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흔히들 ‘국가이익’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즉 국가들은 모두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 하며 국가이익이란 크게 4가지 요소로서 구성된다.1)
국가들이 추구하는 국가이익 중 최고는 국가안보(Security)다. 국가안보란 개인의 경우 건강과 생존을 의미한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절대적 가치로 생각한다.
국가들이 추구하는 두 번째 중요한 가치는 권력(power)의 추구다. 힘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이 개념은 국가안보라는 첫 번째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군사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국가는 힘의 증진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국가들이 추구하는 세 번째 중요한 목표는 번영(prosperity)이다. 이는 국가의 부, 국가의 경제능력을 배양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들은 생존의 여건이 확보 된 후 국민들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
국가들이 추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국가 이익은 국가의 자존심, 혹은 명예(prestige)를 고양하는 것이다. 국가의 독립, 자주는 물론이고 국가의 과학 문화, 스포츠에서의 업적 등이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네 번째 국가 이익 범주에 포함 된다.
이상에서 언급한 안보, 권력, 번영, 명예라는 국가이익의 주요 가치들 사이에는 중요성 혹은 우선순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안보다. 개인의 경우 돈이 많고 명예가 많아도 건강을 잃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 안보가 확보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종류의 국가이익은 무의미하게 된다. 즉 올바른 정책이란 국가 이익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기획되고 집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정책이 국가의 명예를 상승시켰지만 국가안보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 했다면 그 정책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평가하는 본 글의 초두에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를 논한 이유는 노무현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의 심각한 문제점들은 바로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를 무시 또는 혼동한 정책이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책 평가의 기준
세계 모든 나라들의 정부는 나름대로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좋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모든 정부들이 올바른 정책을 만들고, 만든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안보 정책의 경우 적이 누구인지, 우호국이 누구인지에 관한 판단이 잘못될 경우, 즉 정책의 목표 그 자체가 잘못되었을 경우, 정책이 제대로 집행 되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국가안보에 더 큰 손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즉 잘못된 상황 판단에 근거하여 올바르지 못한 정책을 만들었을 경우, 그 정책이 잘 실행되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국가에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외교 안보 정책은 자국을 향한 국제적인 위협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환경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과 자기 자신의 힘을 증강시킴으로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증진시키는 노력 등 두 가지로 측면으로 구성 된다. 노무현 정부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국제정치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힘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그런 노력들은 성공 했는가? 이와 관련하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1.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제(諸) 상황을 정확히 인식했는가?
2.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올바른 정책을 수립했는가?
3.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안보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국제협력에 성공했는가?
4.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자체적인 안보능력을 증진시켰는가?
노무현 정권이 제시한 외교 및 안보정책
(1) 노무현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 평화 번영 정책
노무현 정권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은 평화번영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된다. 평화번영정책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언급되었고,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보고서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언급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 정책은 북한 관련 부분과 세계 속의 한국이 지향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노무현 정부는 우선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건이 세계의, 그리고 동북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적 역할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동북아에 번영의 공동체를 이룩할 것이며, 번영의 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는 21세기에는 세계 평화를 향해 평화를 발산하는 평화지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책이 노무현 정부가 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 같은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모든 현안은 대화를 통해 풀도록 한다.
2) 상호신뢰를 우선하고 호혜주의를 실천해 나간다.
3)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해 원활한 국제협력을 추구한다.
4) 대내외적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 참여를 확대하며 초당적 협력을 얻겠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 핵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취임사에서 그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언급한 후 ‘핵무기의 개발은 용인될 수 없다’,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다’고 언급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인지, 체제안정과 경제지원을 받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및 일본과의 공조도 강조했다. 2003년이 한미동맹 50주년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한미동맹을 ‘소중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과도 긴밀하게 협력할 것임을 언급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이후 1년이 지난 후 발표된 2004년 3월 1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간행한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보고서는 북한은 “여전히 우리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의 최대 안보 위협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2)
동 보고서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주한미군의 재조정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아래 한국 방위에서 우리 군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주국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동북아 지역의 “역내 다자 안보 협력의 강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 보고서는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 목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2) 남북한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
3) 국민생활의 안전 확보.
그리고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기조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평화 번영 정책 추진,
2) 균형적 실용외교 추구,
3)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4) 포괄안보 지향.
