대한 법인세의 대폭 경감, 지방대학육성, 생활환경개선 등을 포함한 제2단계 지방균형발전 정책이 발표되었다. 제1단계 계획이 공공부문의 중추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었다면, 제2단계는 지방의 대학발전, 주민의 삶의 질 향상, 그리고 기업 활동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모은 것이다. 소위 ‘자립형 지방화’를 계획하고 있다.

이상의 분산정책과 동시에 수도권에 10개에 달하는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비수도권에서 전입하는 인구를 수용할 베드타운(bed town)을 만든다는 것인데 무성의한 정책이기 짝이 없다. 10개에 달하는 신도시를 개발하려면, 산업배치, 교통계획, 문화ㆍ여가시설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정책이 필요한데 이러한 정책개발은 뒷전이다. 2007년 초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48%인 점을 감안하고, 기존의 인구집중 추세를 그대로 둘 경우 2012년에 50%, 그리고 2030년에 54% 정도의 인구가 집중될 것이라는 추세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약 300만의 수도권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 수도권 확장이 수청권(首淸圈: 서울, 인천, 경기, 충청일부)으로 인식될 때는 현재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약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현재 계획은 지방으로의 이전사업이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방지해 2020년경에도 현재의 48% 선을 능가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인데,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수도권의 고도화를 통한 경쟁력과 삶의 질 개선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유입할 인구에 대해 철지난 베드타운으로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능력이야 말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평가


(1) 논리적 측면


평가는 기준이 필요하다. 정책은 의도한 효과(goal or objective) 이외에도 부수적 효과(side effects)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론적 기초와 선진국의 사례를 잘 살펴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국가의 균형발전에는 다양한 개념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경제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과 관련되어 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분야(sector)간의 불균형이 문제가 되고, 경제가 일단 성장하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간의 소득불균형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문제 되곤 한다. 우리나라 발전과정에서는 산업의 다양화로 인해 농어업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균형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소득의 문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측면이 있지만 최근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간 발전의 차이로서 인식되는 불균형에서는 도시화와 산업화과정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성장했는가가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문화유산으로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발전했고, 6.25로 서울로 인구가 집중된 데다 남북이 단절되어 도시화가 진전되었고,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용 토지가 매우 낮아 수도권이 이상(異常) 비대한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부산, 대구, 광주, 울산과 같은 지역도 발전했지만 그 비중이 낮아 서울의 대항점(counter pole)이 되지 못하고, 최근에는 발전이 부진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교통기술의 발달과 국제화의 물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인 지역간 불균형문제는 최근에는 경제사회의 하위부문간, 대소기업간, 그리고 소득계층간의 문제보다 의미가 줄어들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지역의 불균형이 아니라 인간 삶의 불균형이 문제다. 물론 지역이 인간 삶의 여건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고 있지만, 이동이 자유롭고, 한 지역 이상에서 생활하는 현대 생활에서는 인간 개개인이나 가족의 경제적, 사회적 삶이 훨씬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대도시에서도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을 상기하면 문제의 본질이 공간에 있기 보다는 개인의 삶에 있다는 주장이 훨씬 합리적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간중심의 불균형을 국가 아젠다의 최고위에 놓은 것은 정책체계상으로 볼 때 최적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부에서 수도이전을 대선용 전략으로, 10여개의 지방도시 개발을 각종 선거의 표 잡기용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60년대 로젠쉬타인-로단(Rosenstein - Rodan)이나 넉셔(Nurkse) 등은 균형발전이론을 주창했다. 윤리적 측면에서 이들의 논리를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도국 중에서 지역 균형을 중심가치로 두고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그들 이론의 설명력과 예측력을 감소시킨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성장이 모든 공간에서 똑같이 진행되지 않는다’ 는 것은 하나의 원칙(principle)이다. 지역균형을 가장 강조한 프랑스의 Perroux가 발견했다. 그의 성장거점 이론 (Pole de Croissance: growth pole)은 일정지역에 생산시설이나 외자를 유치함으로 경제성장의 거점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주변지역은 물론 국가적 발전을 기도하자는 주장이다.

