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DDA 협상
2002년 이후 협상이 진행되어 온 DDA 협상은 2006년 7월 24일 중단되었다. 당초 DDA는 2004년말까지 협상을 타결하기로 했으나, 2차례의 시한 연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파스칼 라미(Lamy) WTO 사무총장이 잠정적인 협상중단을 선언하게 되었다.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WTO 제5차 각료회의에서 농업과 비농산물 분야 세부원칙을 마련하는데 실패했음에도, 다자체제 발전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으로 2004년 8월 1일 WTO 일반이사회에서 DDA 협상 기본골격(Framework) 합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합의문은 DDA 협상 타결 시한을 연장하며, 홍콩에서 개최될 2005년 12월 WTO 제6차 각료회의에서 실질적으로 협상을 진전시키기로 합의한 바 있다.
2006년 들어, 농업 시장접근, 농업 국내보조, 비농산물 시장접근 등 3대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했으나 성과가 없었고, 이에 Lamy WTO 사무총장은 2006년 7월23일 세계 주요국인 G6(미국, EC, 인도, 브라질, 호주, 일본) 각료회의를 개최하여 농업 분야의 주요 쟁점 타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참가국들이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하자, 새로운 협상 모멘텀을 찾기 전에는 더 이상 협상을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DDA 협상을 일시 중단하게 되었다.
DDA 부진으로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은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미국은 다자무역체제의 최대 지지국이었으나, DDA 협상에는 과거에 비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FTA 체결에는 적극적이란 점을 고려하면, DDA 부진은 미국의 FTA 추진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ㆍ미 FTA 체결에 높은 관심을 보일 수 있다.
FTA의 세계적 확산
한편, 세계화 및 경제통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FTA 체결을 통한 지역블록화 현상도 강화되고 있다. FTA 회원국들은 상호간에 교역 및 투자상의 특혜를 주고받기 때문에 회원국간 경제교류는 확대되는 반면, 비회원국들은 차별을 받게 되어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FTA를 포함한 지역무역협정은 어쩌다 하나 겨우 체결되곤 했으나, 1990년대 접어들면서 그 개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그 수가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로 체결 건수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체결된 협정의 수가 그 이전 40년간 체결될 협정보다 훨씬 더 많다.
2006년 8월 현재 197개의 FTA가 이행중에 있으나,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작은 칠레, 싱가포르 및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의 협정만을 발효시킨 상태이다. 2005년의 경우, 세계 교역의 52%가 FTA 체제하에서 거래되었고, 우리나라는 겨우 0.5%만이 FTA 특혜관세 혜택을 받았다. 2006년 싱가포르, EFTA와의 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FTA 수혜 교역비중이 일부 높아질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여전히 FTA 미체결 손실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미국과의 FTA가 체결된다면, 우리나라의 불이익은 상당 수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였고, 구리, 알루미늄, 원면, 원유 등 원자재에 대한 높은 국제가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중 국제유가는 여전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5년초 배럴당 40달러였던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는 8월중순 65달러를 돌파하였으나, 이후 안정세로 돌아서 60달러 선에서 가격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2006년 들어 국제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고, 배럴당 80달러 선을 넘보면서, 우리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주요 증시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2006년 7월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76.70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983년 NYMEX 개장이후 최고 기록이다. 이란 핵 불안,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공세 등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가 유가 상승을 부추긴 결과이다. 고유가 지속에 따른 세계 경기 및 석유 수요 둔화 등으로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지만, 당분간 고유가가 유지될 것으로 보여, 에너지 효율성이 낮고 수입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대상국 경제여건으로 인해 대외수출환경도 낙관하기 어렵다. 미국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정부는 경기조절을 위한 긴축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시장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생산된 중국과 아세안산 공산품이 우리나라의 중저가 수출품들을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기술제품의 경우 일본산 제품에 밀리고 있다.
우리 경제 성장잠재력 약화
국내적으로 보면, 경제의 잠재성장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음에 따라 청년실업과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잠재성장력이란 물가가 안정될 수 있는 상태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생산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인플레이션 압력 없이 안정적으로 최대한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을 잠재 GDP로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는 잠재 GDP 성장율이 4.5%로 낮아진 상태이다. 1980년대에 7.5%에서 1990년대 6%대로, 2000년대 이후 5%대로 떨어지고 있다. 성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국내 투자도 부진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본 부족이 기업들의 가장 큰 투자애로였다. 하지만, 오늘날 다수의 국내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현금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으나, 국내의 열악한 노사문화와 투자환경으로 인해 국내 투자를 꺼리고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노사문제 발생 가능성이 낮도록 고용을 적게 해도 가동할 수 있는 업종 및 투자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취업난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전문성이 낮은 근로자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들어 저소득층을 확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구고령화가 우리 경제의 성장에 장애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인구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은 1.06명으로, 일본의 1.27명보다 20%나 낮은 수준이다. 또한 서구 국가들이 고령화 이후 통상 40년 내지 100년 가까이 걸린 고령사회 진입이, 통계청 추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불과 18년도 안 되는 2018년이면 고령사회로 들어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구고령화로 우리나라는 조만간에 노동력 부족 국가가 될 것이고, 기업들의 국내 설비투자 부진까지 겹쳐 특단의 정책 이행없이는 성장모멘텀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경제개혁과 더불어,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했으나, 전자나 자동차 분야에서 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 사례를 제외하면, 나머지 분야에서는 비효율적인 기업이 대부분이다.