(2) 노무현 정권 재임기간의 주요 안보정책 이슈 및 사건
노무현 정권은 외교 안보정책으로 제시한 목표와 기조를 집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국제적인 문제들을 야기했다. 노무현 정권이 당면했던 혹은 야기했던 중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동북아 균형자론과 이로 인한 파장;
2) 독도 문제와 일본과의 갈등;
3) 주한 미군 철수 및 기지이전 문제;
4) 북한의 핵보유;
5)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동맹의 변화.
올바르지 못한 국제정세 인식
노무현 정권의 외교 안보 정책을 취임사 및 공식 정책 보고서를 요약하고 노무현 정부가 재임 4년 동안 당면했던 중요한 국제안보 문제들 중 주요한 것 5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이번 장(章)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안보 정책이 애초부터 올바른 것이었느냐를 판단하기 위해 노무현 정권의 ‘국제 인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노무현 정권이 수립한 목표 및 그 집행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평가할 것이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과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문제 인식이 잘못된 목표, 잘못된 처방을 가져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국민들의 이러한 불만은 대통령 지지율이 아주 낮아진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들은 ‘빵점’ 이라고 말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지만, 안보 정책 역시 노무현 정권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1) 북한 및 북한 핵에 관한 인식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북한 문제만 잘 되면 모든 것은 다 깽판 쳐도 된다는 내용의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북한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다른 문제들이 잘 되어야 북한 문제도 잘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부분이 깽판을 쳤을 경우 또 다른 부분의 문제가 잘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기초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할 원칙이다. 북한 문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 관계도 잘 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우리의 경제도 잘 되어야 하고, 우리나라의 국내 정치도 잘 통합되어야 했다.
물론 ‘북한 문제가 잘 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노무현 정권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북한의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핵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인지에3) 대해서조차 분명한 입장을 개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적이냐 아니냐의 여부에 대해서도 불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윤광웅 국방장관은 주적 개념을 없앤 국방백서를 발간하였다. 북한이 적이 아니라면 우리 군은 어느 나라의 침략 공격을 막기 위해 복무를 하고 있으며 값비싼 무기를 장비하고 있는 것인가? 북한이 더 이상 주적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국군은 누구를 상대로 훈련을 하는 것인가? 누구를 상대하기 위해 값비싼 무기를 구입하는 것인가? 중국, 일본, 미국 등과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혹은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는다는 것인가?
적이 없다면 제대로 된 국방정책 및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전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정된 적(specified enemy)’4) 이 없다면 그것은 전략적인 난센스(strategic nonsense)라고 말한다. 적에 대한 몰이해, 한국 안보환경에 대한 몰이해는 올바르지 못한 전략 목표를 만들게 되었고,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 내내 안보 문제가 요동치는 원인이 되었다. 현 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옹호하고 변명을 말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은 파탄 상태에 이른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변명도 더 이상 안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최근 (2007년 2월 27일) 노대통령은 핵무기란 ‘정신 나간 나라가 아닌 한 절대로 선제용으로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합리적인 나라라는 말인지 북한은 정신 나간 나라는 아니니까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 및 그 효과에 대해 정리된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의 논리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인지, 보유해도 그렇게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의 대(對)북한 정책 일반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 정책을 이어받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은 북한에게 우리가 선의를 보이면 북한 역시 선의를 보일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우리의 선의에 의해 북한이 변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5)
(2) 국제정치 일반 및 동맹국들에 대한 인식
노무현 정권은 국제정치학적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국제정치의 냉혹한 권력 투쟁적 요인보다는 국가들 간에 협력과 화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상주의자들의 견해를 따랐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국가의 지도자들조차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 국제체제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예로서 노무현 정권의 지도세력들은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주문하는 한국 여론에 대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말이냐” 라며 응수했다. 일반적인 국민들에게 전쟁과 평화는 반대의 개념이고 당연히 평화가 우선이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있어서 전쟁과 평화는 같은 차원의 개념이 아니다. 대통령이란 평화라는 숭고한 “목표”를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임무를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직책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민간인이지만 동시에 국군의 총사령관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혹은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전쟁과 평화가 보통 국민들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리 나쁜 평화라 할지라도 전쟁보다는 낫다’ 는 식의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같은 인식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제정치란 역설의 논리(Logic of Paradox)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즉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고위관료들은 자신들과 견해가 달라 대북 강경정책을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며 윽박질렀지만 우리나라 어떤 국민도 북한과 전쟁을 벌이자고 말한 적은 없었다.
