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규제의 대안, 수질계약제

김정호 / 2007-01-08 / 조회: 7,733

1. 현황

강이나 호수, 냇물의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수단으로 환경 규제가 주로 사용되어 왔다. 수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규제의 핵심이다. 다음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오염물질을 배출할 위험이 있는 시설의 입지를 제한하고, 오염물질의 배출을 규제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표> 수질 오염원 관리 규제 수단

정책 수단
구체적 내용
배출시설 허가/신고제도 -가장 일반적인 오염관리제도
-산업폐수, 축산폐수 배출 시설 대상
배출허용기준/방류수 수질 기준 - 배출 허용 농도를 법령으로 정하여 규제
- 생활하수: 하수종말처리시설, 오수처리시설 등의 방류수 기준 적용
- 산업폐수: 폐수배출 허용 기준 적용
- 축산폐수: 축산폐수 방류수 기준 적용
배출부과금 제도 - 배출 기준 초과분에 대해 부과금 부과
- 산업폐수, 축산폐수 배출 시설 대상
총량 규제 제도 - 지역과 오염원을 동시에 규제하는 제도
- 유역에서 배출 가능한 오염물질 한도를 정하고 오염자에게 부하량 할당

출 처: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웹사이트
http://www.kei.re.kr/01_res/01_field_01.asp?field=01

또 지역별로는 상수원보호구역이나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자연환경보전권역 같은 지역지구 등을 지정하고 각각에 대해서 특별한 입지 규제나 배출 행위 규제를 가하고 있다.

2. 문제점

모든 국가정책의 목표는 사람을 잘 살게 만드는 데에 있다. 환경의 질은 사람의 삶의 질을 올리는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환경오염을 막고, 환경의 질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경제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된다면 성공한 정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염방지를 위한 규제가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경제활동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또 기존의 규제 수단들이 정해진 배출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인지에 대해서 늘 저울질 할 필요가 있다. 즉 환경 규제에도 기회비용을 따지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환경 관련 규제 제도들을 수립함에 있어 규제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계산한 후, 규제가 더 득이 있는지에 대한 신중한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또 기존의 규제가 정해진 환경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수단 중 최선의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려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 1997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간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의 대포천에서 벌어졌던 일은 수질계약제라는 환경 규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정부가 물의 오염도만 규제할 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수질 기준이 충족되는 한 정부가 해당 지역에서의 경제활동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주민들이 스스로 오염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수단들의 기회비용을 따져서 가장 비용이 적은 것을 선택하게 된다.

3. 수질계약제의 기원, 대포천의 경험 1)

대포천은 김해시 상동면 강재마을에서 매리까지 8.9㎞를 흐르는 하천이다. 부산시민을 위한 매리취수장까지의 거리는 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제 대포천의 물은 1급수이다. 바닥을 뒤집으면 재첩이 지천이고 돌을 들추면 가재가 기어나올 정도다. 그러나 1997년까지만 해도 대포천은 공장폐수와 축산폐수, 4,300여명의 주민이 배출하는 생활하수로 오염되어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다. 당시 축산 농가만 해도 67곳에 돼지 3만 8,000마리, 소 815마리, 공장이 326곳, 음식점도 76곳에 달했다. 그러던 이 하천이 지금처럼 깨끗하게 바뀐 것은 2002년부터이며 재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지금의 깨끗한 하천을 가져다주었다.

