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평가] 구호에 그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조동근 / 2007-05-23 / 조회: 7,677

투자부진, 자본의 파업인가?

‘경제적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 경제적 규제는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데 그쳐야 한다. 이 같은 범주를 벗어나는 규제는 시장을 왜곡하고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저해함으로써 경제 활력을 낮추게 된다. 종국적으로는 경제발전을 해치게 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았다. 경제성장률은 경기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률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저성장의 구조화” 조짐이다. 최근 들어 설비투자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사실이 그 징후이다. 투자는 미래성장동력의 원천으로, 투자 저하는 성장잠재력을 낮춘다. <표-1>에서 보듯이 국내 설비투자는 1986~90년 동안 연평균 18.1%의 증가세를 보였으나, 최근(2001~2005년)에는 1.2%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설비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4.1%에서 10.2%로 하락하였다.

<표-2>는 주요 선진국의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배증(倍增)하는 과정에서의 설비투자 증가율을 나타낸 것이다. 모든 국가에서 공히 설비투자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즉 설비투자가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만 경제성장률보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낮다. 최근 원화가치 상승으로 우리나라도 ‘2만불 소득’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화폐적 현상’이다. 실물적인 측면에서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려면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 들어 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만 파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도 파업을 한다.” 투자 부진에 대한 참여정부 일각의 ‘속내’는 그랬다. 가계부채 등으로 소비가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댈 곳은 기업밖에 없는데,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고 투자를 미루는 것은 정권에 대한 ‘파업’이라는 것이다. 최근 수출호조에 따른 설비투자 압력과 금리, 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투자 부진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는 미래 경쟁력의 요체이고 또 때가 있다. 따라서 기업이 망하기로 작심하지 않는 한, 가능한 투자를 스스로 미루지 않는다. 투자부진을 놓고 ‘자본 파업’ 운운하는 것은 경제현상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적 현실에서 기업의 정권과의 힘겨루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닐 수 없다. 투자 부진의 일차적 원인은 투자수익률과 리스크 면에서 투자가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수익률보다 더 결정적인 투자 저해 요인은 정책의 불확실성이다. 반(反)기업 및 반(反)시장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도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럭비공이 어디로 튈 것인가를 예측하고 투자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부진은 제도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정부의 대기업규제 정책이 투자를 위축시켜왔고, 정치사회 분위기도 기업과 기업인의 의욕을 떨어뜨려 왔다.


노무현 정부의 등록규제 현황

노무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을 공언했다. 그리고 이의 실천을 위해 2004년에는 민관합동의 ‘규제개혁기획단’을 출범시켰다. 전시적인 개혁이 아니라 철저히 수요자 관점에서 투자와 창업, 공장설립 절차 등 기업 활동을 불필요하게 제약하는 규제를 정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는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제도적 환경을 마련했는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 공언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말았다.


<표-3>은 IMF위기 이후 규제등록건수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IMF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가시적인 규제완화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서는 규제가 늘었다. 2003년 7,837건이던 규제건수가 2004년 7,846건, 2005년 8,017건, 2006년 8,084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특히 기업 활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2003년 161건이던 규제건수가 2006년 167건으로 증가했다. 재정경제부 역시 2003년 409건에서 2006년 422건을 기록했다. 기업 활동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제부처(7개)의 규제는 한 해도 빠짐없이 증가했다.