FTA 체결로 성장동력 확충
DDA 협상이 부진하고, 다른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해 나가고 있어 수출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기업의 투자 부진, 고용없는 성장, 인구고령화 등으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악화되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국내 경쟁구도 강화 및 기업의 연구개발 확대, 서비스산업 선진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는 일차적으로 경제활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고, 고령인구를 지원할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질 것이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진입하기 전에 경제능력을 키워야 한다. 대내적으로 투자환경 개선과 적극적인 내수진작을 통해 기업활동을 강화시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대외적으로는 DDA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면서 미국, 유럽(EU), 중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내실있게 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FTA 체결확대로 수출이 증가하게 되고, 투자여건 개선으로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신정부가 출범할 2008년초를 기준하여 우리나라의 FTA 지도를 미리 그려본다면, 2006년 하반기 타결된 한-아세안 FTA가 2007년에 발효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칠레, 싱가포르, EFTA 및 아세안(상품분야)과의 FTA를 발효시킨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멕시코 및 캐나다와의 FTA 협상도 타결 및 국회 비준을 받아 발효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도와의 협상은 타결 막바지에서 양측간 최종 조율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고, 2006년 공동연구를 실시했던 남미공동시장(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및 베네수엘라가 회원국인 MERCOSUR)과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FTA는 신정부의 통상정책 중심축
하지만, 2006년 9월 현 시점에서 미국과의 FTA 협상에 대해 예측하기는 어렵다. 양측은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는 시점을 고려하여 2007년 3월까지 협상을 타결할 필요성이 있으나, 워낙 많은 이슈가 논의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2006년말까지 5차례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미국이 농업 개방, 약가산정방식, 지식재산권 보호 등에서 탄력적인 입장을 유지하게 되면 내년 3월 협상타결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협상당국이 품목별, 이슈별로 요구조건을 까다롭게 제시하고, 국내에서 반FTA 정서가 확산될 경우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협상은 난항을 겪게 될 것이다.
비록 미국과의 FTA 협상이 완전 타결되지 않더라도, FTA 정책 추진에 있어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정부 역시 참여정부의 FTA 정책을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미국과의 FTA가 참여정부에서 타결되었다면 신정부는 국회비준을 받고 발효시키는 절차를 조속한 시일내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칠레와의 FTA 국회비준 과정에서 목격했듯이, 농업분야의 반대가 거셀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는 노동, 교육, 환경, 문화 단체들의 조직적인 저지가 강할 것이므로, 정부와 여당은 국회비준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협정의 내용을 중심으로 대국민 홍보자료를 국민들 눈높이에 맞춰 작성하고, 더 나아가 효율적인 대국민 홍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피해산업에 대한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구조조정 지원 및 피해산업 손실 보상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해집단의 반발을 정치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무리한 보상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원칙과 논리에 입각해서 피해액과 피해보상액을 책정해야만, FTA 체결과 관련된 도덕적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ㆍ미 FTA는 정권초기에 마무리해야
한편, 참여정부가 미국과의 FTA를 타결하지 못했다면, 신정부는 미국과의 FTA 협상 타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때 쯤이면 주요 협상이슈에 대한 양국간 입장은 모두 알려져 있을 것이며, 실무자간 협의로는 타결하기 어려운 민감사안들에 대한 최종합의가 필요한 상황일 수 있다. 즉, 한ㆍ미 정상회의 등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 정치적 타결이 필요할 수 있다. FTA 협상에서 최종 타결 합의는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민감사안이 많은 한ㆍ미 FTA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되었던, 한ㆍ미 FTA는 신정부 출범 초기에 타결해야 할 것이다. 타결도 어렵지만, 국회비준 역시 이에 못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집권초기에는 정부가 중장기 발전전략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정책변화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받기가 용이할 것이다. 즉, 정권초기에 한ㆍ미 FTA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멕시코의 NAFTA 경험 사례에서 보듯이, FTA 체결로 보다 큰 경제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혁의지와 보완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정부는 개혁과 개방을 통상정책의 축으로 확립하고 꾸준하게 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FTA를 이행하고 경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EU, 중국, 일본, 동북아, 동아시아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 체결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는 통상에 달려 있으며, 통상국가로서 발전하는데 FTA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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