이 하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7년 2월 대포천변 상동면 일대를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낙동강 특별법‘이 입법 예고되면서부터였다.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웬만한 개발행위는 모두 금지되기 때문에 주민들이 입는 재산상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규제와 더불어 농민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인 농지 가격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규제를 막아 보고자 낙동강 변 5개 읍ㆍ면지역 주민들은 ‘상수도보호구역지정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해 2개월여 동안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반대운동은 결국 상수원 오염을 계속하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어서, 대다수 시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정부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포천 주민들은 생각 끝에 환경부에 거래를 제안한다. 1년 안에 대포천의 수질을 1급수로 만들어 놓을 테니 상수원보호구역을 지정하지 말라는 제안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서 환경부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같은 거래가 성사되자 주민들의 필사적 노력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4월 반대대책위원회를 ‘대포천수질개선대책위원회’로 간판을 바꾸고 하천 정화 작업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가구당 월 2,000~3,000원의 ‘수질개선기금’을 갹출해서 3,000만원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유급 감시원 2명을 대포천에 배치했다. 또 수계별 하천감시단 3개 반(18명)을 구성, 축산오물과 공장폐수의 무단 방류 감시에 들어갔다. 또 강바닥에 덕지덕지 앉은 더러운 것들을 걸레질하듯 씻어냈다. 주부들은 세제덜쓰기 운동과 더불어 빨랫감도 1~2주에 한 번씩 모아서 손빨래를 했다. 하수가 흘러드는 어귀마다에는 미나리꽝도 만들었다. 지역 제조업체에 정화구역을 배정해 환경정화운동에 동참을 유도했다. 김해시청에서도 음식물 쓰레기가 하천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각 가정과 식당에 간이침전조 (451곳)를 설치, 주민들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대포천 수질은 1998년 2월 수질검사에서 1급수 판정을 받았다. 대포천 사람들은 11개월 여만에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재산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물을 깨끗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보호구역 지정이 강행되었더라면 수질은 수질대로 별로 개선되지 못했을 것이고, 주민들의 손해만 막심했을 것이다. 주민들이 마음먹으면 작은 비용으로도 환경을 얼마나 잘 보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재산권에 대한 거래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2002년 4월 3일에는 전국 최초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주민대표가 ‘김해 대포천 수질개선·유지에 관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후로도 당초의 약속한 수질이 유지되고 있다.

대포천에서 시작된 수질계약제는 다른 곳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2005년 2월 2일 용담댐 주변의 진안군과 장수군, 무주군 등 3개 군, 14개 읍면 지역 주민의 대표로 구성된 지역협의회 대표는 '용담호 수질개선유지관리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용담댐으로 흘러드는 이 지역 하천의 수질을 1급수로 유지하는 한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을 유예한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보령시 미산면 일대 주민 2천7백 여 명도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할 테니 보령댐 상수원 보호구역지정을 유예해달라고 환경부를 비롯, 국회, 감사원 충남도 등에 건의를 해 놓은 상태다.

4. 수질계약제의 핵심

대포천에서 자발적 수질 개선이 가능했던 것은 수질이 깨끗해질 경우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에서 빼주겠다는 환경부의 약속 때문이었다. 수질이 정해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여러 가지의 재산상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주민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을 유보해 달라고 탄원했고 환경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수질을 놓고 정부와 주민들이 거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제도의 이름이 ‘수질계약제’이다. 이 제도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중앙정부는 지키고자 하는 수질의 기준을 정한다. (대포천의 경우 1급수).
나. 정해진 기간 내에 자발적 노력을 통해서 수질을 기준에 맞출 수 있으면 수질 유지를 위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
다. 자발적 노력을 통해서 수질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면 상수원 보호구역의 지정 등을 통해서 직접적 규제에 착수한다.
라. 수질계약제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도 일정 기간 정해진 기준 밑으로 내려가면 규제를 도입한다.
마. 수질의 측정은 규제권자인 중앙정부가 한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정부가 규제의 기회비용을 계산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오염을 줄이는 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지를 스스로 계산하고 실천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의 효과를 거두면서도 규제 비용의 최소화가 자동으로 달성될 수 있다.

5. 응용 및 확산

수질계약제의 아이디어는 모든 수질 보전을 위한 모든 규제와 정책에 응용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적용 대상은 이미 수질계약제가 진행되고 있는 대포천이나 용담댐 유역처럼 상수원이나 호수가 있는 지역들이다. 청원을 내 놓은 보령지역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모든 상수원 지역으로 이런 방식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역점을 두어서 이 제도를 도입할 지역은 여주, 이천 양평 등 수도권 동부의 자연환경권역이다. 이들 지역이 수도권의 상수원 보호를 위해서 중요한 지역이긴 하지만, 동시에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투자의 최고 적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을 못살게 만드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 아니라면 중앙정부는 이들 지역 주민들에게 수질계약제라는 옵션을 부여해야 한다. 즉 중앙정부는 한강의 중요지점별 수질 기준치를 설정하고 일정 기간 내에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기준을 달성할 경우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할 경우 수질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투자도 활성화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수질행정에 대해서 이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즉 각 지자체에서 큰 강으로 연결되는 방류구의 수질 기준을 설정한 후, 자발적으로 그 기준을 달성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수질을 이유로는 간섭하지 않는 제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방자치의 수준도 높이고 환경의 질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글은 김정호, 땅은 사유재산이다: 사유재산권과 토지공개념, 나남출판, 2006, pp. 222-224의 내용을 전재.

* 문 의 :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권혁철 박사 (02-3774-5006 / kwonhc@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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