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4년간 여성정책과 여권신장의 관점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성계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호주제폐지가 관철됐고,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됨으로써 이미 제정된 성폭력방지법ㆍ가정폭력방지법과 더불어 이른바 3대여성인권법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밖에 성(性)인지 예산·성별영향평가 등, 여성정책의 주류화(主流化)를 위한 다양한 제도들도 도입됐다. 또 노정부는 출범직후 여성장관 4명을 기용했는데, 파격적인 인사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가하면 2006년에는 첫 여성 국무총리가 임명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계는 노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하여 ‘평균점 이상’으로 평가하는 등, 매우 고무되어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후보시절 공약을 통해 ‘여성이 행복한 나라’를 기본정책방향으로 제시할 정도로 여성정책에 적극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13개 분야로서 보육료 절반, 50만개 여성일자리 창출, 남녀고용평등제도 정착,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 정치 및 공직분야 여성 대표성 제고, 성매매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여성농어민·장애인·노인의 복지향상, 모성보호제도 강화, 교육·문화·미디어의 양성평등문화 정착, 여성과학기술자 지원, 평화·통일·환경·국제협력 분야의 여성참여 확대, 여성부 강화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공약을 바탕으로 노정부 인수위원회도 ‘양성평등사회 구현’을 목표로 고용상의 남녀차별 해소, 여성의 대표성 제고, 호주제 폐지 등 양성평등한 가족정책 추진, 및 성매매 방지를 통한 여성의 인권보호 등 4개의 과제를 설정했다.
그렇다면 여성계가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노정부 여성정책의 내실은 과연 어떠한가. 노정부 들어와 여성의 사회진출이 눈에 띨 정도로 현저해진 것은 사실이다. ‘최초의 여성 000“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대거 탄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양적으로 의미있는 실적임에 틀림없지만, 내실있는 질적 성장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한 점검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호주제폐지와 성매매금지법등은 유림 등, 많은 반대자들과의 격렬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통과된 것으로서 지금도 그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양성평등과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와 개혁은 단순히 여성계나 여성주의(feminism)의 입장을 넘어서서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성문제는 단순히 ’남성주의(chauvinism)‘나 ’남성중심접근법‘과 대립되는 ’여성주의‘나 ’여성중심접근법‘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법을 강구하기 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공동선(common good)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정책의 연장선상위에 서있는 노무현 정부
노정부의 여성정책은 허허벌판에서 결실이 맺어진 것처럼 백지상태에서 획기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주화이후 출범한 역대정부들이 추구해온 여성정책과 양성평등정책의 연장선상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14대 김영삼정부(1993~1998년)의 경우, 이전 권위주의정권하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성정책부문에서 기본방향을 세우고, 여성 관련 법 제정과 개정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실적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추려보면,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1994년 여성발전기본법 제정, 1996년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 도입,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이다. 여기에는 정부 스스로 의지를 갖고 추진한 부분도 있지만, 유엔 차별철폐협약과 베이징 세계여성회의 행동강령 등이 발표됨으로써 이들과 친화적으로 국내법을 정비해야 했던 필요성이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
그 후 15대 김대중 정부(1998~2003년)시절에는 여성계가 오랫동안 숙원사업으로 생각했던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한 데 이어 여성부를 만들었고, 여성정책의 주류화를 위한 본격적인 시도에서 5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두었다. 여성정책과 관련, 처음으로 ‘성(性)인지적’ 접근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여성정책 성과는 ‘돈 안들인 만큼의 성과’라는 비판을 여성계로부터 받기도 했다. 중요한 것들을 보면,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 설치,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직장 내 성희롱 조항 신설), 2001년 여성부 신설 등이다.
