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의 폐지

김정호 / 2002-11-24 / 조회: 5,929
No.042

1. 재개발과 재건축

우리나라에는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것과 관련된 제도가 몇가지 있다. 재개발 사업에서는 소위 속칭 달동네의 집들을 헐어 내고 고층 아파트를 세운다. 사업 지구내 가옥들의 대부분이 국'공유지를 무단점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의 주도로 사업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무단점유된 국?공유지를 민간에게 공식적으로 불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재개발사업이 사업 지구 전체를 전면 철거하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택단지를 만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전면철거가 아닌, 점진적인 개선을 택한다. 개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밀도규제의 완화 등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재개발이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 다시 집을 짓는 행위는 재건축이라 부른다.

2. 재건축에 대한 규제

주택건설촉진법은 재건축으로 건립되는 주택의 호수가 20호 이상일 경우, 재건축허가라는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건축허가의 대상은 20년 이상의 공동주택이거나 또는 안전상 하자가 있다고 인정되는 건물이다. 재건축사업 허가를 받게되면, 전체 토지소유주의 80%의 동의만으로도 사업의 집행이 가능하다. 즉 허가를 받은 사업은 나머지 20%의 소유자에 대한 수용권의 발동이 허용되는 것이다.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20호 미만 사업일 경우는 물론 토지소유자의 전원동의가 필요하다. 한편 단독주택의 경우 20호 이상의 재건축사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재건축에 있어 제일 문제가 되어 온 부분은 안전진단이다. 아무리 지은지 오래된 주택이라하더라도 공인된 기관에 의해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헐고 다시 지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2003년 시행 계획)은 지자체로 하여금 10년 단위의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게 하고, 그 계획에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대해서만 재건축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재건축사업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또 주민이 신청하면 구청장이 판단해서 결정하던 안전진단 절차는 시도지사가 사전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안전진단 기준도 건교부장관이 따로 정하게 되어 있어,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3. 재건축은 규제되어야 하나?

요즈음 주택가를 걷다 보면 저층 단독주택을 헐어낸 자리에 원룸용 주택들이 들어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은 집주인의 자유이다. 재건축의 자유 덕에 많은 원룸들이 공급되고 젊은 독신자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파트의 재건축에는 그런 자유가 없다. 최근에도 강남의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거절당했다. 단독주택의 재건축은 건축허가만 받으면 되는 반면, 아파트나 연립주택은 지은지 20년이 넘는 것에 대해서만, 그것도 소위 안전진단이라는 것을 거쳐 정부가 허가해줄 경우에만 할 수 있다. 그런 법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자기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것이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것을 정부가 막는가.

물론 아파트와 단독주택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단독주택은 주인이 하나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 결정하면 된다. 반면 아파트는 주인이 여럿이어서 만장일치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재건축을 차별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만장일치가 어려운 만큼 일정 비율 이상만 찬성하면 전원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기준만 만들어주면 된다. 실제로 집합건물의소유와관리에관한법률은 80%의 찬성만 있어도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파트의 재건축을 달리 취급해야 한다면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아파트의 재건축은 큰 죄나 되는 것처럼 취급한다.