등록된 규제의 건수만을 기준으로 노무현 정부의 규제개혁 성과를 논하는 것은 자칫 오도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련된 ‘사회적 규제’의 경우, 그 기준과 절차가 ‘규제품질’을 충족시킬 만큼 합리적이라면 규제의 신설과 강화를 막을 이유는 없다. 또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면(예컨대 간접투자자산운용업, 건강기능식품산업 등) 해당 신산업을 규율하는 규제 신설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 들어 등록된 규제가 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업 활동을 옥조이는 핵심규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거나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노동규제, 경제력집중억제 규제, 수도권규제 등 덩어리 규제는 아직도 커다란 ‘그물망’으로 기업을 에워싸고 있다. 이들 핵심규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건수 중심의 전시적인 규제폐지가 갖는 의미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지지부진한 규제개혁은 낮은 ‘규제일몰제 적용율’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경제적 영향이 크고 사전적으로 효과가 불명확한 규제의 경우 그 존속기한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규제기본법’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동(同)법 제8조①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고자 할 때에 계속하여 존속시켜야 할 명백한 사유가 없는 규제에 대하여는 존속기한을 설정하여 당해 법령 등에 명시하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규제기본법은 “존속에 대한 ‘명백한 사유’가 없는 한” 모든 규제에 존속기한, 즉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2007. 2. 26)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규제일몰제 시행 평가와 개선방향』보고서에 의하면, 규제일몰제가 도입된 1998년 이후 신설된 규제 2,549개 중 존속기한이 설정된 규제는 48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2006년 이후 신설된 149건의 규제의 경우, 존속기한(일몰기한)이 설정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표-4> 참조) 이로써 1998년 이래의 ‘규제 일몰제’ 적용비율은 1.9%에 지나지 않는다. 규제일몰제는 법률상으로는 명시되었지만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일몰기한이 적용된 규제마저 이런 저런 이유로 일몰시한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사실은 ‘시장개혁 로드맵’에 의하면 ‘일몰규제’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출자규제가 일몰규제로 폐지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순환출자금지규제로 대체되거나 아니면 출자허용 비율을 완화하는 선에서 다시 부활할 것으로 예측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도 일몰규제의 대표적 사례이다. IMF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촉진차원에서 ‘한시적’으로 도입된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은 벌써 3차례나 연장되었다.


세계은행의 기업규제 국제비교

노무현 정부의 규제개혁 성과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국제기구(World Bank)의 분석 결과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은 2004년부터 ‘기업환경보고서“(Doing Business)를 통해 기업활동 규제에 대한 국가간 정량적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동(同)보고서는, 기업활동 분야를 창업, 허가 취득, 고용 및 해고 여건, 소유권 등기, 융자 여건, 투자자 보호, 납세, 교역절차, 계약 이행, 사업정리 등 10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각 영역별로 관련 항목들을 조사해 해당 분야의 규제 강도를 측정해 공표하고 있다.


<표-5>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기업규제의 순위를 정리한 것이다. 기준년도 기업규제 순위 평가를 위해 사용된 자료는 전년도 1월 자료이기 때문에, <표-5>는 참여정부 통치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표-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규제 순위는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 2007년(실제 쓰인 자료는 2006년)에 우리나라의 순위는 전년도보다 1계단 상승한 2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백분율 순위는 0.31에서 0.32로 0.01만큼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경쟁국들이 우리나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규제완화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아시아 주요 경쟁국 중 싱가포르는 2004~2006년 2~3위에서 2007년 1위로 올라섰으며, 홍콩은 2005년 9위, 2006년 6위에서 2007년 5위로 상승했다. 태국도 2007년 18위로 우리보다 앞서 있다. OECD 국가를 보면, 대륙계통 국가(독일, 프랑스)의 규제순위가 영미계통 국가(미국, 영국)보다 낮은 것을(규제가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륙계통의 국가가 ‘큰 정부’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6>은 우리나라와 OECD 평균간 기업규제 정도를 비교한 것이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10개의 영역 중 ‘창업의 용이성, 허가취득, 고용 및 해고 난이도, 소유권 등기, 투자자 보호, 사업정리 용이성’ 등 6개의 영역을 선택해 비교한 것이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지수는 OECD 평균에 비해 우리의 규제가 심해 개선이 시급히 요구되는 규제항목을 선별해 놓은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OECD에 비해 창업관련 규제가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일인당 GNI 대비 창업최소자본금은 OECD평균에 비해 턱없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용 및 해고 난이도’ 영역 중 ‘근로시간 조정 난이도’와 ‘해고비용’ 항목에서 한국의 규제가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주급(週給) 수로 표시한 해고비용의 경우, 우리나라는 평균 91주의 주급을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나 OECD 평균 31주보다 3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유권 등기비용도 OECD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소유권 등기비용은 일종의 ‘거래비용’으로 거래촉진을 위해서 마땅히 낮춰져야 한다. 그리고 “사업정리 용이성” 영역에서 청산비용이 OECD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투자자보호를 위한 인프라 구축 면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배구조개선 또는 투자자보호와 관련해,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보다 시장규율을 통하는 것이 보다 친시장적이고 효과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표-6>을 종합해 볼 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창업관련 규제를 대폭완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표-6>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된 요인’을 시장을 중심으로 추출해 이를 국가간에 비교가 가능하도록 계량화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특정국가에만 존재하는 매우 이례적인 규제에 대한 영향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의결권제한 제도 도입 등에 대한 평가는 국가별 순위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규제가 기업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고려한다면, 기업 활동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업규제