16대 노무현정부(2003~2007년)가 들어오면서 여성계와 유림 등, 비여성계, 혹은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오랫동안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이 입법화되었다.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이야말로 노무현 정부의 최고 업적이라고 여성계가 꼽고 있는 것들이다. ‘돈 안드는 여성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된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실적들이라면,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2005년 민법 개정-호주제 폐지, 2005년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 2006년 성(性)인지 예산제도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양성 평등한 정책 개발과 집행을 유도하기 위한 사업인 성별영향평가제가 도입되고, 국제결혼으로 인한 이주여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된 것도 노정부하에서의 성과다. 특히 여성정책의 주무 부처인 여성부는 노정부하에서 눈에 띄게 세력이 확장됐다. 2004년에는 보건복지부 소관이었던 보육업무가 여성부로 이관됐고, 2005년에는 아예 가족업무까지 총괄하는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됐다. 여성가족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족정책과 청소년정책의 연계를 주장하며 국가청소년위원회와의 통합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두 부처가 합쳐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대다수 여성 단체들도 여성 업무와 청소년 업무의 차이점을 주장하며 통합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조직 개편을 차기 정부로 미룰 것을 요구하는 야당의 반대로 두 부처의 통합안을 담고 있는 정부조직법의 국회통과가 만만치 않다. 그런가하면 정부의 여성정책과 관련, 여성계로부터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육 위주의 여성정책이 추진되고 있고, 여성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차별 개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좀더 엄밀한 평가를 위해서는 여성계의 입장을 넘어선 시각, 즉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서 사회통합이나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양성평등이란 여성주의의 관점을 넘어서는 통합적 가치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에 대한 평가
(1) 쟁점법안들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시행, 여성가족부 출범 등, 참여정부의 여성정책에는 상당히 진취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 제정이라는 여성계의 숙원 두 가지를 한꺼번에 풀었다는 점에서 노무현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계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호주제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성계와 유림이 극한적으로 대립해왔던 ‘뜨거운 감자’였다. 여성계는 호주제야말로 남존여비와 가부장제의 상징이며 관습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기존 가족제도의 존치필요성을 굳게 믿어왔던 유림측에서는 호주제를 폐지하기보다는 문제가 되는 법조항이 있다면 관련법조항의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쟁점사안이었던 호주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노정부 출범 직후 여성부 장관이 호주제 연내 폐지를 언급하면서 힘을 얻게 되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보수ㆍ유림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호주제 보존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필요한 부분의 일부수정을 주장하는 등, 호주제를 둘러싼 격렬한 찬반 대결이 곳곳에서 시위, 집회로 이어지는 등, 약 2년 동안 양 진영 간 힘겨루기와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2월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데 이어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호주제는 폐지로 그 가닥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호주제를 대체할 새로운 신분등록법의 입법이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예정대로 2008년부터 호주제가 사라질 수 있을지 불확실성의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년 전 개정된 민법 부칙에는 2008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신분증명제도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동안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여야의 정쟁이나 관장기관의 관할다툼의 범주가 아니라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강도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즉 유림과 적지않은 사람들이 호주제폐지의 정당성에 수긍하지 못한채 반대의사를 굽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 중인 호적법 대체법안은 민노당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고와 증명에 관한 법률안',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신분관계의 등록 및 증명에 관한 법률안', 정부(법무부)가 발의한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 3가지다. 이들은 본적을 대체할 기준등록지(준거등록지) 도입을 비롯, 호적등본을 대체할 증명서 발급 방식, 증명서에 포함될 신분사항에 대한 정보 내용, 호적사무 관장기관 등에서 쟁점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현행법령 중 아직까지 '호주'란 단어가 들어 있는 법령이 시행규칙을 포함해 모두 40개가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제의 법령들은 대부분 호주제 폐지 이후에 개정된 시행령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호주제폐지에 관한 논란이 법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사회적 합의는 물론, 최소한의 사회적 양해도 도출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바에야 호주제전면폐지보다 일부조항수정이 오히려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마땅한 대안도 없이 호주제폐지를 업적으로만 선전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안이 없다면 호주제폐지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보다 ‘파괴적 파괴(destructive destruction)’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2004년 9월에는 성매매 업주와 성 구매자의 처벌 강화와 피해여성의 인권보호를 골자로 한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방지법)이 통과됨에 따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 초기 성매매 업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기도 했고 관련여성들이 시위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성매매업주들이나 일부 관련여성들의 반대는 ‘밥그릇 지키기’의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큰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일부 지식인들과 경찰계인사들은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는, 이른바 ‘법만능주의’에 대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지적했다. 이 문제는 국민들의 도덕성을 고양시켜 해결할 문제이지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성적 욕구를 억눌러 강간이나 성희롱 등, 음성적인 범죄 발생을 부추킴으로써 현실적인 피해를 보는 건 일반 국민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이에 대하여 여성계에서는 이 법안은 성매매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켜 한국사회의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 잡고, 성매매 피해자를 인권차원에서 바라보아야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옹호하였다.
