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제도 개혁 방향: 의사와 환자에게 의료선택권을

전용덕 / 2006-05-23 / 조회: 5,401

1. 현행 의료보험은 사회주의 제도

현행 의료보험 제도는 사회주의 제도이다. 국가가 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도 환자도 보험을 선택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 면허를 소지하고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의료보험공단에 등록하고 환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의사로서 진료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현행 의료보험 제도 하에서 의사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환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또, 의사가 환자와의 자유계약에 의해 의료수가를 결정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가 의료수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의료보험을 선택할 수는 없다. 물론 환자는 의사와 병원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험 제도에 관한 한 환자에게 선택권이 없다. 누구라도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에 강제로 가입되어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다. 환자도 의사와 자유계약에 의해 의료수가를 결정할 수 없다. 현행 의료보험은 환자에게 그런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현재의 강제 의료보험은 환자에게도 사회주의 제도이다.

2. 사회주의 의료보험의 폐해

현행 의료보험 제도는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먼저 사회주의 의료보험은 의료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여기에서 의료 산업이란 의사의 진료 서비스, 병ㆍ의원 경영, 의학교육, 제약, 의료장비 산업 등, 의료와 관련한 모든 생산 활동을 포함한다. 국가가 의료보험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의사의 진료 수가, 입원비를 포함한 병ㆍ의원 경영 비용, 약가 등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진료에 필수적인 의료장비의 사용도 제한한다. 이러한 통제와 제한은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의료산업 내의 각 주체의 자발적 노력과 경쟁을 억제하여 의료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경쟁력의 약화는 의료 산업의 발전을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의료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의료의 질적 저하를 통해 국민 건강의 부실화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먼저 의사는 진료 수가가 통제된 만큼 진료시간을 최대한 단축하여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상태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염려하기는 어렵다. 병ㆍ의원 경영, 의학교육, 제약, 의료장비 산업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그런 곳의 많은 생산활동이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의료보험 시행 초기에는 의료 수가와 약가와 일부 저급 의료 장비의 사용만을 국가가 규제했다. 그러자 의사나 병원은 그런 규제를 끼워 팔기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고급의료 장비의 불필요하게 빈번한 사용 등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돌본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그런 행위들도 또한 규제하게 되었다. 점차 의료와 관련한 모든 생산 활동이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그런 규제는 점차 의료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왔다.

현재의 국가 의료보험은 보험급여를 일부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장기간 입원 치료가 요구되거나 치료비가 많이 필요한 ‘암’이나 큰 병은 국가가 제공하는 보험급여만으로 치료할 수 없다. 민간 보험회사가 그런 틈새를 공략하여 민간 의료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강제성인 국가 의료보험을 지불하는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은 환자나 국민에게 이중 부담이 되고 그것은 의료비용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점은 물론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나 적어도 의료보험을 관리하는 비용만큼은 이중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전 국민의 건강과 의료를 담당하는 현행 강제성 의료보험은 그 제도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적자가 불가피하다. 적자가 불가피한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으로 의료비용과 비교하여 언제나 적은 보험료를 징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의료보험이 비용과 혜택의 원리에 의해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리를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의료보험의 관리자인 국민건강관리공단에게 지원한 금액은 2002년에 3조 677억원이고 이후에 매년 증가하여 2006년에 3조 9410억원에 이르렀다. 2006년 정부지원금은 같은 해 국민건강관리공단 수입인 23조 9204억원의 약 16.5%에 이른다. 이러한 액수의 정부지원금은 민간 보험회사가 의료보험 체제를 담당한다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성 의료보험이 필연적으로 적자가 되는 두 번째 이유는 국민건강관리공단이 비용을 절감해야할 인센티브가 민간 기업보다 적다는 것이다. 보험공단은 수익에 비하여 비용이 크더라도 파산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비하여 비용을 절감해야할 인센티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주의 의료보험은 보험금 부담 능력이 없는 국민에게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상을 실천하는 임무를 떠맡는다. 보험금 부담 능력이 적은 국민에게는 의료서비스가 거의 무상으로 제공되고 그 비용은 다른 국민이 보험금과 세금의 형태로 떠맡게 된다. 의료보험 부담 능력이 약한 국민일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 큰 질병에 노출되는 빈도가 큰 만큼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의료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주의 의료보험이 적자가 되는 세 번째 이유다.

