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균형발전도 시장원리에 따라 추진해야

최승노 / 2007-03-12 / 조회: 57,152
잘 뛰는 선수의 발목을 묶어 놓고 뒤처진 선수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누구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고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의 근본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실패한 정책이 있다. 바로 국토균형발전정책이다. 이해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 꾸준히 정책에 반영되지만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방법을 채택하다보니 효과없이 국민의 부담만 키워온 대표적 부실정책사례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권규제와 지방지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본질은 내 돈 들이지 않고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개방된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이런 제로섬게임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 수도권은 도쿄,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 홍콩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수도권에 들어가려는 것을 막는다고 해서 지방이 번성하리라는 희망은 폐쇄경제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을 선택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이 하나의 경쟁단위로 외국의 도시와 경쟁을 하고 있기에 그만큼 수확이 있게 마련이다.


수도권 규제로 수도권 진입이 좌절된 자본과 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규모가 크다면 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임이 분명하다. 작은 이익을 위해 큰 피해를 불러오는 일이다.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국익의 손실이 발생하고, 큰 낭비를 조장하고 보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나눠먹기’식의 국정운영은 복지정책을 연상케 한다. 지방이 어려우니 돕자는 것이다. 경제문제는 이런 획일적 평등주의나 형평의 논리로는 풀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내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공짜다’라는 사고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파렴치한 행위다.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려고 노력하고 경쟁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발전이며 지속적 고용창출을 가능케 한다.


쇠퇴의 길로 가는 국토균형발전정책


수도권 규제를 주장하는 논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수도권은 과도하게 밀집되고 비대하여 폐해가 크고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단 수도권에 50% 가까운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문제라는 구호가 나오면 지방경제는 황폐화되어 있고 농촌에는 우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라는 무지막지한 울분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쯤 되면 동정의 말 이외에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직감하고 과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동정과 애정은 구분해야 한다. 동정의 눈길로 복지가 필요하다면 복지정책을 쓰면 된다. 농촌이나 도시나 심지어 서울에도 기초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이들에게 국가가 나서서 복지정책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방이 어렵다고 해서 지방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지방경제의 피해확대와 악순환만 키운다는 점이다.


국토균형발전정책이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보조금과 규제처럼 잘못된 처방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조금은 본질적으로 쇠퇴를 가져오는 이전행위다. 보조금을 받는 것은 단기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왜곡된 인센티브와 부풀려진 청사진은 장기적 침체와 부채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오히려 그 지역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받은 지역과 개인 또는 기업은 발전의 힘을 얻기보다는 쇠퇴의 역사를 썼다는 것은 우리 농촌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흔한 일이다.


또한 지방도시에 대한 천편일률식의 규제는 모두 해롭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특별자치는 규제를 해소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제주도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게도 이롭다. 문제는 지방도시간 형평성을 문제삼아 지방도시에 대한 규제도 해소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를 해소하려는 중앙정부의 결단과 지방도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로 지방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지방도시가 장기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쇠퇴를 거래할 것이 아니라 부를 창출해 내야 한다.


서울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중심지


수도권규제해소는 지방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는 틀린 주장이다. 경제는 폐쇄계가 아니라 개방계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이 발전하면 수도권 이외의 지방도시도 함께 부가가치를 나누고 경제 전체가 발전하는 효과를 갖는다. 수도권에 자원과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성장에 이롭다. 서울처럼 집중화된 도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자랑해야 할 일이지 해체하겠다고 달려들 일이 아니다.


실제로 수도권 집중은 한국 경쟁력의 원천이며, 한국의 경쟁력은 수도권의 잠재력에서 나온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이다. 집중화된 도시의 존재는 경제적으로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다. 지금 수도권이 글로벌 도시(global city)로 새로운 성공의 신화를 쓸 수 있도록 규제를 해소하는 일이야 말로 선진국으로의 한 단계 높은 도약을 기약하는 바탕이 된다.