본격적인 불균형이론은 Hirschman이 주창했다. 그는 국가적으로 어떤 분야에 대한 투자가 발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어떤 공간정책이 전국적으로 발전효과를 확산할 것인가 하는 점을 규명하고자 했다. 투자로서는 전후방연관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s) 투자를 꼽았는데, 도로, 철도, 항만, 전기 및 가스 등과 같은 물리적 하부구조가 이에 속한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이러한 투자를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에 도움이 되고 다른 부문(sector)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했다. 최근에는 도시의 정안성(靜安感: amenity)을 풍부하게 개발하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이나 유럽 각국을 보면 이러한 투자가 지역의 균형발전에 미치는 효과가 큼을 알 수 있다. 우리도 한 때 양여금제도를 통해 지방도로나 지역개발사업에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덜 개발된 지역의 발전을 유도한 적이 있다. 그 다음으로 지역의 잠재력을 평가해 거점지역으로 지원하거나 경제특구와 같은 접근을 하면서 공간적으로 해당지역의 발전의 씨앗을 심고 이후 발생하는 효과를 주변지역으로 확산하자는 주장이다. 우리도 이러한 전략을 활용했고, 지금까지도 각종 특구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 세계화 추세를 고려해 Richardson 같은 학자는 영국이나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수도와 그 외 지역으로까지 2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국가경쟁력은 물론 세계도시연계망에서 경쟁에 나설 수 있다고 한다. 서울이 홍콩, 상해, 북경, 동경, 오사카와 경쟁할 수 있으려면 수도권의 기능고도화와 시장친화적인 발전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상으로 하지만, 현실적인 경제사회적 자원의 한계와 정책에너지의 부족을 고려하면 잠재력이 높은 제한적인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발전을 기도하는 것이 정책의 순리다. 실제 각국의 예가 바로 이러한 이론적 흐름을 만드는 재료가 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불균형을 시정하자는 논의는 이미 발전한 지역의 잠재력을 저상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은 소지역단위까지도 균형발전을 지향하고 광역지역(예를 들면 도 단위)의 균형을 시도한 점에서 균형발전론에 경도된 점이 분명하다. 잠재력이나 경쟁력보다는 정치행정적으로 혁신체제를 지역적으로 안배한 것은 기계론적인 혹은 산술적 단순 평등의 소치이다. 현재 70여개가 넘는 클러스터 관련정책이 여러 부처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혁신창출에 대한 기여도와 같은 시장적 요소나 경제적 요소가 아닌 행정편의적 선택과 정부중심적 추진이라는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일 선상에서 혁신도시를 추진한 점은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소지역을 동시에 고르게 발전시킨 다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하다. 수도권의 대항마를 길러서 수도권의 팽창과 집중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작은 규모의 전국적 평준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부 지역의 대도시를 더욱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국제적 기준으로 상당히 거대도시가 된 수도권 이외의 5개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지 않으면 현실적인 의미는 없다. 국민적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목표로 했다면 소규모 지역이나 중규모 지역을 단위로 정책을 개발했어야 한다. 혁신도시라는 신도시를 만드는 것에는 거점적인 인식도 깔려있다. 그러나 전국의 산술적 평준화 지향이라는 인식 아래서 다수의 소지역을 활력사업 대상지역이나 낙후지역으로 선정해 국가적으로 중앙정부의 각 부처에서 동시에 지원하는 등의 접근은 균형발전론에 치우친 것이다. 초기 정책목표는 서울의 집권과 집중을 완화하자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정책은 광역단위의 중소규모 거점과 낙후지역 지원 정책으로서 정책의 목적과 수단 간의 정합성이 매우 떨어진 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로서 비수도권 지역민의 삶의 질과 지방의 경쟁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상정하는 경우에도, 일시에 다수 지역을 선정해 전면적인 사업을 벌이는 것은 균형에 너무 성급하게 치중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정된 재정여력을 감안하고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정책의 목적을 언제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시설을 강제로 옮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적으로 현시된 시장의 힘(market force)을 역행하는 행위다. 