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정치자금 양성화가 우선이다

최승노 / 2007-01-25 / 조회: 6,860

민주국가에서 정당정치가 필요하듯이, 국민을 상대로 자신들의 이념과 비전을 알리고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정치자금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정치인에게 정치자금 없이 선거를 치르라는 것은 실제로 불법을 조장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의 모금행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현실 정치현장에서 지키기 어렵다. 지키지 못할 수준의 법은 그 법을 어겨야 하는 사람에게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정치자금의 존재에 대한 일반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단체장 등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비용에 대해 국민은 스스로 부담하기를 외면하면서 다른 수단을 통한 조달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로 인해 언론과 선거관련 제도는 결벽증에 가까운 태도로 정치인과 정치자금 제공자인 기업을 부정시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


2002년 대선을 치르면서, 정치자금 문제가 심도있게 수사되었고, 정치권은 크게 흔들렸다. 지난 2004년 5월 21일, 검찰은 9개월 이상 걸린 불법대선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2002년 불법대선자금은 943억원(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823억 2천만원, 민주당 노무현 후보 119억 8,700만원)으로 모금에 관여한 정치인 13명을 구속기소하고, 19명을 불구속기소했으며, 기업인 13명을 형사처벌했다. 불법정치자금을 100억원 이상 제공한 곳은 역시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등 4대 그룹으로 삼성은 300억원이 넘었는데, 이들 모두 회사가 아닌 개인자산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대선의 정치자금에서 기업의 규모와 정치자금 규모는 비례했다. 이는 정치자금제공이 준조세의 성격이었던 것을 잘 반영하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회창 후보는 불법자금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리했다.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중인 2004년 4월, 정치자금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치러지다보니, 2004년 17대 총선은 정치자금에 대한 시비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또 17대 총선이 정치자금 제공을 거의 죄악시하고 있는 현행 정치자금법 하에서 치러졌음을 고려했을 때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는 크다. 워낙 정치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대통령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반 세력에게도 큰 압박감을 준다. 각종 규제와 경제통제권, 기업의 생사까지도 좌우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 앞에서 기업은 ‘노(No)’ 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력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정치자금을 제공해야하는 기업은 선거로 인해 주기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 바뀌면 기업의 지형도 바뀌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현대그룹을 세운 정주영 회장은 정치자금 요구에 대한 반발로 1,361억원의 세금징수에 직면한 적이 있으며, 또 정치자금을 내느니, 차라리 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은 “과거 청와대 주인과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대줬고, 잘하길 바랐지만 실망했다”면서 1992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그 이후 현대그룹은 상당기간 고초를 겪었다.


2007년 대선에서 정치권은 사활을 건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어 기업인들은 또 다시 정치적 압박을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장기해외체류를 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또 다시 불법정치자금이 드러날 경우, 누구도 정상참작을 장담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불법정치자금을 근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정치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깔끔한 방법은 당선을 취소하는 일이다. 불법정치자금을 통해 당선된 자를 그대로 두고서는 불법정치자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후 불법정치자금이 밝혀졌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약속하였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여연대 등이 정치자금의 수혜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보다 정치자금 제공자인 기업인을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공세일 뿐이다.


더구나 참여연대는 삼성을 포함해 대기업이 대부분의 정부에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오고 있다면서 대기업을 비난하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의례적으로 기업규모에 맞춰 정치자금을 거둬갔다는 것은 기업에게는 세금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기적으로 정치자금을 준조세처럼 거둬가는 상황에서 이를 낼 수밖에 없었던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정치적 이념공세를 펴기 위한 것일 뿐이다.


법인의 정치자금 제공은 장려해야할 일


법인의 정치자금제공을 금지하고 있는 것에는 기업과 정치권의 결탁은 나쁘다는 인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자신들의 특혜를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정서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특혜를 원한다면, 정치자금을 은밀히 제공하기를 더 원할 것이다. 투명하게 밝혀진 정치자금으로는 특혜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도 지금의 기업에 대한 정치자금 규제는 합리적이지 않다.