그렇다면 2년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성매매금지법의 효과는 어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물론 성매매방지법으로 양성적인 성매매는 없어졌지만,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오히려 음성적인 성매매와 해외 성매매가 활개치게 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의 그늘에서 성장하고 있는 성매매는 정부의 감시 밖에서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성매매 금지법으로 인해 섹스관광이라는 신종여행도 생겨나게 됐고 각종 성병이 국내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그 음성적인 피해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과 비판에 직면하자, 2006년 9월 법 시행 2년을 맞아 변종 성매매와 해외 성매매를 엄벌할 근거를 제공하는 법 개정과 제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실효성 논란이 수그러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고 단지 증상만을 없애고자하는 대증요법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법에 대한 의문은 많다. 성착취의 대상인 성매매여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성주의라는 외곬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엄격한 성적 도덕성과 가족윤리의 확립을 위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퓨리타니즘’처럼 어떤 종교적 신념의 발현으로 볼 수 있는가. 혹은 단순한 휴머니즘의 구현차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정화의 한 범주일까.
물론 성매매문제는 암시장처럼 성판매자와 성구매자사이의 자발적 거래일수도 있고 혹은 형식적 자발성과 실질적 강제성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성매매여성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 문제는 사회적 구조를 그대로 두고 성구매자와 성판매자 및 성연결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성매매의 현실이 사라질 수 있는가하는 점에 있다. 분명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적극적 선(positive good)’이나 장려할만한 ‘도덕적 선(moral good)’은 아니다. 그럼에도 성매매가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은 그것이 ‘적극적 악’이기보다 일종의 ‘필요악(necessary evil)’과 같은 현상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금지법을 만든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구조와 성매매의 필요악적인 성격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왔는지 의문이다. 그러한 고민없이 단순히 사회의 성적 청결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도덕주의(political moralism)’의 발상이라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금지법이 부도덕한 성매매의 문제를 법적 강제에 의해 한꺼번에 일소하고자하는 ‘사회공학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 보다 범위를 줄여 미성년여성들의 성적 착취나 성매매업소안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갈취와 폭력 그리고 그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진지한 고민 등,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출발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최초의 여성’과 ‘여풍’의 허와 실
남성과대대표와 여성과소대표로 특징지어지고 있는 정치권에서 여성이 괄목할 만한 약진을 한 것도 노무현정부하에서 현저하게 엿볼 수 있다. 2004년 실시된 4ㆍ15 총선을 통해 지역구 10명, 비례대표 29명 등 39명의 여성의원이 17대 국회에 진출함에 따라 여성의원의 비율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인 13%로 뛰어올랐다. 15대 국회에 비하면 4배 이상, 16대에 비해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서 여성의원이 증가한 것은 주요 정당이 비례대표의 절반을 여성에게 배분한 것에서 그 주요 요인을 찾을 수 있다. 2006년 치러진 5ㆍ31 지방선거 역시 여성 비례대표 확대에 힘입어 여성 의원이 전체의 14~5%에 달하는 총 525명이 당선됨으로써 여성 지방의원 비율 두 자릿수 시대를 열었다.
그런가하면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고위직에 이른바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첫 내각에서 강금실 법무·한명숙 환경·김화중 보건복지·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 여성 장관이 넷이나 임명되었다. 2006년 4월에는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청와대는 최초의 여성 대변인에 이어 최초의 여성 홍보수석, 최초의 여성과학기술보좌관도 기용했다. 청와대와 정부를 벗어나서도 ‘최초의 여성’ 등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06년 6월에 최초의 여성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김홍남 관장은 3년 전 최초의 여성 국립민속박물관장에 뽑혔고 역시 2006년 1월 최초의 여성 국립극장장도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뉴스 중심에 떠올랐던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2006년에는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 내정으로 또다시 뉴스의 인물이 됐다. 그가 헌법재판관을 사직하고 헌법재판소장을 지원한 것은 결국 위헌이라는 야당의 문제제기앞에 낙마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통령과 코드 인사라든가, 나이와 경력에서 너무 파격이라는 이런저런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여성’이라는 상징성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여풍에 대한 미래의 전망도 분홍색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2012년이면 정계ㆍ학계ㆍ법조계의 여성리더비율이 20%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보다 두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5급이상 여성공무원비율은 15%정도, 대기업임원비율은 3.5%에서 5%대로 소폭 상승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여풍을 예고했다.
