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생활자와 미래세대를 위한 세제개혁

김한응 / 2006-05-04 / 조회: 6,468


단일세제 도입을 통한 세제개혁

여야간의 이념차이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여야간의 이념차이가 2005년 정기국회 이후에는 세금에 관한 입장차이로까지 발전하여, 여야간의 이념차이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음을 국민들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세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2006년 신년연설이 있은 이후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다. 양당 원내대표들도 최근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 세금문제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양측의 이런 의견대립은 적어도 2007년 대선 때까지는 계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우리 경제가 지금 당면해 있는 상황에서 볼 때, 증세와 감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보다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 대통령도 지적했지만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 경제가 국내외적 요인으로 인해서 조만간 성장을 멈추고 장기침체로 들어갈 위험성도 있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성장보다 분배의 공평 그리고 부자와 빈자간의 차이를 줄이는 일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정부는 세금을 가능한 한 많이 거두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분배보다 성장에 주력하는 정부는, 가능한 한 민간부문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근로의욕을 촉진시켜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낮추려 할 것이다. 낮은 세금은 사유재산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시장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금의 역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진리가 하나 있다. 즉 세금을 낮추면 경제가 활기를 띄게 되고 세금을 높이면 경제는 침체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1920년대의 세금인하로 대공황이전까지의 장기 호황을 누렸고, 1960년대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세금인하로 또 호황을 누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세금인하로 역사상 가장 긴 호황기간을 경험하였다. 영국의 대처 개혁도 그 중심에는 세금의 대폭적인 인하가 있었다. 또 미국의 국제경쟁력이 유럽보다 높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세율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데 있다는 분석이 있다(<1> pp.41-47).

반대로 세금인상의 예를 보면, 대공황은 후버 대통령이 1932년 균형재정을 이루기 위해 세금을 올렸기 때문에 더 심각해졌다는 주장이 있다(<2> pp.12-14). 이 이외에도 영국의 대처수상은 초기에 세금인상으로 홍역을 치렀고, 일본은 경기회복기미가 보이는 상황에서 소비세를 올렸기 때문에 다시 불황에 빠져들어 갔다. 우리나라가, 규제가 그렇게 심함에도, 그런대로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위의 미-유럽관계에서 본 바와 같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세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금년 1월 초 증권투자 차익에 대한 세금징수 또는 세금포괄주의의 실시가 행해질 것이라는 루머로 증권시장이 폭락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가장 최근의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실증적 분석으로는 연방세를 1% 올리면 경제성장이 0.3% 둔화된다는 미국의 연구가 있다(<1> p.14). 국내경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서도 “조세부담을 늘리면.....거시경제변수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낸 일이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분석결과로 볼 때, 세금은 낮을수록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낮은 세율은 경제성장률을 더 높게 만들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후에는 세율을 올렸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2> pp.74-75). 따라서 복지정책과 같은 것은 민간부문을 활성화시켜서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세금수입이 늘어나기를 기다려서 실시하는 것이 먼저 세금을 올려서 실시하는 것보다 훨씬 국가발전에 유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표의 감세정책을 “물로 가는 자동차”에 비유한 청와대의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온건한 복지정책인 경우에는, 감세정책으로 경제를 성장시킨 후 그에 따른 세수증가 분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봉급생활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복지보다 성장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이들의 조세부담이 유럽에 비해 아직은 낮다지만,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및 低출산 경향이 변하지 않는 한, 이들의 세금부담이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고 할 것이다. 봉급생활자들의 이런 어려운 처지는, 이들이 어차피 큰 부분을 부담하게 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까지를 감안하면, 더욱 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과거 5년 동안 근로자의 국민부담률은 150% 상승: 통계청). 이로 볼 때 지금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현재와 미래의 봉급생활자들의 조세부담률을 낮추어주는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강구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봉급생활자들은 높은 조세부담(또는 국민부담률)으로 근로의욕을 잃게 될 위험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외부요인이 없어도 장기적 불황은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봉급생활자들의 조세부담이 자영업자들에 비해 너무도 불공평하게 무겁다는 점이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간의 조세부담상의 불공평은 현재도 큰 문제이지만, 이런 불공평은 앞으로 소득이 증대됨에 따라 더욱 확대될 것이므로 미래의 봉급생활자들이 느끼게 될 불공평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간의 조세부담 상 불공평을 시정하는 방안도,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안에 강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조세의 불공평이야말로 국민화합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누진소득세 제도는 조세의 공평을 기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리고 최근의 추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조세의 공평을 기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공평을 기하려는 제도가 같은 소득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은 봉급생활자이기 때문에 몇 배의 세금을 더 내고 다른 한쪽은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세금을 훨씬 덜 내게 되는 것을 해결해주지 못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평을 기하는 제도라고 할 수 없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4년 중 자영업자의 월평균 가구당 조세부담액은 43,743원인데 비해서 근로자의 가구당 부담액은 그 두 배가 넘는 98,737원이라는 것이다.

소득의 차이에 따라 세금에 차이가 나는 것은 능력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능력과 소득이 같은 상황에서 봉급생활자냐 아니냐의 여부로 세금에 차이가 나는 것은 국세청의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고, 봉급생활자들로서는 정말로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세청이 조세부담의 공평을 기할 생각이 있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국세청은 이 문제를 세무조사강화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결하려 하는 경우 비용도 엄청나게 증가하겠지만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1860년대에 처음으로 소득세제도를 도입하였을 때에는 소득세 기준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소득파악을 위해 개인 사생활의 과도한 침범 등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세무조사를 강화했으나, 그 결과는 무리(無理)한 조사에 대한 비판만 높아졌고 조세회피행위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Henry George는 각 개인의 보유 토지를 기준으로 소득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하면 무리한 세무조사 없이 소득세를 비교적 공평하게 징수할 수 있다고 그는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유명한 Henry George의 토지에 대한 단일세제 이론은 사실 그 당초 목표는 이처럼 공평한 소득세의 부과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3> pp.247-251).