노무현 정부 이래 기업규제 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한 이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업규제를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의결권제한 규제의 대강(大綱)을 기술하고자 한다. 우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들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 개정중에 있지만, 출자규제가 조건 없이 폐지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설령 출자규제가 완화된다 하더라도, 출자총액 한도를 넘는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금지는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이 유일하게 출자한도제(순자산이나 자본금중 큰 금액의 100%)를 시행해왔으나 2002년 5월 동(同)제도를 폐지했다. 따라서 출자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출자는 기업 고유의 전략이다. 따라서 출자규제는 기업의 ‘사(私)영역’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출자규제는 기업의 투자를 저해한다. 따라서 그동안 전개된 ‘출자규제가 투자를 저해하느냐 여부’에 대한 논쟁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어떻게 해서든 출자규제로 투자가 저해된다는 재계의 주장을 반증(反證)하려 했다. 그러나 투자와 출자는 ‘사전적 의도(ex ante)’로 파악되어야 한다. 따라서 출자규제로 출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출자와 투자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 투자 억제 효과는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내 보인 각종 실증분석 형태의 ‘과학적 외양 갖추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의 저투자는 상당부분 출자규제의 부정적 영향에 기인한다.


금융회사 보유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제한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이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합병, 임원 선?해임 등의 경우 예외적으로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의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2005.4.1 시행) 그러나 계열금융회사의 경우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가 사전에 규제되므로, ‘금융회사 의결권제한’은 이중규제이다. 또한 우량 기업의 외국인 지분률이 50%를 상회해 외국자본의 과다한 경영 간섭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의결권 제한은 우리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역차별 규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상장법인 및 등록법인의 경우 감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사외이사 아닌 경우) 선임 시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포함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증권거래법 제 191조) 그러나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외국의 경우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 없다. 대주주의 의결권을 정당한 근거 없이 제한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과 시장경제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감사를 선임하는 데 있어 대주주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면, 의결권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사후적 시장규율을 통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주주총회의 결의에 있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상법 368조 4항) 동(同)규정은 주주와 다른 주주 또는 회사와의 이익충돌에서 발생하는 의결권 남용을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나, 그 범위가 너무 일반적이어서 구체적 타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 특정한 안건에 대하여 이해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결권 행사를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특별 이해관계자라 하더라도 사전적 의결권 제한은 인정하지 않고 사후적인 ‘소송 제기’ 등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표-7>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그리고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의결권 제한규제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규제관(規制觀)

노무현 정부에서 규제개혁이 가시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영 기조는 ‘큰 정부-작은 시장-거미줄규제’의 조합으로 압축될 수 있다. 거미줄 규제는 노무현 정부의 규제관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좌파정부에는 ‘속성상’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참여정부 하에서 규제개혁은 어찌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비견될 수 있다. 참여정부의 규제관을 자유주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영국의 경험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흄, 스미스, 버크, 액튼 등이 고전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회와 전통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데 있어 인간의 능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적 자유주의는 제도를 특별한 고안이나 설계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과적 산물’로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은 통치자(統治者)를 믿지 못해 권력에 제한을 가했더니 뜻밖에도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일반화하고 확대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치자의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에게 자유를 부여했더니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풍요로운 사회가 도래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시장-작은 정부’의 조합 하에서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게 된다. 규제도 기본적으로 ‘원칙 자유, 예외 금지’이다. 금지된 것이 아니면 허용되는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기초라 할 수 있는 이성적 자유주의는 프랑스의 합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데카르트, 루소 등이 이성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합리주의는 문명을 목적한 대로 조형할 수 있는 지적(知的)이고 도덕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다. 즉 인간의 지성은 우수하고 본질적으로 선(善)하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의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므로 계획하지 않은 준칙과 관행을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은 혼란하고 탐욕스러울 뿐이다. ‘좌파’는 이성적 자유주의에 그 사상적 기초를 두고 있다. 이에 하이에크는 이성적 자유주의를 사회주의의 원류로 간주하고 이를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으로 경고하였다.