잘못된 안보 인식에서 연유한 모호한 외교 안보 정책목표와 수단
(1) 평화와 번영 정책
앞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국제안보 상황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잘못된 상황인식은 잘못된 정책목표를 만들게 한다. 상황인식이 잘 못되다 보니 노무현 정권의 외교 안보에 관한 정책 목표 및 정책 수단도 대단히 애매모호한 용어들로 구성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안보 외교 정책의 목표를 ‘평화와 번영 정책’ 이라는 수사적으로 도덕적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안보 및 외교 정책을 표현하는 언어로서는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용어였던 것이다.6)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목표인 평화번영정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 되어 있다고 발표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한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 그리고 국민생활의 안전 확보 등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어떻게 같은 것인가 혹은 다른 것인가? 왜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의 안보정책을 표현하는 나라의 이름도 아니며, 북한까지 포함하는 “한반도”라는 지리학적인 용어로 표시되는 것인가? 북한이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두 번째 목표는 남북한과 동북아의 동시 번영이다. 국가안보 및 외교 정책목표에서 동북아의 번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북한, 일본, 중국이 잘 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대한민국 외교 및 안보 정책의 두 번째 목표라면 중국, 일본등 주변국으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 무엇이며, 이들 위협에 “어떠어떠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제시했어야 타당하다.
세 번째 목표인 ‘국민 생활의 안전’이란 것은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 외교 통상부가 담당할 목표가 아니라 내치를 담당하는 법무부, 경찰 등이 담당해야 할 목표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목표 중에는 군사적인 측면의 안보를 다룬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군사 안보 이외의 다른 안보 요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군사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군사력을 현대화하겠다는 선언적인 언급 이외에 노무현 정권이 과연 “군사정책”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군사정책이란 이 세상 어떤 나라의 경우라 할지라도 국가안보 정책의 핵심 사안이 아니겠는가?
무기의 대부분이 노후화된 한국 군대를 어떻게 현대화시킬 것인지, 주변국의 엄청난 군사력 증강7)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정부가 간행한 공식 보고서에 북한군의 위협, 주변국의 위협은 거의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8)
국가안보 정책이란 우리의 위협 요인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경감시킬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어야 했다. 평화와 번영이라는 모호한 정책 목표는 주변국 학자들과의 국제회의에서 학자들이 다루어도 충분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2) 평화번영 정책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상의 문제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행동의 원칙 4가지를 제시했다. 그 4가지란: 1)모든 현안은 대화를 통해 풀도록 한다. 2) 상호 신뢰를 우선하고 호혜주의를 실천해 나간다. 3)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해 원활한 국제 협력을 추구한다. 4) 대내외적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 참여를 확대하며 초당적 협력을 얻겠다는 것이다.
우선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외교정책의 수단을 한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평화적 이외의 수단은 없다. PSI 관련 노무현 정부의 인식에서도 보여 졌지만9) 노무현 정권은 군사력을 동원하는 그 자체, 군사력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군사력은 상대방을 강제하는 수단이지만 설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군사력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유하는 수단이라는 국제정치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두 번째 행동 원칙인 ‘호혜주의’ 원칙은 노무현 정부의 남북한 관계에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사일을 마구 발사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를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당분간 북한을 지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아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국민의 눈에 비쳤다.
남북 당사자 원칙이라는 원칙도 노무현 정권 4년 동안 얼마나 지켜졌는가? 북한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취급해 준 적이 있었는가? 6자회담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가? 회담의 개최, 전개과정 등에서 한국은 당사자로 인식되기는커녕 돈이나 대는 들러리로 인식되지는 않았는가. 2007년 2월 13일의 북경 합의에 과연 한국이 어떤 주체적인 역할을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내외적 투명성, 초당적 협력 획득의 원칙 역시 공허한 구호로 끝났다는 사실을 증거를 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정권 중에서 외교 안보 정책에 관해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의 견해가 분열된 적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기관은 정부의 비판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외교 안보 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기조라고 제시한 것들도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사용한 언어들인 ‘균형적 실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포괄안보’ 등은 그 개념이 의미하는 국제정치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용어들이다.