재건축 억제의 필요성으로 여러 가지의 이유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기반시설 문제다. 도로나 상하수도관의 용량은 기존 아파트에 맞춰져 있는데, 재건축이 이루어져 인구가 늘면 그 용량을 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좁은 시각에서 만들어진 견해이다.
교통문제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재건축되는 지역은 대개 지가가 비싼 지역, 즉 접근성이 좋은 곳들이다. 따라서 이런 지역을 고밀화할 경우 다른 지역의 교통량을 흡수할 수 있고, 도시 전체적으로 보면 교통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재건축을 통해서 한 쪽 지역이 고밀화되면 그만큼 다른 지역은 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재건축한 지역에서 수압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물 사정이 더 좋아질수도 있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도시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비용과 편익 중 어느 쪽이 더 큰가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아마도 답은 지역마다 다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기반시설은 늘릴 수 있다. 재원이 문제이긴 하지만 개발이익환수금 중에서 건교부가 가져가는 50%를 해당 지자체로 돌려서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비용으로 쓰면 될 것이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재건축조합에 부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면 된다. 그게 수익자부담 원칙에도 맞는다. 게다가 이것은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독주택도 동네 전체가 1층짜리를 3층으로 올려지으면 기반시설용량을 초과하며 실제로도 그런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 문제는 주택의 종류와는 무관하게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재건축 억제의 또 다른 근거는 자원낭비에서들 찾고 있다. 멀쩡한 집을 헐어내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다. 집주인이 바보가 아닌 한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집주인도 기존 아파트를 헐어내는 것이 아깝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더 쾌적하고 더 넓은 주거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재건축을 통해서 창줄되는 건물의 가치가 없어지는 기존 건물의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더 넓고 더 쾌적한 집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재건축이라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결정의 당사자인 집주인들이 낭비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3자인 정부나 학자들이 비난할 정당성은 희박하다. 무엇이 낭비인지 아닌지를 주인이 아닌 제3자가 더 잘 알 수 있다면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사유재산제는 애초에 들여올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값이 비싸지면 아껴써야 한다. 토지도 예외일 수는 없다. 토지의 절약은 건물의 고층화를 통하여 이룩될 수 있다. 택지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가 1000평뿐인 어떤 마을을 상상하여 보자. 처음에 10가구 만이 있었다면 각 가구는 100평씩의 토지 위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구가 10배로 증가하게 된다면 1인당 토지면적은 10평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토지의 분할 만으로는 주택의 건축이 불가능해 진다. 유일한 대안은 고층아파트를 지음으로써 토지절약적 주거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과정은 시장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달성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층아파트를 짓는 것이 더 많은 이윤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즉 토지의 절약이라는 사회적 목표가 이윤추구라는 토지주인들의 이기적 목표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등 토지 과소비적 주택을 고층아파트라는 토지절약적 주택으로 재건축하는 것은 억제되어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일이다.

재건축을 규제해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집이 얼마나 새 집인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집을 지었을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다른가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 토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 토지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도 불구하고 고층아파트로의 재건축을 규제하는 것은 정부가 토지를 낭비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재건축 억제 조치는 가격을 잡고자 하는 목적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라면 더욱 설득력이 없다. 외국의 학자들이 사회주의적 제도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나라의 토지이용규제는 엄격하다. 그린벨트, 농지 및 임야규제, 건물높이에 대한 건축법상의 규제 같은 것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도시용 토지공급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느는데도 공급은 적시에 늘기 힘들다. 재건축은 농지나 임야 같은 땅을 쓰지 않고도 주택공급을 늘리는 유일한 통로다. 그것을 막으면 주택공급도 막힌다. 물론 재건축을 못하게 하면 일시적으로 재건축을 계획하던 아파트의 값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더 좋고 더 넓고 더 많은 아파트가 지어질 수 없으니 결국은 전체 아파트의 값이 상대적으로 더 올라갈 것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재건축억제제도는 재산권보호하는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4. 재건축 규제의 부작용

재건축이 억제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우선 도심의 비싼 땅에 고층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재건축이 허용될 때보다 도심 근처에서의 주택총량은 작을 수밖에 없고, 이로인해 도시 전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상승한다. 주택가격의 상승은 토지에 대한 지불의사의 상승을 동반하기 때문에 재건축을 통하지 않고서도 주택의 신축이 가능한 변두리 지역에 고층 아파트 지대를 만들어낸다.

기존 주거지의 재건축이 원활치 않으면 새로운 택지는 도시 외곽의 미개발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건축의 억제는 불필요한 농지 또는 임야의 전용을 촉진하게 된다. 재건축이 억제되면 신축 가능한 토지에 대한 지불 의사는 전체적으로 상승한다. 반면 농지나 임야의 사용가치는 재건축 억제 여부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 따라서 재건축의 억제는 자유로운 재건축을 허용할 경우 보다 더 많은 농지나 임야를 도시용지로 쓰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주택이나 상가 등의 부동산 가격은 더 높아진다. 재건축의 억제는 더 많은 토지를 사용하고도 높은 주택가격과 좁은 주거면적을 도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5. 제안

재건축규제는 폐지해야 한다. 즉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재건축을 위해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든가, 또는 20년 이상된 것만 가능하다는 등의 규제가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 재건축의 경우 도심에서 공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공사차량의 출입으로 인한 교통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여러 동의 고층빌딩이 들어서기 때문에 도시경관상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재건축을 허가할 것인가 말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교통영향평가, 경관심의 같은 수단을 통해서도 재건축의 대규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재건축을 할 것인지 말것인지의 여부는 토지소유자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져야 한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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