마지막으로, 보험에는 언제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문제가 상존한다. 보험의 경우에 도덕적 해이란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료비와 관계없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료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문제점을 지칭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민간 보험에서도 존재한다. 다만 현행 사회주의 의료보험은 그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에 대한 지식이 의사보다 환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가 과잉진료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문제점은 민간 보험에서도 발생한다. 다만 민간 보험의 경우에는 민간 보험회사의 철저한 감시ㆍ감독에 의해 그 정도가 강제성 의료보험보다 작을 뿐이다. 이것이 민간보험에 비해 사회주의 의료보험이 비효율적이고 그 결과로 적자가 발생하는 네 번째 이유다.

사회주의 의료보험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사회주의적 의료보험은 소득에 따라 부과된다. 즉, 소득이 높은 사람은 질병에 걸릴 확률과 상관없이 높은 보험료가 부과된다. 반대로 소득이 낮은 사람은 적은 금액의 보험료가 부과된다. 이러한 방식은 형평성 문제를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이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작다. 왜냐하면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평소에 자신의 건강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건강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용이라는 관점에서는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를, 저소득층이 높은 보험료를 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소득에 따른 부과방식은 소득을 재분배하게 되는 제도로서 불공평한 제도라고 하겠다.

소득에 따른 부과방식은 소득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 하는 점과 관련이 있다. 임금 생활자의 소득은 거의 전부가 노출되어 있지만 자영업자와 비공식적으로 소득을 획득하는 과외교사 등의 소득은 상당 부분 감추어져 있다. 사실 자영업자 등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소득의 크기를 감추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점은 소득에 따른 부과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하더라도 임금 생활자와 비임금 생활자 간에 형평성 문제를 또한 일으킨다.

의료산업, 특히 의료수가 등이 국가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다면 병ㆍ의원과 약국의 현재와 같은 도시 집중 현상은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의료수가와 약가가 자유롭게 결정된다면 비록 환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농어촌이라도 병ㆍ의원과 약국을 경영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량생산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현재의 규제 체제 하에서는 인구가 적고 분산되어 있는 농어촌에서 병ㆍ의원과 약국을 경영하는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렵다. 국가에 의한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가 농어촌에서 병ㆍ의원과 약국을 그런 규제가 없을 때보다도 희소하게 만들고 있다.

3.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

미국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공공의료비와 민간의료비로 구성되어 있다. 2001년 현재 공공의료비와 민간의료비는 전체 의료비 지출의 45%와 55%를 차지한다. 즉, 공공의료 제도와 민간의료 제도가 미국 의료제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비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와 다른 공중의료로 나누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전체 의료비 지출의 17%와 16%를 각각 점하고 있다. 여기에서 메디케어는 65세 이전에 세금으로 의료비용을 내고 65세 이후에 그것을 받는 방식의 미국식 사회주의 의료보험이고 메디케이드는 정부가 세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미국식 사회주의 의료제도이다. 민간의료비는 민간보험과 개인지출과 기타로 나누고, 민간보험과 개인지출이 전체 의료비 지출의 35%와 1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앞에서 보듯이 미국의 의료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중 공공의료는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강제성 보험으로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의료보험과 큰 차이가 없다. 민간의료는 민간 보험회사에 의해 운영되거나 개인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 제도이다. 민간의료비는 절대액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민에게 작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의료 제도 자체에는 심각한 문제가 없다. 오히려 민간 의료보험을 적절히 운영한 경험을 가진 민간 보험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공공의료는 각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재정을 파탄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개혁 대상이 된지가 오래이다. 미국의 공공의료는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들과 유사한 문제점들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4. 의료보험 개혁 방향

현행 사회주의 의료보험은 시장경제에 맞게 개혁되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모든 의료보험을 민간 기업이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간 보험회사는 현재도 의료보험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이 경우에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 의료보험을 민간기업에게 판매하도록 하고 사회주의 의료보험을 단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의사는 환자와 자유계약을 통해 의료 수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약가, 병ㆍ의원 비용, 의료 장비 사용 등에도 가격 규제를 없애고 자유계약에 의해 가격을 결정한다. 한 마디로, 의료산업에 자본주의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사회주의 의료보험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민간 의료보험을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의사도 민간 의료보험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도 강제성 의료보험 대신에 민간 의료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의 선택에 의해 민간 의료보험이 유지되고 민간 의료보험 제도는 철저히 자유시장원리를 지키는 방법으로 실시되도록 한다. 물론 환자와 의사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회주의 의료보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민간 의료보험과 사회주의 의료보험이 경쟁하기 때문에 의료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의료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사회주의 의료보험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궁극적으로는 전자의 방법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 미국의 경험이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전용덕(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ydjeon@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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