특히 지구화가 진행된 시점에서는 해당기관의 경쟁력을 훼손시킴은 물론 이전이 일시에 다수 기관에 이르는 경우에는 이미 경쟁력을 구비해가고 있는 지역에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타당하고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은 자연적인 변화를 상당 폭 수용하는 데서 나온다. 정책주창자의 정치적 주창과 그들의 지식과 분석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현명한 경제ㆍ사회적 주체들이 선택하는 과정과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현대 국가의 슬기이고 지혜이다. 국가계획의 시대는 이미 갔다. 국가 개발초기에 그리고 정부 영향력이 사실상 절대적이었던 시대에는 소수의 합리적인 분석이 좋은 효과를 실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도를 옮기는 결정이나 다수의 공공기관을 전국적으로 산재시키는 결정은 그러한 유의 결정과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폭넓게 진행된 선후진국 간의 지구화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2개의 풍선이 맞물려 있는 현상으로 국토발전문제를 이해하는 큰 오류에 빠져있다. 소수가 억지로 수도권을 누르거나 다른 이유들로 수도권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조짐이 보이면 인간, 자본, 정보, 문화가 다른 국가의 대도시로 옮겨가는 것이다. 첨단기술은 이동의 예민성이 더 높다.

세계도시 체계론이나 세계도시 네트워크론(global urban network)은 지구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별국가의 도시들이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가를 밝혀주는 이론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지구화가 대도시들의 연결망으로 이해되면서 구체적으로 세계 모든 국가의 대도시, 중소도시, 그리고 배후지역에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도시기능면에서 볼 때 도시마다 다단계의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존재하는데,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사다리 상위층으로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 정책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 때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가발과 섬유 그리고 신발을 생산해 선진국의 고도화된 대도시로 수출했고, 농어촌지방에서 이들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집중 공급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수도권이 아직 제대로 구비하고 있지 못한 기능은 첨단제조, 국제적 비즈니스, 관광, 패션과 문화, 금융, 국제정치적 기능과 같은 사다리의 맨 꼭대기 기능이다.


(2) 사실적 차원


세계적으로 공간계획과 이전정책을 주요한 정책으로 착목한 것은 2차 대전 이후다. 국가지도자들이 교통과 통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간의 공공서비스와 재화의 배분에 대한 불평등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80년대까지도 많은 국가들이 지역간의 불균형 발전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다양한 정책도 개발되었다. 어떤 지역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한 정권도 많았다. 미국의 경우 서부와 중부(세인트 루이스)의 개척, 남미 몇 국가의 낙후지역 개발과 브라질의 수도이전, 최근 중국의 내륙개발과 독일의 동독지역 개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는 전략과 정책수단의 선택에서 대단히 신중한 접근을 했다. 특히 단기간에 수도를 옮긴다든가, 어떤 지역에 이미 있는 시설을 옮기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몇 개국에서 수도를 옮긴 경우도 있다. 미국과 호주가 그랬는데 20세기 초반의 일이고 이민 등으로 도시가 막 성장을 시작한 때여서 상황은 전혀 달랐다. 경제파탄과 정치혼란이 극심한 때 혁명정부가 브라질의 수도를 1960년대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브라질리아로 이전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총체적 실패로 평가 받았다. 정보통신과 교통기술이 첨단화된 21세기에 한정된 기능만을 갖춘 도시를 인위적으로 건설하는 예는 극히 제한적이다. 기존 대도시 옆에 과천과 같은 신도시를 만들어서 기능을 고도화하는 예는 있다. 말레이시아의 신행정수도가 그것이다.