대한민국 수준의 국력을 가진 국가가 어떻게 “균형자”가 되겠다는 것이며, 특히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이 한미 동맹을 유지한 채로 미중(美中) 갈등의 균형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국제정치의 상식을 깨는 일이었다. 균형자란 ‘동맹을 맺지 않는 나라’라는 뜻이다.10)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용어도 문제점이 많았다. 우리의 능력을 증강시킴으로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한다는 뜻이기 보다 많은 국민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결별하려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진정 한미동맹의 발전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는 양심의 문제다. 많은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노무현 정부의 대미 정책을 건설적인 것이기 보다는 파괴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안보의 개념은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포괄안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전통적인 의미의 국가안보 문제가 해결된 나라들이 주로 쓰는 말이다. 과연 대한민국이 전통적 의미의 국가안보 문제에서 자유로워 졌는가? 이제 더 이상 그런 안보 위협이 없다면 우리도 포괄적 안보를 염려해야 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북한이 보인 행동-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은 우리나라는 아직 포괄적 안보를 생각할 만큼 여유가 있는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4년 동안 더 불안해진 안보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2003년과 4년 후인 2007년 지금 우리나라는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는가? 이 문제에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미사일을 마구 발사해서 한국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2007년 2월 13일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고 일단 약속을 했지만,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그 약속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쟁이 나면 확실하게 한국을 지켜줄 것 같았던 미국군은 한국이 스스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요구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한국을 확실하게 지원해 줄 것인지 불확실하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 국군의 능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엄청난 규모의 군사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는데 그 돈은 다 어디서 조달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국군의 고민은 첨단 장비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의 장비가 너무 낡아서 문제다. 기본적인 장비도 낡아빠진 상태에서 최첨단 장비를 사와야 한다니 이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다음 정부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상황이며, 이미 야당의 대선 예비 후보들은 이 정부가 결정한 주요 안보 정책을 다시 짜겠다고(재협상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국민들은 4년 전보다 더 불안하다고 느낀다. 이처럼 안보정책에서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첫째, 노무현 정부는 국제정치 현실 인식에서 정확하지 못했고, 둘째, 그 결과 정확하고 현실적이며 분명한 외교정책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으며, 셋째,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너무나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4년이 지난 현 시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그리고 불확실한 한미 동맹 문제로 번민하고 있다.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
1) 이곳에서는 저명한 국제정치 학자인 한스 모겐소 (Hans J. Morgenthau) 교수에 의해 요약된 개념을 차용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2) 국가안전보장회의,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2004년 3월 1일), p.9.
3) 2007년 2월27일 취임 4주년 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정신이 나가지 않은 한 핵무기를 공격용으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핵무기의 효용성을 전혀 무시한 언급이었다. 핵무기는 상대방의 도시를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핵무기는 상대방의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핵무기는 상대방을 공갈, 협박하기 위해 만드는 무기다. 그래서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는 나라 사이에서는 전략적 균형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4) 主敵(주적)이라는 표현에 문제점은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력과 국방정책은 북한에 대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야 했다. 그래야만 주변의 다른 강대국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가 야기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5) 정부의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안보를 위해 북한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했다. 2007년 2월 13일 북경 6자 회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아무리 퍼줘도 그것은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6) 평화와 번영이 목표가 아닌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7)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가히 탈냉전 시대의 이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국방 안보 목표에 한국군을 어떻게 현대화시키고 증강시키겠다는 단기계획이 없다. 국제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거의 예측할 수 없는 2020년에 대비한 국방 현대화 계획은 세웠지만, 정치적 상황 고려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군사현대화 계획을 짤 수 있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8) 물론 국방연구원 등 정부산하 연구기관에서 북한 군사력의 위협을 지적한 보고서는 있었지만 이 같은 경고가 정부의 안보정책보고서에 공식적인 우려로서 제기되고 국민들에게 제시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9) PSI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 위협을 제지하기 위한 조치인데 한국정부는 이런 조치가 곧 전쟁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이 조치에 참여 하지 않았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현재 북한 선박을 향한 PSI 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쟁은커녕 작은 규모의 군사적 갈등도 야기 되지 않았다.
10)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국인데 미국과 중국이 갈등할 경우 균형자가 되겠다는 말은 우선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 하지 않는 한 안 되는 일이다.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을 중국이 균형자로 봐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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