좌파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기보다 이를 이성적으로 재구성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고치려 하기 때문에 자연히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 좌파의 급진성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대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달리 왕정을 ‘완전히’ 종식시켰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권력 형태와 통치 구조를 새로이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시민사회는 독창적 ‘사회계약’에 의해 형성될 수 있었다. 전통과 기존질서를 경멸하며 바람직한 것은 무엇이건 인간이 지닌 이성의 힘에 의해서 새로이 창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설계를 위한 공공권력의 개입은 당연시 된다. 참여정부의 ‘큰 정부론’은 이성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좌파의 전형인 것이다. 규제도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이다. 선별적으로 허용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압축한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관은 ‘이성적 자유주의’의 전형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의 ‘재벌의 변칙과 반칙론’은 참여정부의 대기업 규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를 예측케 하는 발언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노무현 정부의 규제는 이 같은 대통령의 정책 사고를 담아내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좌파의 시각에서 좌파의 방법으로, 규제의 실질적 완화를 꾀할 수는 없다.


‘큰 정부’가 문제의 본질

1987년 이후(경제민주화) 우리나라 대기업 규제의 목표는 경제력집중 억제였으며, 이를 위해 상호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 지주회사 설립금지, 특정산업의 진입금지 등 사전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를 시행해 왔다. 그 후 IMF 외환위기가 발발하면서, 규제의 초점이 기업의 지배구조개선과 투명성 제고로 바뀌었다. 소액주주 운동을 통한 주주 권리의식 제고, 지배권시장 활성화, 이사회의 구성과 기능에 대한 기준 설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도개혁이 추진되었다. 만약 IMF외환위기를 계기로, 사전적?획일적 규제에서 선진국형 시장감시 기능에 중점을 둔 시장규율로 규제 시스템이 바뀌었다면 명실상부한 규제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상 노무현 정부가 그 연결고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 같은 안목도 식견도 갖추지 못했다. 산업화 시대에나 적합한 사전적?획일적?물리적 옛 규제가 없어지고 새로운 규제가 그 자리를 채우는 규제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신 과거의 직접규제는 완화되지 않고 여기에 시장의 감시기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 규제가 더해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기업들은 ‘이중(二重)의 규제 장막’ 속에서 막대한 정책순응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경영권이 안정되고 활발한 투자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 질 수 없었다.


출자규제와 수도권 집중규제는, ‘집중에 대한 우려’에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규제이다. 그리고 공(共)히 투자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개의 규제는 참여정부의 금과옥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왜 2개의 규제가 필요한지, 명쾌한 설명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규제의 성역화 내지 규제의 관성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제력 집중’은 낡은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요체가 되는 시대에 정부 주도의 균형발전 전략이 과연 유효하고 적합한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규제는 공익추구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정부의 ‘지대추구행위’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스스로 규제개혁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뿐만 아니라 규제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적 요인이 존재한다. 규제는 인력, 조직, 예산간의 연계에 의해 작동된다. 따라서 규제를 줄이면, 일이 줄어드는 만큼 인력도 예산도 줄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과 예산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일·사람·돈의 담당 부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예산이 그대로이니, 공무원 조직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게 된다. 따라서 ‘사람을 줄이는 것’이 규제완화의 관건이다.


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이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공무원의 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들어 장차관급 공무원은 2002년 보다 2006년 말 현재 27명이 증가했다. 공무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4만8천명이나 늘었다. 이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찾은 일거리(규제)인 것이다. ‘큰 정부’가 문제의 본질이자 원천이다. 진정한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정부’가 그 답이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과, (사)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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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 / 2021-09-05
최승노 2021-09-05
203 초저출산 초고령화를 이기는 국민연금개혁
김원식 / 2021-09-04
김원식 2021-09-04
202 공기업을 수요자에게 봉사하도록 변모시켜야
김이석 / 2021-09-03
김이석 2021-09-03
201 지속가능한 복지 제도를 구축하자
김상철 / 2021-09-02
김상철 2021-09-02
200 교육을 선택할 자유를 주자
송정석 / 2021-09-01
송정석 2021-09-01
199 대일외교를 정상화하자
신범철 / 2021-08-31
신범철 2021-08-31
198 대학의 적정 규모화 촉진을 위한 방안
이진영 / 2021-08-30
이진영 2021-08-30
197 국민기본보장제도 도입방안
김용하 / 2021-08-27
김용하 2021-08-27
196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분권화 제고와 시장기능 강화
박호정 / 2021-08-25
박호정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