독일 콜 수상이 추진한 베를린으로의 2/3 정도의 수도기능 이전은 수도의 신설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가 남북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동독 지역에 대한 균형발전 전략도 유발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정부의 지원금이나 세제혜택만이 주요 관심대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동성이 대단히 높아진 21세기 초반의 지역균형발전은 단기에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단 하나의 투자가인 정부만으로는 균형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공간정책을 체계적으로 시도한 경우는 프랑스와 일본이 눈에 띤다. 국가중심적 계획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에서는 양적인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도시 이주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자 했다. 그래서 DATAR라는 경제활동의 재분배와 지역공간개발 기구를 두고 영토관리(amnagement du territori)를 적극 시행했다. 1955년에 시작된 지방분산위원회의 지방이전 사업은, 1963년에 와서는 파리와 균형을 이루는 8개 균형도시정책(metropoles d'quilibre), 1970년대의 뉴타운 정책, 그리고 1980년대의 정치적 분권화에 이어, 1990년대 크레송 정부 때 약 270여개의 3만 4천여 명을 지방의 테크노 폴리스(technopolis) 등에 이전 시켰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 초부터 균형발전을 지향하는 국토종합계획제도를 도입해 1966년까지 15개 신산업도시를 선정하고, 6개 공업특별정비지역을 지정했다. 이케다 수상이 구상한 3대 대도시권의 태평양 벨트가 발전했고 일부 도시로의 집중은 계속되었다. 드디어 1979년부터 수도를 이전하려는 연구에 착수했고 1988년 수도이전을 중심으로 한 다극 분산형 국토형성 촉진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1983년 통산성 등에서 테크노폴리스 구상을 발표했고, 산ㆍ학ㆍ주(産ㆍ學ㆍ住)가 일체화된 연구산업 개발기반을 조성하려고 테크노폴리스법을 만들어 26개 지구에 일종의 혁신도시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역의 시험연구소 등을 근거지로 접근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1999년 고도기술공업집적지 개발촉진법을 폐기했다. 그 후 수도권의 200개 공공기관 중에서 50여개를 옮겼지만, 2002년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포기했다. 그것도 츠쿠바에 국립 연구소를 옮긴 것에 불과했다. 노조의 반대도 있었고 재정능력이 따라가지 않았으며 효과가 미미하다는 등 이전 반대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물론 프랑스와 일본 이외에도 과학도시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려고 한 예는 스웨덴 등지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대덕벨리도 바로 그 유형인데, 아직도 기업체가 적어서 클러스터(cluster)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전 경제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시설의 단순한 집중만으로 해당지역에서 혁신이나 연구개발의 시너지(synergy)가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집결과 동시에 관ㆍ산ㆍ학ㆍ연(官ㆍ産ㆍ學ㆍ硏)이 수평적인 네트워크(heterarchy)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업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관련기관의 유기적 연결망이 생겨야 소위 클러스터라고 부를 수 있다. 대기업 연구개발과 생산시설의 입지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구로 디지털단지와 같은 좁게 밀집된 지구의 경우 7,200개의 IT관련 업체에 10만이 넘는 기술진이 근무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업간 또는 기술 영역간에 융합과 결합을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다. 나아가 인적 자원이 유통되어서 시너지가 발생하기까지는 복합ㆍ정교한 상위 관리역량이 발전해야 한다. 대덕특구의 경우도 이 문제가 쉽지 않음을 모두 알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역혁신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의 형성은 시장의 힘을 정책적으로 보조하는 선에서 정교화 되고 있다. 주로 지역의 대학이나 은행이 초기 주도권을 잡고 자율적이며 창의적인 혁신을 시도한다. 시장의 힘에 의해 형성된 혁신가능성 높은 도시공간을 발견해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순서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일본은 어떤 효과를 얻었고 최근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있는가? 2006년 프랑스의 DATAR는 폐지되었다. 대신 정보ㆍ교통기술의 발전과 EU통합이라는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는 지역경제의 안정화와 지역간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기구인 DIACT가 탄생했다. 국가 계획적, 물리적 지역배치정책을 폐기하고 지역의 다양한 자율적 구상과 요구를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 이전에 이미 1990년대부터 대도시경제(metro-economy) 혹은 거주경제(residential economy)의 중요성이 높아짐을 깨달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후기산업사회적 대응방식은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인식했다. 