그러나 노정부 ‘최초의 여성들’이나 ‘여풍’이 투영하는 이미지에 비해 정작 현실 속 ‘여성 파워’에 내실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른바 외화내빈(外華內貧)이며, 모래성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파워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2006년 7월 노동부가 발표한 여성고용현황을 보면 정부투자기관, 정부산하기관 여성 고위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민간기업의 임원급 여성 비율이 3.48%인 데 비해 투자기관은 1.02%, 산하기관은 2.96%에 그쳤다. 정부투자기관 14곳 중 여성임원은 철도공사 1곳에 1명이 있을 뿐이다. 정부산하기관이 93곳인데 그 중 여성임원이 단 1명도 없는 곳이 82곳이나 됐다. 미래의 임원 후보인 과장급 이상 관리직에서도 민간기업은 여성 비율이 11.2%인 데 비해 정부투자기관은 여전히 1.7%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파워의 기반을 약하게 만든 또 다른 요인으로 심각한 여성의 빈곤문제를 들 수 있다. 빈곤문제를 남녀별로 나눠보면 3분의 2는 여성이며, 특히 가난한 노년층의 절대다수인 80%는 여성이다. 가계를 책임지는 여성가장은 5명중 1명꼴인데 반해 빈곤가구중 여성가장의 비율은 절반정도나 된다. 빈곤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저소득과 빚, 생활고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며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의 부담을 떠안은 채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하고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초생활수급자등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전체여성가장의 30%에 그치고 있다. 직업훈련을 받으려 해도 생계비지원이 월 40만원에 불과해 당장 생계대책이 없는 여성들의 경우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직업훈련을 받는 동안이라도 보육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산전후 휴가급여를 보장하는 일은 시급하다. 여성이 단지 성차별로 인해 사회안전망이나 취업 등에서 차별받거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게 해서는 곤란하다.
여성의 빈곤이나 저조한 여성고용현황을 볼 때, ‘최초의 여성’뉴스나 ‘여풍론’은 화려한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이 디디고 있는 땅은 결국 황무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최초의 여성’ 정책이 갖는 의미가 사소한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로는 상징성에 불과하거나 ‘전시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일까. ‘최초의 여성’ 정책이 상징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만큼 부실화될 위험도 커진다. 노정부가 여성 리더십을 선택할 때마다 항상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장관들은 다 떠나 버렸다. 이처럼 적잖은 ‘최초의 여성’들이 파격을 내세워 등장했다가 파열음을 남기고 퇴장했다면, 그것은 능력에 의한 발탁이 아니라 이미지나 상징성을 우선한 발탁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일까. 혹은 정치적 쟁점을 재빨리 잠재우려는 정략적 계산이 있었던 것일까. ‘최초의 여성’이나 ‘여풍’을 앞세워 상징성을 극대화하거나 정치적 쟁점이나 정책적 쟁점 등을 묻어버리고 가려는 시도가 실패하면, 최초여성은 초보여성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여성포용정책이 아니라 여성리더십의 약점만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까봐 걱정이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본인의 개인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여성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일반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WEF 보고서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세계양성평등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양성평등도는 놀랍게도 조사대상 115개국 중에서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92위이다. 특히 여성계는 2005년에 호주제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을 국회 통과시키면서 나름대로 양성평등 문제에서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은근히 자부해 왔는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로 충격을 준 결과가 된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놓고 보았을 때 한국은 그야말로 여권 불모지와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평가결과와 함께 우리보다 상위에 위치한 나라들을 살펴볼 때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몇몇 국가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상식을 무색케 할 만큼 파격적이다. 필리핀은 세계 6위로 랭크되어 있어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여권선진국임을 자랑하고 있다. 또 태국이 40위, 인도네시아 68위, 말레이시아가 72위로 공히 우리에 비해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하면 중국도 63위로 우리보다 훨씬 상위 순번을 차지하고 있다. 92위의 한국은 요르단, 인도, 네팔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평가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노정부의 자기평가는 물론, 여성계의 호의적인 평가와는 정반대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아마도 WEF가 이번 조사를 하면서 설정한 평가기준이 그동안 한국여성계가 일상적으로 꼽고 있던 그런 것들과 달랐던 것이 원인이었을는지 모른다. 이른바 ‘보이는 차별’이 줄어들었을는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장벽’의 힘은 여전히 크다고 보았기 때문일까. 특정직급이상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과 핵심부서에는 여성을 제외시키는 ‘유리벽’이 가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이런 장벽들은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장벽을 물증으로 입증하기란 힘들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여권이 마치 땅에 떨어진 것처럼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정부는 출범초부터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호주제를 폐지하고 성매매법을 제정하며 여권신장에 힘써 온 결과 이제 명실상부한 양성평등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고 자부하고 있었겠지만, 사실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여권에 장애가 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WEF의 보고서를 준거로 놓고 보면, 그동안 정부가 추진하고 여성계가 야심차게 벌여온 여성운동이나 여성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보이지 않는 장벽’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그 무엇도 명확하게 단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WEF의 평가기준이 한국정부가 추구해온 여권의 비전과 매우 달라서 이런 결과를 내놓게 되었는지, 아니면 자료가 누락되는 등,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번의 WEF결과 보고서를 없었던 것처럼 치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까지 WEF의 결과보고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면 WEF측에서 이번 발표와 함께 그 근거를 설득력있게 자세히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여성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번 조사결과에 대한 해명을 WEF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이번 WEF결과 보고가 잘못된 자료에 기초한 것이라면, 지체없이 수정되어야한다. 