또한 기업간 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실제로 담합이나 특혜가 있다면 이는 경쟁정책을 통해 제한하거나 벌칙을 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공정거래법이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별히 정치자금 제공 금지로 제한할 이유는 없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기업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발로이다. 사실 기업은 일반 개인에 비해 좀 더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합한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지지의사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는 존재다. 기업이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제도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며 장려해야할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경제로의 전환 노력이 정치적 시민단체의 반자본주의 공세와 부딪친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좌파적 시민단체들은 기업의 친시장경제적 정책개선 노력을 마치 부정한 방법의 로비로 보이도록 스캔들을 만들고 기업의 정치적 접근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개인의 이해만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분명하게 지켜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국가와 이 땅의 미래를 함께할 모든 이를 위해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정치를 요구하고 이를 지지할 이유가 있다. 이는 합법적 방법으로 기업과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업은 시장경제원리를 지키고 개선해 나가는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모든 국민에게 긍정적이다.


정치자금 양성화가 합리적 대안


한국만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성공역사를 써온 나라를 찾기는 어렵다. 이제 민주주의는 정착되었고, 투명한 절차를 갖추었다. 불법행위는 쉬게 드러나고 있으며, 불법정치자금이 영원히 숨겨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지금 정치자금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가장 올바른 대안은 정치자금의 양성화다. 세금처럼 거둬가는 정치자금을 냈다고 해서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몰아간다면 이는 정의로운 일이 아니며, 그저 기업행위를 불법의 세계로 내모는 일에 불과하다.


정치자금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분야는 대선이다. 대선이 갖는 사회적 관심을 고려하면 다른 선거와 동일한 기준으로 정치자금을 제약해서는 또 한 번 불법정치자금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6년 12월 정치자금법의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국고보조금을 인상,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규제 완화, 법인의 정치자금 기탁, 정치자금 지정납세제도 등이다. 선관위의 개선의견은 현실성과 합리성 기준에서 타당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인의 고민을 해소해준 것은 아니다. 대선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현실은 정치인에게 선거패배 후에는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는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더구나 선거후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정치인의 절박한 요구를 모른 체하기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런 정치인을 상대로 정치자금을 거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현실에 부합하는 정치자금제도가 필요하다. 기업과 기업인이 불법정치자금을 내지 못하도록 막기보다는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길은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불투명한 정치자금은 정치적 결탁이나 뒷거래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투명한 정치자금 제공은 부정적 효과를 차단하는 효과까지 갖는다. 이미 정치자금 제공이 드러난 상태에서 기업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법인의 정치자금 제공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단 법인의 일반적인 정치자금 제공의 한도는 기업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고려하여 일정한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연간 한도는 영업이익이 양호한 상태를 최소 3년 이상 유지한 기업에 한해서 3년 평균 이익의 0.1%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될 필요가 있다. 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기업은 이사회의 승인 하에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기간에 후원회에 제공하는 정치자금은 한도를 늘릴 필요가 있다. 영업이익이 양호한 상태를 최소 3년 이상 유지한 기업에 한해서 3년 평균 이익의 1%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치는 우리사회가 대통령에 지나친 수준으로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분산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장기적인 정치개혁이 이루어져 권력의 견제장치가 마련되고, 중앙정부의 비대화가 해소된 후에는 한도를 일정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자금의 성격상 집권세력,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집권당에게 편중된다는 점이다. 또 정치자금을 야당에 공개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미성숙한 정치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제도화나 문화적으로 볼 때 한국사회에서 아직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집권당 편중 방지를 위해 자유화된 정치자금일 지라도 그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은 득표비율에 따라 다시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당원 중심의 선진정치문화


이와 함께 현재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고보조금은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살림에서 당비의 비중을 늘리고, 국고의존비율을 줄여 나가야 한다. 현행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선택을 장기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 반영하고는 있지만, 국민의 선택에 따른 정치자금 배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행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이 운영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국민 스스로 의 선택과 참여가 정당활동의 비용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선택과 정치자금의 제공을 일치시키는 것은 국민의 정치혐오감을 낮추고 책임과 참여를 높이는 장점까지 갖는다.


보조금이 정당에게 지급되어 정당의 조직, 홍보비로 들어가는 측면도 문제다. 따라서 의회민주주의의 활성화차원에서 모든 정당간의 합의로 사용해야하는 상임위원회 활동비로 전환할 필요성이 크다.

정당의 살림이 당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될 수 있는 선진적인 정치문화가 마련될 수 있도록 선거과정에서 선거인단의 권리와 당원의 회비부담의무를 분명히 하고 지켜나가는 정치문화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현행 정당들이 선거과정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자를 선정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일이며, 이미지 정치와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미성숙한 정치문화를 조장하는 일이다.





최승노 /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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