공간의 평등보다 인간의 평등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DATAR는 2003년 정책의 대전환을 진단하면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러서 지방의 삶의 조건은 이미 근대화되었고 현대인의 삶에는 도시와 농어촌의 일상이 통합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일본은 어떤가? 수도권의 과밀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지방의 이전을 통한 균형발전 효과도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일극집중을 걱정했고 이에 따라서 수도권의 정비를 목적으로 한 입법은 물론이고 수도를 옮길 계획까지 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두 포기했다.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에서 ‘지역의 개성’ 있는 (매력 있는) 발전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했다. 2001년 대도시중심정책과 지방분권정책이 2대 전략임을 정치권이 분명하게 합의했다. 우리는 이들의 경험을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오랜 경험 속에서 발견한 것은, 이제 지구화의 급속한 진전과 문화 및 금융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수도권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국가는 대도시를 통해 경쟁한다는 점도 크게 고려되었다고 한다. 동경이 뉴욕, 런던과 더불어 3대 국제금융센터로 계속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최근 동경과 오사카에서는 인구집중 유발을 우려해 규제해왔던 일부 제조업을 허용하고 있다. 도시의 발전에는 제조업이 필수적이라는 원리를 다시 깨우친 것이다.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도 개정했다. 동경에서부터 오사카까지 펼쳐진 산업의 배치가 이상에 가까운 클러스터이기 때문에 이를 재배치하기 보다는 고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제와 대책: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통신과 교통기술, 그리고 도시관리 기술의 발전으로 대도시의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거대도시끼리의 지구적 경쟁체제에서는 대도시의 기능고도화가 대단히 중요한 국가경쟁전략이 된다. 따라서 대부부의 선진국은 폐쇄체제를 상정한 한 세대 이전의 균형논리로서 추진했던 지역분산 노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행정도시가 건설되어 정부 부처의 이전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약 150km 거리를 둔 두 도시공간에서 국가의 행정이 추진되어야 할 상황이다. 어려운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상당한 낭비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이유도 없이 또 인근지역의 개발효과도 없이 나아가 수도권의 경량화도 못하면서 국가업무를 두 곳에서 나누어서 봐야 하고 살림을 양분해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괜한 일을 한 것임이 분명한데, 당면과제는 이를 어떻게 수습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추세와 규모를 볼 때 새로운 행정시에 인구 50만이 모여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처음에는 2-3만이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직장 때문에 이주해 살 것이다. 20년이 된 과천 인구가 7만을 조금 넘는다는 점과 과천은 부동산이 비싸 거기서 사는 공무원은 소수라는 점을 추정과정에서 대안적 미래구상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신행정도시를 단층제의 광역지자체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식의 논의는 너무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기관의 이전을 최소화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있는 공공기관의 일부를 여기에 이전하는 안을 기준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정책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학교와 연구기관의 일부를 추가하는 사업은 자연히 부각될 것으로 생각한다. 서비스 기능 중에서도 제조업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사업체들도 생겨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계획만 있는 10개의 혁신도시와 6개의 기업도시도 문제다. 2005년 정부와 시ㆍ도 그리고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이전 공공기관 이행 기본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수도권에 있는 생산시설이 아닌 업무시설 10여개씩을 모아서 만드는 혁신도시는 소비도시가 될 것이 뻔하다. 생산기능이 없는 도시는 발전하기 어렵다. 아울러 기존 시가지와는 격리되어 건설되는 업무시설과 주거지역에는 소위 해당지역의 잘 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 공공기관의 직원과 가족을 제외하고는 다른 기존 시가지역의 인구가 이동해야 하므로 기존 시가지의 공동화 문제도 생길 것이다. 