그러면 이런 객관적 자료가 마땅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대안에 대한 예는 러시아가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는 고소득층에 대한 정확한 세금징수가 어렵다고 생각하자, 2001년부터 모든 소득에 대해 똑 같이 낮은 13%의 단일세(Flat Tax)를 부과하였다. 이 조치시행 이전의 누진세제 아래에서는 고소득층의 납세율이 52%이었으나, 그 후에는 고소득층의 납세율이 68%로 상승하였다는 사실로서 이 조치의 효과는 증명된다고 할 것이다(The Economist(2005. 4. 16.) p.65).

우리나라에서도 현재로서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할 길이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국세청은 종업원 1명 이상의 사업소에 대해 모든 소득을 보고하도록 하려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은 사생활의 침범 등 많은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의 조세저항을 줄이면서 소득세 회피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는 당근과 채찍정책을 동시에 실시하지 않고는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자영업자들의 세율을 적당히 낮추어주는 당근을 주어서 그 정도라면 처벌을 받기 보다는 세금을 성실 납부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세율을 낮추는 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즉 봉급생활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나 그리고 자영업자들에게는 조세회피 유혹을 줄여주기 위해서나 세율인하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율인하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부수적 효과까지 있다. 이런 효과를 노려서 모든 소득(법인소득 포함)에 똑같이 낮은 단일세율을 적용하려는 것이 단일세제(Flat Tax)이다. 이 세제를 실시하면, 이 세제가 정착할 때까지의 과도기인 10년 사이에만 경제성장이 5%-10%포인트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실증적 분석이 있다(<2> p.72 및 <4> p.7).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세율인하가 세수감소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경제성장촉진으로 세수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정부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줄이는 방법의 하나는 각종 감면제도(2005년 중 각종 감면제도로 인한 우리나라의 세수손실 약 20조원)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면제도를 없애는 것에는 다른 혜택도 따른다. 예컨대 이런 감면제도를 없애면 국세청의 재량권이 없어지고 감면제도의 신설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부패도 근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국회청문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감면제도는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 잘 이용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를 없애는 것은 조세의 형평성을 크게 개선해주기도 한다. 또 감면제도는 조세지원제도와 더불어 시장기능의 원활한 작동에 간섭하는 교란효과도 있다.

요컨대, 단일세제(Flat Tax)는 봉급생활자의 부담도 줄여주고 자영업자들의 세금회피의욕도 완화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세금수입을 가능한 한 줄이지 않고 조세부담의 공평성을 높여주면서, 정치인과 세무 관료들의 부패방지와 시장기능의 강화를 동시에 달성하게 해준다. 이 단일세제도는 기업과 개인의 구별 없이 단일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이로 인한 세금수입상의 감소는 모든 감면제도를 없애는 방법으로 보충하자는 것이다.

단일세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기업의 투자액을 전부 그 연도에 손비로 처리하게 하는 방법으로 (감가상각으로 미루지 않고) 투자를 촉진시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성장촉진효과를 배당 등 저축에 대한 이중과세(二重課稅)를 금지하는 방법으로 더욱 높이고 있다.

단일세제의 또 다른 큰 장점은 납세절차를 단순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징수비용뿐 아니라 납세자들의 납세협력비용(compliance cost)도 크게 줄여주는 것이다. 우선 단일세율로의 통일과 모든 감면제도의 완전폐지 등으로 징수절차가 크게 단순화됨에 따라 국세청 기구를 대폭 축소시킬 수 있다. 현재의 국세청 기구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만 해도 정부지출(2005년 예산: 1조원)은 크게 절감될 수 있다. 미국에서의 한 추정에 의하면, 1985년도 연방세 제도의 비용(The Total Cost of The Federal Tax System)은 실제 세금 징수액의 65%에 달한다는 것이다(<1> p.7). 이 비율을 우리나라의 2004년도 직접세(국민계정기준: 596,931억원)에만 적용해 보아도 약 38조원에 달한다.

또 어떤 국내 웹 사이트는 연말정산과 관련하여 여론조사를 하여본 결과, 직장인의 78%가 연말정신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응답했다고 한다(www.saramin,co.kr). 우리나라 세제를 단일세제로 개혁하면 납세자들의 이런 불편은 거의 없어지게 된다. 미국의 이와 관련된 추정에 의하면, 미국의 저소득층은 소득의 4.5%, 그리고 중소득층은 소득의 1.3%를 납세협력비용으로 지불한다는 것이다(<2> p.45). 이런 비용도 납세자로서는 세금과 같이 부담을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비용만 줄여주어도 납세자들의 후생(well-being)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김한응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참고문헌>

<1>. Robert E. Hall and Alvin Rabushka, The Flat Tax(2nd edition), Stanford: Hoover Institute Press, 1985.

<2>. Steve Forbes, Flat Tax Revolution: Using A Postcard to Abolish The IRS,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2005.

<3>. Robert J. Shiller, The New Financial Order: Risk in The 21st Centu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3.

<4>. Daniel Mitchell, Flat Tax or Sales Tax?: A Win-Win Choice for America, The Heritage Foundatio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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