혹시 이번의 WEF보고서를 아무런 배경설명 없이 접한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여권후진국이라고 단정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한편 이번 WEF의 결과보고서를 받아들이는 정부의 태도도 매우 실망스럽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한국여성과 여권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나타내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끄집어내면서 자신의 존재의 명분을 쌓는데 십분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참으로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또 “강건너의 불”처럼 한가롭게 바라보는 모습도 유감이다. 노정부와 여성가족부는 이제까지 추구해온 우리여성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겸허하게 반추해보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제라도 서둘러 이번 WEF의 조사결과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다.
좁은 여성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여성정책 필요
노무현 정부는 어느 정부보다도 여성정책에 있어 진취적이고 과감하였다. 호주제폐지와 성매매금지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성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법제화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이야말로 여성계가 노정부의 여성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정부의 여성정책을 여성계의 평가와 다르게 보고자 하는 이유는 그동안 추진해온 여성정책이나 양성평등정책이 일회성의 전시효과나 상징성, 및 남성주의에 대해 반론의 성격을 갖는 여성주의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여성주의자들은 남성위주의 한국사회에 내재한 많은 모순과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데 있어서 공헌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해법제시에 관한 한, ‘통합적’이기보다는 ‘단편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 억압되어온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의 모든 것들을 남성의 특권과 여성의 억압의 범주로만 조망하는 것은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공동체의 제도와 역사, 관습, 및 관행에는 억압이상의 어떤 것, 즉 질서와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유행했던 여성의 ‘작은 발’과 같은 것이나, 조선시대의 여성의 축첩제도나 개가금지와 같은 것들은 분명 억압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공동체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억압과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와는 다른 ‘자기절제’에 기반한 질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질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억압으로 보는 것은 문제다. 차량의 우측통행을 법으로 강제하는 이유는 왼손잡이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통체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또 미터법을 쓰거나 kg단위를 쓰는 것은 평이나 근 등, 전통적인 척도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량형에 일정한 질서를 두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결혼의 신성성이나 가족제도도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 즉 공공복리와 질서유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선진한국을 지향한다면, 적극적이고 새로운 여성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여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필수적이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선진국 수준의 사회문화,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인권고양이나 경제활동 참여를 위한 여성 인력의 활용, 여성리더십의 개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관해서는 한국사회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그 방향성 정립과 구체적인 전략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양성평등이라는 새로운 사회문화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여성정책 목표와 전략수립의 미숙함과 전문성의 부족, 그리고 여성정책 관계자들의 오랜 타성에서 비롯된 진부한 패러다임에 대한 집착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여성적 접근의 패러다임’에서 ‘통합적 접근’, ‘지사적 구호적 접근’에서 ‘실사구시적 접근’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고 시급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통합적 접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롤즈(J. Rawls)가 표현한 것처럼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쓰고 조망하는 방식이다. ‘무지의 베일’의 특성이란 자기자신의 사회적 입장에서 떠나는데 있다. 즉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추진되어온 여성정책은 지나치게 남성중심접근방식으로 생각되어 온 것에 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여성중심접근방식을 추진하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정책이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면,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이점에 있어서는 여성계도 책임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여성연합은 2007년 2월 22일 ‘참여정부 4년 여성정책 평가 및 정책제언 토론회’를 열고, 참여정부 양성평등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토대로 총 11개 항목의 18대 대선 성평등정책 공약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바 있다. 