문제는 소규모 공공기관으로서는 혁신의 주체들은 물론이고 그들 간의 연계에 의한 혁신시너지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매우 관료적이어서 협력의 시너지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최근 나주로 이전 대상이 되었던 한국전력이 주주의 의견을 들어서 정부의 조치에 역행하는 듯한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정부는 선매각 후 이전의 원칙을 천명했지만 이러한 원칙에 반하는 내부의견을 공개한 것이다. 그 사유는 정부가 지방이전 공기업에 주는 세금감면 혜택과 사내유보금으로 5천억의 이전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 구태여 서울 본사를 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주주의 50%가 민간투자자여서 회사가 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자산을 매각할 수 없다는 절차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일시에 전국을 지역혁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왜 혁신도시를 10군데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30개 정도 만들면 전국이 더 조밀한 혁신도시가 되고 한국 전체가 혁신되는데 말이다. 탁상행정과 정치적 균배의 전형이다. 이미 언급된 혁신도시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정치적으로 새로운 합의형성을 해야 한다. 기업도시는 주체가 기업이므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제2단계 지역균형발전정책을 보다 현실에 부합하게 조정해 육성할 필요는 있다. 인위적 노력은 역시 한정된 효과를 낳겠지만, 그래도 지역균형발전에는 기업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기업이 이전하는 것도 단순한 지역의 이동에 불과하고 그 산출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국가적으로는 왼쪽 주머니에 있던 것을 오른쪽 주머니로 가는 것과 같다. 기업이 옮겨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되려면, 옮겨간 지역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옮겨가는 기업이 새 지역의 산업구조나 사회적 환경을 잘 활용해 기업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질 높은 근로자의 공급에 문제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며 국제화되는 비즈니스 여건도 손색이 없이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 효율성이 상실된다.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유인과 흡입효과(pull effects)가 중요하다. 정부보조는 오히려 부차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지방의 이전에 조세유인이 별 효과가 없다는 실증적 보고도 적지 않다. 경제는 자유로운 선택이 가장 효과적인만큼 경제주체인 기업의 이전도 기업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과학적으로 도와주는 선에서 국가의 임무가 매듭지어져야 한다. 따라서 잠재력이 없는 지역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하면서 지역민을 해당 지역에 계속 잔류시켜 빈곤을 지속시킨다는 비판에 민감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 가꾸기 사업이 이러한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수도권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현 정부는 수도권의 인구를 2005년 인구분포인 47.5%로 인구의 정체가 시작되는 2020년도에 유지하겠다는 성장관리(growth management)를 구상하고 있다. 행정도시의 건설이나 공공기관의 이전 없는 상태에서는 수도권의 인구가 2020년에는 52.3%, 2030년에는 53.9%까지 육박하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지금보다 약 250만-300만의 인구가 수도권에서 더 증가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수도권에 이 정도의 인구를 더 추가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삶의 질이 낙후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현재 수도권에서 집중의 비용이 효과보다 크다는 증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익이나 정책결정권에서 멀어진 데 대해서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방의 여건이 악화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인위적 분산이 아니고, 잘 살려고 자율적으로 나서는 지방에 재정을 보강하거나 그들의 결정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수도권도 역사적 자율의 범위 내에서 재구성하고 기능을 고도화해 세계도시들과 경쟁하는데 다른 나라 중앙정부 이상으로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정부의 지역균형정책은 퇴행의 정책으로, 정책으로 분류하자면, ‘-1G 정책’ (한 세대 뒤로 간 정책, 한 세대 이전의 인식에 기초한 정책)에 불과하다.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군사정부나 프랑스의 초기 국가계획체제처럼 백지계획으로 뜯어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망상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정책이다. 