아시아에서는 서울, 도쿄, 싱가포르, 타이베이, 홍콩 등이 도시권을 형성했다. 중국이 뒤늦게 경제발전에 동참하면서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베이징과 상하이라는 신흥 도시권을 만들어 냈다.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다핵의 경제중심지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영국도 런던을 통해 금융과 국가 경제시스템이 이루어져 있다. 그런 구조는 경제의 효율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이다.


수도권과 지방은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갖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모든 도시와 지방이 서울처럼 되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그 도시와 주변지역의 수요에 부응하는 부가가치 창출과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며, 그 결과 도시의 산업과 특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은 인구의 분산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이는 올바른 정책 목표가 아니다. 실제로 서울의 인구는 1천만 명 수준이며, 수도권 전체로 2천만 명 수준이다. 이는 세계적인 도시의 규모와 비교해서 기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서울의 면적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경기, 인천을 합하여 수도권으로 본다고 해도 다른 국가에 비교해서 용지면적의 부족문제는 심각하다. 더구나 도심의 저밀도 개발은 수도권의 집중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의 고층건물수는 외국 경쟁도시의 고층건물수에 비해 너무 적다.


수도권 집중억제 규제는 폐지해야


지난 2003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그 시행계획에 따라 수십 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지방의 기대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붐 조성은 화려한 사업계획과는 달리 현실의 효율성과 시장성 여부에 따라 결과가 초라해질 수도 있다. 지역의 특성과 주변여건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포장된 계획과 투자는 본질적인 경제문제인 시장의 수요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다지 성공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지방정부가 자금의 조성을 주도하고 투자의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중앙정부가 계획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점은 계획경제가 갖는 한계를 그대로 노출할 가능성이 크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시는 정부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권력의 욕심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도시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유령도시로 변모했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새로 만드는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주변도시가 필요하며, 거래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수도권은 지방도시와 유기적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수도권의 발전을 억제하면서 지방도시만 키우려는 중앙계획적이고 통제적 발상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를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경제적 삶은 도시경제에 의해 발전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여 지방과 지방도시의 역할을 재검토하여 농촌도시의 저생산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 규제해소 노력이 필요하다.


국토발전을 위한 올바른 정책방향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는 실체가 모호한 면도 있다. 그래서 정책수단은 구차하고 반시장적으로 변질되곤 한다. 피해의식에 바탕을 둔 국민정서가 만들어낸 목표이기 때문에 아무리 달성하려고 해도 돈만 낭비하게 하는 구조이다. 자주국방과 비슷한 허망한 구호인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만, 순간이 지나면 아쉬움과 허탈감만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는 부채와 폐허만 남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토발전을 위한 올바른 정책 방향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토균형발전은 도시의 경쟁력 강화라는 지방정부의 목표로 전환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통제적 간섭은 제거되어야 하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발전에 관한 모든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이다.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계획, 자금조성, 집행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기고 그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국가도 이제 글로벌 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둘째, 서울을 포함해 도시의 발전은 도시간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 지역을 발전시키는 일은 그 지역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해야 한다. 발전은 자기 혼자서 하는 자기개발과정이며, 경제개발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보조금을 통해 타 지역의 자원으로 발전하려는 생각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도시에 대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 만약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먼저 해소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비수도권이라도 제주도특별자치법 수준 이상의 규제해소를 해줘야 한다. 핵심적인 규제와 통제권한을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놓지 않는 한 진정한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며, 국토균형발전도 불가능하다.


넷째, 수도권의 문제는 수도권이 해결하고, 지방도시의 문제는 지방도시민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서울도 지방이다. 수도권의 과밀과 환경폐해가 있다면 이는 수도권 주민이 해소하려고 노력할 일이지 중앙정부와 타지방에서 나설 일이 아니다.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율성이 지방자치와 국토균형발전의 바탕이다.


최승노 /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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