사회양극화 해소 및 빈곤의 여성화 방지, 일과 생활의 조화, 각 분야의 여성 대표성 제고 및 조직문화 개선, 맞춤형 여성인력 양성 및 양질의 여성 일자리 창출, 성평등하고 다양한 가족정책 수립 및 가족지원서비스 확충, 돌봄노동의 사회적 지원 강화, 교육·문화·미디어·사이버 분야의 성평등주의 주류화·일상화, 폭력 예방 시스템 구축 및 인권의식 확대, 지역 풀뿌리 여성공동체 확산 지원, 이주여성·장애여성·소수자 여성 등에 대한 인권보호 및 복지 지원, 성인지적 평화·통일·외교·국방정책 수립 등이다. 물론 이러한 포괄적인 어젠다 제시는 그만큼 한국의 여성정책이 낙후되었다는 반증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쟁취하겠다는 야심찬 발상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룩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이룩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시대정신이 요청하는 양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단순한 전시효과나 백화점식 여성정책의 나열보다는 핵심적인 여성정책을 선택하고 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맥락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여성정책의 근간과 방향, 그리고 내용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보호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의 약자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인식이 요구된다. 단순한 ‘최초여성’ 등장의 부족인지, 혹은 사회진출의 미흡이 문제인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빈곤 등,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고민해야한다. 이와 관련, 여성의 빈곤화를 실제적이고 절박한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여성을 약자로 접근하는 것은 여성정책의 올바른 ‘출발점’이기는 하나 그것이 여성정책의 ‘최종목표’나 ‘종착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여성정책은 약자를 배려한다는 발상에 치중해 국가발전과 사회발전을 함께 고민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기보다는 국가나 사회에 여성의 몫을 요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책임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여성도 남성과 더불어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필요하다. 진정한 양성평등의 사회는 곧 롤즈가 말하는 ‘좋은 질서를 가진 사회(well-ordered society)’로서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는 사회다. 이것은 이제까지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불균형적으로 이루어져왔던 관행에 대한 개혁과 개선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존여비의 관행을 개선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남성에게 가정과 자녀에 대한 좀더 많은 책임을 묻고, 여성에게 사회발전에 대한 좀더 많은 책임을 묻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 가정에 대한 책임을 보다 더 요구하는 것처럼, 여성에게도 보다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균형의 관점에서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육과 가사 노동 등이 사회적 서비스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하며, 책임있는 여성상이 여성의 잠재력 개발과 리더십 개발로 실현될 수 있도록 여성정책은 여성 인적자원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여성문제와 여성정책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특정 집단에 국한되어 있다면, 문제다. 태도가 폐쇄적이면 그 시각이 단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사회란 체계론자들의 용어를 원용하면 '복잡계(complex system)'다. 즉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단순계(simple system)’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혹은 하나의 원인이 여러 가지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는 ‘순환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즉 ‘선순환(virtuous circle)’도 있는가하면, ‘악순환(vicious circle)’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의 전형적인 해법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결국 사회를 ‘단순계’가 아니라 ‘복잡계’로 보아야할 필요성은 양성평등정책이 정교하게 추진되어야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정제도가 여성억압의 원인인 것 같지만, 엄밀하게 점검해보면 복합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매매를 법으로 막으면 오히려 성범죄가 급증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을 하고 점진적인 사회공학적 방식을 시도할 때 여성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여성 문제나 여성 정책을 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고 또 때로는 모순성을 띠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면 낙후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같아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남성과의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해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여성문제나 여성정책에 대한 비전과 이해가 다원주의사회에서 다른 것이 당연한데도, 여기서 무엇인가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치게 여성주의적 담론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만의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통합적 접근의 시너지효과를 차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여성정책은 여성주의라는 거대담론보다는 실제 여성들의 구체적인 필요와 현실적인 욕구에 입각해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입장에 있는, 다양한 시각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계는 여성정책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비효율 담론구조를 극복하고, 통합적이며 생산적인 담론구조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생물학적 존재로서 ‘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중요하며, ‘최초여성’의 등장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여성리더십을 공급할 수 있는 토양을 다지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여성리더십의 토대양성이야말로 선진한국으로 가는 밑거름이자 초석이다. 정부는 여기서 산파노릇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여성정책의 틀을 짜고, 여성의 리더십이 적절하게 구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국민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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