인구의 이동이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인구의 불균형을 초래하지만, 소득과 문화 등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그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아닌가? 1964년 대도시인구집중방지대책, 1969년 대도시 인구 및 시설조정정책, 1970년 수도권 과밀억제기본지침, 1972-81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1972,73년의 대도시인구분산정책, 1977년에 시도한 임시행정수도건설특별법, 1985년의 대전청사건립, 노무현정부의 신행정시 및 공공기관의 재배치 정책 등은 이제 수명을 다한 정책이다. 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국토균형정책을 최근 평가한 것이 참고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국토균형발전정책이란 것은 40년간에 걸친 자민당 장기집권의 수단이었고, 지방의 통제를 통해 중앙의 의존을 지속시켰고, 공공투자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데 주요하게 작동했고, 그 결과 지방의 자생력을 약화시키고 동경으로의 일극집중을 강화시켰다는 것이 일본 지역경제학회의 중론이다. 일본의 정권적 차원에서 만든 꿈같은 계획서만 보고 유사한 정책을 복사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정책개발능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정책의 효과는 학자들의 사후 분석적 연구결과를 종합해야 밝혀진다. 수많은 국민의 현명한 개인판단(individual choice)과 시장의 힘(market force)을 바로 읽지 못하고, 정반대를 축구하는 백지계획 위에서 억지로 분산을 시도하는 정책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지방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넘기고 실질적인 지역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각종 제도를 도입하고 지방의 인력을 고도화하면서 경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동시에 대도시의 첨단화와 고도화를 적극 성원해야 한다.

수도권의 기능을 제고하는 것이 우선되는 정책목표인가 또는 비수도권의 기반 개선이 우선인가 하는 단순논리 속에서 정책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는 정책적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더욱이 개방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국내적 시설과 종사자의 이전에 관심을 갖는 정책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앞으로 정책수단은 물론이고 정책방향까지 포함하는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시장의 힘은 분명히 수도권의 집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적 손실(social loss)을 축소하는 길이다. 폐쇄체제를 상정한 단순 분배적 정책으로서는 국가의 전반적 발전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고 사실상 지방의 균형발전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의 확산과 집중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다. 시장의 힘과 현명한 사람들의 선택은 오래 전부터 수도권과 지방간의 내용상의 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이미 공간의 필요성이 크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생산물의 경우 수도권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대규모 공업용지가 필요한 기업은 지방의 공단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한 예 중의 하나가 구미가 우리나라 수출액 10%를 생산하고 있으며 제3공단을 건설해 입주가 시작되고 있음에서 시장이 가지고 있는 지방 분산의 힘을 알 수 있다. 지방공업 도시의 소득이 가장 높은 점도 입지 내용물의 상호유전과 산업생산물의 고도화에 기인한다. 따라서 수도권으로는 수도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성격의 활동의 추가적인 집중이 전개될 것이며, 지방은 지방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성격의 활동으로 분산이 전개될 것이다. 현재의 추세를 그대로 상정하는 경우에도 2015년 정도까지 자연적으로 늘어날 인구를 포함해 수도권에 약 250만 정도의 인구가 추가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인구의 폭발’과 같은 현상은 없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인적자원의 고향회귀(U-turn), 삶의 질의 추구로 인한 인구의 분산 등의 현상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태안지역이나 기타 산촌 및 해안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휴양시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1년 내내 한 곳에서만 활동하지 않는다. 생산활동이나 소비활동도 마찬가지고 거주경제가 도시와 시골로 분산될 것이다. 일주일(7일)의 일부는 대도시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시골에서 살 사람들도 적지 않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미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을 옮기는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5공 때 서울의 저소득층 사람을 지방에 이주시켜 정착시키겠다던 ‘지방이주사업’이 떠오른다. 완전히 실패한 작품이었다.


이달곤 / 서울대 교수, 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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